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11. 16. 03:43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주는 공간-오클라호마 메모리얼 뮤지엄(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 Museum)

 

 

 

인간은 착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서양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 궁리해왔지만 쉽게 결론 날 문제는 아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학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학자나 아무리 복잡한 논리들을 늘어놓았어도 모두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경우 공자의 말씀[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공자 말씀하시되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혀 얻게 되는 성품은 서로 멀어지게 된다/<<논어>> <양화> 2]에서나 어떤 해결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지 선한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길을 가는 것 뿐 아니겠는가. 다만 착한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는 대개 그 정도에 한계가 있으나, 악한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그 끝을 헤아릴 수 없고, 진행 양상 또한 극적이다. 그래서 고금의 많은 문학가들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인간의 악마성을 그려내고자 노력해온 것이리라.

 

***

 

얼마 전부터 오클라호마에 왔으니 메모리얼 뮤지엄은 보아야 할 것이라고 어느 지인이 권유를 했다. 18년 전 뉴스를 보며 끔찍한 사건이란 생각을 했으면서도 실감이 안 나 그냥 들어 넘기고 만 셈인데, 이제 그 현장에 온 만큼 안 볼 수는 없는 일. 더구나 훨씬 규모가 크고 끔찍했던 2001년의 ‘911 테러로 치를 떨었던 만큼, 인간 악마성의 한계를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연방청사 폭파의 참화에서 살아난 오클마호마 주 깃발과 시 깃발

 


오클라호마시 국립 메모리얼 뮤지엄의 현재 모습

 

이런 사건이 터지면 흔히 용의선상에 오르곤 하던 이슬람 테러단체 아닌 미국인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는 점을 누군들 쉽게 이해하겠는가. 1995419일 오전 95. 트럭에 실려 온 2000kg 이상의 폭발물이 터져 오클라호마의 연방청사는 처참하게 망가졌고, 보육원 어린이 상당수를 포함 168명 사망에 600여명의 부상자가 생겨났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연방청사의 공무원들, 어린이들, 일반인들 모두 테러범들과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 평소 일면식도 없었을 이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폭탄 테러를 가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테러 당일 오전 6시 30분의 상황. 조찬기도회 준비상황과 기도제목

 


폭파테러 직전의 상황(일상업무 시작, 그리고 보육원의 어린이들...)

 


폭발물을 싣고 달려오는 라이더 트럭이 창밖으로 보이지요?

 


폭발 순간의 영상

 


테러 직후의 처참한 모습

 

주범인 중산층 출신의 걸프전 참전용사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 1968-2001]와 종범인 테리 니콜스[Terry Nichols, 1955~]는 둘 다 미시간에 근거를 둔 급진 우익 서바이벌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서바이벌 그룹(survival group)이란 자신이나 자신의 그룹[혹은 국가]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슨 짓이든저지르는 미치광이 집단이다. 이들의 광기 앞에는 환상을 바탕으로 한 테러나 무차별의 증오만이 있을 뿐, 상식이나 이성은 있을 수 없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전말은 석연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미국사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테러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참상

 


참상

 


참상

 


참상

 

***

 

사실 우리 같으면 빨리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식간에 잔해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보란 듯이 새로운 건물을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잠깐 뒤면 새 건물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이나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평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모조리 사라진 건물터엔 희생자들의 공동묘지와 기념물을 만들어 놓았고, 위에서 아래로 ½가량 파손된 건물을 세심하게 수습하여 박물관으로 재생시켜 놓은 것이었다. 사건 직전부터 발발, 수습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대 별 전 과정과 내용, 범인의 체포와 형 집행 등 사건 처리 과정, 희생자들의 신원 및 제반 관련 정보들, 시민들과 전 세계인들의 반응, 국가의 대응 내용 등 사건과 관련하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폭발의 위력에 깨지고 부서진 시멘트 벽,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각종 철 구조물들, 소방관들의 희생적인 구조 활동, 구조견의 대견한 활약상, 상태가 심한 부상자들을 구조하다가 정작 자신은 숨을 거둔 민간인 부상자들의 영웅적 활동, 시민들의 자발적 구조 활동 참여 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잔해더미 속에서 아기를 구해 소방관에게 전하는 구조대원

 


구조대원으로부터 넘겨 받은 아기를 안고 있는 소방대원. 이 아기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숨졌음.

