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4. 11. 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 14. 12:05

 

 

 


코만치의 수도 로턴을 중심으로 이어진 각 도시들

 

 


1848년의 미국 지도

 

 


코만치 네이션의 깃발

 

 


코만치 민족대학[Comanche Nation College]의 상징 

 

 


티피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코만치 가족 3대

 

 


대평원의 티피

 

 


티피를 재현해 놓은 모습

 

 


옛날 코만치족 티피의 모습

 

 


멀리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듣고 있는 인디언 전사들

 

 


불 붙인 풀을 화살에 붙여 쏘아 버팔로들을 언덕 위로 몰고 있는 인디언들

 

 


가재도구를 끌고 말을 탄 채 이동하는 인디언 가족

 

 

카이오와(Kiowa), 아파치(Apache), 코만치(Comanche), 그리고 대평원[Great Plains]의 서사시(4)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1)

 

 

포트실을 떠나 5분쯤 달렸을까. 코만치의 수도 로턴(Lawton)에 진입했다. 서부영화에서 접한 코만치 전사들의 무시무시함이 기억에 남아서였을까, 운전대를 잡고서도 무의식적으로 시내 좌우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어느 골목으로부터 말을 타고 예의 그 화살을 겨누며 쫓아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가지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깨끗하며 조용했다. 여느 도시들 못지않게 주택들엔 윤기가 흘렀다. 펄펄 살아 날뛰던 코만치의 정기는 이미 죽었는지, 아니면 어느 구석에 잠복해 있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외부인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들은 수렵과 채취를 업으로 삼고 기마술 같은 특유의 말 문화[horse culture]’를 보유한 부족이었다. 그들의 인구는 18세기 후반이 되자 이미 45,000 명 이상으로 늘어 있었다. 그들은 이곳 남부 대평원을 지배하던 부족으로서 가끔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포로들을 잡아다가 스페인 사람들이나 멕시코 정착민들에게 노예로 팔아먹기도 하던 무서운사람들이었다. 그 뿐 아니다. 수천 명의 스페인 사람들, 멕시코 사람들, 심지어 미국 정착민들까지도 포로로 잡아다가 국경지역에 묶어 두고 백인인 그들과의 강제결혼을 통해 혼혈의 후손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그들이 바로 그 유명한 메스티조(Mestizo) 혼혈인들이다. 코만치가 그 메스티조의 확장과 전개에 큰 공헌을 한 셈이고, 그것은 결국 인종의 개량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게 된 셈이었다. 이처럼 40년 이상 미국과의 전쟁을 계속하면서 그들을 질겁하게 만든 아파치보다도 오히려 무서운 것이 코만치였다.

 

현재 코만치 네이션에 등록된 인구는 15,000여 명이고, 그 중 7,700여 명이 로턴포트실과 그 주변지역 등 오클라호마 주 남서부 지역에, 나머지는 전국에 각각 흩어져 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매년 6월 중순, 오클라호마 주 월터스(Walters) 시티에서 열리는 홈커밍 파우와우(Homecoming Powwow)’ 행사에는 대부분의 코만치 인들이 모인다고 한다. ‘파우와우는 병의 회복이나 사냥의 성공 등을 비는 집단의식이다.

 

코만치 네이션의 본부는 로턴에 있는데, 카도(Caddo)코만치(Comanche)카튼(Cotton)그래디(Grady)제퍼슨(Jefferson)카이오와(Kiowa)스티븐스(Stephens)틸만(Tillman) 카운티 등이 그들의 사법권이 미치는 지역이다. 8분의 1 즉 대략 13% 정도의 코만치 피를 갖고 있으면 부족원의 자격이 있다고 하니, 증조부모 가운데 한 사람만 코만치 인이면 네이션에 등록할 수 있는 것이다. 코만치족은 대평원의 인디언 부족으로서 그들이 차지한 영역은 뉴멕시코 동부, 콜로라도 남동부, 캔자스 남서부, 오클라호마 서부, 텍사스 북서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정부가 인정한 코만치 네이션의 본부는 현재 로턴에 있다.

