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4. 2. 1. 01:15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림멜 교수

 

 

 

한국의 통일을 열망하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 림멜(Lesley A. Rimmel) 교수

   

 

미국에 있는 동안 꽤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을 만났다. 주로 교수나 강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 등인데, 그 가운데는 오가는 도중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까지 비교적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미국 지식인들이 타인들 특히 외국인들을 낯설어 하며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기도 하고, 남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통해 전공에서 만난 문제들을 풀기도 한다.

 

12월 중순의 어느 날 점심시간. 브레이크 룸에서 커피를 데우고 있는데, 평소 눈인사 정도를 나누던 여 교수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며칠 전 PBS에서 방영된 비밀의 국가 북한[Secret State of North Korea]’란 다큐멘터리를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많이 부끄러워졌다. 방영된다는 소식을 뉴스로 듣긴 했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동족의 끔찍한 참상들이 미국인들의 눈앞에 발가벗겨진 채 드러난 모양이구나! 집에 돌아가자마자 포털사이트에서 그 방송을 확인했고, 며칠 후에는 다운로드해서 직접 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사실들의 반복에 불과했지만, 미국인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을 내용이었다. 특히 군사조직에 가까울 정도의 병영국가 체제, 대한민국과 미국을 주된 표적으로 무력을 앞세운 협박, 몽땅 쇼 윈도우의 컨셉으로 꾸며진 평양, 비참하고 끔찍한 정치범 수용소들, 살아남을 힘마저 상실한 아이들과 일반국민들의 참상 등. 내게 북한의 현실을 일깨워 준 림멜 교수에게 달리 할 말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녀를 만나 South Korean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드디어 림멜 교수의 연구실에서 장시간 만나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녀의 관심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대화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이곳에 올리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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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바와 같이 림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남을 이해하게 된대표적 미국 지식인이다. 명문 예일 대학 역사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이듬 해 국제 교육 교류 위원회[Council on International Educational Exchange]’의 수혜자로 선발되어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레닌그라드 주립대학[Leningrad State University]에서 러시아어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키로프(Kirov) 살해와 소비에트 사회: 1934-35년 레닌그라드에서의 선전과 여론[The Kirov Murder and Soviet Society: Propaganda and Popular Opinion in Leningrad, 1934-35]’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1995-96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강사로 재직했고, 1998년 가을학기부터 이곳 OSU에 자리를 잡고 주로 러시아중앙아시아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과목들을 강의해 왔으며, 20여 종에 가까운 수상 및 그랜트(Grant) 수혜 경력을 갖고 있는 탁월한 교수임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는 풀브라이트(1991-92), 앨리스 폴 어워드(Alice Paul Award/1991), 국제 교류 연구 기금(International Research and Exchanges Board Grant/1991-92) 등을 비롯,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혜를 받은 학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스탈린 시대 소련 역사에서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었고, 전쟁을 비롯한 집단 폭력이나 지하경제와 같은 국제적 기층민중의 현실 등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북한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현실에 관심을 갖는 걸까. 북한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김정은을 입에 올리며 스탈린보다 훨씬 잔인한 그의 성격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야기 도중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스탈린의 배불뚝이 동상을 꺼내더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체형(體形)이 스탈린과 똑같지 않으냐고 내게 물었다. 국민들을 배고프고 괴롭게 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린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스탈린에게서 찾을 수 있고, 한반도의 김씨 3대는 바로 그 아류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스탈린 시대를 중심으로 러시아 역사를 긴 세월 연구해 온 그녀로서 국민 착취 및 학대의 전형적인 독재자로 스탈린을 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체형과 인간성의 유사성까지 들면서 김씨 3대를 스탈린보다 더 잔인하고 독한 인물들로 규정하고 있는 점은 흥미로웠다. 그나마 스탈린은 자기 당대에 끝이 났지만, 김씨 왕조는 대물림을 하고 있으므로 훨씬 지독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스탈린이나 김씨 3대 등 배불뚝이 독재자들주민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악마적 지도자의 시각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그녀의 설명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탈린의 독재가 결국 소련 해체의 단서로 작용한 것처럼 그보다 더 잔인한 모습으로 한반도 북쪽에 군림하고 있는 김씨 3대 특히 김정은의 폭력성이 조만간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그녀의 관점이었다.

