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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3.14 친구를 보내며
글 - 칼럼/단상2018. 3. 29. 18:40

 


 


흘러가는 물을 보며

 

 


부모님 묘소에서

 

 

많은 죽음들을 기억하며

 

 

                                                                                                                                조규익

 

 

두 해 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올해 가까운 친구 김성원이 떠났고, 며칠 전엔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하던 정명기도 떠났으며,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비명(非命)’에 떠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그간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사색을 통해 나름대로 의미부여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까. 이젠 어떤 죽음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사(自然死), 병사(病死), 사고사(事故死) 모두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또한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인한 최근의 자살들 역시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듯하게챙겨 갖고 있지 않다면, 견디기 어려운 광경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요즈음이다. 사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자살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고, 그동안 지탱해오던 사회적 자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자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엘케골의 말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했으리라.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간은 종교에 귀의한다고 한다. 사실 죽음이 매우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예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도 사람들을 교회로, 성당으로, 사찰로 이끄는지 모른다. 돈독한 논리체계로 사후 세계를 치밀하게 설계해 온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세계의 주재자인 신을 받들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경감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종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고, 그 가운데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덧없다. 하기야 한갓 미물로서 무슨 가치를 창조하겠노라뜻을 세우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가당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겸손한 자세로 생명의 장()’인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 사라지련만. 대부분은 주어진 생애 동안 기고만장하여 같은 공간의 동지들과 멱살잡이로 날밤을 지새우기 마련이다. 소수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지만, 대부분은 삶에 대한 헛된 집착으로 그런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警句). 아침저녁 열심히 가꾸어 오던, 꽃 같은 얼굴이 한 줌 재로 바뀌어 풀밭에 뿌려질 때, 풍채 좋던 친구가 주검 옷에 둘둘 말려 석자 깊이의 무덤으로 내려 갈 때, 그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내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보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법칙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바뀐 그들과 나의 자리바꿈을 통해 비로소 삶과 죽음의 우주적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죽음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할까? 하나, 둘 떠나는 이웃들을 보며, 그 순번이 내게 돌아올 때까지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그 순간을 맞아야 할지,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메멘토 모리!!!

 

 


등걸에서 새싹이...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8. 3. 14. 14:45

최근 광주의 찻집에서

 

 

 

 

친구를 보내며

 

 

                                                                                                               백규

 

 

다정하던 친구 김성원이 이승을 떠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 온 다음 날부터

그는 급격히 혼돈에 빠져들었고,

드디어 12일 새벽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각

너무나 짧은 발인식을 마치고

그는 뜨거운 불의 정화(淨化) 의식을 거쳐 저승으로,

나는 현실의 원리가 작동하는 일터로 다시 돌아왔다.

 

눈을 감기 나흘 전

병원으로 그를 찾았다.
그는 나를 보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가 몹시 궁금했다.

서로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우리는 힘주어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밝은 웃음이 모처럼 그의 얼굴에 번졌다.

언젠가 그에게 처음으로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지금껏 나는 인천 방향으론 소변도 보지 않았노라!”.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 그곳에서 겪은 고통과

마음의 상처가 듬뿍 실려 있었다.

그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그동안 나의 그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음을

병상 머리맡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갑자기 폰을 집어 들더니

어느 부분엔가 저장해 놓은 사진 한 장을 찾아 더듬거렸다.

마지막 순간 내게 보여주려고 잘 갈무리해 두었겠지만,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결국 사진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어릴 적 동생을 안고 있는 사진이라는데,

무뎌진 손끝과 흐려진 정신으론 끄집어 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엉망이 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해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려는속 깊은 마음씀이었으리라.

 

그 뿐 아니다.

모든 면에서 참 사려 깊은 그였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친구들 일이라면 빠진 적 없었고,

함께 어울리기 좋아한 그였다.

자신이 정한 원칙은 한 치도 어김없이 지키려 했고,

적당히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해주길 원하다 보니,

그들 역시 때로는 지치고 힘들었으리라.

그래도 늘 넉넉한 웃음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만,

삶과 이승에 대한 애정이 유독 도타운 친구였다.

그래서인가.

이렇게나 빨리 홀로 먼 길 나선 그가 안쓰러울 뿐이다.

붙잡는 이승의 손길을 지긋이 뿌리친 채,

그는 떠났다.

삭막한 세상을 함께 할 친구 하나가 줄어든 것이다.

이 상실감이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채 절망으로 연결된다면,

그 때문에 나 또한 세상을 뜨게 되리라.

허무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나 또한 이승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리라.

 

오늘

햇살은 이리도 좋은데,

그대는 어디쯤 가고 있는가.

길가에 주막 한 채라도 있거든

병마 탓에 그동안 끊었던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사 마시며

얼큰 취한 목소리로 <희망가> 한 자락이라도 불러 보시게나,

사랑하는 친구여!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앉아서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풍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2018. 3. 14.

 

 성원을  보내며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