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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4.11.12 내 등짝을 내려친 출판사 사장의 죽비 1
글 - 칼럼/단상2016. 9. 1. 16:42

 

삼례 책 마을을 다녀와서

 

 

 

책이 없어 곤궁하던 어린 시절부터 책이 넘쳐나는 지금까지 책과 뗄 수 없는 것이 내 삶이다. 남의 책들을 사 읽고 모으며, 가끔은 책을 펴내는 게 내 일 중의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막 학계로 진출하던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엔 책이 넘쳐나게 되었다. 지식인들의 수와 지식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지식정보의 유통과 저장을 위해 책의 효용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책 하나 펴내지 못하면 행세를 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마구 변하여 모든 지식정보는 디지털의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이제 크고 무거운 책이 거추장스런 시대가 된 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하루 24시간을 구부정하게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시절이다. 종이 위의 깨알 활자들이 어찌 이들에게 매력적일 수가 있겠는가.

 

누구의 한탄대로, 한국의 대학가에서 서점이 사라졌다. 책이 빠져나간 공간을 옷 가게, 음식점, 술집, 커피 집 등이 파고들었다. 가끔씩 커피 집 창문으로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 하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나,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 대다수는 잡담을 나누거나 스마트폰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 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지성의 샘도 말라버린 것이다.

 

대학의 권력도 대부분 힘 있는 이공계가 잡고 있다. 총장도 보직교수들도(그 가운데 도서관장도) 책이 무언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으니, 어린 학생들 탓만 할 수는 없다. 도서관의 장서를 전자책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도서관에서 값나가는 인문서적들이 차떼기로 퇴출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이렇게 반학문적, 반지성적 만행들이 수시로 나타나는 현장이 대학이다. 그래서 종이책만이 책임을 믿으며 대학인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면구스럽다. 책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 종이책을 찾는 사람들이 바야흐로 멸종을 눈앞에 둔 천연기념물이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완주군 삼례읍은 특이하고 고결한 고장이다. 아주 오래된 비료창고를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고 각박한 삶에 지성의 문채(文采)를 입힌, 이 고장 사람들의 지혜가 참으로 소중하다. 2016829일은 이 땅에 타오를지도 모를 대한민국 판 르네상스가 바로 이 고장에서 점화된, 역사적인 날이다. 책을 잃어버려 마음도 희망도 잃어버린 대한민국에 갈 길을 제시한 등대로 우뚝 선 날이다.

 

이 날 몇몇 지인들과 책 마을 개관식에 참석했다. 시가지에 들어서자 삼례는 책이다!”라는 현수막이 수줍은 듯 조그맣게 매달려 있었다. 삼례성당 좌측 창고에는 책 박물관, 박물관 건너편에는 목공학교가 가동 중이었다. 이 부분이 책 마을의 중심이었다. 박물관은 아동도서와 교과서, 만화 등 2~3개 주제의 상설전시와 매년 1~2회의 기획전이 열리게 되는 공간이었다. 박물관 건너편의 김상림 목공소도 책 마을의 전통성을 보태주는 좋은 공간이었다. 전통 목공의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고, 목수들의 작업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곳. 그곳 역시 멋진 공간이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삼례역 방향으로 걸어가니 북하우스, 한국학 아카이브, 북갤러리 등 세 동의 건물이 눈 앞에 나타났다. 북하우스는 고서점과 헌책방, 북카페로 구성되었고, 한국학 아카이브에는 각종 연구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으며, 북갤러리에는 전시실과 강연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북하우스로 들어가니 고서점 호산방이란 이름 아래 한국학 관련 고서, 신문, 잡지, 사진, 음반자료, 중국일본서양 관련 고서 등이 비치되어 있고, ‘책마을 헌책방1층에는 아동도서와 향토문화 관련 도서 등이, 2층에는 인문도서들이 비치되어, 10만권의 빛나는 책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책방의 1층 한쪽에 카페가 마련되어 독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도 했다.

 

책은 위대한 천재가 인류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그것은 대물림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들에게 주는 선물로서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달된다.” 책에 관한 에디슨의 명언이다. 이제 위대한 천재들이 만든 책들이 이곳으로 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물림되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겠지. ‘망아지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듯 조만간 책도 사람도 삼례로 보내라는 새로운 속담이 나올 날이 머지않았다. 삼례는 책의 메카로 변신할 것이며, 대한민국 정신사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들 손을 잡고 삼례 책 마을에 가서 잠시라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볼 일이다. 책의 의미와 책의 일생을 보고 보여주면서 말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1. 12. 16:42

내 등짝을 내려친 출판사 사장의 죽비

 

 

 

 

