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20. 11. 5. 22:06

 

 

<중앙일보> 2020년 11월 4일자 기사

 

 

아침 일찍 초코와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마치고 거실에 들어오는 순간, ‘까톡!’소리가 울렸다.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 스크랩된 신문기사 한 건이 친구 이대구[전 충남교육청 정책개발담당 장학관]의 멘트와 함께 올라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안경을 찾아 쓰고 찬찬이 살펴보니, 경현이에 관한 기사였다. 삼성에서 제정한 ‘AI 연구자상’의 첫 수상자로 경현이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세계 학자들이 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 조경현’이 중심에 들어 있는 것은 한국 신문의 기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내 놀라움은 컸다. 그간 열심히 노력하여 AI 분야[특히 딥러닝을 이용한 자연어 처리]의 ‘탁월한 연구’로 인정받아 온 것은 사실이고, 그 덕분일까. 세계적인 명문대학 NYU[뉴욕대학교]에서 불과 4년 만에 테뉴어십[종신교수 직위]을 받는 영광도 누린 바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AI 분야의 전도유망한 연구자들에게 주는 상’의 첫 수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친구들의 제보로 알게 된 것이 우선 어이없는 일이려니와, 무엇보다 불과 이틀 전의 통화에서도 부모에게 전혀 귀띔조차 하지 않은 녀석의 ‘무심함’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단톡방 '공주사대 국어교육과 27회 동기회'

 

정신을 차리고, 친구들의 축하인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여러 매체들에 실린 기사들을 검색해보고 나서야 그것이 매우 영광스러운 상임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점심 무렵 간신히 전화 연결이 된 녀석으로부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답변을 받고서야 그동안 부모에게 한 마디의 귀띔도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좀 쑥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중앙일보> 2020년 11월 4일자 기사를 링크하고 포스팅한 글

 

나도 초년 교수 시절 몇 건의 상들[성산학술상/한국시조학술상/도남국문학상]을 받은 일이 있어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사실은 그 때의 나도 그다지 흥분하지 않았었다. 솔직히 흥분보다는 오히려 부담이 컸다. 내가 상을 받을 만큼 ‘충분히 훌륭한가’에 대하여 자신이 없었고, ‘이런 기조를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게 상을 안겨주셨던 학계의 어른들은 내가 ‘완성되었다’는 판단보다는 ‘약간의 싹이 보이니 좀 더 노력해보라’는 다그침의 뜻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그런 깊은 속을 알지도 못하고, 으레 ‘상이란 완성된 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짧은 생각에 마냥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 경우를 비추어 보니, 경현이의 반응도 충분히 납득할만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상 받는 것처럼 기분 좋고 신나는 일이 어디에 있으랴. 작게는 한 집단의 발전을 이루는 데서, 크게는 문명의 진보와 고양을 꾀하는 데서 상이라는 제도가 발휘하는 힘이야말로 그 얼마나 큰가. 상을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일의 놀라운 진척이나 발전에서 동기부여의 힘이 절대적이고, 동기부여의 가장 큰 수단이 상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이 다를 수 없고, 미래세라고 지금과 달라질 수 없다. 그래서 상은 많이 줄수록 좋고, 많이 받을수록 좋은 것이다. 아들이자 학계의 동료인 조경현 박사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말을 보내고 싶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20. 11. 4.>

 

 

Posted by kicho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알림2020. 11. 2. 09:14

 

<<한국문학과 예술>> 제35집을 발간했습니다. 하나의 학술지가 확고히 자리를 잡으려면 70~80호는 발간해야 한다고 보는데, 35집은 이른바 '꺾어지는 홋수'로서 안정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비로소 진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초심(初心)을 유지하며 100호[집]를 훌쩍 넘긴 다수의 학술지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우리가 그런 학술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 기본을 다질 필요가 있음을 절감합니다.

 '문학과 예술의 융합적 연구가 저희들이 지향하는 목표입니다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임을 항상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지속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학계에서 각종 연구소와 학술단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는 있지만, 열악한 현실 때문에 내실을 기할 수 없는 것이 큰 문제이고, 우리 연구소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구소에 '볕드는 날'이 도래하리라는 희망 아래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2006년 한국전통문예연구소로 출범했고, 그 후 한국문예연구소로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로 개명해 오면서 우리의 지향점은 예술작품에서 문학과 예술의 행복한 결합 양상을 분석하여 논리화 시키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 지향점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근대 이전의 작품들 가운데는 문학과 예술의 융합체가 비일비재였고, 그런 작품들의 본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라도 잘 만들어진 도구가 절실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효율적인 분석도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앞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협업(協業)의 정신 아래 활발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하리라 봅니다. <<한국문학과 예술>>은 그런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드문 학술지입니다.  

