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4. 7. 31. 08:07

 


표지

 

 


내용

 

 


악장이 가창되던 무대예술로서의 정재들

 

 


우측이 첫 책(1990), 좌측이 두번째 책(2005)

 

 

새 책 <<조선조 악장 연구>>가 출간되었습니다!

 

 

 

오늘 새 책 <<조선조 악장 연구>>(새문사)가 나왔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국문학에 뜻을 두었고,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고전문학으로 범위를 좁혔으며, 석사논문을 쓰면서 아예 고전시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20대 후반 경남대학교의 전임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같은 방향의 연구를 지속했으나, 숭실대학교로 옮긴 뒤부터는 조금씩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관심을 가져 온 여러 대상들 가운데 악장은 초기부터 꾸준히 천착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1990년에 이 분야의 첫 저서인 <<선초 악장문학 연구>>(숭실대학교 출판부), 2005년에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민속원)을 각각 펴냈고, 이제 <<조선조 악장 연구>>를 펴냄으로써 저 개인의 25년 악장 연구사를 일단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물론 악장에 더 이상 파낼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내심으로는 해답을 찾지 못한 이 분야의 화두(話頭)’가 한 둘 더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라도 마음이 바뀌어 옛날의 우물터를 다시 찾을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 갖고 있는 앞으로의 연구 스케줄로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출중한 후배들이 그들 나름의 통찰력으로 새로운 차원의 연구를 지속해 가리라 믿기 때문에 지금 제 관심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려는 것뿐입니다.

 

이 책의 몇 부분에서 강조했습니다만, 텍스트와 콘텍스트 및 상호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는 고전시가론이나 고전시가사 혹은 국문학사는 완벽을 기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고려조선의 시가문학은 비생산적 동어반복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관찬문헌인 조선조의 악서들에 고려의 악장[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고려속요’]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텍스트의 측면, 조선과 고려의 궁중 무대예술이라는 콘텍스트 혹은 시대문화적 맥락의 측면, 당악을 비롯한 외래 음악이나 공연과의 연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텍스트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비로소 그 본질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악장에 관한 책은 다시 내지 않더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 논문이나 발표문 등을 통해 이 문제만은 더 심도 있게 규명해볼 생각입니다.

 

악장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한 초기에 비해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다만, 그래도 악장에 대한 폄하의 분위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동동>이 조선조 <<악학궤범>> 아박정재의 창사[혹은 악장]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고려의 시대정치문화적 맥락으로만 재단하려는 관성이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고려사 악지>>를 비롯한 몇 기록들에 간단히 기록된 동동관련 언급이 학자들의 생각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점으로도 분명해지는 문제입니다. ‘동동이란 노래가 고려 궁중에 수용되어 속악정재라는 무대예술로 꾸며질 때 이미 존재하던 당악정재들의 양식이 그 표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動動之戱 多有頌禱之詞 盖效仙語而爲之 然詞俚不載라는 말에서 선어(仙語)’란 말을 엉뚱하게 해석해온 것을 그 분명한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등 당시에 성행하던 당악정재들 속의 선모(仙母)를 비롯한 신선(神仙)들이 잔치 자리의 좌상객인 임금에게 바치던 송도(頌禱)의 말이 바로 선어’[신선의 말’]이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시 조성되어 있던 상호 텍스트적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습니다. 원천적으로 고려노래의 정체는 대부분 궁중의 음악에 쓰이던 악장들이었다는 점과, 조선조 악장의 모범적 선례가 고려의 악장이었다는 점만 인지했다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 경우는 악장 연구로 얻을 수 있는 단편적 소득에 불과합니다만, 연구하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이것 말고도 다른 많은 것들이 밝혀지리라 봅니다.

참고로 이번에 출간된 책의 목차를 이곳에 들어놓겠습니다.

