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9. 12. 3. 10:56

바퀴벌레-네이버 지식사전

 

                                                                                                                                                                                                                                                                                                백규

 

   어릴 적, 내가 자라던 초가집은 안방과 건넌방, 대청, 대청건넌방, 작업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업실은 주로 밤 시간에 부모님과 내가 짚으로 가마니를 짜던 작은 방이었다. 하루 밤에 가마니 두세 장씩 만들면 5일장 날에 맞추어 10~20장씩 내다 팔 수 있었고, 나머지는 곡물 보관용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병원에 가시고, 한동안 작업을 쉬게 되었다. 자연히 그 방에 출입할 이유도 없었다. 한참 만에 무언가를 찾으러 어두컴컴한 그 방엘 들어갔다. 작은 플래시로 구석의 메꾸리 근처를 비추자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다. 나중에 그것들이 바퀴벌레와 쥐며느리인 줄 알았지만, 손톱만한 벌레들이 ‘나 살려라!’ 하면서 사방으로 기어 나와 달아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메꾸리를 들추고 그 안에 불을 비췄다. 아, 그곳엔 상당히 오래 전에 죽은 채 썩어가고 있는 쥐 한 마리가 있었다. 음습한 그 곳에서 썩은 쥐 고기를 맛있게 파먹던 바퀴벌레들이 난데없는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끔찍한 바퀴벌레들이었다. ‘절지동물 문>곤충류>바퀴목’으로 분류되며 전 세계 4천여 종이 있다는 그 놈들. 우리나라에도 10종[독일바퀴, 산바퀴, 줄바퀴, 경도바퀴, 일본바퀴, 미국바퀴, 호주바퀴, 먹바퀴, 갑옷바퀴, 가시바퀴]이나 서식하고 있다 한다. 그 생식력 또한 엄청나서 죽으면서까지 몸에 싣고 있던 알들을 퍼뜨린다고 하지 않는가.

 

***

 

  요즘 난데없이 서울 도심에 바퀴벌레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언론들의 보도가 요란하다. 대명천지 21세기에 바퀴벌레들을 떼거지로 목격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긴 하지만, 생김새나 생태적 습성으로 보아 내가 어릴 적 보던 그 바퀴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 바퀴들이 기어 나온 근원을 파보면, 분명 내 어릴 적 그 메꾸리를 들어 올렸을 때처럼 ‘썩어가는 쥐 한 마리’가 들어 있을 것이다.

   바퀴벌레가 더 모여들어 번식하기 전에 그 ‘썩어가는 쥐 한 마리’를 바짝 태워 버리고, 그곳에 효과 좋은 소독약을 뿜어야 하리라. 그래야 온갖 해충들도 전염병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완성되어가고 있는 가마니-네이버 이미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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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1. 24. 00:33

 

                                                                                                                                                                                                                                       백규

 

  최근 들어 귀촌준비에 ‘올인’하다시피 해온 지난 몇 년간이 자꾸만 떠오르고, 부질없는 질문들만 꼬리를 잇는다. ‘조율만 하다가 연주다운 연주는 해보지도 못하는’ 피아니스트처럼, 준비에만 내 인생의 진액을 모두 소진해가고 있는 건 아닌가. 길게 느껴지기만 하던 시간의 여울들을 넘다 보니 어느 새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던져야 할 타이밍에 도달하면서 자꾸 주춤거려지는 것은 왜인가. 몸에서 기름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정비례로 마음에서도 자신감이 빠지고 있는 것일까. 늙어갈수록 생활에 편리한 대도시가 좋을 거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귓전으로 흘려 들었는데, 그 말들이 고장 난 레코드판 다시 돌아가듯 지금서야 새록새록 마음에 되살아나는 것은 왜인가.

 

  얼마 전 시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고, ‘대지 분할・경계 측량’을 끝냈으며, 오늘 집터와 주변 땅의 지번(地番)을 받았다. 지난 몇 달 간 토목사무소를 통해 토목측량을 했고, 건축설계사무소를 들락거리며 건축설계를 마쳤으며, 그 설계를 구현하기 위한 기초 작업까지 비로소 마무리한 것이다. 초보 농부의 서툰 농법으로 잡초에 휩싸여 신음하다가 올 한 해 가색(稼穡)의 장인(匠人)들로부터 ‘땅 대접’을 제대로 받은 내 아름다운 땅에 붉은 고추 대신 집을 심게 된 것이다! 바로 내년 봄에.

