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4. 19. 14:41
모정

군 복무 중인 작은 녀석. 부대에 배치받자마자 거의 하루에 한두 번씩 전화를 걸어온다. 아침저녁으로 모자가 통화하는 모습은 최근 생겨난 우리 집의 풍경이다. ‘요즘 군대 참 좋아졌구나!’라는 느낌 이외의 다른 생각은 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작은 모임에서 활동하던 아내는 최근 구성원들과 함께 실크로드로 답사를 떠났다. 답사 떠난 날로부터 아들 녀석의 전화가 ‘딱!’ 끊어지고 말았다. 비로소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왜 아들 녀석은 전화를 하지 않는 것일까. 답은 하나. 바로 그의 엄마가 집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약간 서운하다.

               ***

나도 그랬다. 도시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대신 맞아 주시는 아버지가 그토록 어색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방 안에 발갛게 불이 담겨진 화로가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대로 어머니가 안 계시면 전체적으로 썰렁했다.

              ***

최근 어떤 잡지로부터 청탁 받은 글을 탈고했다. 어쩌다 보니 향가 <도천수관음가>를 지극한 모정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글을 쓰게 되었다. 쓰는 과정에서 고려노래 <사모곡>을 다시 보게 되었고, 신달자 시인의 <사모곡>과 가수 태진아의 <사모곡>도 살펴보게 되었다. 어쩜 그리도 모두 살뜰하게 어머니를 그리는 절창들인지!
물론 <도천수관음가>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아들을 위해 관음보살에게 빌고 있는 어머니(희명)의 심정을 표현한 노래다. 희명의 아들도 당시는 몰랐겠지만, 어른이 되어 어머니의 은혜를 깨닫곤 태진아처럼 절규하듯 ‘사모곡’을 불렀으리라.

              ***

아버지의 사랑을 호미로, 어머니의 사랑을 낫으로 각각 비유하고, ‘호미보다 낫이 훨씬 잘 든다’는 말로 어머니 사랑이 훨씬 ‘거시기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 고려노래 <사모곡>이다. 그렇다. 옛날부터 어머니의 사랑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은 그토록 ‘별 볼 일 없었던’ 것이다. 가끔 TV의 화면에 비쳐지는 장면이 있다. 불치의 병에 걸려 신음하는 아들의 병상에 붙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 아버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하지 않는 ‘군바리’ 아들을 내심 ‘원망하며’ 새삼 어찌 해 볼 수 없는 ‘모정’의 위대함을 되씹어 본다. 그도 내 나이가 되면 이 심정 알게 될까?
                                                                    2007. 4. 19. 숭실 캠퍼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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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9. 10:29
지식인의 한탕주의, 그리고 금단의 열매

                                                                                                               조규익

아무나 쉽게 얻을 수 없는 정신적 자산, 그 가운데 핵심은 지식이다. 인터넷 만능시대인 요즈음은 흔히 지식 대신 정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러나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식과 정보는 다르다. 이 둘을 혼동하는, 무늬만의 지식인들이 대명천지를 활보하는 현실은 비극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해체나 몰락을 가속화 시키는 원인일 수 있다. 그래서 ‘앎’의 윤리성에 대한 몰각만큼 심각한 문제도 없다.

孔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진실과 양심만이 앎의 본질임을 깨우치고자 한 것이 공자의 본의였다. 이 선언이야말로 허위의식 속에 매몰되어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뼈아프게 새겨야 할 금언이다. 지식인의 정직성에 중점을 둔 공자의 생각으로부터 오늘날 자행되는 표절의 비윤리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지식의 양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것은 사회를 다원화•세분화시켰다. 그에 따라 전문가를 자처하는 지식인 그룹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요즈음이다. 인쇄나 방송 등 각종 매체가 범람하고, 그런 매체들을 기반으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대중의 기호나 매체의 활용 여하에 따라 지식인의 시장가치가 결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시장가치의 고하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고, 그것이 금전으로 직결되는 현실이다. 상품의 질보다는 광고술이 판매량을 좌우하는 시대에 지식인들 또한 자신을 실물보다 더 낫게 치장하여 시장에 내보이려는 욕구의 포로가 되고 있다.

