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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9.22 미국통신 11[대닐로위츠 학장과의 만남] 1
글 - 칼럼/단상2013. 10. 5. 08:22

 

빛나는 한국학생 Hyunjun Brian Choi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창 자식들을 키울 때엔 그 녀석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모자랐는데, 이제 웬만큼 홀로서기들을 했다고 생각되면서 내 눈에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내 시야에 들어온다. 요즘 들어 부쩍 남학생들은 아들로, 여학생들은 딸이나 며느리로 바꾸어 생각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운 좋게도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을 만나면서 거의 저런 학생을 아들이나 딸로 둔 부모는 참 좋겠구나!’, ‘저런 아이는 며느리 감으로 딱인데!’, ‘참 잘 키웠구나!’ 등의 생각만을 갖게 되었으니, 참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자랑스럽게도 이처럼 내 주변에는 반듯하면서도 이쁘고 착한학생들뿐이다.

 

잠시라도 해외에 나가 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인 동시에 잘 몰라서 불안한 일일 수도 있다. 미국 내의 연구기관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으로 결정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서류작업들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이곳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의 학장, 학과장, 외국인 학자 관리처, 주택 관리처, 풀브라이트[미국 본부 및 한미교육위원단], 대사관 등 우리가 접촉한 기관이나 부서들 모두 공적인 업무 상대들일 뿐이었다. 친척이나 친구 등 좀 더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답답한 나머지 사이트를 뒤지다가 이곳 대학의 한인학생회를 발견했고, 궁여지책으로 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어서 부득이 부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득달같이 생동감 넘치는 문체의 영문 답신메일이 날아왔다. 그가 바로 ‘Hyunjun Brian Choi’였다. 어려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한글을 쓰는 것보다 영문을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여 영문으로 이메일을 쓰게 되었노라는 해명까지 덧붙여가며 이곳 생활의 이면들을 자세하게 적어 보내온 것이었다. 참으로 예의 바르고 의젓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이메일을 받아보곤 호기심이 생겼다. ‘한인 학생회의 부회장이라니, 대학원생 쯤 될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몇 번 오고 간 그와의 메일 연락 덕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올 수 있었다.

 


Cafe 88에서 


레스토랑 Bad Bread에서 


OSU의 풋볼 경기장 Boone Pickens Stadium에서               
                                                                                                       

와 보니 정착이 쉽지 않았다. 시차 적응이 쉽지 않아 눈꺼풀은 스르르 내려앉는데 시장은 가야하고, 시장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차를 사는 절차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또 자세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이메일을 통해 연결된 분이 바로 기계공학과의 장영배 교수였다. 장 교수의 호의로 우리는 나머지 정착과정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브라이언을 집으로 불렀다. 아직 차를 구입하기 전이었다. 시장을 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하자 강의가 끝나는 즉시 친구의 차를 빌려 몰고 부랴부랴 와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앳된 학부 3학년생이었다. 첫 인상이 착하고 성실했다. 말을 시켜보니 의젓하고 생각 또한 깊었다. LA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대학 기간을 단축하려는 계획을 갖고 이 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였다. 벌써 1년 반이란 기간을 단축했단다.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국제변호사[아마 경제 전문 변호사가 목표인 듯하다.]로 활약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미 한국의 유수한 로펌에서 인턴의 경력도 쌓아놓았다고 했다. 매학기 학점을 초과 이수하면서도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였다. 예컨대,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National Society of Collegiate Scholars’, ‘Phi Eta Sigma’, ‘Golden Key International Honor Society’ 등의 멤버로 활약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출중한 능력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2012년에는 ‘Baugh, Russell, and Florence’ 장학금을 받았고, 2012년 봄 학기, 2013년 봄여름 학기에는 우등생으로 학장의 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총장으로부터 우등상장을 받기도 했다.


Boone Pickens Stadium 건물 1층에서 

         

브라이언이 속한 College of Honors 건물 

 

나는 해외에서 빛나는 우리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물론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도 중요하고 어렵다. 그러나 낯설고 물 선 해외에서 그들과 경쟁하여 앞서나가는 일은 더욱 어렵다. 어머니의 젖과 함께 물려받은 모어[mother tongue] 사용자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아이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인즉, 그 나이 또래에 누구나 맞이하는 질풍과 노도’, 내부의 욕망과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유혹들을 억누르거나 물리치고 시시각각 침투하는 외로움과 맞서가며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브라이언이 풍겨내는 담담한 내면을 통해 나는 범상치 않을 그의 부모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의 빛나는 미래를 점치게 되었다. 브라이트(bright) 브라이언 만세!!!

