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21. 7. 3. 22:38

 

 

미국 뉴욕대 근처 워싱턴 스웨어 아치 앞에 조경현 교수가 섰다. 핀란드와 캐나다를 거쳐 뉴욕으로 온 이 한국 젊은이는 지금 세계 인공 지능 학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다. 조 교수는 말하기를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니다" 라며 "세상을 한번에 바꾸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했다. 사진에 프로그래밍 언어 이미지를 합성했다. 사진작가 서승재, 그래픽 김현국

 

 

2019년 '삼성 AI 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는 조경현 교수/삼성전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호암상 받은 36세 인공지능 석학

조경현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김미리 기자/입력 2021.07.03. 03:00]

 

2008년 가을 KAIST(한국과학기술원) 대덕 캠퍼스. 졸업으로 직진하는 대부분의 KAIST 천재와는 달리 7년째 학부생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전산학과 ’02학번' 학생이 있었다. 유일한 목표는 무사히 졸업하는 것. 학점 따기 쉬운 1학년 교양과목을 집중 공략해 강의실 뒷자리를 지켰다. 하루는 선배가 학과 사무실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건넸다. 핀란드 알토대 ‘인공 지능(AI)’ 석사과정 프로그램 모집 공지였다. 미래가 희미했던 공학도는 이듬해 무작정 핀란드로 떠났다.

 

13년 전 졸업을 걱정했던 그 청춘이 지난달 모교 KAIST 전산학과에 1억원을 쾌척했다. 장학금 이름은 ‘임미숙 장학금’, 지원 대상은 여학생이었다. 그렇다면 그 졸업생이 임미숙이냐고? 아니다. 임미숙은 기부자의 어머니다.

 

자기 이름 대신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내걸며 “여성 공학도를 지원하겠다”고 한 주인공은 30대 남자 공학자다. 세계적 AI 석학으로 꼽히는 조경현(36) 뉴욕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인공 지능 번역’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가 스물아홉 살이던 2014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와 함께 발표한 ‘신경망 기계 번역’ 개념은 기존 기계 번역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버렸다. 구글 번역기 등 대부분 번역기가 이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이 천재 공학자에게 쏠린 관심은 뜨겁다. 2015년 뉴욕대 교수로 임용된 지 4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고, 작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연구 과학자로도 일했다. 구글, 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IT 기업이 그의 연구를 후원했다. 네이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자문도 맡고 있다. 얼마 전엔 국내 최고 권위 학술상인 ‘삼성호암상’ 공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타는 족족 기부하고, 남성 공학자이지만 여성 공학자 육성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최첨단 AI 전문가인데 정작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역설한다. 뉴욕에 있는 괴짜 공학자를 화상 앱 ‘줌’으로 만났다.

 

 

◇AI 전설 삼인방이 인정한 ‘천재’

 

AI ‘딥 러닝(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규칙을 찾아내는 기술)’ 분야에서 ‘3대 전설’로 꼽히는 이들이 있다. 제프리 힌턴(구글 석학 연구원)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얀 르쾽(페이스북 수석 AI 엔지니어) 뉴욕대 교수. 2018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튜링상’을 공동으로 받은 이 삼인방이 공통으로 꼽는 이 분야 차세대 스타가 조경현 교수다.

 

–천재들한테 천재로 인정받은 셈 아닌가요.

 

“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세 분 다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이죠. 모두 친분이 있고요. 벤지오 교수 연구실에선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터)을 했고, 얀 르쾽 교수는 뉴욕대 동료입니다.” 2017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2018년에 주목할 인물 50인’ 명단에 올랐을 때, 그를 추천한 이는 ‘딥 러닝의 아버지’라는 힌턴 교수였다.

 

–교수님이 고안한 ‘신경망 기계 번역’은 어떤 개념인지요.

