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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9. 10. 21:54

곽노현 교육감을 바라보며

 
얼마 전 서울시에서 있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파 간 힘겨루기의 한 판 씨름장이었다. 오세훈 전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은 샅바를 마주 쥔 장사들, 아니 양 진영을 지휘하는 장수들이었다. 오 장군은 제발 투표 좀 해달라고 애걸했고, 곽 장군은 ‘나쁜 투표’이니 투표장에 가지도 말라고 사람들을 막았다. 대명천지 세계 굴지의 도시 서울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투표율 미달로 개함조차 못한 채 오 장군의 패배가 선언되자, 오 장군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전장에서 스스로 물러섰다. 그 며칠 후 곽 장군의 비리가 터져 나왔고, 두 진영의 왁자지껄한 말싸움 끝에 급기야 오늘 새벽 구속⋅수감되었다. 곽 장군의 비리가 터져 나올 즈음 몇몇 식자들 사이에서는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속담들이 회자되었다. 목에 힘을 주고 느긋한 자세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곽 장군이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장 직을 내던진 오 장군이 오히려 승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내일 그들의 입장이 다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희망과 불안을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작은 승리에 자만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곱씹게 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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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육감의 비리사실이 터져 나오고 돈을 건넨 사실을 스스로 털어 놓을 때 쾌재를 부른 사람들과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반반인 듯 보였다. 쾌재를 부른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은 그와 견해를 함께 하면서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오 시장이 전투에 져서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을 점심 한 끼 공짜로 먹게 하느냐, 어려운 아이들만 공짜로 먹게 하느냐’는 명분은 전쟁터의 이른바 ‘효시(嚆矢)’였다. 모든 학생들을 공짜로 다 먹게 하자는 주장의 이유는 학생들의 형편이 드러날 것이니 그게 차마 못할 짓이라는 것이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공짜로 먹게 하자는 주장의 이유는 이 일이 무분별한 복지의 단초가 되어 궁극적으로 나라를 어렵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두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어떻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자’는 점은 공통되니, 그 얼마나 어질면서도 성스러운 명분의 투표인가. 그런데,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한 채 두 진영은 싸움판을 옮겨가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 모두에게 공짜 밥을 먹일 것인가? 어려운 학생들에게만 공짜 밥을 먹일 것인가?’라는 애당초의 거룩한 명분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멱살잡이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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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서 ‘효시’란 말을 들었다. <<(莊子)>> <재유(在宥)>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지금 세상은 형을 당해 죽은 자들의 시신이 포개져 있고, 발에 차꼬를 찬 자들이 이곳저곳에 모여 웅성거리며, 치욕스런 낙인이 찍힌 자들이 줄을 서 있는 때이다. 그런데도 유가(儒家)나 묵가(墨家) 따위들이 칼과 수갑을 걸치고 있으면서 잰 체하고 있다. 아아, 너무도 심하여라!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도 없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들의 한심스러움이여! 이러니 나로서는 ‘거룩함과 지식[聖知]’이란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욕되게 하는 형구(刑具)이거나 그에 박아 넣는 쐐기가 아니며, ‘어짐과 의리[仁義]’란 목에 씌우고 손에 채우는 형구이거나 그에 쓰이는 장부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다. 하물며 증삼(曾參)이나 사추(史鰌)와 같이 인의를 귀하게 여긴 자들이 걸왕(桀王) 같은 포학한 임금이나 도척(盜跖) 같은 극악한 인물의 ‘효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성(聖)을 끊고 지(知)를 버리면, 천하는 편안하게 다스려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학생들에게 밥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라는 거룩한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제 그 명분은 사라지고 두 진영은 온갖 감언이설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밥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라는 ‘효시’ 즉 전쟁터에서 쏘아올린 ‘우는 살’은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자기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내건 명분이었을 뿐. 이젠 총과 미사일, 핵무기까지 동원한 전쟁판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의 허상에 사로잡혀 ‘좌빨[좌익 빨갱이]’입네 ‘보수꼴통’입네 하며 험악하게 서로 편을 갈라 벌이는 전쟁은 조만간 도래할 보궐선거, 총선, 대선에서 클라이막스에 오를 것이다. 두 진영에서 내세운 장수들이 1차 싸움에 상처를 입어 모두 빠졌으니, 머지 않아 두 진영은 새로운 싸움꾼들로 빈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 쌈장 후보들이 어제 오늘 사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칼춤들을 추고 있다. ‘민족, 선의(善意), 교류, 양보’ 등등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얼마나 그럴싸하고 고상하며 거룩하기까지 한가? 현실을 무시한 그런 말들의 향연이 결국 폭군 걸왕이나 악한 도척 등의 출현을 초래하여, 힘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쯤이나 깨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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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에 들어간 곽 교육감과 하야한 오 전 시장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니 조만간 입장이 바뀔 그날만을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회한과 깨달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것인가.

2011. 9. 10.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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