 

  그동안 집 짓는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충고들을 선배들로부터 무수히 들었다. 닳고 닳은 건축 시공업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며, 돈은 돈대로 들고 집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집 한 채 짓고 나면 ‘폭삭’ 늙고 만다는 것이다. 그동안 살던 아파트에서 그냥 눌러 살든지, 굳이 시골에 가려거든 누가 살다 내 놓은 집을 얻어 잠시 살아본 뒤 결정하는 게 백 번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사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돈이나 정력을 생각하면 은근슬쩍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냥 그런 말들을 수용하여 도시 한 구석의 내 후줄근한 공간이나 시골 어느 골짜기 누군가 살다가 버려두고 떠난 공간에서 내 삶을 마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나는 어린 시절 초가집에서 살았다. 농부로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이 나무와 흙으로 지으신 집에서 10대 중반까지 살다가 집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십 년 세월, 하숙집・자취집・아파트 등을 전전하며 이 날까지 살고 있다. 부모님의 집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만 빼면, 모두 ‘남의 집’에서 살아온 것이다. 부모님의 집도 내 집은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남이 지어놓은 ‘끔찍하게 획일적인 공간’일 뿐, 아직도 내 집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덧없이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인생, 잠시라도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살다 가는 것을 사치라 타박할 수 있는가. 나는 내 뜻에 따라 지은 내 집, 그것도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집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2년 반 후에 찾아올 정년. 내겐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연과의 대화와 사색을 통해 내 공부와 인생을 마무리해 가리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14년 전 유럽 여행 중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너편 언덕에서 만난 ‘철학자의 길’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네카 강이 흐르고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대학촌이 손에 잡힐 듯이 건네다 보이던 그 언덕길. 그 때 나는 그 길을 걸으며 그 옛날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들을 떠올려 보았다. 칼 야스퍼스, 칼 만하임, 헤겔, 가다머 등등. 쟁쟁한 철학자들이 그 길을 걸으며 생각을 다졌을 것이다. 내가 집을 지으려는 곳에 그렇게 예쁜 대학촌은 없다. 눈을 들면 폐교된 옛 초등학교와 띄엄띄엄 무리지어 서 있는 민가들이 전부다. 그러나 그것들을 품어 안고 있는 산세는 하이델베르크 못지않게 아름답고 보암직하다. 그 경치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은 생각의 샘물이 퐁퐁 솟아남을 느낀다. 그래서 그곳에 내 작은 와옥(蝸屋)을 앉히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고 아일랜드의 문인 조지 무어(George Moore)는 말했다. 그간 나는 내가 필요로 하고 세상이 필요로 한다고 믿는 것들을 찾아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어쩌면 그것들은 환상이나 신기루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조지 무어의 말처럼 그것들 모두는 앞으로 내가 지을 집 안에 오롯이 들어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집을 짓는다. 아니, 지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간 환상을 찾아 헤매 온 내 영혼을 포근히 안식하게 하는 길일 수 있다.

 

에코팜은 밤 천지다

                                          

이 배추를 누가 다 먹을꼬

 

 

일을 마치고 동네 분들과 가볍게 한 잔을...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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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9. 11. 17. 05:51

, 성오 선생님!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비보입니까?

엊그제까지도 청청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홀홀히 떠나시다니요!!!

2019년 11월 8일의 이 비보는 부모님 소천 이후 최대의 충격으로 저를 후려쳤습니다.

 

인사동에서 선생님을 뵌 지난 6월 6일을 잊지 못합니다.

청년처럼 당당하신 모습으로 인사동 한 복판에서 저희 부부를 기다리시던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반년만 지나면 ‘미수(米壽)’라고 말씀하시며 쓸쓸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의 표정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69516350122180&id=100011914603684&sfnsn=mo

 

이제 저는 논문을 써서, 책을 써서, 누구에게 보여드려야 하나요?

제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시리라 믿어온 선생님이 안 계신 이곳.

다시 저는 누구를 표준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정신적으로 의지해온 선생님을 보내 드릴 수밖에 없는 지금.

