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학술문2019. 7. 20. 08:33

 

 *이 글은 <<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한국문학과 예술>> 30집 게재)에 대한 서평으로, 필자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

 

 

궁중 융합무대예술 ‘동동(動動)’의 본질에 대한 모색과 결실-<<동동動動: 궁중 융합무대예술, 그 본질과 아름다움>>(민속원)을 읽고-

 

 

                                                                                                     하경숙(선문대 교양학부 계약제 교수)

 

 

이 책은 고려조와 조선조의 궁중 연향에서 공연되던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 ‘동동’에 관한 공동저술(저자: 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이다. ‘동동’은 고려 속악정재들 가운데 하나로서 아박(牙拍)이란 이름으로 조선조에서도 연행되던 가무악(歌舞樂) 융합의 궁중무대예술이다. 최근까지 <동동>은 ‘문자 텍스트로서의 동동’일 뿐이었고, 그것은 ‘고려속요·고려가요·여요·려가’등의 명칭으로 부르던 시문학 텍스트일 뿐이었다. 초창기 연구자들이 명칭에 대하여 갖고 있던 편견과 그로부터 확립된 문제들을 타개(打開)하고자 문학·음악·무용을 연구하는 저자들이 ‘동동’ 정재(呈才)의 융합예술적 성격을 분석적으로 고찰하기 시작했다.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불변의 서정이 융합 무대예술로 응집되었다는 것이 ‘동동’ 논의의 출발점이다. 특히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바치는 자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가·무·악으로 표현”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가무악 융합의 미학적 본질을 점검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결국 ‘동동’은 전통무대예술의 진수로 꽃피어났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대악후보>> ‘동동’의 리듬을 해석하여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악학궤범(樂學軌範)>> 소재 <동동>의 노랫말을 구체적으로 붙여, 그 노래와 무용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속악정재 ‘동동’이 지닌 가무악 융합의 본질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각 장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저자들의 의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전체 7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총서」, 2부는 「<동동>- 텍스트의 정체」, 3부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 4부는 「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 5부는 「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 6부는 「총결」, 7부는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노랫말 원문과 현대어 역, 복원음악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문헌과 재현 아박무(牙拍舞)를 비교·검토하여 상이점을 찾고, 조선전기 ‘동동’ 중기의 무용구조와 복원에 필요한 내용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1부에서는 속악정재 ‘동동’의 성격을 살펴 그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장르적 속성이나 명칭 등과 함께 학계에서 미해결된 속가의 문화·예술적 측면을 면밀히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동’이 그동안 하나의 공연물로 연구되지 못한 원인은 악보와 무보 해석의 불완전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동동’의 음악을 찾아야 하고, 그 음악에 노랫말을 융합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노래와 무용을 융합함으로써 가무악 융합의 속악정재 ‘동동’을 온전히 복원”(21쪽)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담론을 뛰어넘어,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가 ‘동동’이라는 구체적인 융합예술작품으로 구현되는 핵심임을 밝히고 있다.

 