 

“기존 기계 번역은 원문과 번역본 사이에서 ‘단어’가 어떻게 번역됐는지 보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번역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단어와 어순이 비슷한 언어끼리는 번역이 잘되는데, 한국어·영어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끼리는 엉터리 번역이 많았죠. ‘신경망 기계 번역’은 딥 러닝을 적용해 문장의 ‘맥락’을 파악해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과거엔 ‘나 말리지 마’란 문장을 번역기에 돌리면 ‘Don’t dry me’가 나왔지만, 요즘은 ‘Don’t stop me’가 나온다. AI가 접목된 결과인데, 그 핵심 기술이 조 교수가 고안한 개념에서 나왔다.

 

–'번역'에 왜 관심이 많은가요?

 

“10년 넘게 헬싱키, 몬트리올, 뉴욕에서 살며 번역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선 번역이 더 중요해요. 온라인 콘텐츠의 60%가 영어, 나머지 40%가 중국어·아랍어·불어 등으로 돼 있다고 해요. 영어 편중이 너무 심하죠.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3억명 가까운데 인도네시아어로 된 콘텐츠는 거의 없어요. AI 번역이 잘되면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결하고, 디지털 장벽도 확 낮출 수 있어요.”

 

–곧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까요?

 

“안타깝지만, 한참 걸릴 겁니다. AI는 만능도, 마법도 아닙니다.”

 

 

자택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넥타이 못 매도 AI 알고리즘은 뚝딱

 

–호암재단 관계자가 공식 자료용으로 넥타이 맨 사진을 요청했더니 교수님이 넥타이를 못 맨다고 했다고요? 담당자가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짜는 분이 넥타이를 못 맨다니 안 믿긴다”면서 웃더군요.

 

“교복 입을 때 지퍼로 된 넥타이 맨 거 빼고 넥타이 맬 일이 거의 없었어요. 안 해본 건 잘 못 해서…. 담당자가 유튜브로 넥타이 매는 법 영상까지 보내주셨는데 포기했어요(웃음).”

 

–'링크트인'(인맥 전문 소셜미디어)에서 한 지인이 “조경현만큼 똑똑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일하면 명석함과 통찰력에 놀랄 뿐만 아니라, 유머로 동료를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평한 걸 봤습니다.

 

“굳이 재미없고 딱딱하게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사람처럼 웃고 농담하는 생명체는 없어요. AI가 아직 사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유머는 창의력이 있어야 나오는데 AI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창의력입니다.”

 

–비과학고 출신으로 KAIST에 들어갔다고요?

 

“사촌 형이 KAIST에 다니고 있어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았어요. 고2(서울 경문고) 때 대학 입시를 생각하다가 KAIST를 찾아봤더니 일반고 2학년까지만 마치고도 갈 수 있더라고요. 빨리 대학에 가고 싶어 시험 삼아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어요. 저처럼 일반고 2학년을 마치고 들어온 친구들이 만든 ‘2막 1장’이란 모임이 있었는데 열 명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준비한 과학고 출신과 같이 공부하려다 보니 1~2년은 엄청 헤맸죠. 방황하다 휴학도 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고 오니 동기들은 거의 졸업을 했더라고요.”

 

–인공 지능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까.

 

“학부 땐 인공 지능 관련 정규 수업이 아예 없었어요. 특강을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워 이런 걸 어떻게 배우나 싶었습니다.”

 

 

–결국 선배가 가져다준 알토대 AI 석사과정 팸플릿이 운명을 바꿨군요.

 

“아직도 생각나요. 노란색 팸플릿. 얼마나 조악했는지. 이렇게 내 인생을 바꿀 줄 알았다면 보관하고 있을걸!”

 

–주로 미국으로 유학을 많이 가던데 굳이 핀란드를 택한 이유라도.