저는 적지 않은 나이 육십 대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날짜만 헤아릴 뿐 제게는 저를 지탱할 힘도 거친 바다를 항해해 나갈 등대도 없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19년 11월 11일, 선생님의 발인 날 아침

중국 절강대학 빈관의 객실에서

크게 울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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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9. 10. 27. 17:01

 

지금까지 대학으로부터 연구년을 받아 두 차례[1998. 1.~1999. 2./2014. 1.~2014. 8.] 미국에 체류했었다. 첫 연구년은 LG 연암재단 지원의 ‘해외 연구교수’로 UCLA에서, 두 번째는 풀브라이트 재단(Fulbright Foundation) 지원의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각각 황금 같은 연구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두 곳 모두에서 다수의 교수들과 교유했는데, 그들이 속한 트랙들[tenure track/non-tenure track]에 따라 그들의 심리상태는 두 갈래로 나뉜다는 점을 느꼈다. 말하자면 종신교수(tenured professor)로 승진할 수 있는 테뉴어 트랙 교수와 달리 난테뉴어 트랙 교수는 한시적인 계약 교수들이었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정년직 교수’- ‘비정년직 교수’와 유사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정년직 교수는 몇 차례의 심사를 거쳐 정년(65세)이 보장되는 반면 비정년직 교수는 몇 년 단위로 계약을 반복하면서 정년까지 가거나 그 전에 그만 두어야 하는 트랙이다.

 

아예 정년이 없는 미국의 종신교수는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건강문제가 생기거나 필요 연금액이 충족되는 등 개인적인 여건에 따라 스스로가 물러날 때를 결정하는 만큼 죽을 때까지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종신직’이란 말 자체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는 건 사실이다. 그러니 그 나라의 테뉴어 트랙은 우리나라의 ‘정년직’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물론 미국의 종신 트랙 교수라 할지라도 조교수의 경우는 매년 심사를 받아 6년째에 부교수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1~2년 뒤 학교를 떠나야 한다. 미국 주요 공립대학들의 경우 대략 49%의 교수가 종신교수이거나 종신직군 교수들이며, 사립대학들의 경우 대략 33% 만이 그런 사람들이라고 한다.

 

당시 내가 주로 만난 교수들은 조교수들이었는데, 한 눈 팔 사이 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늘 무엇엔가 쫓기듯 하는 그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큰 연구에 몰두하는 건 종신교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상대적으로 그들은 느긋하여, 여행이나 취미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았다. ‘테뉴어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로 자신에게 부여된 햇수를 헤아리며 초조해 하는 조교수 급 테뉴어 트랙 교수들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 어려움을 현지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미국 교수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다.

 

***

뉴욕대 컴퓨터과학과의 조교수로 있는 큰 아이[조경현]가 영주권과 테뉴어 심사를 동시에 받게 된다는 말을 올해 초에 누군가가 말해 주었으나, 귓전으로 흘려 들은 나였다. 2015년 9월 대학에 부임하면서 미국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영주권은 물론 테뉴어를 그렇게 일찍 줄 리 만무하다고 생각해온 터여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5월이 되자 영주권이 발급되었고, 대학으로부터는 9월 1일부터 부교수로서 종신교수직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말하자면 영주권은 미국 입국 3년 반 만에, 종신교수직은 뉴욕대 교수 취임 4년 만에 받게 된 것이었다. 뉴욕을 다녀 온 아내의 말에 의하면, ‘Outstanding Scholar’라는 말이 통지서에 쓰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영주권과 종신교수직 조기 부여의 사유인 모양이었다. 아버지로서 자식 자랑인 것 같아 좀 뭣하지만, 큰 아이가 전공인 AI(인공지능)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는 만큼, 영주권과 종신교수직을 일찍 부여함으로써 녀석을 잡아두려는 미국 정부와 대학의 정책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그 어렵게 생각되는 종신교수직을 매우 이른 나이에 받았다. 그의 나이 서른넷이니, 서른여덟에 겨우 정교수(정년보장)에 오른 내 경우를 생각하면 매우 빠른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혹시 그가 나태하거나 자만에 빠질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문득 들었으나, 종신교수가 되고나서도 연구와 발표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일단 안심하기로 한다. 서울대, 카이스트 등 국내 대학들에서 스카웃하려는 여러 제의들도 고사한 채 학문적 성취만을 바라보며 매진하는 그가 대견스럽다. 

 

https://m.youtube.com/watch?v=hJbXEd5gyMk&feature=youtu.be

 

오늘 포탈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녀석이 언급된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그가 현재 뉴욕대 종신교수와 페이스북의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봉이 10억’이라는 언급은 오보임이 분명하다. 그 스스로 트위터에서 ‘Not at all’이라 답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돈보다는 연구 과제들의 의미 있는 마무리와 발전만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인 듯하다. 돈을 헤아리기 시작하면, 연구는 그 순간 정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시니어 학자인 내 입장에서 미국 유수 대학의 종신교수가 된 그의 연구도정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길 기대할 뿐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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