 


희생자들

 


이 아기들의 재잘거림이 들리시나요?

 


잔해 속에서 발견된 봉제 강아지 인형. 건물 안의 'day care center'에 있던 것으로 추정됨.
강아지의 슬픈 표정이 보이시죠?

 


평안의 상징인 테디 베어[일리노이주 퍼스트 레이디 브렌다가 보낸 테디베어를
오클라호마 퍼스트 레이디 케이티가 희생자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음]

 


산자들이 희생자들의 안식을 빌며 만든 종이학

 


테러 당시 크게 손상을 입었다가 새롭게 단장된 연합감리교회[First United Methodist Church]

 


희생자 추도식에서 조사를 읽고 있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미국인들, 아니 이곳을 방문한 세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죽은 이들을,
살아남은 이들을, 그리고 삶이 영원히 변해버린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이곳을 보고 떠나는 모든 이들은 폭력의 충격을 잘 알게 되었다. 부디 이 기념관이 평안을,
강건함을, 평화를, 희망을, 그리고 평온함을 주기를..." 이라고.

 

***

 

부끄러운 테러, 혹은 비극적 참상을 교육의 현장으로 바꿔놓을 줄 안다는 점에서 참으로 대단한 미국인들이었다. 이곳을 끊임없이 찾아와 그 때의 충격을 느끼며 자손들에게 테러의 죄악을 교육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했다.  뿐 아니다. 보존된 현장을 바탕으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그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우리가 만약 무너진 삼풍 아파트를, 다리의 상판이 떨어져 내려앉은 성수대교를 그대로 보존하여 반성과 경각심의 자료로 삼을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우리는 선진국 대열의 앞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잘못의 현장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며 깨우쳐야 한다.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역사의 부조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짧은 생각으로부터 생겨나는 비극이다. 이제 우리도 큰 사건의 현장은 오래 보존하여 후세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삼아야 할 때다.

 


테러에서 아무 손상없이 살아남았다는 성조기

 


테러 이후 박물관으로 환생한 연방청사와 주변의 모습

 


최악의 테러사건에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박물관 대각선 건너편 코너에 있음]

 


희생자 묘역

 


희생자 묘역 앞에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2. 27. 20:08


눈물교회에서 몇 분을 걸어 내려오자 올리브 고목들의 이파리가 삐져나온 담장이 보였는데, 그곳이 바로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겟세마네(Gethsemane) 동산이란다. 올리브산 서쪽 기슭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4세기 경 기존의 교회 터에 세운 ‘만국교회’라는 이름의 라틴 교회가 서 있었다. 많은 순례객들이 밀물⋅썰물처럼 좁은 동산을 밀려 다녔고, 구멍이 숭숭 뚫린 올리브 고목들만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밀려드는 인파의 피부색은 다양했으나, 인간의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배신의 고통을 이곳에서 겪은 예수님의 마음을 새겨보려는 듯 비장감 일색이었다. 겟세마네의 원래 뜻은 ‘기름 짜는 기계’란다. 수천 년을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올리브 나무들이 건재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옛날엔 이곳에 올리브 기름 짜던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으리라.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올리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을 것이고, 그 가운데 몇 그루가 이곳 교회의 앞뜰에 살아남아 지나온 시간들을 증명하고 있는 듯 했다. 만국교회 문 앞에서 건너다보니 기드론 계곡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겟세마네는 대략 길이 1.6㎞ 가량의 산마루로, 예루살렘 동부지역과 나란히 뻗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끝낸 뒤 제자들과 함께 고뇌의 기도를 드렸고, 제자인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힌 곳이 바로 이곳 겟세마네다.