 

“미국으로 유학 가려면 GRE 점수가 필요한데 막판에 졸업 학점 채우느라 한 학기에 24학점씩 몰아서 들었어요. GRE고 뭐고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웃음). 알토대 프로그램이 마침 영어로 하는 프로그램인 데다 학비가 공짜였고, 유럽에 대한 동경도 있었어요. 가보니 한국에선 모든 뉴스의 중심이 미국, 중국, 일본이었는데, 거기선 러시아, 발트 3국 같은 나라 뉴스가 계속 나왔어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핀란드에서 한 AI 연구는 어땠습니까.

 

“신입생에게 무작위로 연구실을 배정했는데, ‘인공 신경망’(인간의 신경 세포 구조를 본떠 만든 기계 학습 모델)을 다루는 연구실에 당첨됐어요. 처음 들어본 개념이라 이해는 안 됐지만, 다른 사람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굉장히 신났지요. 딥 러닝, 머신 러닝(기계 학습) 같은 개념이 지금만큼 뜨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엄청난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캐나다로 건너갔지요?

 

“대학원 생활 막바지에 AI 구루들이 ‘아이클리어’라는 인공 지능 학회를 만들어 미국 애리조나에서 행사를 했어요. 핀란드에서 돌아갔는데 어찌나 멀던지. 학회 첫날 아침 식사 때 옆자리 분과 대화를 했는데, 그분이 저명한 벤지오 교수였어요. 그 인연으로 몬트리올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했고요. 정말 제가 지금까지 온 데는 ‘우연’과 ‘운’이 참 많이 작용했네요.”

 

 

맨해튼의 거리를 걸어가는 조경현 / 사진작가 서승재

 

◇AI 분야 남자 일색… 불평등 깨려 여자 공학도 지원

 

조 교수는 젊은 나이인데도 줄기차게 기부를 해왔다. 지난해 11월 ‘삼성 AI 연구자상’을 받고 상금 전액을 몬트리올대에 기부했다. 네이버, SK텔레콤 등 국내 기업체 강의료도 받는 족족 내놓았다.

 

–블로그에 이번 호암상 상금 3억원 기부 계획을 밝혔더군요.

 

“재단에서 세금 떼고 바로 계좌로 입금해주시더라고요. 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이, 그것도 현금으로 들어오다니! 계획에 없던 돈이 생긴 거라,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쓸 데도 없었고요. 맨해튼 사니까 자가용 살 필요도 없고, 팬데믹 시대니 고급 휴양지 갈 일도 없고(웃음).”

 

–상금에 전혀 미련이 없을 만큼 많이 부유한가요?

 

“부자는 아니지만 대학에서 받는 월급이면 저 혼자 충분히 삽니다. 학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어요. 초반 운이 어쩌다 좋아 기회를 잡으면 그걸 기반으로 점점 더 좋은 일자리를 찾게 되고, 실력이 있어도 타이밍이 안 좋아 기회를 못 잡으면 점점 더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전자였고요.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결과) 차이가 작은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불평등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쿠션 역할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기회 불평등 때문에 실제 능력 차이보다 아웃풋 차이가 더 나요. 형편이 되는 한, 형평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호암상 상금으로 지금까지 세 가지 기부를 했다. 석·박사를 한 알토대에 3만유로(약 4000만원), 모교 KAIST에 1억원, 한국 고전 연구자를 위한 ‘백규 고전 학술상’ 제정에 1억원을 기부했다.

 

–알토대나 그 이전 몬트리올대 기부를 보면 대상이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는 신입 여자 유학생’이더군요.

 

“우선 유학생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아요. 언제든 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임시 거주자인 데다 계좌 잔액을 계속 신경 써야 해요. 유명한 관광지가 널렸는데, 부모님 오실 때나 겨우 가봅니다. 침대 틀 없이 매트리스만 깔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아주 쪼들리지 않았는데도 늘 이케아 제일 싼 침대만 썼어요. 서울 부모님 집을 떠난 후 얼마 전까지 소파도 없었고요. 팬데믹이 길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지난겨울 해외 생활 처음으로 소파를 하나 장만했죠.”

