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07. 4. 29. 17:55
 

 
시집 『디지털 사계』를 받아 들고


김인섭 교수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오늘 저는 정년은퇴를 기념하여 시집을 간행하시는 이재관교수님의 퇴임예배에 귀중한 순서를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까마득한 사람이 이 엄숙하고 뜻 깊은 자리에 서기까지 망설임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정갈한 언어로 담아 시집으로 발간하시는 교수님을 뵈면서 축하드리는 일에 사양만 하는 것은 시 전공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건네주신 시집을 받아 읽고 저는 기존 시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받았고, 교수님의 시적 경지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감동과 경탄의 마음을 여러분 앞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남다르게 얻게 되어 오히려 감사드리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 뒤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경력과 논저목록만으로도 학자로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가히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이 분야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시집 속의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한 시인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온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의 치열한 시가 도달하고자 했던 정신의 세계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시집을 내는 일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특히 한 평생 학문에 매진한 분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문학입니다. 문학에는 시 외에도 소설과 희곡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장르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때 흔히 희곡은 ‘놀이’, 소설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는 ‘노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도식적으로 나누어 보면, 낮에는 세상 속에서 실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대 위에서 놀이를 하는 희곡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낮 동안의 행동으로는 다하지 못했던 삶들을 찻집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로도 못다 푼 마음 속 깊은 감정은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라도 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시는 이야기 끝에 풀어내는 노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였던,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내비치지 않는 깊은 생각, 그윽한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예술입니다. 언어를 가장 정교하게 갈고 다듬는 과정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정신적 삶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탁해질 대로 탁해졌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어를 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좋은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나 이 세계를 고독하게 깊이 음미하는 자들의 과업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집을 받아 든다는 것은 이같은 고귀한 작업이 빚어낸 작품들을 접하는 그야말로 정밀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입니다. 시집을 받아든 우리는 교수님을 직장의 동료나 선배, 일상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다가 이 분이 한 평생 시를 쓰셨더라면 우리 문단에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금방 하게 되었습니다. 시 세계가 남다르고, 시적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에 들어 있는 시 몇 편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시집 50쪽에 실려 있는 <새>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이 시는 전체 다섯 연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마지막 연은 놀라운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는 그 자유로운 비상 때문에 시인들이 즐겨 표현하는 시적 소재입니다. 그래서 예사 표현으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새’를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집(詩集)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고독을 표상하는 이미지로써 ‘까마귀’라는 새를 즐겨 상징화한 적이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도 이 까마귀를 두고서 ‘영혼의 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시의 새는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춘다고 하여 김현승시의 비유보다 매우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시적인 관습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오규원 시인이 <한 잎의 여자>라는 시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 ‘시집같은 여자’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시집’이라는 말을 시의 비유로 표현했던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유의 구체성이나 파격성에서 기성 시인에게서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참신한 표현을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시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함축적이고도 탁월한 표현에서 교수님의 시인으로서의 태도와, 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현승의 경우처럼 이 시인에게 있어서도 ‘새’는 영혼으로 표상되면서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적인 분신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은 지상의 온갖 굴레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의 신적인 세계와 교감하고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혼입니다.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대목은, 이러한 새는 다름 아닌 ‘시집’ 자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교수님께서 쓰신 모든 시들은 영혼의 새가 비상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상의 척박한 삶을 벗어나 신성한 우주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고뇌와 희열이 담긴 언어의 파노라마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는 동안 찬송가 394장 <주를 앙모하는 자>라는 찬송의 리듬을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 주 앙모 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라는 노래 말입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영혼이 강건한 인간의 힘찬 상상력을 접하였고 속된 세계를 일거에 승화시키는 신성한 전율에 휩싸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만약 김현승 시인의 시표현처럼, 하나님께서 더욱 값진 것으로 바치라 하실 때, 이 시인이 신에게 드릴, 가장 나중까지 지니고 있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아름다운 시집이 아니겠습니까?


