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12. 9. 11:50
*알립니다. 저는 올해(2007) 초에 '조규익 임미숙의 유럽 자동차 여행기 <<아, 유럽!>>(푸른사상)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그 원고에 해당하는 기행문을 차례로 싣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여행기간의 역순(逆順)으로 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제1신 : 삶은 우리에게 축복인가 고통인가-
                            폼페이의 비극을 보며


우린 2006년도 첫날을 아드리아 해에서 맞이했다. 바리 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이탈리아 남부를 횡단하여 폼페이에 입성했다. 동에서 서로 달리는 길. 중간쯤부터 거센 바람이 구름을 몰고 다니더니 오락가락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폴리를 지나 살레르노에 이르자 빗발은 굵어졌고, 폼페이에 들어오자 흙탕물이 튀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탈리아 바리 항에서 폼페이로 가는 도중 만난 아름다운 자연


도시는 썰렁했다. 1월 1일 휴일에 비까지 내리니 도심은 공동(空洞) 상태. 길 물어볼 사람조차 없었다. 빗발 속에 간신히 호텔 하나를 잡은 뒤 도시를 대충 살폈다. 티레니아 해로 연결되는 살레르노 만을 접한 폼페이. 중심에 옛 도시의 폐허가 있고, 그 바깥으로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몇 안 되는 관광객들이 매표소 주변에서 서성대는 모습을 보았으나, 폼페이 폐허와의 만남을 다음날로 미루었다. 그 만남을 좀더 의미 깊도록 만들고픈 우리의 희망 때문이었다. 폼페이의 음울한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줄기차게 비는 내리고, 나그네의 수심을 도와 밤은 더욱 깊어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폼페이 시가지 일부


본의는 아니었으나 우연찮게 근래 우리는 폐허만을 찾아다녔다. 터키의 에페소, 그리이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에인션트 코린트, 그리고 이탈리아의 폼페이까지. 터키, 그리이스, 이탈리아는 바다로 접한 나라들.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길항(拮抗) 관계였던 이 나라들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지대인 터키, 완전 서유럽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유럽도 아닌 그리이스와 이탈리아다. 에게해, 아드리아해, 지중해 등 서로 물길처럼 연결되는 바다를 공통의 무대로 하는 나라들이다.
일찍부터 꽃 피운 인류문명을 세계로 전파시키며 주름잡던 주역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항만들을 기반으로 도시문명을 이룩했으나, 전쟁을 비롯한 인재(人災)와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의 천재(天災)로 멸망을 면치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폼페이 폐허의 한 부분


영속하고자 한 그들의 욕망이 허무로 귀결된 현실을 보며, 명백한 신의 섭리를 깨닫기도 했다. 섭리의 현실화이든 단순한 허무이든, 폐허로 남은 ‘옛날의 영화’는 범부(凡夫)들의 마음에 참담함만 안겨 주었다. 역사의 이성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어떤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폐허의 돌조각에서 느끼는 온기가 예사롭지 않은 나날이다.
물론 시간은 매 순간 절대 동일할 수 없고, 최소한 ‘동질적’일 수도 없다. 그러나 언제든 새로운 코린트, 새로운 에페소, 새로운 폼페이가 생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크게 보아 반복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믿는 우리로선 그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요즈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폼페이 폐허 유물 저장고에 있는 시신의 부조


폼페이의 폐허 속에 쭈그리고 앉은 채 미이라처럼 형상화 된 어느 남자의 입에서, 누운 채 죽어버린 일가족의 입에서 우리는 분명 그런 내용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폐허를 대하면서 우리는 ‘살아있음’에 환희해야 하는가, 아니면 역사의 반복 가능성에 몸서리를 쳐야 하는가.
<계속>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7. 11. 25. 16:07
 

一平선생님 팔순연에



선생님!

올 가을 단풍은 유난히도 붉고 곱습니다. 山野에 불타듯 깔린 단풍을 바라보며 불현듯 10년 전 선생님의 古稀宴을 떠올립니다. 안팎으로 나라가 어렵던 시절이었지요.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내뿜던 狂氣가 온 나라를 짓누르던 그 때. 오래도록 隱居하시던 화곡동으로부터 명동 저잣거리의 한복판으로 나오신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이었지요. 선생님의 열정에 이끌려 하나 둘 모여든 문하생들은 그날 선생님의 파안대소를 뵈며 시절의 험난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도, ‘늘 처음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을 탐구하시며 문하생들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의 의연하신 모습에 저희들은 크나큰 희망을 갈무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습니다. 많은 문하생들이 선생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사회적으론 각자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만, 아직도 선생님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배움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어디에도 선생님의 문하만한 곳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고금을 無不通知하신 선생님께서 늘 연마에 여념 없으신 모습을 뵈며, 스스로들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생님!