인파에 밀려들어간 교회 안에서는 라틴 교회 성직자들이 예배를 집전하고 있었고, 많은 순례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된 이곳에서 세계 곳곳으로부터 찾아온 순례객들과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순간이었다. 인간이 경험하는 고통은 찰나이지만, 그 고통이 남긴 교훈은 영원함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의 순간 올리브 고목들 사이에 누워있는 석판의 성경 구절[마태복음 26:39]은 그대로 내 마음에 메아리로 울려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31>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32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4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35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36절>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37절>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38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39절>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40절>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41>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42절>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43절>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 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44절>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45절>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6절>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47절>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48절>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50절>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51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52절>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53절>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54절>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55절>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6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사악함과 나약함을 보여주려 하신 것일까. 눈물교회로부터 겟세마네에 이르는 동안 ‘깨어 있으라’시던 예수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한 베드로의 ‘졸음터’를 보았다. 뜻하지 않게 배신을 하고, 또 배신을 당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우리네 세상살이를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는 말씀과 장소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는 간구야말로 배신을 통해 죄인들의 손에 목숨을 내어주어야 하는 굴욕의 비참함을 면하고자 한 ‘예수님 최후의 인간적 고백’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런 수모를 피할 수 없음이 ‘섭리’에 의해 예정되어 있음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 극적인 장소가 바로 겟세마네였다. 겟세마네의 수모를 거쳐 도달하게 된 빌라도 법정의 또 다른 수모는 예수님의 성성(聖性)을 구현하기 위해 예정된 통과제의, 아니 희생제의였던 것이다. 만국교회의 순례객들과 올리브 고목들의 눈물겨운 조화는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마련하신 겟세마네의 아름다운 메타포였다. 나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걸으신 수난의 발자취, 그 출발선을 드디어 발견하고야 말았다.




  *사진 위로부터  1. 겟세마네 동산의 올리브 나무들,  2. 올리브 나무 사이에 있는 석판[마태복음 26장 39절], 3 4. 순례객들, 5. 예배를 집전하고 있는 사제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2. 13. 12:34

‘말씀의 힘’

 

‘작년에 왔던 각설이’ 올해 또 왔다고 낙산 비치호텔 앞 소나무는 꿍얼거릴 것이다. 작년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낙산 비치호텔의 신앙수양회. 기독교 대학에 20년 넘게 봉직하며 매년 겨울 한 차례 ‘성령’의 폭포수에 몸을 담그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 때 뿐이었다. 솔잎 사이로 맑은 바람 빠져 지나듯, 의미 없는 만남의 반복이었다. 습관처럼 차려지는 행사장에 돌덩어리처럼 앉아 있다 빠져 나오곤 하던 지난날들이었다. 정열이 활화산처럼 끓어올라 물불을 가리지 못할 때는 그나마 몰랐다. 쥐꼬리만한 지식과 팽팽해진 자의식이 오만의 근원임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것으로 세상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으려니 믿고 지내던 무명(無明)의 시간대였다. 그러나 화살처럼 달려 나가는 시간의 가차 없이 차가운 결을 비로소 느끼게 된 지금. 내게 밀물처럼 찾아왔다가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내년을 기약하며 밀려가는 바닷물처럼 ‘말씀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생긴 것이다. 그간 독실한 신앙인들을 내심 ‘도그마에 붙들려 자의식을 잃은 한심한 영혼’으로 여겨오지는 않았는가. 옳건 그르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귀영화와 목숨까지 바치는 사람들을 ‘융통성 없고 못 말리는 꼴통들’로 슬그머니 비하하며, 나 자신의 ‘중심 없음’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식인의 자유혼’ 쯤으로 합리화해온 것이나 아닌가.

