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 3. 29. 18:40

 


 


흘러가는 물을 보며

 

 


부모님 묘소에서

 

 

많은 죽음들을 기억하며

 

 

                                                                                                                                조규익

 

 

두 해 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올해 가까운 친구 김성원이 떠났고, 며칠 전엔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하던 정명기도 떠났으며,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비명(非命)’에 떠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그간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사색을 통해 나름대로 의미부여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까. 이젠 어떤 죽음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사(自然死), 병사(病死), 사고사(事故死) 모두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또한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인한 최근의 자살들 역시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듯하게챙겨 갖고 있지 않다면, 견디기 어려운 광경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요즈음이다. 사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자살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고, 그동안 지탱해오던 사회적 자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자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엘케골의 말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했으리라.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간은 종교에 귀의한다고 한다. 사실 죽음이 매우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예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도 사람들을 교회로, 성당으로, 사찰로 이끄는지 모른다. 돈독한 논리체계로 사후 세계를 치밀하게 설계해 온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세계의 주재자인 신을 받들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경감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종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고, 그 가운데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덧없다. 하기야 한갓 미물로서 무슨 가치를 창조하겠노라뜻을 세우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가당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겸손한 자세로 생명의 장()’인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 사라지련만. 대부분은 주어진 생애 동안 기고만장하여 같은 공간의 동지들과 멱살잡이로 날밤을 지새우기 마련이다. 소수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지만, 대부분은 삶에 대한 헛된 집착으로 그런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警句). 아침저녁 열심히 가꾸어 오던, 꽃 같은 얼굴이 한 줌 재로 바뀌어 풀밭에 뿌려질 때, 풍채 좋던 친구가 주검 옷에 둘둘 말려 석자 깊이의 무덤으로 내려 갈 때, 그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내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보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법칙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바뀐 그들과 나의 자리바꿈을 통해 비로소 삶과 죽음의 우주적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죽음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할까? 하나, 둘 떠나는 이웃들을 보며, 그 순번이 내게 돌아올 때까지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그 순간을 맞아야 할지,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메멘토 모리!!!

 

 


등걸에서 새싹이...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7. 26. 06:51



*사진 위로부터 코펜하겐 공항 구내에서 만난 덴마크의 '열린 마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코펜하겐 거리, 인어공주상, 게피온 분수대에서, 뉘하운 항구의 재즈공연장(현재 재즈페스티벌 중), 아마리엔보 궁전, 코펜하겐 항구 DFDS 선상에서 바라본 크루즈선, 코펜하겐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크라운플라자호텔 인근에서 만난 친환경 아파트(옥상까지 자전거로 올라갈 수 있다 함), 프레데릭 보르 성1, 프레데릭 보르 성2



자연 속에 영글어 온 인간의 꿈, 덴마크



헬싱키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7월 7일 오후 다섯 시쯤 도착한 코펜하겐 공항.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코펜하겐의 상공엔 흰 구름이 덮여 있었고, 항구엔 하얀색의 크루즈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들은 바다 위에 한 줄로 늘어서 돌고 있고,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한가로웠다.

‘밖에서 잃은 땅, 안에서 찾자!’고 외치며 실의에 빠진 조국을 구한 달가스(Enriko Mylius Dalgas), 국민교육으로 조국을 구한 그룬트비(N.Fs Grundtvig),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골(Kierkegaard, Soren Aabye) 등. 그들이 만든 나라에 온 것이다. 북위 55도. 우리로 치면 ‘끔찍한 북쪽’이다. 그런데 날씨는 산산하고 밤 11시까지 지지 않는, 대낮 같은 백야의 석양 속에 길거리는 차분했다. 시내 일식집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크라운 플라자 호텔에 짐을 풀었다. 꽤 높은 호텔 창밖으로 바다와 시가지가 어우러져 보였다. 호텔의 수돗물은 그대로 마셔도 무방하다는 그곳. 무엇보다 공기가 달았다. 그런데,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동행한 노선생은 자판기의 생수가격을 예로 들었다. 17크로네! 작은 생수 한 병이 우리 돈으로 3,400원이 넘었다. 껌 한 통이 2유로에 가깝다니, 북유럽은 ‘껌값’이란 말도 통할 수 없는 곳인가.

북유럽의 날씨를 보여주려는 듯 다음 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김동규가 ‘간지 나는’ 저음으로 들려주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며 덴마크를 친견하게 된 흥분을 겨우 잠재웠다. 호텔을 나서자 야산 하나 보이지 않는 평원과 푸른 숲이 끝없이 이어졌다. 해발 170m라니! 아예 산은 없는 셈이다. 남한의 3분지 1밖에 안 되는 땅, 530만 인구에 380여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 대체 굴뚝 하나 안 보이는 숲속 어디에서 87,000달러의 1인당 국민소득이 만들어져 나온단 말인가. 멀리 아름답게 디자인된 건물 사이로 솟은 굴뚝 하나가 보였다. 놀랍게도 쓰레기 소각장이란다. 버스가 뚫고 지나는 녹색의 숲이 덴마크의 오늘과 내일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평평한 대지에 그득한 삼림, 그 속에 숨듯이 앉아 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해온 그린 프로젝트(Green Project)의 현주소 아닐까.