그간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문하생들을 가르치시는 틈틈이 고전을 번역하시어 等身大로 이루어 놓으신 업적들. 단순히 ‘浩澣하다’는 말로는 덮을 수 없을 만큼 洋洋한 학문의 바다를 이룩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眼力은 크게 損傷되셨으며, 컴퓨터와 씨름하시느라 건강도 약간 쇠해지셨음을 저희들은 최근에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한서대학교 부설 동양고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신 이래 <<주역>>, <<심경>>, <<맹자>>, <<문장달덕록강령>>, <<유예지>>,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 <<통감절요>>, <<농암집>>, <<마일부학 연구논문집>>, <<삼한시귀감>>, <<임원경제지>>, <<고문진보>>, <<근사록>>, <<동계서화론>>, <<논어>>, <<시경>>, <<개자원 화보>>, <<춘추좌전>>, <<중용>>, <<한사경>>, <<중국음악철학>>, <<악기>>, <<서경>>, <<고문진보>>, <<일본서기>>, <<녹문사서>>, <<악론>>, <<맹자>>, <<음청사>>, <<기재집>>, <<대학>>, <<통감절요>>, <<오언칠언당음>>, <<중국역대화론>>(1~5), <<오언당음>>, <<칠언당음>>,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등 들기에도 숨찰 만큼 많은 고전들의 강독을 통해 후학들을 깨우치셨습니다.

 그 뿐인가요. 최근 12집까지 <<동방학>>을 발간하셨고, <<조용문선생집>>,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1~3), <<죽계일기>>, <<역주 악기>>, <<양심당집>>, <<김택영의 조선시대사>>, <<혜환 이용휴시전집>>, <<송구봉 시전집>>, <<중국 역대화론>>(1~5), <<국역 오언당음>>, <<국역 칠언당음>>, <<혜환 이용휴 산문전집>> 등 많은 역서들을 펴내셨습니다. 요즈음의 자잘한 학인들로서야 몇 생을 산다한들 언감생심 이룰 수 있는 양이겠으며, 제법 한다하는 선비들이라 할지라도 쉬 이룰 수 있는 업적이겠는지요? 참으로 놀랍고 두려울 따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생님!

저는 최근 ‘나이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같은 세월을 살아도 創出하는 가치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는 말이겠지요. 단 몇 년을 살아도 남의 100년에 맞먹는 삶을 사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선생님 같으신 분이 바로 그런 예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빛을 발하시는 선생님의 학문세계야말로 남들이 백년을 넘겨 닦아도 도달 못할 경지임을 문하생들은 지금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난 10년 선생님을 뫼시고 학문의 近海를 빠져나온 저희 문하생들은 이제 드넓은 遠洋을 향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10년, 그리고 또 10년, 영원히 문하생들에게 이념의 푯대가 되어 주소서.


아, 海屋의 산가지에 萬歲를 더하시고, 다함없는 南山의 壽를 누리소서!


                             2007. 11. 24.


                             문하생들을 대표하여

                      사단법인 온지학회 회장 조규익은 삼가 절하고 올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11. 6. 00:29

조선일보 원문보기 클릭



석학(碩學)이 돈 몇 푼으로 만들어지나

                                                               조규익(숭실대 교수)

우리나라 지식사회의 중심인 대학과 교수집단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신정아 사건. 한 계절이 다 가도록 그 본질이 명쾌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이야말로 지식인들의 무사안일과 허위의식, 그로 인한 지식사회의 부패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교수 정년보장심사에서 신청자들을 대거 탈락시킨 KAIST의 사례가 이른바 ‘교수 철 밥통 깨기’의 전조(前兆)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 번 임용되면 정년이 보장되는 기존의 관습을 깨야 한다’는 이구동성(異口同聲)의 사회적 구호가 당위로 인식되는 분위기 속에서 상식을 갖춘 교수들이라면 무슨 항변인들 보탤 수 있겠는가.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서 ‘석학’의 언급이 부쩍 늘어나는 것도 이런 현실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말하자면 쭉정이들 틈에서 ‘제대로 된 알맹이들’ 몇몇이라도 키워 지식사회의 건전화를 선도해보자는 발상일 것이다. 학계의 저변을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상식적 처방을 잠시 외면한 채 이른바 소수의 ‘스타교수, 스타학자’들을 찾아내어 ‘석학’이란 명함을 부여해보자는 발상은 한정된 재원을 투자하여 ‘일시적이나마’ 한국 지식사회의 저급성을 모면해보자는 고육책일 것이다.