대중은 지식인의 내면적 가치나 덕성을 찬찬히 살피는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좀더 그럴 듯하게 포장된 지식인을 찾아 자신의 ‘코드를 맞추고’, 그의 말과 글을 아낌없이 사들인다. 대중의 코드에 영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앎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지식인은 고민한다. ‘안 걸리게 잘 치고 빠짐으로써’ 자신의 시장가치를 높이거나 최소한 유지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내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손쉽게 빠져드는 것이 표절의 유혹이다. 이른바 지식인의 ‘한탕주의’가 표절이란 행위로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한 두 번의 표절이 쉽사리 발각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이 사들이는 지식의 원산지나 생산자를 꼼꼼히 챙겨보지 않는 대중의 문제적 성향 탓이다. 이런 이유로 표절은 반복되고, 반복되다보면 결국 발각될 수밖에 없다. 구멍가게에서 담배 한 갑을 훔쳐도 ‘절도죄’라는 살벌한 죄명으로 벌을 받는 현실이다. 단순히 돈으로만 따져도 표절은 일반 절도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 나쁜 절도행위인데, 표절범들이 거리낌 없이 이 사회를 활보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사실 우리 모두 표절에 관한한 공범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범이나 우리가 ‘오십 보 백 보’의 공범들이라면, 새삼 누가 누굴 징치할 수 있겠는가.

작년 언젠가 일본 후지TV가 프로그램 표절 의혹 건으로 국내의 어느 방송사에게 항의한 사실과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우리나라 젊은 과학도의 논문 표절사건을 상기해 보라. 지난 시절 국내 방송사들이 일본 방송 프로그램들을 베껴온 사실은 왕왕 거론되어 왔지만, 대명천지 21세기에 이르도록 그런 ‘못된 관행’을 청산하지 못했다니! 사실이든 아니든 과거 ‘베껴먹기의 원조’ 일본으로부터 받은 항의이고 보면 참으로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80여편의 논문을 실은 젊은 과학도의 표절행위 또한 우리 학계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국제적 범죄다.

