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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7 힘 내라, 손수조!!!
글 - 칼럼/단상2012. 3. 27. 18:56

힘 내라, 손수조!!!


‘아기장수’의 전설이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겨드랑이에 날개나 비늘을 달고 태어난 영웅, 힘이 센 아기장수의 비극적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멸문(滅門)될 것을 우려한 부모가 그를 맷돌로 눌러 죽이자 건너편 산 밑에서 용마가 구슬피 울며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세 권력의 횡포로 뜻을 펴 보지 못한 채 무수히 죽어간 영웅들. 이 땅에서 어렵사리 삶을 이어가던 중세의 민초들은 영웅을 대망하면서도 지배계층의 논리에 가담하여 ‘어린 영웅 죽이기’에 나서는 모순을 자행한 것이다.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백주 대낮에 ‘어린 영웅 죽이기’가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딱한 광경을 목도한다. 스물일곱의 손수조 후보. 그가 후보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양심도 패기도 다 썩고 허우대만 남은 어른들이 활개치던 정치판에 이제 새 바람이 불겠구나. 패해도 좋으니 신나게 한 번 싸워 보거라. 불순한 암수로 민심을 호리는 정치인들을 그대의 풋풋함으로 제압해 보거라.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증폭되는 불안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바나에 내던져진 한 마리 양같은 그가 안쓰러웠다. 스물일곱의 북한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일에 대해서는 입도 달싹 못하던 인사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을 목격하며 내 불안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처음에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당찬 말을 했다가 도저히 안 되자, 그 약속을 포기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또 한 건은 그 돈 3000만원의 출처. 그는 원래 이 돈이 전세방을 뺀 것이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세방은 아직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할 일 없는 누군가 확인하곤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원래 전세방을 빼서 쓰려고 했는데, 요즘 전세방이 잘 안나가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꾸었노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수조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대충 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모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형사 책임'은 아니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 몰아댔고, "서울 남영동에 18평 원룸으로 전세 3000만원짜리가 있다고? 증여세 공제한도액이 3000만원인 바 탈세 목적으로 이중계약서가 작성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법률적 멘트까지 날렸다. 공모 소설가는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해야 할 일이라 했고, 진모 교수 역시 ‘면책특권’을 들먹거리며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 뿐인가. 어떤 당의 대변인이란 사람도 이런저런 말로 손 후보와 그 당을 비아냥거렸다.

대단한 사건이다. 한 마디씩 내뱉은 인사들의 경륜으로 보나 나이로 보아 그들의 작은 딸 쯤 될 스물일곱 살짜리 손 후보의 말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북한의 김정은보다 어쩌면 훌륭한 ‘아기장수’의 영웅성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갖게 되었다. 왜 그들은 ‘와!’ 하고 달려들어 그의 작은 몸을 ‘맷돌로 눌러’ 죽이거나 물어뜯어 죽이려는 것일까.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젊은이가 참하게 직장생활이나 해야 하는데...’라고 자못 다정한 멘트를 날린 모 정당 유모 대표의 말처럼 걱정스런 부모의 심정 때문일까?

참, ‘뭣 같은 정치판’이라지만, 대명천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직도 ‘아기장수’ 하나 용납하지 못할 만큼 옹졸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도 이젠 ‘아기장수’ 하나쯤 키워 우리 미래의 한 부분을 맡겨볼만한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니 손 후보는 그들의 어투대로 ‘절대 쫄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말 많은 자는 말로 망하게 마련. 가급적 말수를 줄여 공격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약한 모습 보이면 달려드는 게 하이에나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 어른들이 어린 후보의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매우 부끄러워지는 어제 오늘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