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도 순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10.20 땅에 떨어진 이도(吏道)
카테고리 없음2008. 10. 20. 09:03

조선일보 원문보기 클릭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조사 대상 180개국 가운데 40위,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22위. 2008년도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청렴도 순위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라 하니 공신력을 인정해야겠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순위는 이보다 훨씬 낮은 것이 문제다.

갈수록 공직사회의 부패수법이 다양해지고, 그 규모가 커지는 현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발생한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불법 수령사건'은 이의 연장으로, 공직사회의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사례다. 업무와 관련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민원인들로부터 큰돈을 받아온 그간의 관행과 달리, 토지 소유권을 빌미로 가난한 농민들을 등쳤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도덕적 타락의 사례다.

 쌀 직불금은 경작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국가의 세금이었다. 그들은 땅 주인이라는 위세를 내세워 '그리 크지 않은 돈'을 소작인들로부터 갈취해온 것이다. 항간의 소문대로 그런 행태가 양도세를 피하기 위한 '얕은 꾀'였다고 해도, '벼룩의 간'을 내어 먹은 파렴치 범죄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 이처럼 공직자들을 포함한 이 땅의 지도층 인사들이 향리에 대토지를 소유하면서 벌이고 있는 '부의 향연'이 나라를 말아먹기 일보 직전이다.

개발정보의 사전 입수나 위장전입 등 불법·탈법적 방법으로 노른자위 땅을 취득하여 땅값 상승을 통한 불로소득을 올리는 작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그들. 급기야 직불금의 불법 수령을 통해 스스로의 손으로 국가의 세금에까지 손을 대게 된 것이다.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이고 모든 선과 덕의 원천이다/목민관은 나라의 재물을 절약해야 한다/목민관의 직책 가운데 토지행정이 가장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토지법이 본래부터 좋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의 공직자들에게 들려주는 다산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주장이다.

토지법이나 그에 관련되는 수취(收取)의 문제는 우리 역사상 쉽게 고치지 못한 고질병 중의 하나인데, 지금도 그런 시행착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었던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는, 상위계층 부재지주들이 개발 요지(要地)의 땅이나 농지들을 과점하고 있는 요즘의 세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소작농지가 43%에 달한다는 통계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 헛구호일 뿐이라는 우리의 모순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공직자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말 그대로의 '목민관'은 아닐지언정 오늘날의 공직자들은 당시의 그들보다 훨씬 강한 도덕성과 준법정신이 요구되는 존재들이다.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개발 가능성을 보고 요지의 땅을 사들여 축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농업 생산기반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농민들로부터 생산수단을 빼앗는 행위이다. 더구나 나랏돈은 '눈먼 돈'이니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라는 사고에 물들어 있는 공직자들의 부패심리야말로 국민들의 또 다른 부패심리를 자극함으로써 나라 전체를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몇 년째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국가의 지도계층이라 할 수 있는 상당수의 공직자들이 아직도 탐욕과 소리(小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들을 오도(誤導)하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건에 연루된 공직자들이 그럴싸한 핑계들을 대고 있지만, '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치지 않는다'거나 '오이 밭에서 신들메를 고쳐 매지 않는 것'도 국가적 난국을 헤쳐 나가는 공직자들의 지혜임을 명심해야 한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