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3. 5. 17:19

 

 

정신 차립시다!-웬디 셔먼의 말을 듣고

 

 

#1 유럽 여행 중, 독일의 본(Bonn)에 들른 적이 있다. 여행 정보가 필요하여 시내의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더니 대뜸 일본에서 오셨지요?”라고 물었다. 내가 아니오. 한국인이오!” 하고 대답했더니, 순간 표정과 응대가 사뭇 사무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2 정확한 장소는 잊었지만, 유럽 또 다른 도시에서의 일이다. 민박을 하게 되었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야뽕이냐고 물었다.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확신하고 물었을 것이다. 내가 대뜸 아니오!” 라고 대답하자, ‘그럼 시이나인가?’ 라며 또 물었다. ‘일본 사람 아니면 중국 사람이겠지!’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니오. 한국인이오!”라고 약간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자 머쓱해하며 물러났다.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주인이 서빙을 하다가 지도 한 장을 펴 보였다.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여기서 당신네 나라를 찾았소. 그럼 남이냐 북이냐?’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남쪽에 사는 한국인이오!” 라고 대답하자, 그 때서야 미소를 보였다. 그는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난 듯 했다.

 

#3 재작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지역 박물관들 몇 군데를 도는 동안 625 참전용사를 만났고, 다른 곳에서는 이미 작고한 참전용사의 아들을 만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1950~53년 어름의 한국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말을 나누다 보니, 그들 마음속의 한국은 아직 ‘1950년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연민과 경이의 상반된 정서가 착종되어 있었다. 폐허 속에서 코를 찔찔 흘리며 초콜릿을 구걸하던 그 모습과, 그나마 외국여행이랍시고 나선 우리에게서 일종의 심각한 언밸런스를 발견했을 것이다.

 

#4 최근 다녀 본 미국과 유럽,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등의 도로들엔 일본차들이 부지기수로 달리고 있었으며, 새 차는 물론 중고차도 일본차들은 인기 만점이었다. 미국에서 차를 사려고 하니 대부분 이왕 사려면 일본차를 사야 한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품질도 믿을만하고 중고로 팔 때 제값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한국인은 삼성 폰을 만지작거리던 미국사람에게 그게 어디서 만든 것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일본 제품이라고 답하더라며 탄식을 했다. 그 정도로 서양에서 일본 브랜드의 위력은 대단했다.

 

#5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원어민 영어 교수와 가끔 만난다. 서로 간에 흉허물이 없어졌다싶을 즈음 싱거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왜 당신을 포함한 서양인들은 일본이나 일본인을 좋아하는가? 2차 세계대전에서 맞붙어 싸운 적국 아닌가?” ‘이 친구도 일본을 좋아하겠지?’라는 내 추정을 확신으로 깔고 던진 물음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좋아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분명히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만들어 온 물건들과 그들이 지속해온 문화와 깔끔한 성품 땜에 일본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과거에 전쟁을 일으켰고, 함부로 역사를 수정하려 하며, 약삭빠른 그들을 꼭 좋아해야 하는가?”고 다시 물었더니, “지난 일은 내가 알 바 아니고, 지금 좋으면 된다.”고 답했다.

 

과거사는 한··3국 모두가 책임이 있으니까 빨리 정리하고, 북핵 같은 당면 현안에 치중해야’/‘민족 감정은 악용될 수 있고, 정치인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등은 최근 웬디 셔먼(Wendy Sherman) 미 국무차관이 공식석상에서 했다는 말의 요지다. 일본 편을 들어 우리를 비난하고 있음은 불문가지다. 누구는 뭐 한갓 아녀자의 말이니 그냥 모른 척 하자고 하는 모양이지만, ‘세계의 조정자를 자처하는 미국의 외교 수뇌부가 공식석상에서 뱉은 말에 우리가 대범할 수는 없게 되었다.

미국인들을 몇 번 만나 보면 개인이든 공인이든 마음과 달리 외교적 언사가 매우 매끄럽고, 이른바 포커 페이스’(poker face)에 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구한말의 일본 놈 일어난다. 소련 놈에게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말자는 항어(巷語)도 나왔으리라. 미국 고위관료의 말과 표정만 믿고 돌아와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다가 된통 당하기만 하던 과거 우리나라 관료들의 순진함도 이런 외교적 언사와 포커 페이스에 당한 결과들이리라.

