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3.19 'Giral'떠는 ‘친박’ 도배(徒輩)
  2. 2012.03.10 못난 놈들
글 - 칼럼/단상2016. 3. 19. 15:53

 

'Giral'[각주:1]떠는 친박도배(徒輩)

 

 

 

특정 정치이념으로 뭉친 결사체가 정당이라면, 한국의 정치 결사체들을 정당이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그 안에 수많은 소그룹들이 있어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데, 대부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모임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다양한 규모의 도당(徒黨)들끼리 치고받는 싸움들을 통해 결사체의 헤게모니를 잡아가는 것이 현재 한국 정당들의 모습이니, 그런 결사체들을 붕당(朋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리라.

 

새누리(붕)당에는 크게 친박과 비박이란 소그룹이, ‘더불어민주(붕)당에는 친노와 비노란 소그룹이 각각 패권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억지스러움에서 난형난제이긴 하나, 새로운 수장 아래 별 잡음 없이 총선이란 전쟁터를 향하고 있는  친노에 비해 친박은 훨씬 더 밉상이다. 국정을 담당하고 있는 여당으로서 온갖 꼼수를 부리며 패권을 잡으려는, 그 유치찬란하고 미련스러운 작태는 구토를 참기 어려울 만큼 혐오스러운 게 사실이다.

 

공관위인지 공천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위원장의 완장을 차고 험상궂은 표정으로 이빨 빠진 개작두를 둘러멘 이 모 의원을 보노라면, 한 줌 권력이 무언지 참으로 딱하기만 하다. 온갖 영화로운 작위(爵位)를 거친 그 나이의 인물이라면, 단 한 낱의 덕망이라도 표정에 나타나야 정상일 것이다. 툭하면 짜증스런 말투로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기만 하는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니, 그는 지금껏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남을 평가하고 내치려면 공명정대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평가의 공정성과 점수의 정확성에 평가자의 원만하고 따뜻한 인격이 포함될 때 비로소 공명정대함의 가치는 구현된다. 꼼수는 꼼수를 낳고, 둔사(遁辭)는 또 다른 둔사를 낳는다. 멀쩡한 사람에게 현미경을 들이대고 흠을 찾으려 하고, 흠투성이의 사람에게 망원경을 대고 눈까지 감으려는 꼼수 앞에 할 말을 잊는다. 최고 권부의 밀명(密命)을 받았다고 모두들 추측하는데, 본인만은 한사코 원칙대로 한다고 강변한다. 매에 쫓겨 도망가는 까투리가 부리만 땅에 박으면 안전한 줄 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도당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데, 자신들만은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고 희희낙락하는 꼴이다.

 

멀쩡하다 못해 훌륭하기까지 한 인물들을 공천에서 배제해 놓고, 배제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 ‘최고 권부의 미움을 샀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붕당의 정체성 운운으로 둘러대려 한다. ‘붕당에 무슨 정체성이 있을 것이며, 정체성이 있다한들 붕당의 정체성정당의 대의명분과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제대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판관(判官) 노릇을 할 수 있다. 그 때의 자격이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눈이다. 거기에 더하여 최고 권부가 가당찮은 압력을 가할 때 바른 소리로 깨우치려는 용기와 지혜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바로 선거(選擧)’. 지금 여당이라고 자처하는 새누리붕당이 보여주는 작태는 골목 깡패들의 행태 바로 그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북한의 김정은이는 핵을 만들어 우리의 심장에 쏘려 하고, 중국과 미국은 패권을 다투는 중이며, 간사한 일본은 식민시대의 영화를 못 잊어 발광하는 중이다. 그 뿐인가. 우리의 아들딸들은 직장을 못 찾아 좌절하며 헤매고 있다국민들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서서 떨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형국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인간들이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이며, 무슨 아젠다(agenda)’를 가져야 하는지 등을 알지도 못하면서 권력의 단맛만 추구하고, 최고 권부에 아부나 하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하노니,

그대들은 이제 향리로 물러가 부디 자숙하며 수양하기 바라노라.

 

 

 

 

 

  1. 본의 아니게 뒷골목의 비속어를 쓰게 된 점, 사과드립니다. 백규서옥 주인 드림 [본문으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3. 10. 16:29
 

못난 놈들

 

                                                                                                                                                           백규

 

대학입학 후 소설가 정을병의 ‘개새끼들’이란 제목의 소설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다. 그가 통타(痛打)한 것이 과연 ‘시대의 부조리’였는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을 ‘악마적 근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맹수들이 날뛰는 사바나 속에서 작은 초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비로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부조리는 작가의 체험이었다. 작품을 탈고한 뒤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를 두고 그는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머리에 떠오르는 고상한 제목들이 좀 많았을까. 등짝을 서늘하게 하는, 그럴 듯한 제목들 또한 제법 있었으리라. 그러나 ‘간지 나는’ 제목들을 두고 밤을 새워가며 고심하다가 결국 ‘개새끼들’로 낙착을 본 것이나 아닐까.