삼림을 뚫고 나간 곳, 힐레뢰드에 프레데릭스 보르성[프레데릭 2세의 여름별장]이 있었다. 오늘날의 국립역사박물관으로, 1800년대 유명한 칼스버그 맥주회사의 CEO가 재건하여 덴마크 문화재단에 기부한 곳이란다. 눈만 뜨면 변칙 상속, 비자금 조성 등으로 영일이 없는 우리나라 재벌들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수천억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못 사는 사람들의 것까지 빼앗아야 만족하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온갖 탈법을 자행하는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이들에 비하면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들’일 뿐인가. 프레데릭 보르 성을 보며 ‘많이 벌면 나누어야 한다’거나 ‘문화가 없으면 관대하지 못하다’는 덴마크 재벌들의 철학이 오늘날의 이 나라를 이루었음을 절감한다.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인 것도 돈과 문화에 대한 열린 사고 덕분이리라.

외레순 해협을 따라 펼쳐진 해안을 따라 조촐하고 조용하게 사는 이 나라 부자들의 실상을 차창으로나마 목격할 수 있었다. 날 좋으면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갈매기와 바닷물을 관조하며 혼자 즐기고, 날 궂으면 집 안에서 파티를 즐기는 그들의 단순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삶이 차분한 색깔의 집들과 어울렸다. 덴마크의 세계적인 음악가 에드워드 그리그가 30년을 산 마을도 보았고, 우리의 서낭당과 비슷한 문화를 지녔다는 스코스보 마을도 지났다.

그런 다음 우리는 코펜하겐 시내에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1800년대의 주거지를 보았고, 100년 전 칼스버그 사장이 돈을 내고 조각가 에릭슨과 합작으로 만들어 세운 인어 아가씨도 만났다. 1m 60cm의 아담한 체구인 그녀는 당시 에릭슨의 여친이었던 궁정 발레리나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나? 그러나 어릴 적 동화책 속의 그 ‘인어공주’가 내게 심어준 ‘슬픈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뉘하운(Ny havn) 항구는 빗속에서도 붐볐다.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지 가설무대에서는 재즈 가수들의 힘찬 노래에 정열적인 몸짓과 타악기ㆍ관악기의 분방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재즈가 미국에서 나왔으나 무대에 올린 건 덴마크가 처음이라니, 그럴 법 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항구의 운하로 관광객을 실은 배들은 쉼 없이 드나들고, 갈매기들의 호위 속에 노천 주점의 서정이 무르익는 곳. 북유럽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서정적 공간, 뉘하운이었다.

우린 이제 D.F.D.S. SEAWAYS 크라운호[길이 170m, 넓이 28m, 무게 35,498톤, 2,026명의 승객과 450대의 차량을 싣고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노르웨이의 오슬로를 왕복하는 페리]에 몸을 싣고, 잔잔한 발트해를 꿈결처럼 미끌어져 갈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 4. 10. 18:11
하나. 인간과 삶, 그리고 죽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만큼 무섭고 신비한 현상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스한 햇볕 아래 오순도순 즐기다가 한 순간 숨이 끊어져 깜깜하고 차가운 땅 속에 묻히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은 죽음의 불가항력에 당황한다.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다 결국 추하게 탈진한 상태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죽음의 무자비함에 몸을 떤다. 인간이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살아있는 동안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종교를 성립시키는 것은 절대적인 힘을 지닌 신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의 공포는 얼마간 해소될 수 있다. 그 신의 위력을 빌어 이야기되는 종교적 담론의 핵심은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는 순간의 통증보다 죽음 이후의 시공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살과 뼈가 원소로 해체되어 스며들거나 흩어지면 그 뿐인가. 아니면 육체에서 이탈된 영혼이 또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판이해진다.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맞는 마지막 단계로 ‘사후 생명에 대한 희망’을 들었다.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하여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배를 마시고 죽어가던 소크라테스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네. 나는 죽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누가 더 좋은 일을 만나게 될 것인가, 신밖에는 아무도 모른다네.’ 라고 말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긴 했지만, 소크라테스 자신도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사후 세계를 믿는 것이 정신위생상 좋다는, 정신분석학자 융의 생각은 종교적 담론의 틀 안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현대인의 본능적 욕구를 적절히 지적한 경우다. 키엘케골은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그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일이야말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니, 죽음의 두려움을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낸 종교의 관념체계는 빛나는 인간 지혜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우주적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며, 조만간 직면해야 할 죽음으로부터 생겨하는 우울함이나 비애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오랜 세월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적 집적(集積)의 대표 항은 ‘삶과 죽음’이다. 시간의 물결에 떼밀려가는 생명체들. 그래서 생명체에게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외연으로는 상반되는 개념들이지만, 이면적으로는 동의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무수한 담론들을 만들어 왔다. 죽음의 미덕을 찬양하는 경지가 바로 그런 담론들의 극단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이른바 자기방어(自己防禦)의 기제(機制)라 할 수 있다. 거추장스런 육신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상태로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은 현세적 삶이 괴로운 민초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이승에서의 삶을 더 연장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이의 본능적 욕구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은 죽음을 거부하는 그들의 본능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 욕구의 한 편에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심지어 찬양하는 표현까지 생겨나는 것이다.
죽음은 문학이나 예술적 표현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제재들 중의 하나였다. <제망매가>는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 가운데 꽤나 이른 시기의 노래다. 작자가 비교적 소상히 설명되어 있고, 표현기법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 사상적 배경 또한 분명하다. 그 뿐 아니라 노래를 둘러싼 정황이 신비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흥미를 끈다. 말하자면 가장 흔한 주제를 노래함으로써 보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되, 그 정황이나 배경은 가장 신비스러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게 하는 점에 이 노래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누이동생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소재를 노래했으면서도 죽음 자체가 자아내는 미학이나 분위기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이 특이하다.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불심(佛心)으로 윤색되거나 가공되었으며, 어떻게 지속되어 왔을까.

둘. <제망매가>에 내재된 두 얼굴의 사생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