 

–여학생만 후원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KAIST 전산학과 때 동기 60~70명 중 여자가 너덧 명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과학 분야엔 젠더(性) 불균형이 심각합니다. 그런데 AI에서는 ‘젠더 균형’이 더 중요해요. AI는 간단히 말하면 알고리즘 안에 데이터를 넣어서 학습하는 건데, 이 데이터가 젠더·지역 등 여러 측면에서 대표성(representation)을 갖는가가 중요합니다. 편향된 데이터는 알고리즘을 반복해 거치면서 편향성이 증폭돼요. 여성과 소수 집단이 배제되면 점점 더 배제되는 거지요. 이런 문제를 보완해 나가야 하는데, 연구자 대부분이 남성이에요. 그들 눈엔 이런 편향이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다양성’을 높이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는 ‘증폭(amplification)’과 ‘데이터 편향(bias of data)’ 문제가 요즘 인공 지능에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했다.

 

–금액을 보니, 1인당 1000달러(약 112만원) 정도를 여럿에게 나눠 주던데요.

 

“유학생들이 막 입학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때 숨 돌릴 수 있는 조금의 여유를 준다는 의미예요. 사용처 제한도 없습니다. 친구하고 맥주 마셔도 되고, 근사한 데서 밥 한 끼 먹어도 되고, 넷플릭스 결제를 해도 되고, 아이패드 사도 됩니다. 매트리스만 사지 말고 제대로 된 침대를 사도 좋고요(웃음).”

 

–한국 기업과도 일하는데, 해외 기업과 격차가 있던가요.

 

“연구원 미팅을 주로 하는데, 다들 똑똑하고 열심히 합니다. 다만 차이라면 한국 기업엔 한국 사람만 있다는 것? 다양성을 강화해야 해요. 너무 남성 중심인 것도 문제고요. 한국 유명 IT 기업이 주최한 AI 학회 공지를 봤는데 발표자가 100% 남성이었어요. 그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편향돼 있다는 걸 몰라요. 불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여성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봐요.”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면 어쩌나, 사람 일자리를 위협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어요.

 

“미래 예측은 정말 어려워요. 맹목적으로 예측을 따라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요. 증기기관, 자동차, 인터넷 등이 나왔을 때 당장엔 영향이 없었지만 몇 십 년 뒤 대중화됐을 땐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AI도 그렇습니다. 당장 이거 큰일 났네 하기보다는 어떤 영향을 줄까 심도 있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해야 해요. 기술로 저같이 이득 보는 사람도 있지만, 손해 보는 사람도 있어요. 정책적으로 부작용,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경현이 엄마'로 산 어머니 향한 헌사

 

–KAIST에 어머니 이름으로 기부한 게 화제가 됐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봤어도, 어머니 이름으로 내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부모님이 대학(공주사대 국어교육과) 동기예요. 어머니는 국어 교사였는데 저와 남동생을 낳고 기르느라 일을 관두셨어요. 그 시절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어머니 희생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 이름을 넣었어요. 혹시 여자 후배들이 저희 어머니처럼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관둘까 고민하게 된다면, 이 장학금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한번 더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개인적으론 초등학교 1학년인 여자 조카(영빈)가 나중에 AI 과학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롤모델로 삼을 여성 AI 전문가가 나왔으면 합니다.” 장학금은 어머니의 과거, 조카의 미래를 위한 그의 작은 응원이었다. 그는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조카 생일이 같다”며 웃었다.

 

어머니 임미숙(65)씨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고운 맘을 거절하지 않는 것도 부모 역할이라 생각해서 아이 뜻을 따랐는데, 아직도 내 이름을 넣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몸을 낮췄다.

 

조 교수는 장학금을 내며 KAIST 측에 조건 하나를 걸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과 조 교수 부모님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친은 조규익(64) 숭실대 국문과 교수다. 그는 “내년이면 아버님이 정년인데 적적하실 것 같다. 부모님이 젊은 세대와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 부탁했다”고 했다.