조규익 교수님께서 시집 말미에 교수님의 시세계에 대해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해설을 덧붙여주셨습니다. 적절한 안내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수님의 시정신의 근저에는 언제나 절대자에 대한 구도자적인 겸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시집 84쪽에 있는 <엄동설한>이라는 시를 그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첫 연만 읽어보면


       닫힌 그대의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위엄 있게 빛나,

       다가서는 내 모습만

       말없이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겸허한 자들입니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본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단절감을 주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위엄 있게 빛나는 존재입니다. 나아가 그 존재는 시인을 되비추어 스스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시의 3연에서 보는 것처럼 스스로 잠재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그대의 세계로 성급하게 나아가고자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는 그분 앞에서 눈도 뜨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라는 겸허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부분의 두 연에서는 “낮엔 반사되는 햇빛에 / 눈을 뜨지 못하고 / 밤이면 / 가랑잎 구르는 소리조차 / 과분한 낭만”이라거나,  “거울마다 갉아 지워지는 / 내 반쪽 모습이 / 엄동의 고요를 / 초침처럼 구릅니다.”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위엄 있게 빛나는 절대자와 지상의 어둠 속에 쇠락해 가며 뒹구는 인간존재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엄정한 질서를 시인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깊은 신앙은 이같은 겸허한 자세에 굳은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예로 든 이 작품 외에도 이 시집에는 신앙적인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신앙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상력의 근저에 신앙심이 작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집의 미덕은, 종교적인 신앙과 문학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이 신성성과 심미성이 잘 어우어진 품격 높은 정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시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연어의 회귀>를 들고 싶습니다. 시집 46쪽에 실려 있는 작품 전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어려서 떠날 때에는                       내게도 있었다.

 스틸헤드 치어처럼

 머뭇거렸으나                              돌아갈 고향은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그래도 회귀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까맣게 몰랐다.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저는 이 작품을 이 시집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고 싶습니다. 에필로그의 시라면, 시집 전체는 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좋아 오랫동안 감상해보고 싶습니다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정말 좋은 시는 설명 필요 없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입니다. 이 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3연과 5연, 그리고 7연에서 시 속으로 한 동안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3연에서 ‘까맣게 몰랐다.’는 이 평범한 말 한 마디가 저에게는 깊이 울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혹은 인간 사이에서 정말 ‘까맣게’ 모를 일은 흔치 않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까맣게 몰랐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제야 어떤 근본적인 각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을 얻게 된 계기는 누가 마련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은총’을 베푸시는 분의 지극한 사랑의 섭리 아니겠는가 합니다.


5연에서 말하는 “변치 않는 DNA 안테나”는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테나는 누군가와 수신하고 송신하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DNA 안테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입김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맺은 신과 인간의 생명적인 관계를 계속 교신해가는 안테나이며, 그것은 영적인 안테나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지상으로 잉태해 내려와 부활 승천한 예수의 위대한 삶을 이끌었던, 그의 아버지와 연결된 안테나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 안테나가 나에게도 있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감사하며 은총을 예감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회귀는 안테나의 저쪽에 계신 분에게서 비롯된 은총이며, 그 은총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초월적인 전율에 휩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지를 박목월 시인은 그의 말년의 신앙시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 / 내게로 뻗쳐 온다. / 다섯 손가락을 / 활짝 펴고 / 그득한 바다가 / 내게로 밀려온다. / 인간의 종말이 /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 나는 미처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그 벅찬 은총을 실감하는 두 시인의 상상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보편적인 감동과 고백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저는 이 시를 앞으로 저의 ‘기독교문학’ 수업시간에 좋은 작품의 사례로써 학생들에게 소개할 생각입니다. 시심과 신앙심이 어우러져 이처럼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시집 <디지털 사계>을 읽고, 엄정한 신앙인이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탁월한 시인 한 분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렇게 귀한 시인이 같은 교정에 계신 줄은 저야말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맞이하여서야 비로소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 시인의 시적인 전율을 느낍니다. 일생을 몸 바친 학교를 떠나시면서 예술의 향기와 빛깔로 옷 입힌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아 있는 저희 식구들의 마음마다에 아로 새겨주셨습니다. 소중하게 남겨주신 선물 감사드리며 받겠습니다.