 


백규 연구실에서 브라이언과 함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9. 22. 12:29

 

 


대닐로위츠 학장과 첫 대면을 하고

 

 

대닐로위츠 학장과의 만남

 

 

작년 126, 풀브라이트에서 연구 기간 동안 체류할 미국 내 기관의 지정을 요구해 왔다. 잠시 고심한 끝에 OSU의 역사학과로 결정했고, 그 학과가 속해있는 ‘College of Arts and Science’의 대닐로위츠[Danilowicz, Bret] 학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연구 수혜자로 선정한다는 풀브라이트로부터의 편지와 함께 이력서, 연구활동 경력, 연구업적, 연구계획서 등이 포함된 커리큘럼 바이티(Curriculum Vitae)를 첨부하여 학장의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것이 그 메일의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낸 뒤 만 하루 만에 대닐로위츠 학장은 답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풀브라이트 연구 활동을 위해 당신이 OSU로 오시고자 하는 일을 토의했다는 것, 수혜기간 동안 당신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는 것, 당신을 공식적으로 초청하기 위해 역사과 학과장인 마이클 로간 박사가 초청장을 보내게 된다는 것, 나는 당신으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로간 박사에게 포워딩했으므로 구체적인 초청장을 만들기 위해 그가 앞으로 당신과 접촉하게 된다는 것, 그의 초청장이 완성되면 당신에게 발송하기 전에 학장인 나와 대학의 교무처장으로부터 승인을 받게 된다는 것, 그리고 DS 2019를 받기 위해 국제 교육연구소(IIE)와 함께 일을 처리한다는 것등을 상세하게 적은 뒤, ‘당신이 풀브라이트 연구 활동을 위해 이곳에 온 뒤 뵙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인사를 덧붙인 메일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이메일을 주고받았으나, 그 때마다 그의 메일 내용이나 표현은 참으로 정중하면서도 곡진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안정될 즈음,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보내자마자 반가움을 가득 담아 답장을 보내왔고, 비서를 통해 날짜와 시간을 정한 다음, 우리는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수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내 귀에 대고, ‘당신의 퍼스트 네임 Kyuick을 어떻게 발음하면 되는가고 물어보며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고심한 듯 했다. 내가 규익이라고 발음하는데, 아마 외국인들은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하곤, 나도 학장님의 라스트 네임 Danilowicz는 그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나도 사실은 그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내 이름을 발음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며 직접 발음을 해 주는데, ‘wi’를 동유럽식인 로 발음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곳에 온 뒤 로간 교수에게 그 발음을 물었더니 내가 원래 추정한 대로 대닐로위츠라 알려 주길래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본인은 약간 다르게 발음하는 것이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학장은 여긴 미국이니 미국식으로 발음해도 괜찮다며 또 한바탕 웃고, 나도 오랜만에 크게 입 벌려 웃고 말았다.

 

서로간의 이름을 두고 시작된 환담은 커피를 앞에 놓은 채 30여분이나 계속되었다. 주로 한국의 대학제도에 관한 물음, 내 연구계획에 관한 물음,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물음 등이 핵심이었고, 내가 하기로 되어 있는 특강시간을 알려주면 꼭 참석하겠노라는 약속까지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전공은 동물학(zoology). 시라큐스 대학 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부전공은 컴퓨터 사이언스]했고, 듀크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지아남부대학에서 MBA, Open University에서 교육학 석사학위 등을 받음으로써 다양한 전공으로부터 많은 조예를 갖춘 폭넓은 학자였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윈저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했고, 아일랜드의 더블린 대학교에서 패컬티 멤버로서 부학장직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가장 최근에는 조지아 남부대학교 과학대학의 부학장과 학장직을 수행하기도 한 대학 학문행정의 달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1천만 불에 달하는 연구프로젝트로 아이슬란드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연구를 수행한 현장 연구자이기도 했다.


 

***

 

참 편안했다. 로간 교수보다는 빨랐지만, 정확하여 듣기에 부담 없는 영어를 구사했으며, 웃음이 많고 공감영역이 넓은 신사였다. 학문이나 행정, 연구프로젝트 등 모든 면에서 특출한 경력을 갖춘 대학행정의 책임자답게 인간적인 폭과 깊이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치밀하여 한 치의 허술함도 찾을 수 없었다.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은 대닐로위츠 학장 같은 인물들을 통해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자성(自省)을 새삼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