 

–AI 전문가인데 한국 고전 학술상 제정도 후원했어요. 대척점에 있는 학문 같아 보이는데.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전’ 아들은 ‘AI’라는 전혀 다른 갱도를 파고 있는 듯했지만, 부자(父子)는 ‘언어’라는 공통분모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인데,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보나요?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부는 AI 사업 등 과학기술 산업엔 컨소시엄을 만들어 몇 조원씩 지원하면서, 인문학 분야는 거의 지원을 안 합니다. 돈이 되는 분야는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해요. 정부는 미래를 위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분야에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는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과연 ‘지능이란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상금 3억원 중 세금까지 떼니 이제 2000만원 정도만 남았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하나쯤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으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필요한 거라고 해 봐야 맥주 정도? 그건 제 봉급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탈탈 털어 다 기부할 거예요. 하하!” 줌 영상 건너, 조 교수의 뉴욕 집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가구 한 점 없이 휑했고, 설거지 거리가 쌓인 싱크대 옆으로 술 몇 병이 달랑 보였다. 가상 세계를 움직이는 서른여섯의 천재 공학자는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한 듯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아들 덕에 며칠 꿈 속 여행을 했다. 발은 땅에 붙어 있으되 머리는 구름에 닿아 있었다. 조선일보의 김미리 기자가 경현이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쓰고 있다며 내게 몇 가지 물어온 날부터 토요일판 조간신문이 발간・배포된 오늘[2021/7/3]까지 마음속에는 갖가지 상념들이 명멸했다. 오늘 아침 조선일보 주말 판 B01면을 가득 채운 경현이의 기사를 접한 나는 그간 숨어 살던 동굴에서 커밍아웃 당한 기분을 느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랬다.

 

첫째, 그간 산발적이고 즉흥적이며 정치적으로 취급되어오던 우리 사회 페미니즘론의 수준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였다. 그는 과학계[아니 거의 모든 분야!]에 여성인력이 소수인 문제적 현실을 강조하며 개선의 당위성을 환기시켰다. 그동안 자신이 받는 상금이나 강연료를 여성들을 위해 기부해옴으로써 여성 진출을 고무시키는 대열의 상징적 기수 역할을 스스로 떠맡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기존의 위선적 페미니즘론이 보다 개선될 가능성을 보여 준 점은 인정할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의 모친을 피해자의 사례로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부친 역시 반페미니즘 대열의 일원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지 아니한가.^^

 

둘째,  '인문학 중시'를 표방한 점은 자신의 부친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모친에 대한 배려와 균형을 맞추려는 세심한 마음 씀의 소산일 것이다. 나는 그간 세상이나 가족의 일에 일견 무심한 듯했던 경현이가 부모에 대하여 그런 생각까지 갖고 있으리라는 점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신문 기사를 접한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면서 그의 생각이 ‘범상치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내가 그동안 그를 매우 무심하게 대해 왔음을 처음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경현이에 대한 지인들의 칭찬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나는 지난 시간들을 성찰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 나름대로 무언가를 성취하기까지도 나는 내 생각과 일에 매몰되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걸 눈치 챈 것일까. 그는 인터뷰 후반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멘트를 덧붙였다.

 