 

 


연구실에서 필자와 대담 중인 림멜 교수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설명 중인 림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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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입양된 한국의 고아들을 언급함으로써 나를 부끄럽게 했지만, 이내 한국인 친구들이나 한국과의 친분을 강조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친밀감을 갖게 한 그녀.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삼성현대기아엘지•대한항공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죽 나열하고 그들의 장점까지 거론했으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뿐인가. 한국의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을 민주주의 정착기의 대통령으로, 그 사이에 있는 노태우 대통령을 과도기로 각각 규정하는 등 한국 대통령들의 이름과 공적을 꿰고 있었으며, 반기문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명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움으로써 한국인인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산업화의 결정적 초석을 놓은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도 정계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 말을 수긍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물어왔다. 세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믿음직하다는 평가를 받아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하자, 동북아시아의 큰 나라들이나 미국도 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점과 함께 여성의 리더십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선례를 한국이 만들 것이라는 고무적 관측까지 내놓는 것이었다. 북한이 매우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다양한 활약이나 선전(善戰)에 불쾌감을 느끼는 데 큰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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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로서 자신이 전공한 학문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걸출했던 역사철학자 E. H. 카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가 역사라고 했다. 그 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온당한 해석 행위이고, 그런 해석을 통해 역사의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시대에 생겨난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을 통해 단순히 그 시대의 규명에나 그치고 만다면, 그것을 진정한 역사가의 안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학자를 만나자마자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김씨 3대 혹은 북한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통찰을 림멜 교수는 내게 보여준 것이리라. 여지없이 엄정한 시각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의 해석에서 얻어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을 만나는 일이 내겐 큰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을 림멜 교수와의 만남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료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는 림멜 교수

 

 


림멜 교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성 폰

 

 


2013. 12. 14. PBS에서 방영한 '비밀의 국가 북한' 타이틀 화면[방송화면 캡쳐]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의 어린이[방송화면 캡쳐]

 

 


군 진지를 순시하는 김정은에게 달려가며 충성을 과시하고 있는 인민군들[방송화면 캡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1. 5. 11:47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오클라호마를 관통하는 옛 길 하나가 있다. 이른바 66번 도로[Route 66]. 이 길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거론하기로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 길에 주목해왔다. 토요일인 어제도 우리는 차를 몰고 이 길의 탐사에 나섰고, 그 길을 따라가다가 외견상 약간 퇴색되긴 했지만 아름다운 도시 유콘시티(Yukon City)를 만났다.[유콘 시티에 관한 글은 다음 기회에 싣는다] 이 도시의 유콘 퇴역군인 박물관[Yukon Veterans Museum]’에서 우리는 코끝이 찡해오는 슬픔과 가슴 멍한 감동을 만나게 되었다.

 


유콘시 역사박물관[이 박물관의 3층에 퇴역 군인 박물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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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Yukon Historical Museum]을 찾지 못해 안내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는 여성이 찾아오는 길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Yukon Historical Museum에 대한 글은 미국통신 27로 싣는다] 이 박물관의 맑고 품위 있는 할머니 큐레이터 캐롤[Carol Knuppel]의 안내로 소중한 생활사 컬렉션을 두루 살펴 본 다음, 같은 건물 3층에 마련된 퇴역군인 박물관을 우연히 찾게 되었고, 거기서 일을 보고 있던 톰[Mr. Tom Thomas]을 만나게 되었다. 그의 도움으로 박물관 안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색깔은 바랬으나, 낯설지 않은 몇 장의 사진을 목격하게 되었다.

 


유물을 들어 보이고 있는 톰 씨


한국전 코너 표지판

 

, 그것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네 누이와 아주머니의 힘겨운 모습이었다. 칭얼대는 동생을 광목 포대기로 감아 업고 배고픔을 달래던 우리 누이, 전쟁 통에 죽었거나 끌려가 부재중인 남편 대신 산에서 땔감을 산더미처럼 지고 오던 이웃 아주머니, 비누도 제대로 없던 시절 냇가에서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던 동네 아주머니들, 덜컹대던 버스, 동산만큼 무거운 짐을 실은 리어카를 활기차게 끌고 가는 어떤 장년 남자, 자신의 사진을 찍는 사람의 동작을 흉내내는 듯한 코흘리개 남자아이, 서울 수복의 감격이 짙게 배어 있는 서울시청, 그 때까지만 해도 웅장한 자태로 서 있던 동대문 등등. 그런데 이 사진들을 과연 누가 찍었을까. 사연을 알아보니 유콘에 살던 퇴역군인의 아들로부터 기증받은 것들이란다. 원판 화질이 안 좋았으나 우리로서는 그 사진들을 우리의 카메라로 다시 촬영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누구 혹시 이 아줌마를 아시나요?