 앞으로 더 잘해 보겠습니다. 우리 학술지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적극적인 지도와 편달 또한 아끼지 말아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 11. 2.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조규익 드림

 

               

**********

 

 

 <<한국문학과 예술>> 제35집

[‘풍자・오락・죽음: 소설적 담론의 세 양상’ 특집호]

 

 

목차

 

특집논문 : 풍자・오락・죽음: 소설적 담론의 세 양상

 

1. 윤준섭, 조선 후기 화훼류 우언 <리국각매문답(籬菊閣梅問答)> 연구

2. 배정상, 일인칭 시점 딱지본 대중소설 연구

3. 서신혜, 유영모의 죽음철학 시작점으로서의 소설 「귀남과 수남」

4. 박선애, 노년의 고독과 좋은 죽음에 관한 두 시선 - 김기창의 <모나코>와 한승원의 <피플붓다>를 중심으로

 

일반논문

 

5. 한경자, 최승희의 러시아 공연 작품 분석 : 1956~1957 공연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6. 김은혜, 문화예술교육의 맥락에서 인문정신문화와 무용교육의 융합적 접근 모색

7. 성영애, 연산군대(燕山君代) 여악(女樂) 확대정책의 전개양상

8. 임재욱, 새로 발견한 금보 <<南薰舊譜>>의 특징과 자료적 가치

9. 장경우, 강령탈춤 대본의 통시적 변이양상 연구

10. 정영문, <한양가>에 나타난 한양의 놀이문화 연구

11. 강정화, 이광수의 미술비평문 연구

12. 안용희, 자본의 광학과 루저 혁명가 이상

13. 이주미, 조선족 서신을 통해 본 조선족의 경계인 의식과 민족 정체 성 –문화대혁명 이후 한중 수교 전까지의 서신에 나타난 '아리랑'을 중심으로

14. 최미정, <<신대륙>> 여성수필의 공간과 젠더지리

15. 반재유, 경남일보의 삼강의일사 연구

16. 조규익, 고려 말 「신찬태묘악장(新撰太廟樂章)」 연구-텍스트 구성양상과 그 정치・문화적 의미

 

 

 

 

Posted by kicho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글 - 칼럼/단상2020. 9. 30. 20:59

터 파기 공사 중 나온 돌에 옥호(屋號)를 새기고...

 

 

  잡답(雜沓)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정밀(靜謐)의 공간 에코팜으로!

  드디어 삶의 터전을 옮겼다. 2020년 9월 2일엔 당진의 막내 동생 병원에 10년 가까이 보관해 두었던 책 짐을, 5일엔 서울 아파트의 책들과 살림살이들을, 12일엔 학교 연구실의 책 짐을 각각 실어 나름으로써 세 차례에 걸친 이사의 대장정을 마쳤다. 이제 내 생애 노마드의 천막을 걷어 나귀 등에 싣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에코팜에 뿌리를 내려 살다가 때가 되면 그 옛날의 은자(隱者)들처럼 자취 없이 땅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올해로 서울 살이 장장 33년째. 서울 안에서 두 번째 이사 후 정착한 1992년으로부터는 28년 만에 서울을 뒤로 하게 된 것이다.

 

   가슴이 후련했고 발걸음은 날 듯이 가벼웠다. 30년을 넘게 살아도 서울은 ‘늘 타향’이었다. 내 집에 살면서도 잠시 세 들어 사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했다. 문만 열면 가게들과 병원들, 교통수단들이 손에 잡힐 만한 거리에 늘어서 있으니, ‘서울 생활이 불편하다’는 것은 어폐(語弊)가 있는 표현이리라. 그런 차원의 불편이 아니다. 먼 길을 가던 중 잠시 쉬어가려 짐을 내려놓았다가 인파에 휩쓸려 어정세월 30년을 넘긴 지금, 정신을 차려보니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지 않은가. 사람들에 부대끼며 익힌 처세술이나 생존방식 자체의 바탕이 바로 불편 아닌가. 내겐 자성(自性)을 관조(觀照)하지 못한 채 희희낙락 유물론적 편안함에 안주하는, 그 자체가 불편이었다. 그래서 20여 년 전부터 내 나름의 ‘가거지(可居地)’를 물색해 왔다. 그러던 중 8년 전 에코팜을 발견했고, 그간 농사를 지어오다가 드디어 올해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정년 전 한 차례 ‘1년의 연구년’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회가 바로 올해 주어졌다. 사실은 연구년의 호기(好機)에 일본의 모 대학으로 건너가 그간 진행해 오던 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코로나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착수한 것이 바로 ‘에코팜에 집짓기’였고, 불안과 초조 속에 6개월 만인 지난 7월 말 완공했으며, 50여일의 장마와 태풍이 휩쓸고 간 이달 초・중순에 이사를 단행하게 된 것이다.