학자로서 듬뿍 적신 노고는 이제 풀어놓으시고, 시의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자유로운 노래를 맘껏 부르셨으면 합니다. 육신의 몸은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럴수록 시를 쓰시는 신성한 창조적 에너지는 더욱 새롭게 솟아날 것입니다.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의 앞날과 또 그와 함께 잉태될 시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3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28. 18:26
학회 유감

바야흐로 학회의 계절이다. 주말은 말할 것 없고, 주중에도 심심치 않게 학회들이 열린다. 그러나 여기에 동창회나 결혼식 같은 여타의 행사들이 겹치기라도 하면 학회는 뒷전으로 밀린다. 더구나 꽃놀이하기 좋은 계절 아닌가. 이런 때 컴컴한 방에 모여 ‘재미없는’ 논문 발표나 들으라고 한다면 그 자체가 고문이다.
 
그래서 어느 학회에 가 보아도 ‘자발적인 손님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징발된’ 학생들이거나, 안면 상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을 뿐이다. 학회 임원들, 발표자, 토론자 등이 참석자의 거의 전부인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서 어떤 학회는 발표자 1명당 토론자를 대여섯 명씩 배당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나마 토론자로라도 지정되면 참석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그 역시 이미 ‘약발 떨어진’ 방법으로 전락해 버렸다. 팸플릿에 토론자로 올려졌다 하여 모두 참석할 만큼 순진하지 않은 게 요즘 사람들이다.
 
국내학회만 이런 것은 아니다. 그럴 듯한 명칭의 ‘국제학회’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시간이 다가오면 학회의 임원들은 뜨거운 양철판 위의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한다. 회의장을 들락날락하며 ‘파리 날리는 구멍가게’의 주인처럼 무정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하릴없이 쳐다볼 뿐이다. 저명한 해외의 학자들이라도 불러온 경우의 민망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을 것이나, 시대의 변화를 그 주범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학회가 학문 공동체인 만큼, 개인의 파편화나 인터넷의 발달 등 공동체의 문화를 파괴하는 현실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 없다. 학회의 생명은 토론이고, 토론은 ‘다방향 통행’의 현장이다. 구성원들은 토론을 통해 관심사를 공유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개인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각자의 생각에 매몰되어있다. 남들의 생각에 좀처럼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겉으로는 제법 대화가 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인터넷 속의 대화는 ‘일방적’이다. 더구나 익명의 ‘말 던짐’은 독선과 아집, 아니면 지저분한 ‘배설’일 뿐이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배척한다. 왜 다른지, 혹시 내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따라주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적이다. ‘○사모’류의 집단들이 인터넷 안에 뭉쳐있지만, 그들 역시 불순한 동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패거리일 뿐 건전한 공동체는 아니다. 그들은 증오를 주 무기로 하는, 배타적 개체에 불과하다. 개인 간, 집단 간에 존재하는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정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이 없으니 폭력이 앞선다. 이런 공간에서 폭력의 1차적인 수단은 말이다. 독선과 폭력은 ‘반민주’의 표징이다. 학자도 인간인 이상 시대의 변화로부터 초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남의 논문을 읽지도, 남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골방에 숨어, 제가 쓴 논문들을 저 혼자 읽으면서 만족해하고 잘난 체 한다. 남들이 이미 다 해놓은 말들인데, 자기에게 ‘지적 재산권’이라도 있는 듯이 거들먹거린다. 간혹 추궁을 당할 경우에는 ‘읽어보지 않았다’는 방패를 들고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학회가 잘 될 리 없다. 학회가 죽고 학문도 죽었으니, 지금이 바로 암흑시대일 수밖에 없다.
                                                              조규익(국문과·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28. 17:00
수능성적•석차 공개와 대학 신입생 선발 방법 전환의 시대적 요구


논란의 가능성은 있지만, 수능성적과 석차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은 이 시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수능성적•석차의 비공개가 대학의 서열화를 막을 수 있다고 보거나 심지어 운전면허시험에 비유하여 수능성적•석차의 공개가 무의미하다는 견해를 밝힌 논자도 있지만, 이번 판결이야말로 대학입시에 대한 열린 논의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본다.