“아버지가 고전 문학 전문가입니다. 아버지와 제자들이 지원도 부족한데 수십 년 고군분투하며 연구하는 모습을 봐왔어요. ‘미래가 안 보이는 갑갑한 연구를 어떻게 할까’ 싶은데 돈이 안 될지라도 묵묵히 한 우물 파는 인문학자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책에 둘러싸여 지냈어요. 소설이든 논픽션이든 작가들이 시대상을 작품에 남기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도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신기했어요. 현재 고민을 해결하는 지혜를 과거에서 얻기도 하고요. 고전, 인문학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내 성찰의 결과 필연적으로 안게 될 후회나 상실감을 어루만져 주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게 도래할 회한과 미안함을 이런 말들로 조금은 가볍게 해주려는 어른스러움을 발휘한 것이리라. 내 추론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나는 더 큰 부채감과 후회의 아픈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잠시 분리되었던 '이상 지향의 머리'와 '현실 집착의 다리'는 시간이 흘러 봉합되었고, 나는 결국 현실과 이성 조합의 시간대로 돌아왔다. 이제 30대 중반의 요량과 기획으로 세상은 분명 변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매트릭스로 전환되어 나의 사고와 움직임을 조종할 것이다. 관념상으로나마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착각했던 나는 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시공(時空)으로 이입(移入)하고 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나는 그 시공의 충실한 사역자가 되어야 하리라.♥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7. 2. 06:30

 

 

조경현 뉴욕대 교수, KAIST에 장학금 1억원 쾌척

 

- 어머니 이름 딴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 신설

 

 

조경현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과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조경현 뉴욕대 교수가 1억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고 30일 밝혔다. 조 교수가 올해 삼성호암상의 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상금 중 1억 원을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쾌척한 것이다.

 

전산학부 학사과정 여학생 중 지원이 필요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이 이 장학금의 수혜자가 되며, KAIST는 매 학기당 5명을 선발해 1인당 1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눈에 띄는 점은 조경현 교수가 이 장학금의 이름을 ‘전산학부 임미숙 장학금’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임미숙은 조 교수 어머니의 이름이다.

 

AI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 어머니 이름을 딴 장학금을 신설한 데에는 컴퓨터 공학 분야의 여성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고민이 담겨있다.

 

조 교수는 “저의 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해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정을 이룬 뒤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 부부 중 여성이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것이 1980년대의 사회적 인식이었다.

 

성별에 따른 고유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2000년대 초반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학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던 조 교수는 “남학생은 전산학을 전공하고 여학생들은 생물학을 선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장학금을 받은 여학생들이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 좋은 본보기를 만들고 그 모습에서 동기부여를 받은 다른 여학생들이 모여들어 보다 더 다양한 컴퓨터 과학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조 교수의 바람이다.

 

조 교수는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이슈에 대해 누군가가 구체적으로 꼬집어내어 쉬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 절대 인식하지 못할 것 같다”라며 “이번 기부를 통해 작게는 KAIST 크게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성과 대표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류석영 KAIST 전산학부장은 “조 교수가 장학금을 기탁하며 매 학기 선정된 장학생들과 부모님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해왔다ˮ라며 ”세대와 환경이 다른 기부자와 수혜자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해 임미숙 장학금에 담긴 뜻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장학기금을 운영해 나갈 계획ˮ이라고 밝혔다.

 

지난 24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기부 약정식에는 미국에 체류 중인 조경현 교수를 대신해 부친 조규익 씨와 모친 임미숙 씨가 참석했다.

 

임미숙 씨는 “아들은 삼성호암상이 개인이 아닌 자기 연구 분야 전체에게 주어진 상이기 때문에 상금을 사회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아들의 마음이 담긴 전산학부 장학금 기부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큰 기쁨으로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2021.06.30. 13:00>

 

조경현

                                                       

지난  24 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조경현 뉴욕대 교수의 발전기금 약정식이 열렸다 .  미국에 체류 중인 조 교수를 대신해 부모인 임미숙 · 조규익 씨가 행사에 참석했다 .  왼쪽부터 이광형  KAIST  총장 ,  임미숙 · 조규익 씨 .[KAIST  제공 ]

 

***

 