 

   지난 8년간은 이곳의 풍토와 문화에 적응해온 기간이었다. 주민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야 했고, 농촌 친화적인 사고방식도 갖추어야 했다. 잡초를 뽑거나 작은 나무들을 심고 큰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하면서 생산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 것은 물론, 내가 익혀 온 도회적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땅이 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이 공간에서 통용되는 삶의 양식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 동 트기 전 잠자리에서 일어나 정안천변을 산책하며 온갖 새들과 고라니들을 만나고, 갈대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나의 내면을 정비하기 위한 필수적인 일과였다. 동네 어른들을 만나 농사일을 묻는 것은 이 지역의 풍토를 호흡하여 내 육신의 자양분으로 삼기 위한 수양이자 공부였다. 농사일에 관한 대화는 토착민들과의 소통에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온이 전달되고,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

 

   언젠가 연못을 만들었다. 습기가 많아 늘 물이 질척이는 곳을 파고, 그 곁으로 우회도로를 뚫었으며, 연못 맞은편에 채소밭을 만들었다. 관성지(觀性池)라 명명한 연못을 틈틈이 돌며 내면을 관조하노라면, 복잡하던 마음은 한결 차분해진다. 만들고 보니,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따로 없다! 미꾸라지 1kg과 손바닥 크기의 보리붕어 다섯 마리를 풀어 놓으니 관성지에 아연 생기가 돌고, 맹꽁이도 개구리들도 덩달아 몰려들어 자리를 잡았다. 잠자리는 알을 뿌리느라 꼬리를 물에 내리기 일쑤이고, 이 동네 길냥이들도 목을 축이며 제 그림자를 내려다보곤 한다. 조만간 이 고을의 진객 백로도 날아 올 것이다. 관성지를 한 바퀴 돌면 채소밭이라, 배추와 무를 바라보며 농부로서의 내 정체성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채소밭 옆으로 펼쳐진 풀밭에는 3년 전에 심은 30 그루의 소나무가 제법 꼴을 갖추어 가는 중이다. 소나무의 거침없는 기상을 바라보며 에코팜에 들어온 것이 내 생애의 ‘첫 성공사례’임을 실감한다.

 

***

   이해관계의 메커니즘 속에서 늘 불편하던 공간이 서울이었다. 사람 사는 곳이니, 에코팜이라고 어찌 이해관계와 무관하랴. 다만 자연에 몸을 의탁한 이상, 인위(人爲)의 이악스러움을 훨씬 자주 순화시켜갈 수는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관성지에 비춰보며 자꾸만 흠을 닦아내다 보면, 저 후덕한 무성산의 능선을 닮아가지 않겠는가.

  30년 묵은 짐들의 정리를 가까스로 마무리한 오늘. 조만간 ‘에코팜 찬가’가 나오길 기대하며, 나 자신과 강호의 벗님들께 ‘무성산 에코팜의 약속’을 조용히 상기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2020. 9. 30.

 

백규

 

 

 

 

관성지(觀性池)
잠시 쉬는 틈에 영빈이와 대화를...

                                                        

서재 안의 연구실
서재

 

 

Posted by kicho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글 - 칼럼/단상2020. 9. 4. 17:31

 

내일은 에코팜으로 이사 가는 날이다.

조금 전 서재를 정리하던 중 미색 봉투 하나가 눈앞에 툭 떨어졌다.

급히 내용물을 꺼내 펼쳤다.

, 깨알 같은 글씨의 정성을 다한 편지였다.

겨우 한 주 남짓 전 블로그에 소개한 제자 홍정현 박사가 학부 시절에 보내 준 편지. 읽다가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따스한 행복감이 전신에 번졌다. 편지라기보다는 다정한 음성이 뚝뚝 떨어지는 녹음테이프같은 것이었다.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보낸, 정감 넘치는 편지였다.