과연 수능성적•석차의 비공개가 대학들의 서열화를 성공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십년전에 형성된 서열이 지금도 不動인 상태로 힘을 발휘하게 만든 주범이 바로 그것이다. 세칭 일류에 속하지 않는 대학들이 안간힘을 써서 근래 몇 분야에 성공했다해도, 잠시 사람들의 입에만 오르내릴 뿐 막상 대학을 선택할 시점에는 그 사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사실 개별 대학이나 대학교육의 내실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대학의 서열화를 혐오하는 것이지, ‘참된’ 대학의 서열화는 지향해야 할 대학의 이상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졸업한 대학에 따라 사회적으로 이익과 손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득권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속성상, 비정상적인 대학 서열화를 깰 수 있는 묘책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성적•석차의 비공개는 대학 서열화를 완화시키거나 깨지도 못하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수험생과 국민들을 ‘오류와 요행 추구’의 함정에 빠뜨리는 잘못까지 범하는 꼴이다.

더구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일부 사설 입시기관들의 신뢰할 수 없는 자료와 수험생들의 자가판단에 의해 교육의 본질만 왜곡시킬 뿐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수험생이나 학부모들로 하여금 ‘도박하는 심정’으로 대학을 선택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력이 인재 검증의 유일한 수단으로 통할 만큼 우리 사회가 충분히 투명해지고, 국민들의 의식이 안일한 기득권의 그늘로부터 자유로워질 때까지 얼마간 ‘왜곡된’ 대학의 서열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수능성적•석차의 비공개로 무작정 막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만큼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들이 없지는 않겠으나, 신입생 선발을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 正道이자 王道이다. 지금의 현상을 액면 그대로 표현하자면, ‘수십만의 수험생들을 한 날 한 시에 똑 같은 문항으로 서열화시키는 주범이 국가’인 셈이다.

지금처럼 국가가 대학의 행정을 통제하고 학생 모집까지 규제한다면, 사실상 이 나라에 대학은 없는 셈이다. 대학 나름의 이상과 목표에 걸 맞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게 한다면, 정작 정부가 전국의 수험생들을 똑 같은 문항으로 서열화시켜 놓고서 그 결과를 ‘공개합네 안 합네’하는 자기 모순적 논란에 빠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과 선발 과정에서의 부조리 추방 등이 대학들의 신입생 자율선발을 막아온 정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국가가 신입생 선발까지 도맡아오는 동안 이런 문제들이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간의 세월은 대학에 자율선발권을 주었을 때 빚어질 수 있는 과도기적 부조리들이 청산될만한 기간이었다. 그렇다면, 대학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국가는 그동안 귀한 시간만 낭비한 꼴이 아닌가. 정부가 미적거릴수록 대학의 신입생 자율선발에 따르는 과도기적 문제나 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능성적•석차의 공개는 대학의 자율권 확보 논의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Posted by kicho
연행록 - 일반2007. 4. 24. 21:36
2007년 국제학술대회-탐라문화연구소 40주년, 제주민속의 해 지정 '동아시아 속의 제주민속' 학술대회

主催: 제주대학교, 제주도청, 탐라문화연구소
主管: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日時: 2007年 5월 4일
場所: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

기념식: 탐라문화연구소 40주년, 2007 제주민속의 해 (10:00 - 10:30)

축사: 고충석(제주대학교 총장)
축사: 고용삼(제주도 문화관광스포츠국 국장)
인사말: 허남춘(탐라문화연구소장)


발표 1: 비교 민속 (10:30 - 12:00 대회의실)

      1) 제주도의 역사적 토포스: 페리퍼리 그리고 프론티어 (허남린, British Colombia Univ.)
      2) 한국과 일본의 제의에 나타난 마레비또신 - 제주도 입춘굿을 중심으로  (이토 요시히데, 게이오대학)
 