 

1부 총서: 지속과 변이의 원리, 그 구현체로서의 조선조 악장을 바라보며

. 계승과 극복 대상으로서의 고려악장

. 조선조 악장에 나타나는 지속과 변이의 양상

. 전환의 양상: 포괄화추상화에서 구체화로

. 앞 시대 유산의 포용과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

 

2부 아악악장: 텍스트 및 주제의식의 중세적 관습성

왕조와 통치이념의 정당성, 제례악장의 모범적 선례: <문선왕 악장>

. 석전과 <문선왕 악장>

. <문선왕 악장>의 원형과 수용과정

. <문선왕 악장>과 조선조 아악악장의 형성

. <문선왕 악장>의 악장사적 위상

. <문선왕 악장>과 제례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왕조 존립과 영속의 당위성 및 자신감: <사직악장>

. 사직제의 위치

. <사직악장>의 텍스트 양상과 내용

. 악장제작의 관습과 <사직악장>의 위상

. <사직악장>의 중세적 보편성과 특수성

 

먹거리의 풍요에 대한 기원과 애민의식: <선농악장>

. 선농과 선농제

. <선농악장>의 텍스트와 주제의식

. <친경악장>의 텍스트와 주제의식

. 악장사적 위상

. <선농악장><친경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입을 것의 풍요에 대한 기원과 애민의식: <선잠악장>

. 선잠제와 <선잠악장>

. 선잠제 전통의 정착과 의미

. <선잠악장>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

. 악장사적 위상

. <선잠악장>의 중세적 보편성

 

우순풍조를 통한 백성들의 안녕과 풍요 기원: <풍운뇌우 악장>

. 풍운뇌우 제의와 <풍운뇌우 악장>

. 풍운뇌우 제의의 전통과 정착과정

. 풍운뇌우 악장의 텍스트 양상 및 내용

. 변계량 악장의 變改 문제

. <풍운뇌우 악장>과 중앙집권적 통치철학

 

3부 향당악악장: 텍스트 및 주제의식의 실험성과 조선조 악장의 독자성

 

천명에 의한 개국의 업적 찬양, 왕조의 무궁함 기원: <문소전 악장>

. 문소전 제례와 <문소전 악장>

. <문소전 악장>의 문헌적 양상 및 내용의 짜임

. 악장사적 위상

. <문소전 악장>과 정격 악장의 맥

 

왕조의 문화적 자부심과 독자적 미학의 발현: <석전음복연악장>

. 석전제와 음복연

. ‘신찬 등가악장의 내용적 짜임과 주제의식

. 악장 제작의 방법 및 시가문학사적 의의

. <석전음복연악장>의 독자성과 문화적 자부심

 

창업과 수성, 경천근민의 이상적 치도: <창수지곡><경근지곡>

. 제례 속의 음복연 절차와 두 노래

. 두 작품의 내용 및 악장사적 위상

. 제작상황

. <용비어천가>의 제작원리와 <창수지곡><경근지곡>

 

새 장르의 노래를 통한 합리적 생활윤리의 제시: <오륜가>

. 궁중악장 <오륜가>

. <오륜가>의 존재양상 및 의미

. <오륜가> 작자 및 창작 토양으로서의 시대 상황

. <오륜가), 지배이데올로기의 경기체가 식 표출

 

여민동락감응형통취포절제경천근민의 가르침: 봉래의 악장

. 조선조 최대의 창작악무 봉래의, 그리고 <용비어천가>

. 악무 명칭의 문헌적 근거와 악장 내용의 상관성

. 봉래의 악장에 아로새긴 세종의 철학, 왕조의 이상

 

제왕의 통치이념을 선양한 언어구조물: 봉래의 진퇴구호

. 퇴구호와 악장

. 봉래의 진퇴구호와 악장의 의미적 상동성

. 봉래의 진퇴구호의 텍스트 양상과 주제의식

. 봉래의 악장의 주제의식과 진퇴구호

 

4부 다른 각도에서 본 조선조 악장의 본질적 속성

 

정재 악장에서 확인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 및 지속양상

. 궁중악장과 콘텍스트로서의 송도 문화 및 선계 이미지

. 송도 모티프의 초기 양상

. 송도 모티프의 지속 및 확산과 문화적 의미

. 조선조 후기 창작 정재들과 선계 이미지의 변주

. 정재 및 정재 악장의 선계 이미지, 그 지속과 변이의 문화적 의미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계

. 악장과 시조가 공존하던 시공, 조선조

. 악장과 시조의 연계, 그 외연과 내포

. 악장과 시조, 새로운 관계 설정의 가능성

 

북한문학사와 악장

. 악장에 대한 일반적 관점과 북한문학사

. 북한문학사의 악장관

. 악장을 왜곡시킨 북한문학사의 이념적 경직성

 

고전시가교육과 조선조 고려속가 악장의 텍스트 및 콘텍스트: <동동> 지도론

. 고전시가와 고전교육, 그리고 악장

. 교육과정과 고전시가교육의 현실

. ‘동동의 속성 및 환경

. 고전시가 교육과 복합 텍스트로서의 궁중악장

 

5부 총결: 악장에 그려진 왕조의 이상과 현실, 그 거리를 음미하며

 

 

강호 고사(高士)들의 지도와 편달, 부탁드립니다.