 

***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을 자신의 말로 쉽게 풀어 우매한 내게 전해주려 애쓴 김지철 목사[소망교회 담임]의 ‘말씀’과 만났다. 그 ‘말씀’을 들으며, 어린 영혼들에게 무수한 말을 들려주며 살아 온 내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갔다. 김 목사는 이스라엘인들이 신봉하던 ‘말의 힘’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힘’이라 했다. 그 분이 지적한 말은 바로 생명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말에 대하여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온 것은 아닌가. 말로 밥을 먹고 살면서도 ‘묵언(黙言)’을 숭상해온 내 진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말을 많이 한 날들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 허공에 날려버린 ‘한없이 가벼운’ 말들의 펄럭임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불면(不眠)의 밤들을 보내야 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어떻게 하면 말 안 하고’ 살 수 있을까를 화두로 몇 날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습관처럼 아침밥을 먹으며 준비운동을 시작하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준비된 입으로 무언가를 지껄이는 일상이 바로 내 생활이었다.

 

***

 

문제는 진실성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말과 행위가 일치되었기 때문이라고 김 목사는 강조했다. ‘말씀 없는 신비주의’나 ‘말씀 없는 도덕적 행동주의’는 신앙의 겸손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 바리새인들처럼 문자에 얽매여 지낸다면 말씀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회복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주일마다 교회에 간다는 것 등등. 마치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듯이 김 목사는 그간 말에 대하여 갖고 있던 내 콤플렉스를 체험적으로 풀어주시는 게 아닌가. 그 뿐 아니다. ‘말의 힘을 가장 크게 신뢰하는 사람들이 교수’라는 그 분의 말씀은 유일한 수단이면서도 말의 권능을 부인해오던 내게 충격이었다. ‘교수의 필수적인 능력은 요약하는 능력과 부연하는 능력’이라는 그 분의 말씀은 내게 큰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는데, 그 말 속에는 ‘교수들 능력이라 해봤자 요약하는 능력과 부연하는 능력 뿐’이라는 속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십계명은 크게 보아 요약인데, 그것을 또 요약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김 목사의 설명이 자신의 말을 듣고 가졌을지도 모르는 교수들의 부끄러움을 약간 덜어준 효과가 있긴 했으나, 그래도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 그간 내가 해온 일이라야 텍스트의 요약이나 이론의 부연 혹은 생명 없는 말의 전달밖에 더 있었겠는가. 그걸 반복하면서 지식사회의 일원이랍시고 오만에 젖어온 존재가 바로 나 아닌가. 남들이 토해 내는 ‘생명의 말씀들’을 귓전으로 들으며 ‘생명 없는 말의 허위’를 진실로 강변해온 것이나 아닌가.

 

***

 

그동안 나는 말의 겉만을 보았지, 말 속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언어는 존재의 집으로서, 인간은 언어의 주택 속에 산다’는 하이데거(M. Heidegger)의 말조차도 그다지 절실하게 여겨오지 않던 나인지라, 목사님들이나 선생들이 목청껏 외쳐대는 ‘생명의 말씀들’을 그저 귓가에 스치는 바람결로 들어온 것이나 아니겠는가.

오늘 풍광 좋은 낙산의 해변에서 김목사님의 절절하신 말씀을 들으며 바람처럼 흘려보낸 내 풋풋했던 날들을 반추한다. 내 젊은 날의 오만을 조상(弔喪)하며... <2011. 2. 10.>

조규익(숭실대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2. 2. 14:37


  <올리브산 예수승천교회 표지판>

  <예수승천교회 모습>

  <예수님이 밟고 승천하셨다는 돌>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순례객들>

 <승천교회 문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순례객들>

  <교회 앞 길가에 서 있는 올리브 고목>
  

  <승천교회에서 주기도문 교회 가는 도중에 만나는 계곡의 민가들>

  <올리브산 쪽에서 예루살렘 성 방향으로 내려가며>

  <올리브산에서 건너다 본 예루살렘 성 안과 밖의 풍경> 
 
  <승천교회 입구>


이스라엘 제1신 : 올리브산, 그 초월과 극복의 공간 

 

