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10.09 우리를 키우신 어머니들의 눈물, 잊어도 되나요?
  2. 2016.02.29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3. 2007.04.30 아버지의 정
  4. 2007.04.19 모정
글 - 칼럼/단상2018. 10. 9. 11:25

 

 

 

 

 

*누군가의 글에서 빌려 온 사진. 매우 감동적이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다시 이곳에 퍼다 붙입니다. *

 

 

70년대 이전 우리 어머니들의 고뇌가 압축되어 있는 광경입니다.

 

아궁이의 불은 가난, 속 썩이는 남편과 자식들, 구박하는 시부모 등으로 늘 가슴 태우던 마음 속의 불을 상징하고요. 매캐한 연기는 신산(辛酸)한 삶을, 그 연기로 인한 눈물은 소리 죽여 우시던 우리 어머니들의 슬픔을 상징하지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 지어낸 밥을 자식들의 입에 넣어 주시면서 잠시 시름을 달래곤 하셨지요. 지금 세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고난'이 이 한 장의 사진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흙과 돌멩이를 뭉치고 다져 만든 부뚜막, 간신히 걸어놓은 가마솥, 축축하게 젖은 검부나무, 울퉁불퉁 흙바닥, 연기 안 빠지는 쪽문, 등 없어 컴컴하고 비좁은 공간...

 

우리 어머니들의 슬펐던 삶은 불과 40년 전에도 우리의 고향에 뚜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를 키우신 어머니들의 눈물, 잊어도 되나요?

 

                                                                 <조규익 페이스북>에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2. 29. 18:55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야금야금 육신을 갉아먹는 병마(病魔)

끝내 어머니는 아픔을 호소할 기력마저 상실하셨습니다. 

한동안 의연히 싸워오신 어머니도

언젠가부터 병마의 서슬에 풀이 꺾이신 듯.  

잦아드는 어머니를 뵈며 저는

병마의 무자비함에 대한 한탄이나 내뱉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난 뒤에야

편안해지신 어머니의 표정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병마와의 투쟁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육신의 굴레!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의 극적인 종말이 죽음인 것을,

어머니 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계셨음을,

나 혼자만 몰랐던 것일까요.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저는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신 게 아니라

정말로 '뭣 같은 고통'을 뛰어넘고 싶어 하셨을 뿐이라는 사실을.

 

넝마 같은 육신을 벗기 위해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가

바로 고통과의 투쟁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최고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아닌가요. 

찌질한 증오들, 숱한 이해타산들, 다양한 꼼수들을

일거에 무력화 시키는 전설의 마검(魔劒)이 바로 죽음 아닌가요.

모든 것들이 걸어가야 할 공도(公道)가 바로 죽음인 것을...

 

***

 

어머니(文姬)19281217() 충청남도 원북면 방갈리 학암포에서 외조부(문채문)와 외조모(창녕 조씨) 사이의 5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외조모는 역병(疫病)에 신음하던 동네 사람들을 구완하시다가 이른 연세에 돌아가셨고, 그 일로 어머니는 10대 초반 소학교를 중도에 폐하고 가사를 돌보게 되셨습니다. 열여섯 나던 해 10여리 떨어진 이웃 마을의 창녕 조씨 집안으로 출가, 모진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여 적지 않은 전장(田莊)을 마련하고 슬하에 41녀를 두셨습니다. 손끝으로 땅을 파셨고, 흘리는 피땀으로 그 땅을 걸게 하셨습니다. 새벽에 기상하여 다시 새벽 가까운 시각에 몸을 누이시는 고행을 통해 한 뼘 두 뼘 땅을 늘리셨고, 그 사이사이 적지 않은 자식들을 낳아 건사하셨습니다.

 

세상 이치에 밝으시고 지혜로우시어 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약하고 눈물 많은 남편과 어린 자녀들 때문이었을까요? 시종일관 곧은 아내이자 엄한 어머니이셨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강하셨고, 자식들의 어리석음이나 주변 사람들의 불의를 용납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로 하여금 일생 화툿장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고, 담배를 입에 대지도 못하게 하시는 등 어머니의 엄한 훈육이 몇 수레의 황금보다 얼마나 더 보배로운 유산이었는지, 지금 비로소 깨닫습니다.

 

명망 있는 의사로 키워 놓으신 막내아들의 보살핌 속에 만년을 보내시고, 그의 따스한 손길 아래 눈을 감으신 어머니먼저 가신 아버지 곁으로 따라가셨으니, 이제부턴 젊은 시절의 추상같으시던원칙과 자기 확신을 내려놓으시고, 두 분이서 오순도순 옛 이야기 나누시며 명계(冥界)의 청복(淸福)을 마음껏 누리소서.

 

 

 

2016. 2. 25. 030.

 

 

불효자 백규 울면서 올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30. 15:47
 

아버지의 정


                                                                       조규익


‘동물’의 생태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미국에 잠시 체류할 때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이란 채널을 즐겨 보았다. 가끔 채널 다툼(?)이 생겨나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원리나 방법이 인간의 그것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 내가 동물의 세계를 즐겨 보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일까. 첫째는 약육강식 등 힘의 논리에 대한 승복이고, 둘째는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다.