지난 달 말일, 도하 각 언론매체에 경현의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부부는 24일 오후 5시 카이스트의 초청으로 총장 공관에서 장학기금 전달식과 만찬에 참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기사로 접하고 보니, 그의 선행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정권이 탄생하고 나서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거짓과 위선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은 만인공지의 사실이다. 그간 틈만 나면 여성의 인권을 고창해온 자들이[그것도 같은 여성들이!] 자기들 패거리의 남성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철저히 외면하는 이중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온 것이다. '멍청하고 반역사적인' 문재인 정권 하에서 반복되는 이런 류의 사건들을 통해, 그간 여성의 인권은 이른바 '여성 운동가들'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우리 사회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의 현실을 배려해온 조경현의 선행은 그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여성 과학인에 대한 배려는 여러 번의 상금 혹은 강연료 기부로 실행되어 왔고, 그 일이 '작지만 큰 울림'으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 그간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 개선'에 대한 강조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조경현의 이 선행은 조만간 기성세대의 허위와 가식에 대한 질타의 쓰나미로 증폭되어 낡고 공고한 '남성 중심 권력 카르텔'을 덮칠 것이다. 그 때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시각(視角)을 열심히 벼려두기로 한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21. 4. 8. 18:00

 

호암재단 발표내용

 

 아들의 수상 소식을 접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내게 누군가 '불출(不出)'이라 꾸짖어도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학교에서 강의를 마친 뒤 집에 오려는데, 양훈식 선생이 방금 인터넷 신문에서 보았다며 경현의 ‘2021 삼성호암상’ 수상 소식이 보도된 기사 한 건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그 기사를 읽고 집까지 두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하며, 내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상념들이 명멸했다.

 

평소 삼성호암상은 아무나 받는 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그 상 자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자에게 주는 상도 아니고, 자연과학과 공학 등 실용적 보편학문과 예술분야, 사회봉사의 특출한 인물들이 받는 상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으며 그 상의 무게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호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발표한 2021년도 삼성호암상 수상자 및 심사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수상자

 

1. 과학상

1) 물리・수학부문: 허준이 교수[38세/스탠퍼드 대]

2) 화학・생명과학부문: 강봉균 교수[60세/서울대]

 

2. 공학상: 조경현 교수[36세/뉴욕대]

 

3. 의학상: 이대열 특훈교수[54세/존스홉킨스대]

 

4. 예술상: 봉준호 감독[52세/영화]

 

5. 사회봉사상: 이석로 원장[57/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심사

 

국내외 저명학자와 전문가 4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와 해외석학 자문위원 49명의 업적 검토 등 4개월 동안의 엄격한 심사과정

 

삼성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의 ‘인재제일, 사회공익 정신’을 기려 1990년에 제정되었다 하니, 한국 내에서는 그 권위와 역사를 능가할 만한 상도 없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기사들에서 호암재단이 ‘허준이 교수, 조경현 교수 등 30대의 젊은 과학자 2명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학계의 큰 소득임’을 밝혔다고 했는데, 나로서는 그 점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학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완성도가 높아지는 인문학 종사자로서 솔직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그간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 그 방향이 타당할 뿐 아니라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라 해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전의 성숙도가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학문적 결과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호암상이 시대적 조류를 과감히 받아들여 30대인 조경현을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영광스러운 쾌거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감격스러운 것은 그의 학문분야와 성취도에 대한 평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공학상 조경현 교수는 문장 전후 맥락까지 파악하는 ‘신경망 기계번역 알고리즘’을 개발해 ‘인공지능[AI] 번역의 혁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매일경제]

 

2. 공학상 조경현 교수는 인공지능[AI] 번역 전문가다. 문장의 전후 맥락까지 파악해 고품질의 번역을 할 수 있는 ‘신경망 기계번역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조 교수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현재 대다수 번역 엔진에 사용되고 있다는 게 재단 설명이다. [동아사이언스]

 

3. 인공지능[AI] 번역 기술의 대가로 꼽히는 조경현 미국 뉴욕대 교수는 공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 교수는 문장 단위의 AI 번역을 뛰어넘어 사회・문화적 맥락과 작가 스타일을 살리는 ‘신경망 기계번역 알고리즘’[NMT]을 처음 선보였다. 그가 개발한 NMT는 현재 대다수 번역 엔진에 채택돼 AI 번역 및 관련 산업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앙일보]