 

2000년이면 그녀가 학부 3학년 때였으리라. 매사에 허점이 많은 내가 어찌 그녀의 편지를 이렇게 고이 간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 편지를 받고 고마운 마음에 무엇으로라도 그녀를 상찬(賞讚)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의 내 장기(長技)대로 깜빡 잊어버린 채 오늘날까지 밀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은가. 825일에 나는 그녀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고, 감동의 마음을 블로그에 올린 바 있었다. 그로부터 겨우 열흘이 지난 오늘. 30여년이나 묵은 서재의 종이뭉치와 책 더미들을 간신히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흡사 교수님 저 여기 있어요!’하는 외침이라도 내뱉듯 생생하게 내 눈 앞에 현신한 그녀의 편지였다.

 

세월의 여울에 떠밀려 오는 동안, 편지를 받은 사실도 그 내용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읽어보니 그녀의 나직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가 오롯이 살아 있었다. 그동안 답답한 종이더미 속에서 용케도 살아 있었구나! 수많은 제자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일을 반복하며 긴 시간을 살아온 나는 졸업축사를 하게 되는 경우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앞으로 10년 후 여러분은 이 사회의 어느 분야에선가 나름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치열한 10년을 보낸 후 나를 찾아와 여러분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지금 나와 함께 ‘10년 후 재회의 약속을 합시다!”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를 20년 만에 다시 찾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18년 만이지만. 그게 무슨 문제이랴. 18년 만에 교육학박사가 된 그녀를 만났고, 20년 만에 학부 3학년의 그녀를 재회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내일 이사가 매우 순조로울 것이고 에코팜에서의 삶이 행복할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멋진 조짐'이 아니면, 그 무엇이란 말인가.^^

 

***

 

 

홍정현이 2000512일에 보내준 스승의 날축하 편지

 

 

조규익 교수님께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저 홍정현입니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한동안은 시험 때문에 좀 바빴습니다.

교수님께선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몇 번인가 홈페이지에 들렀었는데, 글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홈페이지 제작자가 아드님이더군요.

정말 놀랐어요.

아직 어린 학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잘 다루는 모양이에요.

전 홈페이지 제작의 경지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는데 말이에요.

전에 편찮으시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완쾌하셨죠?

항상 건강하셔야 해요.

그러셔야지 지금과 같이 참 학자의 모습으로 연구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스승의 날을 맞아서, 교수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제게 아버지의 이미지가 되어 주시는 교수님의 배려에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든든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수님 가정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2000512일 금요일

-제자 홍정현 올립니다-

Posted by kicho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홍정현

    교수님. 잠이 안 와서 교수님께서 올려주셨던 글을 다시 읽고 싶어 들어왔다가 왈칵 울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가장 즐겨 쓰는 파란색 잉크가 담긴 만년필로 써진 걸 보니 저 글은 제 글이 분명한데....
    스물 두어살 즈음 교수님을 한 없이 동경하였던 젊은 날의 제가 종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네요.

    교수님께 수도 없이 닿았을 제자들의 편지 중에
    보잘 것 없는 제 글도 간직해 주고 계셨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사실 오늘 좀 울적하고 마음이 헛헛해서 용기를 얻고 싶어서 백규서옥에 들어왔는데,
    교수님께서 적어주신 글이 제게 가슴 벅찬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2시가 지난 시간이니 오늘이 에코팜으로 이사가시는 날이네요.
    자유로운 몸이라면, 일손이라도 덜어드리러 가겠다고 호기롭게 말씀드리고 싶은데... 죄송해요.

    2020.09.05 01:04 [ ADDR : EDIT/ DEL : REPLY ]
  2. 정현, 댓글 고맙다. 당시에는 네 편지를 잘 간직하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넣어 두었을 텐데, 그 이후 깜빡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타이밍맞춰 내 앞에 나타나는 걸 보며 '우연 이상의 어떤 힘'을 느끼게 되었지.^^ 덕분에 그간 소원했던 세월의 강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 오늘 일단 이사를 하기로 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나머지 짐이 내려가야 완성되는 '이사 작업'(?)이다. 살면서 '언짢은 일들'은 늘 나타나기 마련이지. 내가 기억하는 너처럼 그런 일들 쯤은 잘 이겨나가리라 믿는다. 네 삶을 돌이켜 보면 '긍정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디 힘 내기 바란다.

    2020.09.05 06: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