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8. 2. 1. 10:25
호남성통신 6

  중국의 마트에서 만난 개구리의 슬픈 눈동자


                                                                                                                    조규익


호남성 사람들의 말로는 50년 만의 혹한이라 했다. 과연 추웠다. 그것은 우리나라 한겨울의 ‘살을 에는 듯하지만 상큼한’ 추위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불쾌한 추위였다. 우리의 경우 밖이 추워도 문만 열고 들어서면 따스한 온돌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곳엔 그런 게 없다고 한다. 온통 습하고 음침하다. 습기 때문인지 약간만 추워도 땅바닥은 유리를 깐 듯 미끄러웠다. 그 위에 눈까지 내리니 공항은 물론 팔방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들도 완벽하게 막혀버렸다. 중국에서 최고급에 속한다는 5성급 호텔도 정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열차가 석탄을 실어 와야 발전소를 돌릴 텐데, 중간에 열차가 멈췄으니 제대로 발전이 될 리가 없다 한다. 과연 대단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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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공항 대합실

 

***

공항이 폐쇄되어 귀국길이 막힌 지 2~3일 만에 생필품 구입을 위해 일행들은 호텔 근처의 마트에 갔다. 그곳까지 차로 20분 거리. 웬만하면 걸어서 갈 수도 있는 거리이나, 가이드는 늘 차로 함께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중국말도 통하지 않을 뿐더러, 거리가 위험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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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바야호텔 인근의 **마트


처음 가보는 중국의 마트. 한국으로 치면 하나로마트, 이마트, 코스코 등과 같은 규모와 형태일까. 많은 사람들이 복닥거렸다. 평소 약간의 식탐(食貪) 끼가 있는 나인지라 그들의 식재료 코너를 당연히 보고 싶었다. 기름에 절이고 말려 갖가지 모양으로 매달아 놓은 새들, 돼지고기 덩어리들, 속을 넣어 줄줄이 사탕처럼 묶어 매달은 갖가지 창자들(소세지?)... 아, 그곳은 지옥의 형상이었다! 우리 인간도 최후의 심판대를 거쳐 지옥에 떨어질 경우 악귀들 세상의 마트에 저런 형상으로 내걸리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건 약과였다. 발길을 돌린 순간, 더 처참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서니 큰 유리 상자들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큼지막한 개구리들과 자라, 거북이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거북이나 자라의 경우 머리를 집어넣거나 눈꺼풀을 내려 버리면 그만이니 그 녀석들의 속내를 들여다볼 방도가 없었다. 문제는 개구리들이었다. 큰 놈은 아이들 머리통만 했고, 아무리 작아도 내 주먹은 훌쩍 넘을 듯 했다. 그런데 그 눈들! 아, 개구리들이 그렇게 영롱한 슬픔의 눈을 하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눈망울들은 왜들 그렇게 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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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까지 살아남아 있던 개구리, 아마 지금쯤 그도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개구리들을 우선 육안으로 감별했다. 어느 놈이 가장 실하고 싱싱한지 가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다음엔 손으로 꼬집어보기도 하고 뒤쪽에서 ‘아귀’를 움킨 채 들어 올려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무력한 개구리는 버둥거리며 슬픈 눈동자만 굴리는 것이었다. 상자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사람들이 혹시 자신을 선택하지나 않을까 공포에 질린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이나 눈동자를 살피는 중국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관찰하니, 사람들은 대개 두서너 마리를 비닐봉지에 골라 넣는 것이었다. 가족 당 한 마리씩 먹기 위해 고른 것이리라. 개구리와 자라 상자들이 4각으로 늘어선 안쪽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큼지막한 도마 앞에서 ‘무시무시한’ 칼로 연신 ‘사형’을 집행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치마는 이미 붉게 착색되어 있었고, 붉은 고무장갑 또한 더욱 또렷한 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 앞에는 비닐봉지를 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쉼 없이 단칼을 내려치고 있었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비닐봉지를 열고 큼지막한 개구리를 끄집어내어 널찍한 도마 위에 엎어 놓는다. 한 번쯤 버둥거릴 만도 한데, 목욕탕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듯 그 ‘망나니’의 손에 잡힌 개구리는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도마 위에 쭉 뻗고 엎드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망나니의 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 부분에 내려 꽂혔다. 순간 물갈퀴도 선명하게 뒷다리를 쭉 뻗으며 개구리들은 최후를 고하곤 했다.
그야말로 칼날에 막걸리 한 입 뿜어 바르지도 않고, 아니 최후 진술의 기회조차 주지도 않은 채 망나니들은 속전속결로 개구리들의 머리를 끊어내고 있었다. 끊긴 머리들은 도마 아래쪽의 플라스틱 바구니에 썩은 밤톨처럼 내동댕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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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향한 개구리의 항의(?) 그 역시 누군가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참으로 허망한 개구리들의 운명이었다. 상자 안에 엉겨 있는 그들 가운데는 가족들도 있었으리라. 형장에 끌려온 줄도 모르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괜찮을 테니 걱정 말아라!’고 입에 발린 위안을 주어야 하는 개구리네 아버지의 찢어지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빙 둘러선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서워 품을 파고드는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모정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구역질이 나고 몸으로는 한기가 느껴졌다. 뒷다리를 쭉 뻗는 개구리들을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중국인들이 갑자기 저승차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승차사들이 빙 둘러선 그곳은 생지옥의 현장이었다. 개구리들이 엉겨붙어있는 유리 상자는 이승이었고, 그들을 골라 온 ‘차사’들이 빙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처참하게 사형을 집행하는 곳은 저승이었다.  그래, 이승과 저승의 경계란 종이 한 장의 두께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아니, 그 두 공간은 아예 공존하고 있는 것을! 지금까지 어리석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호텔로 돌아온 나는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자연의 물상들을 지배하며 그들을 먹고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신으로부터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꼭 그토록 적나라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살아 있다’는 현실과 ‘앞으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괴리와 모순이 이처럼 처절하게 나의 내면을 흔든 적이 없었다. 이성과 감성이 우리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컨트롤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하여 비로소 심각한 자문을 하기 시작했다. 천재지변으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중국 땅에서 개구리를 만났고, 과연 나는 그들의 눈망울을 통해 크나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천재지변’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인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1. 19. 17:13
 