 

2014. 7. 31.

 

백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4. 26. 12:38
*이 글은 "2008 국립국악원 정악단 정기연주회 - 노래와 선율이 함께 하는 여민락"(2008. 4. 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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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 공연 팜플렛>

왜 지금 ‘여민락’을 말해야 하는가


                                                                조규익(숭실대 교수)


아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용비어천가> 읊지 말라’고 핏대를 올리는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다. 정도 이상으로 대통령을 추어올리는 언론의 논조에도 ‘노비어천가’를 부른다거나 ‘명비어천가’를 읊는다고 비난한다. <용비어천가>를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그것을 ‘아부성 발언’으로 폄하하는 데 용감하다. 철학과 경륜을 갖추었던 한 시대의 지성들이 왕도정치와 이상국 건설의 꿈을 담아 만든 <용비어천가>가 500여년 후의 무식한 자손들로부터 이렇게 몹쓸 희롱을 당하는 현실이다.


세종대왕의 주도로 만들어진 향악정재 ‘봉래의’에서 전인자와 진구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여민락’이고, 그 음악에 올려 부른 가사가 바로 <용비어천가>(1·2·3·4·125장)다.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 그 음악의 취지이고, 그것을 정재의 앞부분에 배치했으니, 임금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만하다. ‘애민(愛民)’이야말로 치자가 명심해야 할 첫 덕목임을 세종대왕은 강조하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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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가사의 여민락 부분>

조선왕조의 근원이 깊고 멀다는 것, 왕 되는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나라를 영원히 보전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용비어천가>의 내용적 줄기다. 물론 6조(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의 사적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지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용비어천가>의 핵심인 ‘물망장(勿忘章)’(110~124장)과 ‘졸장(卒章)’(125장)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뿐이다. 초등학생일지라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용비어천가>=아부성 발언’이라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주거를 호화롭게 하지 말라, 좋은 음식을 탐하지 말라, 형벌을 마음대로 하지 말라, 백성들의 고통을 잊지 말라, 아부하는 간신들을 멀리 하라, 백성들의 언로를 막지 말라, 세금을 공평하게 거두어 나라의 근본을 다져라, 바른말 하는 신하를 중시하라, 학자들을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하라,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라...”


왕조 초반에 최고의 지성들을 모아 이런 금언(金言)을 만들고,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무대에 올려 공연하게 함으로써 ‘군-신-민’이 함께 그 뜻을 새기도록 한 일을 동서고금의 어느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한 번이라도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읽어 보면 그것이 임금을 위한 수신 교과서나 지배계층을 겨냥한 정치학 교과서일지언정 아부의 언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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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을 연주하는 모습>


         ***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임에도 지금껏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해 왔다. 최근 대통령이 공석에서 ‘머슴론’을 통해 땅에 떨어진 이도(吏道)를 질타한 일도 <용비어천가>의 핵심적인 내용과 맥을 함께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의 요체는 ‘국태민안’이다. 국가를 태평하게 유지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상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다. 풍족한 의식주와 든든한 국방, 반듯한 사회기강 속에서 백성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권력과 부를 얻고자 아부의 수단으로 만든 것이 <용비어천가>는 아니다.


고금의 역사로부터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을 얻은 지성인들. 그들은 <용비어천가>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가 어떻게 흥망성쇠의 과정을 거쳐 왔는가를 되새겨보고자 했다. 힘겹게 창업한 조선왕조가 영속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었다. 최고 통치자인 왕들이 나태를 벗어나 백성을 위하는 일에 매진해야 왕조는 망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후대의 왕들을 대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금언들을 들어놓음으로써 모든 공직자들까지 깨우친, 이른바 1석2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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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 가사의 짜임>

‘임금이 하늘인 시대’였음에도 그들은 국태민안의 요체가 ‘경천근민(敬天勤民)’ 즉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 일임을 감히 왕에게 강조한 그들이었다. 대통령이든 관료이든 민심이 천심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소리(小利)만 취할 때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의 공복임을 잊고 있는 관료집단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용비어천가>를 끊임없이 부르고 들어야 하는 시대다. 국립국악원이 ‘여민락’을 창조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일이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