 

유럽이나 미국인들이 일본과 일본인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사실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다. ‘625 때 자국의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었으니, 당연히 우리 편을 들어주겠지’, ‘세계대전에서 악랄한 일본군으로부터 몹쓸 시련을 받았으니 당연히 우리 편을 들어주겠지등등. 우리는 너무 순진해서 탈이다. 미국에 가보면 주류사회에 많은 일본인들이 진출해 있고, 일본 여자와 결혼한 미국의 고급관료들이나 오피니언 리더들을 꽤 보게 된다. 그 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 시절엔 소니의 게임기에 빠져 살았고, 자라면서 워크맨이나 모바일, PC 등에 조종당하며, 토요타 등이 생산하는 일본차를 타고 일생을 보내던 사람들이 잘 나가는 미국인들이었다. 1998년 미국에서 만난 어떤 아이에게 나중에 자라면 어디를 젤로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일본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이렇게 재밌는 게임기를 만들어낸 나라에 꼭 가보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일본 편일 수밖에 없다. 간혹 오바마 대통령이 짐짓 일본을 꾸중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하지만, 경험칙으로 보아 포커 페이스임이 분명하다. 이쯤 우리는 집단적 착각에 빠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론들은 우리 전화기, 자동차, K-POP이 세계를 제패한 듯 떠들고, 흡사 세계인들이 모두 우리를 주목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망한다 해도 더이상 군대를 보내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이나 생존의 문제를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이 순간 아프게 깨달아야 한다. 국제사회의 냉혹함에 언제까지 둔감할 것인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4. 6. 14:10

 


<헬싱키-반타 공항 모습> 


<헬싱키-반타 공항 내부>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핀란드 산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헬싱키 근교>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로 가는 도중에 내려다 본 핀란드 산하> 


<로바니에미 공항 바깥에서 만난 이정표> 


<로바니에미 공항 바깥 언덕에 세워진 순록 상> 


<로바니에미 공항의 앙증스런 간판-순록의 뿔로 만들었음> 


<로바니에미 첫날 저녁식사를 한 식당 BULL> 


<로바니에미 오우나스 강과 께미강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호수같은 강에서-미숙, 경현> 


<오우나스-께미 주변의 자작나무 숲 뒤로 석양은 불타고...> 


<오우나스-께미에서, 외로운 스키어>

 


<로바니에미에서 목격한 눈의 모습>

 

 

아직도 눈에 덮인 북극권의 낙원

 

 

참으로 먼 곳이다.

 새벽 5시에 기상, 인천공항 행 리무진에 오른 시각이 6시 45분. 공항에서 아침식사 해결 후 핀에어에 탑승한 시각이 10시였고, 이륙한 시각은 10시 30분이 넘어서였다. 베이징 상공, 모스크바 상공, 쌩뜨 뻬쩨르부르그 상공 등을 거쳐 발트해 상공에 들어선 것이 이곳 시각 오후 3시 가까이. 3시 5분경 헬싱키-반타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 짐을 찾은 후 로바니에미 행 비행기 출발 시각인 4시 20분 전에 탑승구 22A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두어 해 전 북유럽 여행팀에 합류하여 잠시 거쳐 갔을 뿐인 이곳. 이번에 큰맘 먹고 그 속살을 보고 싶었다. 스웨덴에 650년간, 러시아에 200년간 통틀어 850년을 남의 지배 아래 살아왔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켰을 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문화를 발전의 거름으로 삼아온 나라. 2차 대전에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을 잘못 선’ 죄로 철저히 파괴되었고, 전후 소련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기한보다 훨씬 앞당겨 갚아 버리고, 그 후 몇 년 만에 올림픽을 유치하기까지 한 나라. 면적은 남북한의 1.5배쯤 되지만 인구는 500여만 밖에 되지 않는 북유럽의 강소국.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북극에 가까워 국토의 30%가 북극권에 들어가 있는 나라. 이 나라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 점이 궁금했다.

 

