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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8. 2. 1. 09:43
호남성통신 3

상덕(常德)과 원강(沅江), 그리고 모택동


                     

김형!

지금 우리는 장사(長沙)를 떠나 상덕(常德)으로 향하고 있소. 이곳 사람들의 과장 섞인 말로는 20년 만에 처음 당하는 한파로 곳곳이 얼어붙은 상장(常長) 고속공로를 통해서 말이오. 가는 길에 점심을 해결할 겸 고속도로가 뚫리기를 기다리기 위해 상덕시의 원강공원으로 접어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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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강의 풍경

 
 그런데, 강안(江岸)의 널찍한 공원에 주차한 우리는 뜻하지 않은 진경(珍景)을 만나게 되었소. 외지 관광객들 대부분은 한가로이 흘러가는 강물과 그 물 위에 떠가는 배만 있는 줄 알고는 5분 만에 혀를 차며 떠난다는 곳이오. 차에 내려 이리저리 거닐다 보니 강안을 접하여 무한히 뻗어있는 벽(壁)을 발견할 수 있었소. 아, 그곳엔 무수히 많은 시들이 새겨져 있는, 이른바 시비(詩碑) 아닌 시벽(詩壁)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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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강공원 시벽의 표지석


  아주 가끔씩 그저 괜찮은 시인의 시작품 하나 만을 겨우 돌에 새겨 비를 세우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무수히 뻗어 있는 시벽을 대한 채 말을 잊었소. 중국인들의 규모와 배포를 엿볼 수 있는 일이었소.
과연 ‘세계 최장의 시벽’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사실을 표지판으로 만들어 이곳의 초입에 세울 만큼, 그건 장관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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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에 올른 세계 최장의 시벽

 
이 시벽의 공식명칭은 ‘중국상덕시장(中國常德詩墻)'. 크게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946명에 달하는 중국 유명 시인들의 시사(詩詞)들이 정(正), 초(草), 예(隸), 전(篆) 등 여러가지 서체로 각자(刻字)되어 있었소.
그와 함께 명화(名畵) 43폭도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상덕의 역사와 풍운을 반영한 <<백대창상(百代滄桑)>>도, 고금의 명현(名賢)들이 상덕을 읊은 <<명현제영(名賢題咏)>>도 들어 있었소. 총 길이 3000m, 총 1267수의 작품들! 놀랍지 않소?
  더구나 이 거사가 그 흔한 시인협회 등 문인들의 단체에서 주관하여 이루어진 게 아니고, 상덕시위원회와 시정부가 앞장서서 한 일이라니, 이들의 문화의식이 그저 부럽기만 했소.
우리나라 문인단체 같으면 이 정도의 일을 기획하기도 어렵겠거니와, 현재와 같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무원들의 그리 높지 않은 의식수준으로 보아 수용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겠지요. 그것이 바로 문화적인 면에서 우리가 중국을 따라갈 수 없는 점이라고 생각하오.
‘전봇대 하나 뽑는데 10년이 걸렸다’는, 요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 하나만 보아도, 청계천의 양쪽 벽에 유명 시인들의 시판(詩板)을 붙이자고 할 경우 우리네 공무원들이 과연 수긍하겠소?

***

시간에 쫓겨 시벽을 대충 훑어본 다음, 시장기를 해결하기 위해 공원 밖의 식당엘 들렀소.  ‘동정모기반점(洞庭毛記飯店)’이란 난해한(?) 이름의 식당이었소. 번역하면 ‘동정호반의 모택동을 기념하는 식당’ 쯤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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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강공원 밖의 동정모기반점(洞庭毛記飯店)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아보았소. 모택동이 원래 호남성 출신이지요? 이곳에서 가까운 소산(韶山)이란 곳에 그의 생가가 있다는 것이오. 이곳 호남성에서 모택동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로 숭배되고 있었소. 전통 왕조를 무너뜨리고 현재의 중국을 있게 한 그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들은 바에 의하면, 대장정에 나섰던 모택동이 고향 땅을 찾았다고 합디다. 어떤 촌가에 들렀을 때 가난하여 대접할 게 없던 그 집 주인은 시장에서 사온 물고기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조리하여 내놓았다고 하오.
물고기 머리에 뭐 그리 먹을 게 있었겠소? 머리뼈에 붙은 양념을 맛있게 빨아먹은 모택동. 그 후로부터 물고기 머리 요리와 삶은 돼지고기 요리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나요?
그 고기 이름이 무엇인지는 기억할 수 없으나, 대충 원강 가이고 보면 잉어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돼지고기는 동정호 일대에서 근원된 것으로 보이는 ‘동파육’이 아니었을 지요? 그러나 자세한 건 나도 모르오.
어쨌든 그 식당으로 들어가자 과연 식당 모든 곳에 모택동의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고, 반상에는 여러 요리들 가운데 물고기 요리가 올라왔소. 모양은 물론 그 맛 또한 발군이었소. 뼈까지 빨아 먹고 나자 샤오제가 국수를 말아주는데, 국수 맛도 일품이었소.
그 요리의 내력과 레서피를 그녀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으나, 우선은 소통이 불가능했고 또 바쁘게 이동하는 일행의 일정에 방해될 것 같아 자제할 수밖에 없었소.    
모택동에 대한 중국인들 특히 호남인들의 지극한 애정은 어딜 가나 한결 같았소. 그의 독특한 서체 또한 명승지 어딜 가도 볼 수 있었소. 거 왜 있지 않소? ‘북경대학(北京大學)’ 현판 글씨체 말이오. '호남대학(湖南大學)‘도 그의 글씨체였소. ’왕희지 체‘ 아닌 ’모택동 체‘라고나  할까요?

***

원강공원에서 시향(詩香)과 어향(魚香)으로 배를 불린 우리는, 무릉원과 천문산 그리고 천자산을 품고 있는 장가계로 한 발 다가서기 위해 상덕시로 향하려 하오. 그곳에서 다시 봅시다.  

백규 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