그렇다면 석학이란 무엇인가. 과문의 소치이겠으나, 동양권에서는 예로부터 십여 년 이상 저술에 몰두해 온 ‘대학자’를 석유(碩儒)라 했고, 석유는 석학과 동의어로 쓰인 말이다. 근대 이후 학문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어느 분야에서나 석학들은 나타나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석학이란 말 속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해당 분야의 전문적 식견과 사회적 책무의 인식이나 실천이라는 복합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탁월한 학문적 깊이와 함께 지도적 인격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석학’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석학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며, 그런 이유에서라도 스스로가 석학이라고 나설 수 없는 것은 더더욱 당연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학문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국가석학’이란 명목으로 ‘우수학자’를 ‘모집’하고 있다. 자격을 갖춘 학회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나, 그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석학임을 입증해야 한다. 몇몇 전공분야의 경우 수백명이 신청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스스로 석학들’이 매우 많은 셈이다. 특정 연구계획으로 2~3년 간 매년 기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를 마무리한다고 석학이 된다면 조만간 이 나라는 석학으로 가득 차게 될 것 아닌가.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에게 스스로를 천거하여 일을 성사시킨 전국시대 ‘모수(毛遂)’의 예도 있긴 하지만, 긴 세월이 필요한 학문은 ‘단박의 술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차라리 권위 있는 학회들에 위탁하여 기존의 명망 있는 학자들이나 장래 ‘석학의 가능성을 지닌’ 학자들을 발굴·추천하는 일을 맡겨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마다 한 두 번씩 수백 명의 학자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석학이라 내세우며 어리석음을 범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백년대계를 책임져야 할 국가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공무원들이 탁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석학이란 단박에 돈 몇 푼으로 만들어지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07. 11. 5. 20:36
제43차 전국학술발표대회

시조문학의 변화와 지속
        

                 • 일시 : 2007. 11. 17.(토) - 11. 18.(일)
                     • 장소 : 중부대학교
                             경복관(제4강의동) B-110호
                     • 주최 : 한국시조학회
                     • 후원 : 중부대학교 대학원
                       

          
            한국시조학회    



모시는 글

  가을의 단풍잎이 아름다운 계절에 회원 선생님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한국시조학회에서는 금강 주변에 위치한 중부대학교에서 『시조문학의 변화와 지속』이라는 주제로 제43차 전국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우리 학회에서는 전국에서 저명한 학자들과 신진 학자들의 연구발표를 통하여 시조문학의 학술발전에 기여하고자 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학술 주제를 선정하여 매년 2회에 걸쳐 전국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회원 선생님께서는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시어 전국학술 발표대회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2007년 11월 1일

韓國時調學會長  林  鍾  贊

교통편 : 2007년 11월 17일(목), 오전 11시에 대전역에서 시내버스로 출발하여 대회장소인 중부대학교 경복관 B-110호 강의실로 이동하고자 합니다.
  연락처 : 이찬욱(부회장) : 017-295-2734(휴) 류해춘(총무이사) : 016-343-3292(휴)




시조문학의 변화와 지속
             
11월 17일(토)  
13:00 ~ 13:30   등      록              
13:30 ~ 14:00   개  회  사          임종찬(한국시조학회장)
                 축      사        배내윤(중부대 대학원장)
제1부   주제발표        사회 :  류해춘(성결대)
14:00 ~ 14:30   애정시조의 스토리텔링 방안        류수열(전주대)
                            토론 : 이태희(인천대)        한창훈(전북대)
14:30 ~ 15:00   정훈의 시조의 구조적 특질과 그 미학적 의미        박상영(경북대)
                            토론 : 남동걸(인하대)         신은경(우석대)
15:00 ~ 15:30   강호시조·전원시조의  지속·전환에 대한 지역사적 시각        김창원(경기대)
                            토론 : 강구율(동양대)        김상진(한양대)
15:30 ~ 16:00   황진이 시조의 이별양상과 대응양상        김성문(중앙대)
                            토론 : 신영명(상지대)        김종환(육군3사)
16:00 ~ 16:30   정완영 시조의 유가적 인본주의 연구        민병관(부산대)
                            토론 : 허만욱(남서울대)        박규홍(경일대)
16:30 ~ 17:00   현대시조 기점 논고        이완형(배재대)
                            토론 : 오선근(중부대)        박영준(중앙대)
17:00 ~ 17:30   시조영시고        신웅순(중부대)
                            토론 : 박미영(백석대)        이찬욱(중앙대)

제2부   시조창                    

17:30 ~ 17:50        사회 :  김신중(전남대)
              여창지름(청조야-----)        신웅순(중부대)
              우조시조(나비야-----)        안충자(대전무형문화재 14호)
              우조질음(석인이---- )        김재순(경남대)

11월 18일(일)
제3부   종합토론 (10:00 ~ 12:00)                                              좌장 : 조규익(숭실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