***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로 날아가는 1시간 30분 동안, 아직도 하얀 눈에 덮여 잠들어 있는 핀란드의 자연을 음미했다. 구릉 하나 보이지 않는 평원에 다닥다닥 둥근 공간들이 하얗게 널려 있는 건 핀란드 전역에 수만 개나 있다던 바로 그 ‘눈 이불을 덮고’ 얼어버린 호수들이었다. 그 뿐이랴. 온 평원엔 백설을 뒤집어쓴 전나무와 삼나무 숲이 들어차 있고, 누가 그었는가? 그 사이사이로 핏줄처럼 도로들이 교차하며 끝없이 뻗어 있었다. 호수와 숲의 나라. 그런데 아직 한겨울의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 겨울잠을 누가 있어 깨울 것인가? 나그네의 마음속 떠오른 부질없는 걱정과 의문이었다. 도회의 냄새는 로바니에미 인근에 도착할 무렵에서야 맡을 수 있었다. 사뿐히 공항에 내리니, 참으로 한적하고 ‘이쁜’ 시골 공항이었다. 공항 건물 앞 언덕 위엔 순록의 모형들이 달릴 듯 서 있고, 순록의 뿔을 이어 붙여 만든 공항 간판은 건물 뒤쪽에 숨듯이 달려 있었다. 렌터카를 몰고 나온 경현의 안내로 시티호텔에 여장을 푼 뒤 본격 탐사가 시작되었다. 호텔 옆 BULL에서 시장기를 지운 우리는 밤인데도 대낮같이 환한 시가지를 거쳐 꽁꽁 얼어붙은 오우나스강(Ounasjoki)과 께미강(Kemijoki)이 합쳐져 호수를 이룬 곳에 들어갔다. 텅 빈 얼음판엔 하얀 눈만 한 길 싸여 있고, 간혹 스키어들만 외롭게 그 공간을 왕래했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그제서야 넘어가는 석양이 불타듯 스며들었고, 아주 조금씩 우리의 품속을 파고드는 어둑발과 함께 숙소에 들어왔다.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여 몸은 천근이었으나,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운 로바니에미의 첫 밤이다.

Posted by kicho
알림2012. 10. 30. 11:38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15’로 김대권 교수의 번역서 <<하만 사상전집>> 출간!

 

 

하만은 헤르더와 더불어 독일의 질풍노도 문학운동을 주도했던 사상가이다. 그의 글은 단편이 주종을 이루는데, 김대권 교수(독어독문학과)가 그중에서 세 편을 골라 국내에서 최초로 번역했다.

먼저 <내 생애에 대한 생각>은 하만의 자서전으로, 여기에서 하만은 자신의 유년시절, 학창시절, 가정교사 활동, 런던과 리가에서의 생활 등 29세까지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자서전에는 하만의 신앙고백이 들어있어, 성서에 근거한 하만의 사상을 이해하고,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미학의 진수>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일종의 밑거름 역할을 한다.

하만 이전에도 소크라테스 전기를 쓴 사람은 많았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성서 유형학적인 측면에서 선지자나 의인 혹은 예수에 비유한 전통도 있었다. 그러나 하만은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소크라테스 전기를 쓰기보다는 그의 생애에서 “기억할 만한” 점만을 골라 간략하게 기술한다. 그리고 당시의 계몽주의자들과는 달리,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자신의 멘토이자 본보기로 삼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을 소크라테스에게 투영하여 오만한 이성의 마력에 휘둘린 계몽주의의 지적 풍토에서 기꺼이 소크라테스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미학의 진수>에서는 창조, 타락, 구원, 재림이라는 성서의 큰 틀 속에서 ‘미학’ 문제가 논의된다. 여기에서 ‘미학’이란 바움가르텐이 정의한 “감각적 인식에 관한 학문”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예술이론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미학’ 문제는 주로 추상 위주의 시대경향에 대한 비판과 추상에 의해 배제된 자연, 감각, 정열을 복권하려는 측면에서 논의된다. 저서의 제목과는 달리 ‘미학’은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단편적으로 스쳐지나가듯이 언급되어 여설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성 중심적인 18세기의 전반적인 문화현상에 대한 ‘미학’의 측면에서 제기한 촌철살인은 주목할 만하다.

강호제현의 일독을 권한다.

 

하만 사상선집: 요한 게오르크 하만(지음)/김대권(옮김). 인터북스 2012. 값 20,000원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09. 10. 28. 10:40
김대권 교수, 헤르더의 「1769년 여행일지」번역 출간
요한 고트프리히 헤르더의 50일간 바다 여행일지 국내 최초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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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어독문학과 김대권 교수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1769년 여행일지」를 번역 출간했다.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4로 발간된 이 책은 헤르더가 50일간의 바다여행(리가-발트해-북해-영불해협-팽뵈프)을 마치고 낭트와 파리에 체류하면서 쓴 글이다.

헤르더의 여행일지에서 큰 골격을 이루는 것은 자아와 당대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다. 그는 과거의 자아와 그 자아를 둘러싼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여 바다여행을 결심하게 되며 여행 도중에는 바람직한 미래의 자아상을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자아 개혁의지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데, 이는 자신의 문제가 당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됨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헤르더의 ‘노화’한 자아와 현실을 개혁하려는 질풍노도 문학운동가의 고뇌가 스며있다. 답답한 ‘이론의 세계’를 떠나 ‘행동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고, ‘죽은’ 지식을 양산하는 교육에서 ‘산지식’을 지향하는 교육으로 전환하고자하는  노력이 담겨 있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는 목사, 문학비평가, 철학자, 신학자, 교육자로서 독일의 질풍노도 문학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