2부 「<동동>-텍스트의 정체」(조규익)에서는 ‘동동 텍스트가 지닌 문화·예술적 본질과 지향성’을 찾고 ‘송도지사(頌禱之詞)와 선어(仙語)’의 관계, ‘놀이와 선어의 상관성’등을 규명했다. 저자(조규익)가 “‘동동’은 생산 시점 이후 현재까지 노랫말과 음악·무용의 인접분야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로 존재해왔고, 그 예술·문화적 콘텍스트 양상 또한 적어도 근대 이전까지는 유지”(62쪽)되었다고 밝혀, 텍스트 하나만을 적출하여 해석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는 원천적 오류를 초래하는 일로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콘텍스트(context) 의 현실을 살피는 작업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동동’에 송도의 말이 많고, 그것들은 ‘신선의 말’을 본뜬 것이라 한 <<고려사 악지>>의 언급이야말로 속악정재 ‘동동’이 당시의 당악정재들과 상호텍스트적 연관성이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저자(조규익)의 주장이다. 즉 당대 궁중악 중 당악과 속악은 ‘임금의 수와 복’을 송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행되던 예술장르였고, 그 범주에서 공연되던 정재들은 송도적 모티프의 구현을 지향하던 공연예술의 형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동놀이[動動之戱]’라 지칭한 <<고려사 악지>> 속악조에 따르면 동동이 지닌 놀이적 성격이 상세히 나타나고 있으며, 동시에 융합예술체로서의 놀이적 면모를 보여준다. 놀이에 상정된 대상은 임금이며 원시 제천행사들에서 공연되던 놀이들이 후대의 정재들에 이르러 그것들의 의례화·질서화를 통하여 완성된 예술의 모습으로 구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당악정재의 창작원리나 동기·구조 등과, ‘동동’을 비롯한 속악정재들이 상호텍스트적 연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상세히 보여준다. 이는 속악정재 ‘동동’이 당악정재의 악장들을 본뜬 송도를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패러프레이즈함으로써 속악정재 나름의 독자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화론적 측면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제 3부 「동동의 장르적 속성과 원형 모색」(성영애)에서는 <동동>의 장르적 속성 및 그간 문제가 되어온 <동동>과 <장생포>와의 관련성 등을 살폈고, <동동>의 원형 모색과 함께 그동안 미해결된 문제들의 방향을 찾고자 했다. 저자(성영애)는 “<동동>은 궁중에서 공연된 국가음악으로 정재의 악곡과 노랫말 모두 <동동>이란 명칭 아래 역사서나 악서(樂書)에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다”(77쪽)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장르 명칭을 ‘고려속악가사’로 부르고, 그 줄임말로 ‘고려속가’를 사용하는 것이 <동동>의 장르적 속성을 나타내는 정확한 용어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성영애)는 그간 논란이 많았던 <동동>과 장생포와의 관계를 다양한 문헌의 비교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사>> 악지와 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곡명과 창작자, 왜구 출몰지역으로 살펴본 내용을 통해 <동동>은 관찬서와 일반 문집에 기록된 <장생포>와 전혀 관련이 없었으며, <<동국문헌비고>>를 수보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상세히 밝혔다. 또한 <동동>은 궁중연례악으로서 회례연(會禮宴)·사신연使臣宴)·나례연(儺禮宴)에서 송축이나 송도의 의도로 연행되었으며, 특히 나례연 중 ‘처용지희(處容之戱)’ 안에서 ‘동동지희’가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동동’은 악·가·무를 통해서 임금에게 송도의 뜻을 바치는 종합예술작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문해(文解) 위주로만 연구해온 상황이 그간 <동동>의 원형을 밝히는데 어려움을 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 4부 「조선전기 ‘동동’의 가무악 융합 양상」(문숙희)은 ‘동동’의 선율을 찾고, 그 선율에 노랫말을 융합하여 ‘동동’ 노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노래와 무용을 융합하여 가·무·악으로 합쳐진 융합적 존재로서의 ‘동동’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문숙희)는 “‘동동’은 장구점 단위가 소절에 해당되고 악보에 가사도 없고 음 또한 퍼져 있어서, 악보에서 기본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113쪽)고 밝히면서 연구가 쉽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본박 찾기를 통한 방법’으로 해석된 리듬을 찾고, 그 중 ‘동동’과 같은 장단의 악곡을 통해 ‘동동’의 리듬과 정간시가를 찾는 노력을 기울여 결과를 도출하고 이에 ‘동동’의 특질을 찾아 보여주었다.

 

                                               

동동 복원공연 실황

 

“‘동동’은 정읍을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보고 있다. 정읍과 같은 이름을 공유하기도 하고 또 많은 선율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악곡에는 가사가 다르듯이 다른 부분도 있다.”(138쪽)고 설명하면서 두 악보를 비교한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동동’ 선율은 ‘정읍’의 선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대악후보>> ‘동동’ 악보는 현악기 악보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동동’ 악보에 ‘강’이란 용어가 직접 사용되지 않았지만, 음악적인 내용으로 볼 때 ‘동동’은 진작류 형식에 해당한다고 밝히며 ‘동동’에서 강이란 가사의 구를 싣고 있는 선율, 하나의 악구에 해당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동동’의 정간시가는 일정한 길이로 되어있지 않고, 5정간과 3정간이 각각 같은 길이의 3분박 한 박으로 해석되며 노랫말 텍스트 <동동>은 선율이 가사에 비해 매우 길 뿐만 아니라, 가사를 천천히 진행하면서 음을 길게 늘여 부르는 노래라고 설명했다.