자고나면 불거지는 가수들의 표절, 이름 있는 학자들의 표절, 공모전 입상자의 표절 등 우리는 표절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사실 표절 아닌 것을 찾아내는 일이 쉬울 정도로 표절이 일상화 되고, 그것이 관행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인터넷을 뒤져 남의 글을 듬뿍듬뿍 퍼다가 ‘짜깁기’한 것을 논문이나 리포트로 제출하고 좋은 학점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강의 시간중에 제출하는 리포트의 표절의혹을 가리는 일은 포기한 지 이미 오래고, 이젠 각종 학위논문의 표절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참고문헌들과 논문의 본문을 일일이 대조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주제나 논지의 타당성, 문장의 정확성 등은 이제 더 이상 1차적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문장이 눈에 띄게 미끈하면 ‘이거 어디서 베껴온 것이나 아닌가’를 의심해야 하는 실정이다. 서툰 문장, 어설픈 논지가 오히려 반갑게 생각되는 것은 그것들과 참고문헌들을 일일이 대조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표절의 원본으로 삼고 있는 인터넷 속의 텍스트는 과연 온전한가. 그것들 역시 상당 부분은 표절의 수법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어느 텍스트를 원본으로 인정해야할지 난감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렇게 우리를 ‘표절 불감증’으로 몰아 넣었을까. 바로 사회에 만연한 ‘결과 지상주의’ 때문이다. 과정의 정당성 여부보다는 결과물의 수량만이 유일한 평가의 척도로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논문의 편수가 금전적 보상이나 승진의 절대적 조건인 상황에서 문장을 따오든 아이디어를 베끼든 표절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청률만으로 성패를 가름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TV라도 표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끈한 문장과 번지르르한 장정만을 보고 학점을 주는 상황에서 인터넷 속의 글을 짜깁기하여 리포트로 제출하려는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한 것은 표절행위가 입증된 경우에도 그 뒤처리가 유야무야된다는 점이다. ‘그저 운이 나빠 걸렸을 뿐’이라는 판단은 우리 사회에 표절행위가 만연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생각이다. 모두 표절의 혐의를 나누어 갖고 있다는, 공범의식의 결과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비록 표절을 당한 사람이라 한들 그 사실을 선뜻 공개할 수 없다. 모두 베껴먹고 사는 사회에서 그런 사실을 공개하는 일이야말로 좀스럽고 치사하지 않으냐는 비아냥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단계에서 주저앉느냐 한 단계 도약하느냐는 국민들의 창조적 역량에 달려 있다. 국민들의 창조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창조적 작업이나 결실이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상품을 내놓기가 무섭게 표절된다면, 누가 영혼을 불사르는 창조적 작업에 나설 것인가. 국민들의 창조적 열기가 식어버리면 산업이나 과학의 발전은 그 순간에 멈추어 버린다. 정부가 2만불 시대를 고창하고 있지만, 표절문제에 미온적인 한 1만 불의 현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표절을 중죄로 다스리기 위해 법을 보완하고, 감시 기구의 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범국민적인 양심 회복 운동이다.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완벽하다해도 국민 각자가 마음을 바로 먹지 않는 한 표절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한 번 빠져버린 표절의 함정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절은 금단의 열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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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8. 00:31
 선입견과 감동의 착종(錯綜)(프랑스1신)

             [1]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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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이곳 시각 오후 3시50분에 도착, 5시 넘어 빠져나온 샤를 드골 공항은 비교적 한산했다. 밖엔 따가운 늦여름 혹은 초가을의 햇살이 우리를 반겼고. 파리 근교 끄레뗄(Creteil)의 숙소로 가는 길, 멀지 않은 길을 한 시간 넘게 달렸다. 그리 낯설지 않은 ‘교통체증’ 때문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소형차들, 그리고 그들의 사이를 요리조리 뚫고 달리는 오토바이족들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달리는 자동차들의 차창을 통해 프랑스인들의 다혈질이 뿜어져 나왔다.
파리의 전주곡(前奏曲)이라고나 할까. 끄레뗄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16층 아파트 발코니에서 바라다 보이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평원. 그 위로 아름답게 디자인된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아파트 아래쪽엔 호수가 펼쳐져 있고, 형형색색의 꽃밭과 무성한 나무숲이 그 호수를 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달리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풀밭에 누워 책을 읽거나 담소하는 사람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인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2005. 9. 2. 밤

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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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은 우리가 지금 묵고 있는 숙소와 주변의 호수 사진입니다. 어두운 색깔 건물 바로 왼쪽이 제가 묵고 있는 숙소이지요. 그리고 아래 사진은 그 숙소 창밖으로 내다 보이는 끄레뗄 시내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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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6. 15:03


고향에서 만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조규익

내 고향 태안엔 샛별처럼 반짝이는 제자 난주시인이 살고 있다. 경남 산청 출신. 당차면서도 맑은 영혼의 여인이다. 경남대학의 전임으로 막 부임한 나는 스물여덟. 갓 스무 살 난 그녀는 학교의 문학 서클에서 시인에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일상에 매몰되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나는 떠난다는 말도 없이 두 해만에 서울로 오게 되었다. 그 후 우연히 그녀가 내 고향으로 시집 와 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부끄럽게도 잊고 있던, 아니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고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척박한 내 고향에 문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그녀를 보며 스스로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독서회, 시 낭송회, 논술·토론회 등, 문화의 모종삽을 들고 분주한 그녀. 그녀의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

