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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 9. 13. 11:35

대학평가의 금도(襟度)

 

대학들 독자적발전 저해요소 많아… 평가주체의 숨은의도도 면밀 검토

 

평가란 '비교나 판단에 의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비교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견주어 서로간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히는 일'이며, 판단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일'이다. 따라서 평가 즉 비교나 판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한데, 자료에는 수치상으로 표시된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자료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어서 사회적 공준(公準)에 부합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 대학평가가 이루어져 왔고, 그것들이 대학가에 미치는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미했던 것은 한국 지식사회의 무기력증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일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혐은 있으나, 일이 바로잡힐 단초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평가 결과 비교적 상위에 속하는 대학의 교수들이 비판대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한국 지식사회의 건강도가 아직 비관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합목적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疑懼)에 있다. 대학은 왜 평가받아야 하며 대학평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의 척도는 공정하며 평가자들은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 등등 이 시점에서 대학평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긴요하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적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대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평가라는 점,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국민들 특히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대학의 실상이나 순위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결과에 대하여 많은 대학들이 승복하지 않는다거나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평가주체의 자격과 능력 혹은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평가결과가 대학의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평가 결과에 따른 대학들의 획일적 줄 세우기'다. '자유와 자율에 근거한 진리탐구'가 대학의 근본이념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척도들은 대학들의 '차이와 독자성'을 사상(捨象)시킴으로써 많은 수의 대학들이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게 만든다. 나름대로의 이념과 교육철학에 의해 설립된 대학들은 그에 맞는 개성적인 교육을 수요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부 평가주체가 들이대고 있는 척도들은 대학들의 개성이나 독자성, 혹은 각각의 차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성을 완벽하게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떡판 위에 썰어놓은 떡들처럼 가지런하고 균일해야 한다면, 대학으로서의 존립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대학들은 그것들만의 필요와 시대적 요구에 의해, 사립대학들 역시 그런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들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설립목적이나 이념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국제화의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갖추지 못한 외국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한다거나, 학비 면제의 미끼를 던지면서까지 우리말을 못하는 외국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저해하는 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일,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고민이나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각종 학사관리 제도의 무사려한 도입 등 대학들의 자율적ㆍ독자적 발전을 저해하는 일들은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평가주체의 숨은 의도 역시 면밀히 관찰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 지식사회를 통제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요즈음 들어 대학만큼 확실하고 고분고분한 광고주들은 없기 때문이다. 근간 대학평가를 통해 일부 언론사들이 대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세하지만, 정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대학들의 가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의 값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칼릴 지브란의 금언을 평가라는 칼의 힘에 도취되어 있는 일부 언론사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