 

제 5부 「조선전기 아박무 복원연구」(손선숙)는 문헌 고증을 통해 전기 아박무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아박무는 고려시대에 ‘동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조선전기에 명칭이 아박으로 바뀐 뒤 조선후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 이에 <<악학궤범>>에 기록된 조선전기 아박무를 검토, 기존의 재현 아박무를 점검하고 문헌과 재현 아박무를 비교 검토하여 복원 관점으로 기록구조와 진행구조를 살펴 복원에 필요한 실제 수용범위와 근거에 대해 살피고 있다.

 

저자(손선숙)는 “기존에 재현된 아박무는 기존의 선행연구자들이 해석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여 매월 가사에 따라 춤에 변화를 주는 등 다양한 춤사위를 구성하여 추었는데, 2월사부터 8월사까지만 새로운 춤을 추고, 10월사부터 12월사까지는 <<악학궤범>>에 기록된 ‘북향-대무-배무’를 추었다.”(155쪽)고 밝혔다. 이는 재현 때 수용한 변무의 원칙에 위배되고, 문헌 기록대로 재현하였다는 원칙에도 위배되어, 결국 재현 아박무는 그 어느 원칙에도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악학궤범>>의 변무가 새로운 춤이 아니라 ‘북향-대무-배무’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북향·대무·배무’할 때 박을 치는 횟수와 무용 진행구조 관점으로 분석했기 때문임을 밝혔다. 또한 ‘기존 재현 아박무’는 가사 및 춤 진행에 따른 무구 사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유절형식에 따른 ‘변무’의 원칙성에 위배되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구성인 대형 이동 위치와 방향, 춤사위가 필요한데, <<악학궤범>>에는 춤사위와 무용수들이 선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166쪽)고 밝혔다. 특히 이 책에서는 아박무 복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내용들과 보충되어야 함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악학궤범>>에 기록된 ‘동동’ 중기의 아박무는 ‘무진-북향무-대무-북향-배무-환북향-무퇴’로 추어야 하고, 이와 같은 춤을 무려 11회 반복하며 추는 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악학궤범>>과 같은 고무보를 바탕으로 아박무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문헌 고증이 선행되어야 하고, 궁중정재의 재현 및 복원을 위해 춤의 기록이 문헌으로 전해지는 <<악학궤범>>의 내용을 단순히 이론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궁중왕실문예시스템’ 마련과 궁중 정재복원전문가의 배출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6부 「총결」에서는 가무악 융합 예술체 ‘동동’의 본질을 분석하고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적용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고려조 궁중에서 시작된 속악정재 ‘동동’이 조선조에 들어와 ‘아박’으로 개명되면서 변화를 모색했고, 새롭게 추구된 변화가 그 뒷시대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미학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도 그래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측면은 지속과 변이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음악과 무용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복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노랫말 텍스트 ‘동동’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접분야인 음악 텍스트와 무용 텍스트를 이해해야 하고, 이들이 하나로 융합된 텍스트 전체를 이해·분석하기 위해서는 콘텍스트로서 당대의 예술적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융합 텍스트로서의 ‘동동’을 이해하기 위해 근대 이전까지 조선 왕조에서 공연된 재현 정재들을 통해 가무악 융합의 예술적·문화적 분위기를 이해·분석·수용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동동’이 단순히 문자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무악 융합 무대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동동’은 여성의 예술이다.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왕조의 임금이나 고귀한 존재를 대상으로 토로한 불멸의 사랑과 정서가 결합된 총체적인 종합예술임을 규명해낸 것이다. 저자(조규익·문숙희·손선숙·성영애)들은 동동의 예술미학을 구현하기 위해 그동안 기울여온 노력과, 그에 따른 다양한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노랫말 텍스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콘텍스트로서의 악곡과 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동안 연구자들은 간과해왔다. 고전시가가 어떤 양상으로 실연(實演)되어 왔는지에 대한 통합적 시각이나 시야를 충분히 갖출 필요가 있음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것들 가운데 상당수 작품들의 생산이나 향유계층이 민중이라는 사실만을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이 궁중에서 임금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연향에 쓰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음악학계 및 무용학계와 협업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느낀 저자들이 착수한 작업들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 모색과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책이야말로 ‘고려속요 동동’에서 ‘속악정재 동동’으로 인식을 전환함으로써 그 원형과 위상을 새롭게 찾아낸 구체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저자들은 ‘텍스트 지평의 전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텍스트의 본질을 외면한 채 무조건 답습해 오던 기존의 오류들과 다양한 문제들에 주목하고, 텍스트의 ‘분리에서 융합’으로 전환한 다음 지속적인 모색과 반성을 통해 만들어낸 연구 결과들 덕에 우리는 ‘동동’의 융합예술적 본질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동동’은 단순한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가 아니라 융합적인 궁중무대예술작품이다. 그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를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동동 저서