코만치가 뚜렷한 부족으로 떠오른 것은 1,700년 직전 즉 그들이 쇼쇼니(Shoshone) 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였다. 당시 쇼쇼니 부족은 와이오밍 주 플랫 강(Platte River) 상류를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코만치족은 말[]을 얻음으로써 큰 변화의 계기를 맞이했다. 1680년 푸에블로(Pueblo) 족이 반란을 일으킨 후 푸에블로 인디언들로부터 말을 얻게 되었고, 쇼쇼니로부터 분리해 나온 이후 말을 이용함으로써 더 좋은 사냥터를 찾을 수 있는 기동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역사상 교통수단의 발달이 혁명이라 할 정도로 산업을 발전시킨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코만치 문화의 등장과 말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사실 그들이 쇼쇼니와 결별하고 남쪽으로 이동한 목적도 새로운 바이슨 떼를 찾아내기 위한 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스페인 식민지의 정착자들로부터 새로운 말들을 구하기 위한 데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상당수의 서부영화들에 묘사된 것처럼 코만치 인디언들의 마술(馬術)은 신기(神技)에 가깝다는 평들이 있어왔다. 다시 말하면 코만치족은 말을 그들의 문화에 도입했을 뿐 아니라 다른 부족들에게 소개한 대평원의 첫 부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부 대평원으로 이동하면서 아칸사 강으로부터 텍사스 중부로까지 영역을 넓혔고, 1,700년에는 뉴멕시코와 텍사스 주 상단 즉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주 팬핸들(Panhandle)에까지 이를 정도였다. 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결국 1777년 싸움의 상대였던 리판 아파치(Lipan Apache)는 리오 그란데(Rio Grande) 강까지, 메스칼레로 아파치(Mescalero Apache)는 코아휠라(Coahuila)까지 각각 퇴각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코만치는 들소인 바이슨의 증식을 통해 식량이나 옷을 확보하게 되었고, 쇼쇼니 이주자들이 유입되었으며, 라이벌 그룹들로부터 포로로 잡아온 여인들과 아이들을 자신의 주민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그러나 코만치는 단일민족으로 응집하지 못하고, 십여 개의 자치그룹으로 분할되었는데, 그들은 그것들을 밴드(band)’라 불렀다. 이 밴드들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좀처럼 서로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19세기 중반쯤 프랑스와 미국의 무역업자나 정착자들에게 말을 공급했고, 나중에는 캘리포니아 골드러쉬에 참여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로드를 따라 자기네 영역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에게도 말을 공급하게 되었으니, 코만치족이야말로 말을 이용하여 전쟁에도 이기고 부도 이룬 셈이었다. 그 뿐 아니다. 그 때까지 야만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하고, 말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달리자 다른 부족들과 정착자들의 말을 훔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서운 말 도둑이란 악명을 얻게 되었고, 나중에는 가축까지 훔치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나 미국인 정착자들에게서 가축을 자꾸 훔치다가 전쟁이 터지는 수도 있었다.<다음에 계속>

 

 

 


버팔로를 몰아 함께 사냥하는 인디언들

 


풀을 뜯고 있는 대평원의 버팔로

 

 


혼자서 말을 타고 버팔로를 사냥하고 있는 인디언

 

 


가축떼를 몰고 이동시키는 일의 어려움

 

 


가축떼를 몰고 이동하던 통로들

 

 


밀 씨앗을 보관하던 옹기

 

 


밀의 무게를 재던 저울

 

 


대평원 인디언들의 말 문화

 

 


1930년대 캐나다의 평원과 미국의 곡창지대에 큰 피해를 준 먼지 폭풍. 1930년대 내내 심각한
가뭄과 바람에 의해 심한 고통을 겪었음.

 


Dust Bowl의 다른 모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 8. 17:26

 

 

 

 


영화 <아파치 요새>의 포스터

 

 


영화 <론 레인저>의 포스터

 

 

 
<아파치 요새>에서 좌측이 헨리 폰다(Henry Fonda), 우측이 죤 웨인(John Wayne)

 

 


<아파치 요새>의 한 장면

 

 

 
영화<론 레인저>의 한 장면. 왼쪽이 쟈니 뎁(Johnny Depp), 오른쪽이 아미 해머(Armie Hammer)

 

 


<론 레인저>의 한 장면

 

 

 

 

 

서부지역 인디언들과 대평원[The Great Plains]

 

 

 

 