발표 2: 생활과 민속 (1:30 - 6:00 대회의실 )

      1) 제주의 민묘(김유정, 미술평론가; 손명철. 제주대)
      2) 제주의 옹기(진관훈, 제주대)
      3) 제주의 곶자왈(송시태, 제주외국어고)
      4) 제주의 음식문화(오영주, 한라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5) 제주의 통과의례(현승환, 제주대)

발표 3: 언어와 민속 (1:30 - 6:00 제3세미나실)

      1) 제주, 오끼나와의 투쟁의 기억: 까마귀와 소라게 이야기 (이연숙, 一橋大學)
      2) 제주의 방언(강영봉, 제주대)
      3) ‘해녀 노젓는 소리’ 사설구성 및 전승의 원리(조규익, 숭실대)
      4) 제주도 돗제와 궤눼깃당 본풀이 연구(김헌선, 경기대)
     


토론: 권순긍(세명대학교 미디어학부)
      김성수(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이도흠(한양대학교 국문학과)
      한창훈(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김동전(제주대학교 사학과)
      김동윤(제주대학교 국문학과)
      변성구(제주대학교 국문학과)
      양영자(제주대학교 국문학과)
      강소전(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찬식(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허영선(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좌장: 조성윤(제주대학교 사회학과)
      현승환(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운영위원: 김정희, 김혜연, 손명철, 이창익, 조문수

집행위원: 박찬식(탐라문화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22. 13:54
육안(肉眼)을 넘어 심안(心眼)으로


조규익(숭실대 교수)

서화담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어버린 채 길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화담선생에게 "저는 나이 다섯에 눈이 멀어 지금 20년이나 되었는데요. 오늘 아침에는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천지만물이 환히 보이기에 기뻐 어쩔 줄 몰랐지요.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길은 여러 갈래이고 대문들이 서로 비슷비슷하여 제 집을 분별할 수가 없군요." 하는 것이었다. 선생은 "도로 눈을 감으시오. 그러면 곧 당신의 집이 있을 것이오."하고 집 찾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 맹인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곧장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한다.


