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록 - 일반2008. 3. 2. 14:17
 

열정으로 빚어온 아름다운 삶

-아헌(雅軒) 정화자 교수님의 정년에 드림-



마음에 맞는 전공을 만나 학문으로 입신(立身)하고, 그 학문을 업으로 삼아 세상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만큼 멋지고 영예로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지식사회의 일원인 대학교수로서 세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만큼 힘들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삶의 한 부분을 멋지게 마치고 ‘정년’이라는 새로운 삶의 스타트 라인에 서는 것만큼 후련하면서도 기대되는 일이 진정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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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헌 교수님께서 이달 말일부로 삶의 한 획을 그으신다 합니다. 언제 보아도 후덕하신 인품에 똑 떨어지는 말씀으로 후학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아헌 교수님께서 정년을 맞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언뜻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년’이라하면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새로운 삶의 장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란 사실을 생각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90, 100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수명을 생각할 때, 답답하게도 어찌 한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분명 아헌 교수님은 우리 후학들이 모르는 ‘원대한 계획’을 짜놓고 계실 것입니다. 몹시 궁금하지만, 잠시 기다림의 미덕을 발휘하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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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헌 교수님은 일찍이 남다른 혜안을 갖고 인생을 출발하신 듯합니다. 암울하던 60년대에 이미 음악에의 뜻을 갖고 서울대에서 공부를 시작하셨으며, 그곳을 졸업한 다음 한양대 등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시는 동안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과 조예를 키우신 점만 보아도 앞서 가는 통찰과 안목을 지니고 계셨음이 분명합니다. 젊은 시절 한 때 수원 매향여고, 서울 한성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한성대·청주대·강남대 등에서 강의를 하셨으며, 청주대학의 전임교수로 지금까지 일관해 오시는 동안 기라성 같은 문하생들을 길러내셨습니다.

 음악학의 연구에도 매진하시어 “진양(陳暘) ‘악서(樂書)’의 악론(樂論) 연구”, “악기 제작에 내재된 음악사상-아악기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악인(樂人)의 사회적 지위-궁중 악인을 중심으로-”, “판소리 장단과 사설과의 관계”, “타령(打令)에 관한 연구”, “가곡(歌曲)의 원형(原形)과 변형(變形)에 관한 연구” 등 아악·속악에 두루 걸치는 내용의 박학한 논문들과, 『소리의 천재 영감의 마술사들』, 『무용미학』등 좋은 책들을 펴내심으로써 연구의 내공을 약여(躍如)히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연구업적들은 날이 갈수록 후학들의 귀감으로 빛을 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뿐인가요. 서울과 청주를 오가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명동의 서당에 나와 후학들과 글을 읽으시는 일은 무엇보다 교수님을 돋보이게 하는 점입니다. 더욱이 대학이 위치한 청주에서 ‘청주농악보존회’ 이사와 ‘한국국악교육학회’ 충북 지부장 등을 맡아 헌신하고 계시며, 사단법인 온지학회의 부회장으로서 학계에 기여하신 점은 후학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고 본받아야 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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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아헌 교수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학의 문을 나서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살아오시는 동안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한 삶에는 후회가 있을 수 없지요. 교수님께서는 그런 전반생을 바탕으로 힘차게 후반생을 시작하실 수 있으리라 저희들은 믿습니다. 달콤하게 펼쳐질 후반생에 멋진 일들만 계속될 것으로 확신하오며, 교수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빌어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2. 28.


          사단법인 온지학회

          회장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