 빽빽이도 늘어섰구나, 무덤들이여!

            -대만 인상기(印象記)·1-


                                                                            조규익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은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란 말이 있다. 또 ‘군대 안 갔다 온 아무개가 군대 갔다 온 아무개를 이긴다’거나 ‘서울 안 갔다 온 아무개가 서울에서 살다 온 아무개를 이긴다’는 등의 가시 박힌 농담들도 지금껏 우리 사회에는 통용되고 있다. 어느 모임에 나가 보아도 크게 영양가 없는 말로 언성을 높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 그 지식의 근원을 캐 보면 제대로 된 책 대신 인터넷이나 신문 등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요즈음. 여행기들이 범람한다. 제대로 발품을 팔아 얻은 글부터 점만 찍고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에서 얻은 인상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짧은 생각들이 범하는 어리석음일 뿐이지만, 모조리 무익하지만은 않을 터. 그러니 나도 이 자리에서 그런 어리석음이나 한 번 범해 볼까나?


   ***


 지난 연말 3박4일의 일정으로 대만을 다녀왔다. 지척에 두고도 ‘언젠가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으리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미루어두고 있던 곳이었다. 대만 행에 며칠간의 여유를 활용하기로 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것은 세계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 득실거리는 관광지만 찾아 다녀야 하는 것이 여행객의 신세일 터. 어디 한 곳 차분하게 앉아 생각에 잠길 여유가 있으랴. 그저 ‘절에 간 새댁’ 마냥 능란한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 숨차게 돌아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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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고궁박물원