하이틴 시절부터 이 나이까지 영화를 그리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그 가운데 기억나는 것들은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서부영화들이다.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비슷비슷한 내용들이었으나, 관통하는 서사구조는 단 하나 선악의 대결이었고 주제는 미국 판 권선징악이었다. 선을 대표하는 백인들은 늘 당당하고 정의로우며 멋있었던 반면, 악을 대표하던 인디언들은 늘 무지(無知)무명(無明)무뢰(無賴)의 저급한 무리들이었다.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세계인의 편견과 무지는 이처럼 대부분 서부영화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넓고 아름다운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그들을, 어느 날 웬놈들이 밖에서 뛰어 들어와 채찍을 휘두르며 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땅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천추만대 원한에 사무칠 일인데, 전 세계의 코흘리개들도 다 보는 영화에 가해자인 백인들은 정의의 사도로, 피해자인 자신들은 몹쓸 불한당(不汗黨)으로 그려냈으니, 그 통탄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 기억으로는 20055월에서야 미국의 상원은 인디언 6천만 학살에 대한 사과를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죄가 어찌 사람 죽인 일뿐일까. 당시로서는 몹쓸 땅에 그들을 짐승처럼 몰아넣은 점까지 계산하면, 그 죄가 하늘에 닿고도 남을 백인들이었다. 나찌 독일이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왜인들이 전쟁터로 광산으로 징발하거나 허물을 뒤집어 씌워 죽인 우리 민족의 숫자도 엄청나지만, 당시 총인구 5천만~1억을 헤아리던 인디언들 가운데 살해된 비율이 80~90%라니,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했다 한들 미국 백인들의 끔찍한 죄악을 어떻게 계산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그런 사건으로부터 무려 2백년이나 지나서야 이제 사과나 해볼까?’하고 궁시렁 거리며 나섰고,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더 흐른 2010년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워싱턴 D.C. 의회 묘지에서, 체로키촉토무스코기포니시스턴와페톤오야테 등 5개 부족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캔자스 출신의 공화당 상원 샘 브라운백 의원이 사과결의문을 낭독함으로써 의회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 전 해 11월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564개 부족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디언들에 대한 그동안의 횡포와 잘못된 정책에 대하여 사과하고 그들로 하여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에도 정부로부터 무수한 약속을 받았으나 그 약속이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인디언들로서는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미국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진작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고, 사과를 늦게 한 데 대하여 문제 삼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억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디언들을 눈곱만큼이라도 배려했다면,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미지라도 진실에 가깝게 만들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했어야 하건만, 서부영화 같은 매체들에서 보듯이 그들의 모습은 스테레오 타입이라 할 정도로 왜곡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 점이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에는 현재 나바호(Navajo), 체로키, (Sioux) 등 규모가 큰 종족들을 포함, 564개 종족에 3백만 이상의 인디언들이 살고 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소수부족으로서 서부영화들에 단골로 등장한 종족이 아파치(Apache)와 코만치(Comanche).

 

대부분의 독자 여러분은 <아파치 요새(Fort Apache)>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1948년 죤 포드(John Ford) 감독이 만들었고, 죤 웨인(John Wayne) 및 헨리 폰다(Henry Fonda) 등 명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인데, 인디언에 대하여 비교적 따스한 관점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서부영화들과 구별된다고 한다. 감독은 주인공인 요크 중령[죤 웨인]을 통해 아메리카 인디언 특히 아파치 족에 대한 인간적 관점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종래 사납고 공격적이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아파치를 동정적포용적 관점에서 바라 본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교적 긍정적인데,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영화를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미국으로 떠나오기 직전인 작년 7월 하순 경, 한국에서는 론 레인저(The Lone Ranger)’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쟈니 뎁(Johnny Depp)이 열연한 주인공 톤토(Tonto)는 바로 코만치 인디언이었고, 영화의 배경은 캘리포니아유타콜로라도 애리조나뉴멕시코 등이었는데, 이 가운데 콜로라도와 뉴멕시코는 그레이트 플레인즈에 포함되는 공간이었다. 악령을 몰아내는 능력을 지닌 톤토는 죽기 직전의 외로운 레인저존 레이드(John Reid)를 살려냄으로써 결국 그들은 환상의 콤비를 이루게 된다. 거칠 것 없는 드넓은 황야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액션들은 코만치 인디언인 톤토와 백인 레인저 존 사이에 교감되는 우정의 깊이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백인들과 인디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만치 추장 빅베어(Big Bear)의 말[‘우리 시대는 사라졌네. 백인들은 그걸 발전이라 부르는 모양이네만.’]이 추가되면서 그간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착된 백인과 인디언의 이미지 혹은 양자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반성이나 의식 또한 새롭게 제기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

 

인디언을 찾아다니기 몇 달 만에 대평원의 주인공 아파치와 코만치, 그리고 카이오와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이 바로 대평원의 주인들이었다. 오클라호마 동북쪽에 '대초원[Tall Grass Prairie]'이 있다면, 서남쪽에는 '대평원[The Great Plains]'이 있다. 그렇다면 대평원은 어떤 공간인가. 알버타(Alberta), 새스캐치원(Saskatchewan), 매니토바(Manitoba) 등 캐나다 남부를 포함, 몬태나(Montana)노쓰 다코타(North Dakota)사우쓰 다코타(South Dakota)와이오밍(Wyoming)네브라스카(Nebraska)콜로라도(Colorado)캔자스(Kansas)뉴멕시코(New Mexico)오클라호마(Oklahoma)텍사스(Texas) , 로키산맥(Rocky Mountains)과 미시시피강(Mississippi) 사이의 미국 땅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남북 간 길이는 3,200 km, 동서의 폭은 800 km, 면적은 1,300,000 이니, 남한 면적[99,538 ]13배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이다. 오클라호마의 경우 대평원은 주 전체 면적의 60%나 차지할 만큼 거대하다. 그 안에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등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다. <다음에 계속>

 

 


워싱턴 D.C.의 미 의회 묘지 

 


캐나다에서 미국 남부까지 걸치는 대평원(The Great Plains)

 

 


대평원의 한 부분

 

 


대평원 한 가운데를 달리는 하이웨이

 

 


대평원의 바이슨 무리

 

 


대평원의 한 부분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의 집단 거주지를 찾아.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