 

4. 조경현 교수는 문장 전후 맥락까지 파악하는 ‘신경망 기계 번역 알고리즘’을 개발해 인공지능 번역에 혁신을 가져왔다. [조선일보]

 

5. 특히 “올해는 물리・수학 부문 허준이 교수, 공학상 조경현 교수 등 30대 젊은 과학자 2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며 “세계 유수의 상들과 견줘 손색없는 수준을 인정받는 삼성호암상에 올해 30대의 젊은 수상자가 2명이나 선정된 것은 학계의 큰 소득으로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아이뉴스 24]

 

1~4는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내용이다. 그가 그 분야에서 손꼽히는 AI의 전문가라는 점, 그가 개발한 새로운 번역의 알고리즘이 매우 훌륭하여 대다수 번역 엔진에 사용되고 있으며 관련 산업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등이 그 내용의 골자들이다. 5는 호암재단이 30대의 연구자를 수상자로 선정한 의미를 밝힌 내용이다. 나로서는 이 기사들의 내용이 그에 대한 최고의 감동적인 찬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말들이 사실과 부합되는지, 혹은 36살의 젊은 그가 오륙십 대의 시니어 학자들과 함께 이 상을 함께 받을 자격이 있는지 등에 대하여 크게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 졸업 이후 해외의 유수 대학들과 훌륭한 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미래의 블루오션이라 믿은 AI를 배우며, 그것을 자신의 전공분야로 삼아 매진하기로 결심한 그의 판단과 노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2세대가 시작도 되기 전에 어린 나이의 그가 그 학문의 중요성과 의미를 간파하고 뛰어들었으니, 교수나 학자로서는 '약관'이라 할 수 있는 36의 나이에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러나 조경현이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한 사람의 학자가 자기 당대에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게 전통 고전문학이든, 첨단의 AI이든, 제대로 된 학자라면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인간의 당대에 한 분야를 완성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신의 섭리’가 아닐까. 간혹 ‘이 논문은 이 분야의 결정판이니, 아무도 더 손댈 수 없다’고 큰소리치는 인사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100% 허언(虛言)임이 판명된 것만으로도 그 점은 분명하다.

 

이제껏 빠져 지내는 잡기(雜技) 하나 없이 답답하게 살아가는 학자가 조경현이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무릎에 올려놓고 온갖 알고리즘의 세계를 유영(遊泳)하며 종으로 횡으로 자신의 가설을 논증하기에 바쁜 친구가 바로 조경현이다.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는 틈틈이 각종 컨퍼런스의 촘촘한 스케줄 따라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도 그의 생활 중 큰 부분이다. 어느 틈에 오만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2018년 블룸버그 통신이 그를 ‘새해에 주목해야 할 각 분야 5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했을 때도, 2019년 뉴욕대학이 부임[2015년 9월] 4년만에 종신교수직을 주고 미국 정부가 입국[2015년 9월] 3년 반만에 그린카드를 부여했을 때도, 2020년도에 삼성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삼성연구자상’을 주었을 때도, 변함없이 허름한 티셔츠 한 장 걸치고 아무데나 앉아 쉼 없이 컴퓨터를 두드리며 발표문을 작성하는 그였다. 드디어 올해 삼성호암상을 받게 되었으나, 이후 그의 그런 자세엔 추호의 변함도 없으리라. 그래서 그는 내 아들이되, 나는 그를 내 선생으로 생각해야 마땅한 일이다. 아들을 훌륭한 선생으로 두고 있으니, 나는 분명 하늘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셈이다.

 

블룸버그에서 발표한 2018년 각계의 수상자들과 조경현

                                                      

<<시사인>> 570호 표지사진[2018. 8. 10.]

 

        삼성 첫 'AI연구자상' 시상 관련 기사[중앙일보 2020년 11월 2일자 경제면]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