조선조 영조 때 연암 박지원선생이 인간의 본분을 그르치는 망상의 위험을 깨우치기 위해 끌어온 서화담의 일화가 바로 이 이야기다. 외부에 드러나는 색깔과 형상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지고 슬픔과 기쁨에 마음이 쓰여서 망상이 되기 때문에 차라리 맹인으로 돌아가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숙한 걸음걸이로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본분을 지키는 도리임을 깨우치기 위한 비유의 목적으로 연암선생은 이 일화를 인용했겠으나, 어쩜 화담선생의 일화에 나오는 스토리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에 불현듯 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보이는 것들'에만 집착할까? 우리가 만나야 하고, 소유해야 하는 것들 가운데 보이는 것은 과연 몇 %나 되는가?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형상과 '제 귀에 들려오는' 달콤한 말들에만 집착한다. 젊음은 덧없는 시간에 밀려 머지않아 주름이 지고 소멸의 나락에 떨어지련만, 우리 모두는 흡사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착각하고 산다. 달콤한 말이 바람결에 흘러가버리면 배신과 회한의 암종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움켜잡아야 할' 구원의 노끈으로 착각한다. 세상의 모든 반목과 대립, 욕망과 집착이 바로 '육체의 눈'을 통해 '보이는 것'으로부터 연유된다는 사실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깨닫는다면, 우리네 삶이 이토록 각박하고 힘겹진 않으리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보다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물이나 세계가 훨씬 넓고 가치 있다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네 삶터가 이토록 삭막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나와 대부분의 내 이웃들은 '육안'만을 지닌 채 그렇게 살아왔고,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앞으로도 '육안 만으로 그렇게들' 살아갈 것이다. '육안'으로 확인한 사실만 모든 것의 표준으로 착각하면서 세상의 이익을 송두리째 삼키기 위해 '혈안(血眼)'들이 되어 날뛸 것이다. '혈안'은 '분노와 흥분으로 핏발이 선 눈'이다. 인간의 욕망과 배신, 갈등으로 점철된 '육체의 눈'이다. 그 검붉게 충혈된 '육안', '혈안'을 가지고 우리가 '심안 만을 가진 우리의 이웃들'을 만났던 것이다. 우리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래서 가끔 이야기 속에서나 볼 수 있었고 더욱더 띄엄띄엄 아득한 뉴스 속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은 '육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네들 위주로 꾸려나가는 공간이다. 이 세상의 주인이라 착각하는, '육안 뿐인' 우리들은 자신들이 진짜 '시각 장애인'인 줄을 모른다.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더냐고. 안타까운 일이다. '육안 만을 지닌 우리'가 '심안 만을 지닌' 우리네 이웃들을 도와준답시고 '육안 만을 지닌' 사람들이 가급적 적게 오고 가리라 생각되는(그들에게 방해를 덜 주겠다는 배려인가?) 문경 새재를 함께 넘었다. 그리고 풋풋한 솔바람 속에서 그들의 밝고 건강한 의지를 배우게 되었다. 아, 나야말로 그동안 영락없는 '시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함께 팔짱을 끼고 새재를 넘은 서른다섯의 최양도, 쉰셋의 김씨 아저씨도 모두 내 선생님들일 뿐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내 안에서 부글거리곤 하는 불평과 불만, 좌절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익힌다던 최양, 의료정책이나 세상의 부조리 등을 당당하게 성토하던 침구사 김씨, 아들 딸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고 손자들의 재롱 속에서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주부 김씨 등등. 그들은 '육안 뿐인' 우리보다 더 깊고 넓은 세계, 더 높고 많은 것들을 보고 있었다. 서화담이 만난 그 맹인은 '육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걸어갈 길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육안'은 우리 자신의 내면과 본질을 그르치는 욕망과 탐욕의 창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심안'은 우리의 내면을 진리가 숨 쉬는 평화로운 초원으로 인도하는 길잡이일 가능성이 더 많다. '육안 없는 자들이 무얼 볼 수 있으랴?'라는 편견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터를 이루고 있는 또 다른 면을 '백안(白眼)시' 해왔다. 그 일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한 '육안 만의 우리'는 영원한 불구자들일 수밖에 없다.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이들의 벗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육안'과 다른 '심안'이 비로소 열리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제가 상당히 오래 전에 써서 어딘가에 발표한 글인데, 누가 자신의 까페(cafe.daum.net/cateurl)에 옮겨 놓았군요. 그 분께 감사하며 제 블로그의 손님들을 위해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Posted by kicho
자료 - 전공자료2007. 4. 21. 08:01
 

戟巖            극암              창바위

北嶺巉巉石  북령참참석    북쪽 산마루 우뚝솟은 저 바위를

邦人號戟巖  방인호극암    사람들은 모두 창바위라 부른다네.

逈樁乘鶴晋  형장승학진     까마득 멀어 선학타고 오르려하나

高刺上天咸  고자상천함    가파으게 높아 하늘 찌를듯 하구나.

揉柄電爲火  유병전위화    자루꽂아 휘두르며 번갯불 번뜩이고

洗鎽霜是鹽  세봉상시염     창끝 씻으면 서릿발 같이 예리하다오.

何當作兵器  하당작병기    어느때 이를 병기로 만들어서

敗楚亦亡凡  패초역망범    교활한 오랑캐를 남김없이 섬멸할까   해석: 숭실대교수 조규익


상기의 해석과 다소 차이가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세재 문학비

 

 북쪽 산마루 높이 깎아지른 암석을

 옆사람이 창바위라 부르는데

 아득히 말뚝같이 뻗질러 학을 타고 가야겠고

 높이 솟아 하늘을 찌를 듯하 네

 자루를 휘면 번개로 불을 붙이고

 칼끝의 서리 씻으면 소금이겠는데

 어찌 반드 시 병기가 되게 하여

 초나라를 패멸하 고 또 범을 망치는가.