유럽 여행기 <<아, 유럽!-그 세월 속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를 펴내자마자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 회원들을 위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갖겠다는 것. 그래서 태안도서관을 찾았다. 아, 그런데 그곳엔 올망졸망한 ‘초딩’들과 그 지역의 어른들이 뒤섞여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그저 책에 목마르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허기에 시달리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내 삶의 이야기나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여행과 독서! 그러고 보면 참으로 절묘한 일치였다. 무언가를 알기 위해, 찾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거나 알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찾아다니는 세상이나 우리가 읽는 책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유럽을 비롯 그간 내가 밟았던 곳들은 모두 내 공부를 위한 텍스트였던 셈이다. 태안의 사임당 독서회를 위해 난주시인이 내게 부탁한 것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야기 내내 ‘책 읽기’와 ‘여행하기’라는 두 영역을 왕래하게 되었다.
         ***

청중석에 앉아있는 어른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이런 시대에 책을 가까이 하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있을 수 있다니! 모여 앉으면 부동산 이야기, 남 헐뜯기로 세월을 보낼 법 한데도 그 분들은 열심히 책을 읽고 정기적으로 만나 토론을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책을 읽으라!’ 경을 읽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스스로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질 것이다. 단 한 시간이라도 어머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옷깃을 여미고 책상 앞에 달라붙는 것을. 어른들 자신들은 ‘먹자 마시자’로 일관하며 입으로만 경을 읽는다.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내 고향 태안의 미래는 밝았다. 그곳은 내 고향 태안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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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주꾸미 샤브샤브로 태안의 풍미를 듬뿍 맛본 식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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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떠나든, 책 속으로 떠나든 여행은 즐겁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를 만나게 되고, 나와 다른 그것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를 깨닫는다는 점에서 여행만큼 위대한 선생님도 없다.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정치가 등은 모두 여행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자아를 깨닫고 거듭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서 ‘자식을 성공시키려면 일찍부터 여행을 시키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

태안. 아름다운 봄꽃들이 만개한 그곳엔 은총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몽대 포구의 바닷바람도 이리저리 봄 내음을 흩어내고 있었다. 김영곤 시인의 시낭송과 조은숙 회장의 가곡 한 자락은 방파제를 넘어 햇살 반짝이는 물결 위로 파문처럼 번져갔다. 난주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그 사이를 수놓은 봄날 오후의 한 순간. 살아있는 내 고향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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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대포구의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200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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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54
민족의 자존심

                                                                                                                      조규익

자격 있는 자만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원문보기 클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공권력에 폭행을 당했다. 국가 간의 이해(利害)가 개입된 문제라고는 해도 ‘때린 놈’이나 ‘맞은 놈’ 모두 우습게 되었다. 더욱 희한한 일은 때린 놈의 역성을 드는 집단이 우리들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점잖다 해도 ‘불량배에게 맞고 들어온 자식’을 꾸중하는 부모는 없다.

사실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을 움직이려면, 중국과 우리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이득까지 챙기려는 중국인들의 계산법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실이다. 분단된 우리 민족을 뒤에서 조종하며 실익을 챙기자는 그들의 ‘꼼수’를 우리는 민족사 최대의 수치로 받아들여야 정상이다.