약자를 지배하는 유일한 근거는 힘이다. 그 면에서 적어도 동물계의 불확실성은 없다. 윤리나 양심 등 약간의 예외를 빼면 인간 세계의 원리 역시 약육강식이다. 사실 윤리나 양심 등도 약육강식의 잔인성을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 늘 그것들이 인간행동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가식으로 비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동물보다 불순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삶을 훔쳐보기를 좋아한다. 한국판 애니멀 플래닛의 출범만을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물의 애틋한 자식사랑도 인간과 마찬가지이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헌신적인 점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부모 모두 자식 기르는 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충 수컷들은 육아에 무책임하다. 어떻게든 암놈을 차지하여 ‘씨를 뿌리는 데’만 혈안이다. 일단 씨를 뿌리고 나면 낳고 키우는 건 암놈의 몫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충이라도 알기 어려운 것이 초원에 펼쳐진 동물들의 세계다.


인간도 그렇다. ‘깊은 정은 부정(父情)’이라지만, 그건 모정에 비해 하나도 애틋하지 않은 부정의 실상에 대한 수사(修辭)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들들은 대충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입장을 깨닫고 가까이 하려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정함’을 다 늦어서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


 국내 굴지의 재벌 H그룹의 모 회장이 술집에서 얻어맞고 온 아들의 복수를 위해 끔찍한 활극을 벌였다. 아들의 나이가 스물셋이니, 일찍 장가들었다면 아들이라도 보았을 나이다. 이제 육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다 큰 녀석 아닌가. 그럼에도 밖에서 얻어맞고 들어온 아들이 그리도 애처로웠을까. 회장의 나이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 ‘지천명(知天命)’이나 ‘이순(耳順)’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텐데. 이제 세상 물정 알 만큼 알고, 철이 들었을 만큼 들었을 그가 다 큰 아들이 얻어맞고 들어왔다고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직접 응징에 나섰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옛날 내 인척 가운데 한 분도 자식 사랑이 끔찍했었다. 그러나 같은 경우의 대처방법은 회장과 달랐다. 애가 밖에서 맞고 들어왔을 때, 자초지종을 물어 억울하게 맞았으면 아들을 다시 보내 스스로 복수하고 사과까지 받아오게 했다. 만약 아들이 잘못이었다면 그를 엄하게 꾸짖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그는 책임감 강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애들이 밖에서 놀다 보면 사소한 다툼이 있을 수 있고, 툭탁거리며 싸우기 일쑤다. 회장의 아들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곱고 귀하게 자랐을 것이다. 애들과 티격태격하다가 한 대 얻어맞으면 또르르 달려와 부모에게 일러바치고, 부모 또한 참을성 없이 달려가 주먹다짐을 하곤 했으리라. 그러니 스물셋이란 나이를 먹고도 몇 대 밖에서 얻어맞았다고 싸움판에 부모를 끌어들이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그 회장이 경찰 등 나라의 공권력을 우습게 만든 점은 따로 따져야겠으나, 필자 같은 일개 필부의 눈으로도 그 부자의 행실이야말로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다. 초원에서 늘상 보는 ‘무책임한 수컷’의 범주는 벗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4. 30.


백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4. 19. 14:41
모정

군 복무 중인 작은 녀석. 부대에 배치받자마자 거의 하루에 한두 번씩 전화를 걸어온다. 아침저녁으로 모자가 통화하는 모습은 최근 생겨난 우리 집의 풍경이다. ‘요즘 군대 참 좋아졌구나!’라는 느낌 이외의 다른 생각은 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작은 모임에서 활동하던 아내는 최근 구성원들과 함께 실크로드로 답사를 떠났다. 답사 떠난 날로부터 아들 녀석의 전화가 ‘딱!’ 끊어지고 말았다. 비로소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왜 아들 녀석은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하나. 바로 그의 엄마가 집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약간 서운하다.

               ***

나도 그랬다. 도시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대신 맞아 주시는 아버지가 그토록 어색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방 안에 발갛게 불이 담겨진 화로가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대로 어머니가 안 계시면 전체적으로 썰렁했다.

              ***

최근 어떤 잡지로부터 청탁 받은 글을 탈고했다. 어쩌다 보니 향가 <도천수관음가>를 지극한 모정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글을 쓰게 되었다. 쓰는 과정에서 고려노래 <사모곡>을 다시 보게 되었고, 신달자 시인의 <사모곡>과 가수 태진아의 <사모곡>도 살펴보게 되었다. 어쩜 그리도 모두 살뜰하게 어머니를 그리는 절창들인지!
물론 <도천수관음가>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아들을 위해 관음보살에게 빌고 있는 어머니(희명)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다. 희명의 아들도 당시는 몰랐겠지만,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은혜를 깨닫곤 태진아처럼 절규하듯 ‘사모곡’을 불렀으리라.

              ***

아버지의 사랑을 호미로, 어머니의 사랑을 낫으로 각각 비유하고, ‘호미보다 낫이 훨씬 잘 든다’는 말로 어머니 사랑이 훨씬 ‘거시기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 고려노래 <사모곡>이다. 그렇다. 옛날부터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그토록 ‘별 볼 일 없었던’ 것이다. 가끔 TV의 화면에 비쳐지는 장면이 있다. 불치의 병에 걸려 신음하는 아들의 병상에 붙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 아버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하지 않는 ‘군바리’ 아들을 내심 ‘원망하며’ 새삼 어찌 해 볼 수 없는 ‘모정’의 위대함을 되씹어 본다. 그도 내 나이가 되면 이 심정 알게 될까?
                                                                    2007. 4. 19. 숭실 캠퍼스에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