오늘 두 사람의 출판사 관계자가 내 연구실에 찾아왔다. 언제나 출판사 사람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내 가슴은 출렁 내려앉곤 한다. 당장 필요도 없는 책을 사야 하거나 그들의 푸념을 들어야 하고, 내 가슴에 그득 들어 있는 탄식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오늘도 마찬가지였지만, 또 다른 의미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최근에 나는 나 자신이 알 수 없는 우울증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작년 전반기에 두 권의 책을 냈고, 미국 체류를 끝내고 돌아온 올해 들어 두 권의 책을 냈으며, 비록 공저와 공편일망정 연말까지 두 권의 책이 더 나올 예정이니, 그런대로 쏠쏠한(?) 수확이라 할 만한데,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 걸까? 내가 책을 내면서도 우울해지는 것은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절의 우울한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이후 작년에 책을 낸 그 출판사에 전화 한 통화 걸어볼 엄두를 못낸 것도 보나마나 내 책들이 ‘재고’의 딱지를 붙인 채 창고 한 켠에 그득 쌓여 있으리란 확신 때문이었다.

 

 

 

 

책 내는 일이 수월하지 않던 지난 시절. 책을 내고자 하던 젊은 나이의 누구나 그랬으리라. 자신이 갖고 있는 원고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대박’을 치게 될 거라는 착각과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바 그 옛날 ‘낙양(洛陽)의 지가(紙價)를 올린 일’이 자신으로 인해 이 시대에 재현되리라는 행복한 착각 속에 며칠을 보내게 된다는 것. 중국 진나라의 좌사(左思)가 10년을 고심참담하며 완성한 명문 <삼도부(三都賦)>를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베끼자 종이 값이 오르게 된 그 사건이 자신에겐들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는 ‘병아리 셈’으로 숱한 밤을 곱게 지새우는 책상물림들이 좀 많았으랴.

 

그러나 시절은 무섭게 변했다. 코흘리개부터 백두옹(白頭翁)에 이르기까지 ‘자라목 증후군’이 세대를 초월한 병증으로 자리 잡을 만큼 스마트폰 중독시대에 이르자 책은 한갓 귀찮은 쓰레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상의 시름을 말끔히 풀어주는 온갖 소문과 기문(奇文/奇聞)들이 사각형의 오묘한 기계 속에 그득한데, 신국판ㆍ국배판의 무겁디 무거운 종이책들을 지고 다니는 오기를 부릴 만큼 미련하지 않다고 스스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우리들이다. 오늘 아침에도 쓰레기를 버리러 쓰레기장에 나갔다가 쓰레기로 버려진 수십 권의 멀쩡한 책들을 만났다! 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진입한 국민소득 1만불의 산업화 단계에서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의 우민화 정책이 빛을 발하여 책은 우리의 삶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고, ‘정보화-고도정보화’ 시대의 격랑을 지나면서 ‘도(독)서 소외’는 우리 사회 문화적 퇴행의 한 현상으로 고착된 것이다.

 

출판사 사장은 울상이었다.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300부만 찍는데, 그 반도 안 나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재도 안 나간다고 했다. 학생들 몇이서 교재 한 권만 돈 주고 산 다음 PDF 파일로 만들어 공유하고 그 때 그 때 필요한 부분만 각자 출력하여 강의시간에 갖고 온다는데, 그런 세대에게 교재를 사라고 권할만한 강심장은 더 이상 없다. 출판사 사장은 내 체면을 보고 책을 내준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는 대학에 있으니 적어도 기본 부수는 팔리지 않을까 하여 책을 내 준 것 같은데, 내 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물어볼 엄두도 못 내는 나로서는 우울해질 수밖에 더 있는가. 그래서 적어도 내게 ‘책을 내는 일’은 ‘민폐’였다. 그래서 앞으로 원고가 완성된다 해도 책은 내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연구실로 찾아온 사장에게 말했다. 그저 완성된 원고의 부분 파일을 홈피에 올리고 필요한 사람은 출력해 가도록 하겠다는 것이 내 아이디어였다. 그러자 그 사장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럼 우리 일을 접으라고요? 그나마 안 팔리는 책일망정 만들며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예 책을 안 쓰시겠다니, 우리 보고 문을 닫으라는 말씀인가요?”

 

 

 

 

 

다급한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배부른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일지언정 그래도 먼 훗날 언젠가를 위해 이들은 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저 책짐을 짊어지고 다니며 팔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 스피노자는 왜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내일엔 뭔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이 땅의 우리 세대가 견지해야 할 삶의 태도 아니겠는가. 비록 내 책이 후세인들의 간장 병 마개나 펄펄 끓는 라면 냄비의 밑받침으로나 쓰인다 해도 지금 그걸 당겨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나는 이 시대의 논리에 충실하며 살아갈 따름이다. 모름지기 학자라면 힘이 남아 있는 한 고심참담 저술을 해야 함을 내게 깨우쳐 주고 그 출판사 사장은 황황히 떠났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