2011년 1월 9일, 이스라엘에서의 첫날. 쌀쌀한 날씨 속에 올리브산을 찾았다. 전망산, 시온산[성전산]과 함께 기독교 상징의 극치를 보여주는 올리브산. 그 정상에 자그마한 성전[예수 승천교회]이 아랫마을들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증거의 자리를 드디어 만나는 순간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시어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누가복음』(24장 50~53절)>는 기록으로 나타난 곳. 바로 승천교회였다. 올리브 이파리들은 쌀랑한 바람에 흔들리고, 밀려드는 순례자들은 비좁은 교회 내부 한 복판의 돌에 연신 친구(親口)의 예를 행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발을 디디셨다는 바위. 위쪽엔 이슬람 세력이 씌웠다는 둥근 돔이 하늘을 막았고, 돌 벽의 창틈으론 비둘기들이 들락거렸다. 문밖에는 아랍 청년으로 보이는 노점상이 순례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주변은 돌투성이의 황무지였다. 대체 예수님의 말씀이 저 척박한 돌들 사이에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세상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지, 경이로운 일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정교회 사제가 순례에 나선 한 무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들어와 예배를 집전한다. 그의 무겁고 둔탁한 표정이 사방의 돌들에 햇살로 부서지는 성령을 받아들인 것인지, 자못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교회 밖으로 나오니 늙은 올리브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쪽과 건너편 예루살렘 성 밖은 온통 석관들이 할 말 많은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듯 열 지어 누워있었다. 지금까지 양지 바른 언덕에 누운 저 석관들의 수를 과연 헤아려본 자가 있었을까. 건네다 보이는 예루살렘의 성채는 말없이 세상을 안과 밖으로 나누고 서 있는데, 그 안과 밖은 말하자면 삶과 죽음의 공간이었다. 성 안은 산 사람들의 세계, 성 밖은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나 할까.

 

유독 황금사원이 두드러져 보였다. 지금은 이슬람 세력이 차지하여 무슬림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그곳이 그들에겐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 황금빛이 너무 강렬하여 눈에 거슬리기는 하나, 어쨌든 성 안은 살아있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이승의 삶을 마감하면 분문(糞門)을 통해 양지 바른 성 밖의 공동묘지로 나아가 누운 채 부활과 영생을 기원하는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서민들이 술 한 잔 거나해지면 부르는 노래 <성주풀이>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고금을 통해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것이니 엘화 만수 엘화 대신이야!”라는 노래만큼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절절한 아우성이 또 있을까. 중국의 북망산(北邙山)은 낙양성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던가. 그러나 예루살렘의 경우는 성문을 열자마자 그곳이 바로 북망산이었다. 이곳 사람들도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며 불가지(不可知)의 세계인 저승을 꺼렸으리라. 이왕이면 여럿이 함께 누워 두려움들을 덜어보려 했을까. 베이지색에 가까운 석관들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제자들과 마지막 밤을 보내신 이곳 올리브산에서 그 모습을 건너다 보시고 예수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으리라. 곧 무너질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욕망의 삶에서 허우적대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올리브산 정상에서 5~6분 걸어내려 간 자리에 눈물교회가 조용한 자태로 서 있었다. 제자들이 잠든 모습을 보시며 잠시 후 로마군에 체포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안타깝게 기도하던 바위. 그 위에 세워진 만국교회도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하신 유적들이 나그네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들고 말았다.


세속의 권력에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승천하신 공간에 그득하게 남아있는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증거의 한 끝이나마 잡을세라 줄줄이 누운 시신들이었다는 것.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발한 욕망과 허무, 그러나 끝내 초월과 극복의 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승리의 현장이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