따라서 이번 일을 국제화 시대의 나라들 간에 일어날 만한 외교적 사건으로 단순화 시킬 수는 없다. ‘민족적 자존심’의 원칙적 잣대는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최우선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좀더 복잡하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의 일을 떠올려 보자. 반정(反正)으로 인조(仁祖)를 옹립한 서인(西人) 정권은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했다. 중국으로부터 고명(誥命)과 면복(冕服)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서 반대파를 누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누르하치의 기세가 바야흐로 명(明)나라의 숨통을 끊어갈 무렵이었다. 이덕형(李德泂)을 정사(正使)로 하는 주청사(奏請使)가 명나라 조정에 파견되었고, 그들은 넉 달 가까이 북경에서 온갖 수모를 겪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사가 ‘시랑(侍郞)’ 정도의 관리들에게 농락을 당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뜻을 요로에 전하기 위해 뇌물을 밥 먹듯 써야 했다. 북경의 혹심한 겨울 추위를 무릅쓰고 새벽부터 길거리에 꿇어 엎드려 출근하는 각로대신(閣老大臣)들에게 손을 비비던 노구(老軀)의 정사는, 바로 역사 속에 그려진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각로들을 만난 정사. 그들의 괜한 트집으로 섬돌에 내동댕이쳐져 울부짖던 그 참상을 다시 무슨 말로 표현할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부질없다지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농락해 온’ 저들의 무례함을 제때 제대로 징치(懲治)했더라면 현대사는 좀더 다른 방법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징치’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만이라도 강구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온 국민이 참담함을 되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망해가는 명나라에게 빌붙어 국내에서 권력을 장악하려던 일부 무리들의 ‘꼼수’는 결국 민족의 자존심을 망치고 그후 조선에 잦은 전란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만 보아도, 통치 집단의 지혜로움은 분명 민족사 전개의 향방을 가르는 지표로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세상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할 리 없다. E H 카(Carr)의 말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임에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 없음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특히 21세기 초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집단들이 매우 우매(愚昧)하고 게으르다는 점, 국민으로서는 그것이 못내 통분하다.

역사책의 한 쪽만 넘겨 보아도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진실은 그득하다. 지금 중국은 남북의 분단 상황을 지렛대로 삼아 그 사이에서 철저히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 와중에 농락당하는 건 남북한 모두의 자존심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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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47
이젠 '죽는 연습'을 할 때다
영안실에서


후배의 부음을 받고 영안실로 달려가는 밤길은 멀고도 험했다.
번잡한 도회를 벗어나 접어든 꼬불꼬불 산길은 흡사 ‘저승길’ 같았다.
그랬다. 몇 발짝만 벗어나면 저승이었다. 그게 바로 삶과 죽음의 거리였다.
깜깜한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영안실에 도착해서는 크게 울리라 생각했다.
한 줌의 재로 우리 곁 어딘가에 내려앉을 그의 영혼을 위해 크게 울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어걸린 영정이 너무 화사하고 깨끗했다. 그 미소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준비해간 울음은 작은 신음으로 축소되어 눈자위만 붉히고 말았다. 말없이 이승을 떠난 그와 산 속 영안실에서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영안실에 다니면서 죽음을 수 없이 배운다. 아니 ‘죽는 연습’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떠올리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어떤 이는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살려고’ 버둥대는 통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초조해하고 당황해한다. 문 밖에 기다리고 있는 저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기만을 애타게 소원한다. 그렇게 가고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못이 하나 박힌다. 어떤 마무리건 의연하지 못할 경우 남는 건 슬픔과 욕됨 뿐이다.

후배의 마지막 며칠을 지킨 또 다른 후배는 그의 마지막이 쓸쓸했다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다.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까.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러나 삶과 죽음의 교차로를 그토록 쓸쓸하게 건널 이유가 있을까.
그보다 먼저 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도 우리보다 좀 먼저 갔을 뿐이다.
먼저 가는 사람으로서의 소회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에게 풀지 못한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서운함을 넘어선 ‘응어리’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거야말로 떠나는 자의 의무 아닐까. 하기야 선량한 그 친구는 누구와도 그런 서운한 관계를 맺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고운 관계만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생전의 인연들을 불러 서운함과 응어리를 푸는 것은 떠나는 자가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정신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다.

영안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잡담으로 떠들썩했다. 흡사 살아있음의 행복을 확인하려는 듯,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후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들 영안실에 가면 ‘죽는 연습’이나 한 번씩 해볼 일이다.

수원 연화장 장례식장에서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