 

***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십 중반에 맞이하는 정치의 계절은 또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다.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군상들을 보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다수다. 아,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내 왔기에 ‘어리기만 하던 그들’이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고 나설 때까지 그저 남들을 우러러 보는 낮은 자리에서 속 편하게 앉아만 있었을까. 속아만 살아왔던 지난 세월도 억울한데, 그 사기꾼들이 기른 ‘새끼 사기꾼들’을 새로운 상전으로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에 선뜻 들어와 버렸으니, 통탄할 노릇 아닌가.

 

***

 

시절은 참 많이도 변한 듯.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굵직한 정당들의 보스로 자리 잡고 나라의 미래를 요리하겠노라고 각자 칼들을 집어 들었다. 총선에 나설 각 당의 대표선수[후보]들을 골라 발표하는 행사가 연일 민초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탈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각 당은 ‘쇄신’이란 명분으로 기득권자들이라 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각 당은 지역구의 여론조사 등의 방법으로 우선 대상자들을 걸러낸 다음,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일은 없는가, 임기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는가, 지역민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가’ 등을 따져 감점하는 식으로 나머지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모두 예외 없이 길길이 반발하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이들의 모습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집행부의 꼼수에 걸려 억울하게 낙마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경쟁자의 음해에 피해를 입은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득이 되는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을 바라보며 나라가 잘 되기만을 기원해 온 내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깝고 통분한 것이다. 한사코 자신이 탈락한 것은 칼자루 쥔 자들의 ‘복수심’이나 ‘자파 세력의 부식을 위한 꼼수’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나 같은 필부의 입장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는데, 내가 경외(敬畏)하여 마지않던 이른바 ‘선량(選良)’들이 그 정도의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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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탈락한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새로이 ‘작당(作黨)’들을 한다고 한다. 어쩌면 새로 만드는 정당에서 여성이 보스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붕당(朋黨)을 만들든 정당(政黨)을 만들든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라면 자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사에 남녀를 가를 필요는 없고, 여자가 보스라 하여 달리 볼 일도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보라. 세상의 ‘마초’들이여, 지금은 남자가 호령하던 시대에서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든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는’ 원부(怨婦)의 입장에서든 이제 남자들은 당분간 물러나 앉아 보조역에 충실하거나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해야 할 시기로 바뀌었다! 누구누구 손꼽히는 남자들, 그대들이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국민들로부터 그녀들보다 나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그대들의 그릇이고 시운(時運)이다. 시운은 돌고돌아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 언제일지 모르나 큰 변화의 주기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새로운 지도력에 승복하고 그 지도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큰 남자들의 금도(襟度)’다. 그들이 새 시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는다면, 앙앙불락할 것이 아니라 냉철히 자신을 점검하고 수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게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이다.

 

***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부왕의 상을 치른 뒤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재야의 현자 열(說)을 발탁하여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서는 그의 대인적 풍모를 ‘명철(明哲)’이라 기록했다. 즉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에 앞서 아는 것을 명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실로 정치와 도덕의 법칙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눈여겨보자.

 

“엄숙한 왕명을/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나라의 잘잘못을/중산보가 밝혔도다/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旣明且哲]/그 몸을 보존하였도다[以保其身]…”

 

<<서경>>의 ‘명철’, <<시경>>의 ‘명철보신’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비겁하게 숨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올 때와 들어가 있을 때를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운(時運)이 비색(否塞)하면 한사코 나오려 할 것이 아니고, 때가 이를 때까지 수양에 힘써야 한다. 여자가 주도하든 남자가 주도하든, 시대의 소명(召命)을 받은 주체가 거부함에도 한사코 앙앙불락하며 이 집 저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선택을 받지 못했으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누구를 원망하며 동분서주하는 그들을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

 

이 판국에 더 웃기는 자는 구멍 난 그물을 들고 돌아다니며, 쫓겨난 피라미들이나마 거두겠다고 설치는 인간이다. 그럴 듯한 교수자리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두막이나마 ‘패자당(敗者黨) 하나 건사해보겠다고 나선 그를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2012. 3. 10.>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