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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30. 15:47
 

아버지의 정


                                                                       조규익


‘동물’의 생태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미국에 잠시 체류할 때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이란 채널을 즐겨 보았다. 가끔 채널 다툼(?)이 생겨나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원리나 방법이 인간의 그것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 내가 동물의 세계를 즐겨 보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일까. 첫째는 약육강식 등 힘의 논리에 대한 승복이고, 둘째는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다.


약자를 지배하는 유일한 근거는 힘이다. 그 면에서 적어도 동물계의 불확실성은 없다. 윤리나 양심 등 약간의 예외를 빼면 인간 세계의 원리 역시 약육강식이다. 사실 윤리나 양심 등도 약육강식의 잔인성을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 늘 그것들이 인간행동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경우 그것은 가식으로 비칠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동물보다 불순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삶을 훔쳐보기를 좋아한다. 한국판 애니멀 플래닛의 출범만을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물의 애틋한 자식사랑도 인간과 마찬가지이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헌신적인 점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부모 모두 자식 기르는 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물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충 수컷들은 육아에 무책임하다. 어떻게든 암놈을 차지하여 ‘씨를 뿌리는 데’만 혈안이다. 일단 씨를 뿌리고 나면 낳고 키우는 건 암놈의 몫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충이라도 알기 어려운 것이 초원에 펼쳐진 동물들의 세계다.


인간도 그렇다. ‘깊은 정은 부정(父情)’이라지만, 그건 모정에 비해 하나도 애틋하지 않은 부정의 실상에 대한 수사(修辭)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아들들은 대충 아버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입장을 깨닫고 가까이 하려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정함’을 다 늦어서야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


 국내 굴지의 재벌 H그룹의 모 회장이 술집에서 얻어맞고 온 아들의 복수를 위해 끔찍한 활극을 벌였다. 아들의 나이가 스물셋이니, 일찍 장가들었다면 아들이라도 보았을 나이다. 이제 육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다 큰 녀석 아닌가. 그럼에도 밖에서 얻어맞고 들어온 아들이 그리도 애처로웠을까. 회장의 나이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 ‘지천명(知天命)’이나 ‘이순(耳順)’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을 텐데. 이제 세상 물정 알 만큼 알고, 철이 들었을 만큼 들었을 그가 다 큰 아들이 얻어맞고 들어왔다고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직접 응징에 나섰다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옛날 내 인척 가운데 한 분도 자식 사랑이 끔찍했었다. 그러나 같은 경우의 대처방법은 회장과 달랐다. 애가 밖에서 맞고 들어왔을 때, 자초지종을 물어 억울하게 맞았으면 아들을 다시 보내 스스로 복수하고 사과까지 받아오게 했다. 만약 아들이 잘못이었다면 그를 엄하게 꾸짖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그는 책임감 강한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애들이 밖에서 놀다 보면 사소한 다툼이 있을 수 있고, 툭탁거리며 싸우기 일쑤다. 회장의 아들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곱고 귀하게 자랐을 것이다. 애들과 티격태격하다가 한 대 얻어맞으면 또르르 달려와 부모에게 일러바치고, 부모 또한 참을성 없이 달려가 주먹다짐을 하곤 했으리라. 그러니 스물셋이란 나이를 먹고도 몇 대 밖에서 얻어맞았다고 싸움판에 부모를 끌어들이지 않았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


 그 회장이 경찰 등 나라의 공권력을 우습게 만든 점은 따로 따져야겠으나, 필자 같은 일개 필부의 눈으로도 그 부자의 행실이야말로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다. 초원에서 늘상 보는 ‘무책임한 수컷’의 범주는 벗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4. 30.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