 여기서 둘째 날 들른 지우펀(九份)을 먼저 언급하려는 것은 그만큼 그곳에서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가파른 고갯마루를 넘어 도달한 곳이었다. ‘九份’이란 이정표를 보고 나서야 가이드가 말끝마다 ‘구인분, 구인분’ 하는 말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지우펀은 금광지대였다. 그 옛날 금광에서 일하던 그 마을의 광부 9명이 매몰되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로부터 9명 광부의 아내들 즉 살아남은 9명의 과부(寡婦)들은 산 넘어 시장에서 늘 ‘9인분’의 식량을 사가지고 고개를 넘어야 했단다. 그래서 이곳이 ‘九份’으로 명명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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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 동네 모습-앞쪽이 산 자들의 집, 뒤쪽이 무덤들이다

 지우펀의 금광박물관을 거쳐 들른 곳이 바로 도교사원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성명궁이었다. 그곳에선 관우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었다. 황금색 바탕에 온갖 화려한 장식들을 붙여 놓은 전각 안에서 관우신을 옹위하고 있는 많은 신들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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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성명궁-관우(관성제)를 모셨음

 그러나 정작 우리를 놀래킨 건 성명궁이 아니었다. 성명궁을 나서서 둘러본 사방의 산중턱에 이르기까지 아파트처럼 보이는 주택들이 그득 깔려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본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그것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모두 유택(幽宅) 즉 무덤들이었다. 충격이었다. 그 무덤들은 흡사 시멘트로 잘 지어놓은 양옥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거대한 아파트촌이 들어설만한 양지바른 산록. 그들은 그곳에 ‘죽은 자들을 위한 집들’을 그득하게 지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경우엔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산 자들의 집과 붙어있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동거하는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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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무덤들

 조부모, 선조들의 유택 아래쪽에 사는 후손들. 참으로 기이한 구도였다. 일찍이 베트남 메콩강 델타 지역 마을에서 뜰 안에 무덤을 만들고 조석으로 향불을 피우는 그들을 본 적도 있었다. 대개 남방 풍속의 공통점일 수도 있겠으나, 대만의 공동묘지는 좀 색다른 점이 있었다.

 딱딱거리는(?) 가이드에게 사정하여 간신히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무덤 탐색을 생략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략 두어 시간을 헤매고 다니며 무덤 속의 주인공들과 만난 셈이었다. 무덤들을 대충 둘러보고 났을 때 뱃속 저 깊은 곳으로부터 구역질 같은 것이 치밀어 올랐다. 양지 바른 산자락을 점령한 채 늘어서 있는 무덤들. 어느 무덤에나 ‘욕망의 기괴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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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무덤들

 형형색색 단장한, 아무도 없는 텅 빈 시멘트 구조물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냉기와 회한이 내 가슴에 사무쳐 왔다. 무덤들의 실체를 확인한 다음 우리는 빗방울 떨어지는 지우펀의 언덕길을 서둘러 내려왔다. 더껑이 진 가난과 오욕의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는 무덤 속 주인공들의 ‘살아있는’ 후손들과 함께 하고픈 욕망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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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화려한 무덤


묘원(墓苑)이나 유택으로 표현될 만한 그곳의 무덤들은 자세히 보니 여러 층이었다. 호화로운 것은 치장도 그러려니와 규모 또한 웬만큼 잘 사는 집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길 가 언덕 아래 쪽 구멍에 조막손만한 검은 오지그릇 하나로 남아있는, 초라한 무덤도 많았다. 살아생전 고대광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자나 노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나 죽은 다음에 심심산중 한 덩어리 봉분으로 남는다면, 그 얼마나 공평한 일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묘제야말로 얼마나 철학적이고 인간적인가. 물론 호화분묘는 제외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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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초라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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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석물(石物)로 치장한 채 산 자들이 머물러야 할 양지바른 곳을 점령한 대만의 무덤들은 그 자체가 폭력이었다. 물론 조상을 잘 모시려는 자손들의 정성을 어찌 폄하할 수 있으랴. 그러나 내 한 몸 죽여서라도 자식들 살리고자 하는 것이 세상의 부모 마음일진대, ‘산 자들’이 차지해야 할 양지바른 곳에 자신들의 거대한 유택을 마련해준 자손들을 어찌 가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우펀의 무덤 군(群)을 만나면서 대만에 대한 기대의 반 이상을 접기로 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