 

동동 해석(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9. 7. 20. 07:37

 

 

                                                <<넓고 깊게 지식을 나누다>>-박이정 30년사

 

 

‘책 허기’를 채워 준 은인

 

                                                                                                                        조규익(숭실대 교수)

 

음식과 책에 굶주리며 자랐다는 내 말을 요즘 젊은 세대들은 믿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책에 대한 굶주림의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사실 친구들 가운데 나는 유독 더했다. 너덜너덜한 교과서를 제외하면, 글자들이 인쇄된 비료 부대나 장에 가셨던 아버지가 간간이 들고 오시던 ‘농민의 벗’이 유일한 ‘읽을거리’였다. 책에 관한한 끔찍스런 암흑의 세월이었다. 간신히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책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긴 어려웠다.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번 돈에서 하숙비를 제외하고 남는 돈은 전공 자료집의 할부대금으로 깨끗이 소진되곤 했다.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을 수도승처럼 하면서도 책을 사 모으며 ‘골병 깊어지는’ 청춘을 보냈다. 그런 가난 속에서 해군사관학교와 경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숭실대학교에 부임한 2년쯤 뒤부터 연구실로 찾아온 서광문화사의 박찬익 사장을 만나기 시작했고, 비로소 팔자로 생각되던 ‘책 허기’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었다.

 

박 사장은 새로운 영인 자료집들이 나올 때마다 그것들의 묶음을 두 손에 무겁게 든 채로 내 방을 찾아왔다. 그는 내 표정에서 책 욕심, 자료 욕심을 어떻게 읽어냈을까. 만날 때마다 그는 나의 빈 곳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갓 우려낸 녹차처럼 따뜻하고 담담했다. 서울 유수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박 사장은 유명한 은사들을 언급하며 자신의 전공에 자부심을 보여주곤 했다. 시골에서 간신히 학업을 마친 ‘촌놈’으로서는 그의 말을 열심히 경청하는 게 고작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부분 갖고 있던 ‘사제 간의 추억들’을 나는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득의 달인’으로 생각되던 그로부터 배우는 게 많았다. 박 사장의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료들은 내 빈 연구실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했다. 내 호주머니가 빈 듯싶으면, ‘사정 되는 대로 주시면 된다’고 안심시키는 그의 따뜻한 말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단색 양장의 영인본들은 대부분 선학들의 논문 속에서나 구경하던 자료들이었다. 그런 자료들을 갖고 논문을 쓰면서 비로소 내 콤플렉스는 한 낱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선학들이 신활자로 옮겨놓은 옛 자료들을 대하며 늘 ‘암죽’을 떠올리던 나였다. 곡식의 가루를 밥물에 타서 끓인 유아용 죽이 암죽이다. 내 어릴 적 시골에서는 모유가 나오지 않거나 갓 젖 뗀 아가에게 엄마가 우물우물 씹어 죽처럼 만들어 먹여주시던 ‘그것’을 암죽이라 했다. 당시에 간간이 선학들이 신활자로 바꾸어 출판하던 자료집들은 내게 일종의 암죽이었다. 빨리 암죽의 단계를 뛰어 건너 딱딱하고 거친 곡물 그 자체를 내 ‘이빨’로 씹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 사장을 의지하게 된 것도 당시 내가 ‘학문적 이유기(離乳期)’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야 고백하건대, 박 사장이 놓고 간 자료들을 어루만지며 한 나절을 상념에 빠진 적도 있었다!