누구 혹시 이 아줌마를 아시나요?


서울시내 어딘가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자


1954년 당시 서울시청


누구 혹시 이 아이를 아시나요?


1954년도 서울시내 한 곳 


1954년도 서울시내 한 곳의 한옥


1954년 당시 버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 혹시 사라질세라 카메라를 소중하게 부여안고 다른 노정들의 방문은 생략한 채 2시간 가까운 거리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컴퓨터 화면에 띄우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 사진들 모두의 화질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톰에게 전화를 하자 다음날[일요일, 즉 오늘] 12시에 사진 기증자가 이곳에 오니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Yukon Veteran's Museum을 다시 찾았고, 거기서 이 사진을 찍은 퇴역군인의 신원을 알게 되었으며, 기증자의 아들인 Mr. Richard Cacini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역시 미 육군에서 30여년을 근무한 군인이었고 그의 아들 또한 군인이었으므로, 이탈리아계 이민인 카치니 가문은 3대가 군에서 복무한 모범적 사례였다. 우리는 어제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카메라와 스마트 폰으로 사진들을 다시 찍고, 휴대용 스캐너로 일일이 스캔하여 별도의 파일로 보관하기도 했다. 리차드 씨의 흔쾌한 협조로 열 장이 넘는 사진들을 송두리째 우리의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Mr. Rick Cacini


Mr. Rick Cacimi와 처음 만나서


Mr. Rick Cacini, 백규, 그리고 Mr. B Mac[미 해병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낸 감사의 편지


퇴역군인의 날 행사 포스터

 

 

미 육군의 하사관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카치니는 각각의 사진들 뒷면에 장소와 연도를 표기했는데, 연도가 모두 1954년인 점으로 미루어 전쟁 직후의 우리 땅[의정부, 서울]에서 찍은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눈시울을 촉촉하게 한 것은 사진을 찍은 사람의 따스한 시선으로 어려운 시절의 우리 모습을 잘도 잡아냈다는 점이었다. 의정부에서 찍었다는 나뭇짐 지고 가는 여인사진 뒷면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다.

 

당신이 혹사당한다고 말하지 말라. 이 여인은 200~400파운드 무게의 짐을 져 나르고 있다. 그녀가 내려놓았을 때 나는 그 지게를 들 수조차 없었다.[Don’t tell me you are overworked! This lady is carrying between 200 and 400 pounds. I could not even lift the ‘A-Frame’ when she put it down.]”

 

그는 산더미 같은 나뭇짐을 지고 가던 가냘픈 여인을 만났고, 삶의 무게가 그의 마음에 감동과 동정의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다. 어쩌면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해 한국인이 당하고 있던 현실적 고통을 큰 소리로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을 업고 있던 작은 소녀의 사진 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이 작은 소녀는 겨우 여섯 살인데 몇 달 동안 애보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거의 모든 어린이들은 등에 아기들을 끈으로 묶어 업고 다닌다.[The little girl is six and has been a ”baby sitter“ for many month. Nearly every youngster has another strapped on his back]”

 

여섯 살 난 여자애가 동생을 업고 있는 모습에 사진사의 시선이 꽂히는 순간이다. 한 집에 일곱 여덟씩의 아이들이 북적대던 우리 어린 시절, 젖먹이 아이들을 업어 키우는 일이야 당연히 형이나 누나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그런 일을 미국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의 앵글이나 초점과 메모의 내용을 결부시키면, 사진사의 단순한 호기심보다 따스한 동정과 연민의 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

 

이 소녀와 아줌마는 지금쯤 이 땅을 떠났거나 고령의 여인으로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어쩜 지금까지도 어떤 미군이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 시절의 기억을 놓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인연으로 우리는 이 먼 미국 땅에서 사진으로나마 그들을 만나게 되었을까. 누군들 알았겠는가.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인들이 적은 오클라호마의 잊혀져가고 있는 소도시 박물관에서 사진으로 만나는 우리의 어제가 이토록 내 유년기의 상처를 건드릴 줄을. 1111일 이곳 박물관에서 열리는 퇴역군인의 날[Veteran’s Day]에 우리는 초대를 받았다. 반드시 그들을 만나서 지금의 우리는 기적처럼 일어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을 알려주리라. 그들의 마음에 고착되어 있는 625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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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여쭙건대, 어딘가에 살아 있을 이 소녀와 아줌마를 누구 혹시 아시는 분 없으신가요?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