출처  http://www.andongkwon.or.kr/

       

3행의 晋:학을 탄 왕자 진-주나라 영왕의 태자로, 피리를 잘 불렀으며 신선이되어 학을타고 하늘로 올랐다 한다.

4행의 咸:중국 황제시대의 무당인 계함-季咸을 말함

8행의 凡:옛 주공-周公의 아들을 봉했던 하남성-河南省에 있던 나라.



상기 극암을 읽고 송나라 사람이 탄복을 하여

"지금 이사람이 살아 있는가? 지금 무슨 관직에 이러렀는가?

송나라에 이와같은 시를 짓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관직을 준다.

이 詩는 여한-餘閑에 지은 제영-題詠이 아니고 거의 남이 어려운 운자-韻字를 주어 -즉석에서- 짓게 강작한것일 것이다."

실지로 이시는 고의로 어려운 운자를 하여  즉석에서 지었다고 한다.

출처:대동운부군옥 8 - 한국학술진흥재단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8.



오 세재-吳 世才 (인종 11년.1133) ~ (명종 17년.1187).

            고려 중기 명종 때의 학자·문인.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덕전(德全).



한림-翰林 학린-學麟의 손자이며, 세공-世功, 세문-世文의 아우로 문장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무신란이후 집안이 몰락하여 궁색하게 되었다. 의종(1151)에 진사에 오르고,

명종12년(1182)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성격이 소루-疎漏, 준철-俊哲하여 검속-檢束함이 적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였고,

친우 이인로-李仁老가 세번이나 추천하였으나 끝내 벼슬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는 당시 18세였던 이규보-李奎報에게 53세의 나이로 망년지교-忘年之交를 허락하였고,

이른바 해좌칠현-海左七賢: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 등과 시주-詩酒로 즐겼다.

만년에는 외할아버지의 출생지인 동경-東京:지금의 慶州-으로 제고사-祭告使의 축사-祝史가 되어

역마를 타고 가 이내 그곳에 살면서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가난에 시달리다 죽고 말았다.



<주역>을 암송하고 다른 육경 서적을 박통할 정도로 유학 경전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작품도 당시에 상당한 평가를 받았으니, 이규보는 그의 시를 '준매경준-遵邁勁俊'이라 하였고,

최자(崔滋)는 ‘풍섬혼후(豊贍渾厚)’라고 평한 바 있다. 또한 글씨에도 뛰어났으니,

경기체가 <한림별곡 翰林別曲> 제3장에서 말한 바,

"오생,유생 양선생 위 주필경 하여-吳生劉生 兩先生 偉 走筆景 何如-"에서 오생은 바로 오세재를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그는 명종시대 문신수난기를 통하여 현실에 타협 내지는 조화하지 못하고



문학과 시주에 탐닉하므로써 자신의 고민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이규보는 나이를 떠난 진정한 벗이었으며,

이규보 역시 그의 재주를 아끼고 삶을 애석히 여겨 <오선생덕전애사 吳先生德全哀詞>를 지어 추모하였다.

여기에서 이규보는 그를 복양선생이라 부르고,

친구 아닌 문하생의 입장에서 사사로이 현정선생-玄靜先生이라 시호하여 영전에 바쳤다.



현재 전하는 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오언율시 2편, 칠언율시 1편이 있다.

파한집-파한집, 보한집-보한집, 고려사, 동경지-東京誌등에

극암-戟巖, 병목-病目, 혜정시-惠政詩, 풍의종미행시-諷毅宗微行詩, 자서-自敍,

차운김무적견증-次韻金無迹見贈등 일부가 전해진다.

시호는 현정-玄靜, 호는 복양-濮陽.



참고문헌 

東國李相國集, 高麗史. <朴魯春〉 출처:엠파스

2001.10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세우고 숭실대교수 문학박사 조규익 짓고 한성대  외래교수 농산 정충락 쓰다.

경북 경주시 황성동 황성공원에 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노래중에 2절 죽림칠현(임춘. 오세재. 이인로. 조통. 황보황. 이담지. 함순)에 나온다.


출처-블로그  항구가 사는 이야기(http://blog.empas.com/pyo7803/12045457)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