 

교수 생활 몇 십 년 해오면서 만용이라도 생겼던 것일까. 겁 없이 여러 권의 책들을 냈는데, 그 가운데 박이정이 만들어 주신 두 책은 잊을 수 없다. <<만횡청류의 미학>>(1996년 초판/2009년 제2차 수정증보판)과 <<17세기 국문 사행록 죽천행록>>(2002년)은 나름의 학문적 도정을 보여주는, 내 분신들이다. 고전시가를 공부하면서 갖게 된 모색과 돌파구를 함께 제시한 것이 전자이고, 사행록(使行錄)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발굴한 새 자료를 야심차게^^ 학계에 제시한 것이 후자이다.

이른바 ‘시조’와 악장을 통해 학계에 진출한 입장이지만, 국문학계의 의식과 담론들에서 명목과 실질이 잘 들어맞지 않음을 느끼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초창기 어른들이 잘못 끼우신 ‘첫 단추’의 관성 때문이리라. 학계에서는 굳건하게 ‘사설시조’로 호칭하지만, <<진본 청구영언>> 편찬자 김천택의 원래 의도가 ‘사설시조’ 아닌 ‘만횡청류’에 담겨 있다는 점을 필두로 그에 관한 모든 것을 그 한 권의 책에서 다루고자 했다. 지금도 누군가들은 음습한 곳에서 이 책의 내용을 무더기로 도용하면서도 그들의 참고문헌에는 이 책을 올리지 않는다. 깨끗지 못한 학계의 풍토 속에 ‘사설시조’ 아닌 ‘만횡청류’의 문예미학을 제시하여 고전시가의 이름을 바로잡겠노라는 나의 패기를 알아준 곳은 박이정 뿐이었다.

전국을 누비며 고서(古書)를 찾아다니는 습관이 생긴 것도 책에 대한 굶주림의 트라우마로부터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탐서(探書)의 여정에서 만난 최고의 고서 수집가 이현조 박사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죽천행록>>을 입수했으며, 그것을 연구・분석한 것이 후자이다. 비록 ‘건・곤’ 두 편 중 곤 편만을 입수했으나, 자료를 어루만지며 며칠 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생애 최고의 흥분을 경험했다. 그 덕이었을까. 국어국문학회에서의 논문 발표와 기고, 책 출간까지 나로서는 최단시간에 해치운(?) 작업이었다. 박이정 박 사장의 적극적인 호응과 도움이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최근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발견한 건 편을 김윤아 박사의 해제로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의 학술지 <<한국문학과 예술>> 28집에 실을 수 있었으니, 그 소중한 인연 덕분이리라.

 

***

 

학문적 도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요즈음. 보잘 것 없는 나를 이룬 모든 것들을 가끔씩 떠올려 본다. 오늘의 나를 만든 9할은 선조들이 남겨주신 작품들과 선학들의 연구들, 그리고 그것들을 모으고 가공하여 눈앞에 디밀어 준 학술출판 사업자들의 덕이다. 그 중심에 박이정과 박찬익 사장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이날까지 나는 학자로 그는 출판문화 사업자로 동행해 왔음을 오늘 비로소 깨닫는다. 그 세월이 30년이다! 앞으로 30년도 우리는 함께 청청한 모습으로 그 길을 갈 것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