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소식2015. 1. 7. 15:22

 

 

 

 

 

 

 

 

세종대왕이 만든 조선조 최고의 악무  봉래의를 복원ㆍ해석  

봉래의에 대한 음악ㆍ문학ㆍ무용의 융합 연구결과를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으로 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저는 을미년 벽두에 문숙희 박사(전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손선숙 박사(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 등과 함께 <<세종대왕의 봉래의(鳳來儀), 그 복원과 해석>>(민속원)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7’로 출간했습니다.

 

지난 3년간 3회에 걸쳐 봉래의 복원 공연을 국립국악원의 무대에 올렸고, 그 결과를 DVD로 담아 이 책에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문학 분야인 악장의 연구를 제가 맡았고, 음악을 문숙희 박사가, 무용을 손선숙 박사가 각각 맡았습니다. 제 분야인 악장이야 그다지 보실 만한 건 없으나 음악이나 무용 분야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봉래의를 복원한 점은 무엇보다 내놓고 자랑할 만합니다. 이 책을 찬찬이 읽어 보시면 세종대왕이 그리던 새 왕조 조선의 미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번 연구 작업을 통해 왕조의 미래에 대한 꿈을 엄청난 규모의 예술로 승화시켜 놓은 세종대왕의 능력과 통찰에 새삼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대강의 내용을 추려 아래에 붙여 놓습니다.

 

***

 

‘2014년 한국연구재단 우수 연구 성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책은 문학음악무용 분야를 전공한 세 저자들이 융합적 시각에서 세종대왕이 지은 조선조 최대 악무(樂舞) 봉래의를 복원하고 해석한 결과물이다. 1443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그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제작하게 했으며,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올린 가악의 종합예술체인 봉래의를 몸소 만들었다. 1445(세종 27) 왕명으로 지어올린 <용비어천가>의 일부 가사를 악곡에 올리고 무악(舞樂)으로 구성하여 조선조 후기까지 연행(演行), 조선조 최대의 창작 악무가 바로 봉래의인 것이다.

 

봉래의는 여민락치화평취풍형으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악무다. <<서경>> <익직(益稷)>으로부터 나온 봉래의란 말은 잘 다스려진 상황을 비유한 표현인데, 태평성대를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봉황래의(鳳凰來儀)’라는 명칭을 붙인 후대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여민락(與民樂)’여민동락(與民同樂)’ 혹은 여민해락(與民偕樂)’과 같은 뜻으로 <<맹자>> <양혜왕 장구 하>에 등장하는 여민동락에서 나온 말이다. 임금이 덕을 지닌 경우 징발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임금을 위해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에서 임금이 즐기는 모습을 기뻐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바로 여민동락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봉래의 악무의 첫 정재를 여민락으로 잡은 세종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세운 왕조에서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는 첫 조건이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라는 점에 있다. <용비어천가>1~4장과 졸장 등 다섯 개의 장을 뽑아서 구성해 놓은 것이 바로 여민락이다.

 

치화평(致和平)’<<주역>> <하경> ‘택산함괘에 대한 정자(程子)의 설명에 등장하는 말로서 천지와 인심의 감통(感通)에 바탕을 둔 조화가 천하태평의 요체임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정자의 설명 가운데 핵심은 천지가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화생하는 이치와 성인이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를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정을 가히 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그것이 바로 치화평이다. 치화평에서는 <용비어천가> 1~16장과 125장의 국한문 가사들을 악장으로 끌어다 사용했다.

 

취풍형은 <<시경>> <주송> ‘집경13구인 기취기포(旣醉旣飽)’<<주역>> <하경> ‘뇌화풍(雷火豐)’괘에서 따온 개념이다. 취풍형이란 말 속에는 군신이 배불리 취해도 예에 어그러짐이 없음/풍형에도 절제가 있어야 함이란 두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즉 군신이 태평세월을 구가하고 즐기면서도 예에 어그러지지 않는 절도를 지켜야 하며, 아무리 풍요로워도 그에 지나치게 도취하여 절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용비어천가> 1~9장 및 125장의 국한문 가사를 악장으로 끌어다 쓴 것이 취풍형의 악장이다.

 

이처럼 봉래의 악무에 들어 있는 세 정재[여민락, 취화평, 취풍형]들은 서로 독자적이면서도 <용비어천가>의 주제로 제시된 경천근민[敬天勤民: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해야 함]’의 행동강령을 공유한다. 말하자면 백성들과 함께 하거나 신하들과 함께 하며, 백성신하와 함께 해도 공통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후왕들이 경천근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처럼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종합한 봉래의 악무에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상대로 조선왕조 건국의 의의와 육조(六祖)의 시련을 깨우쳐 주고, 후왕들이 나라를 잘 보수(保守)함으로써 왕조가 영속될 수 있도록 하라는 세종의 뜻이 주제의식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봉래의 다섯 곡은 전인자 3소박 8박자여민락 2소박 8박자치화평 3소박 4박자취풍형 323 혼소박 6박자후인자 3소박 8박자의 리듬으로 진행된다. 음악의 템포는 노래와 무용 모두를 좌우하기 때문에 가악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궁중 정재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또 가사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템포가 타당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봉래의를 구성하는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의 본체는 만()()()으로 구분되었고, 여민락과 치화평의 템포는 메트로놈 상으로 유사했고, 취풍형은 이 둘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나타났다. 여민락은 2소박이고 치화평은 3소박이기 때문에 여민락이 치화평보다 조금 더 느리다고 할 수 있다.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은 각각 길고 복잡한 장단으로 되어 있으나, 이번 복원 공연에서는 긴 장단 속에 세분되어 있는 리듬 단위로 장단을 짧게 단순화하여 연주했다. 그 결과 장고가 음악과 무용을 이끌기에 용이했고 또 액센트가 짧은 주기로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음악과 무용에 생동감을 주었다.

 

무용의 경우 확실한 기록이 부족하다는 난점이 있었다. 즉 문헌에는 무기(舞妓)들의 대형 형태, 이동과정, 춤사위 등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어느 시점에 어떤 발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돌아 어느 위치로 이동해야 하는지 등 실연(實演)에 필요한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래의의 무용을 복원함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여러 정재들과 정재의 무도(舞圖)들을 통합비교하여 음악과 노래, 무기들의 위치 및 이동 공간 등의 상호 관계를 통해 찾아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춤사위는 봉래의 춤 전체의 진행 구조를 통해 찾아냄으로써 봉래의 춤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음악이나 무용도 악장 내용의 전개와 함께 함을 확인했는데, 이렇게 가악으로 임금에게 교훈적인 말을 전달하고자 한 제작 의도는 가악의 융합정신이 봉래의라는 종합예술 속에서 충분히 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였다.

 

이상과 같이 세 연구자는 음악이 기보되어 있는 <<세종실록악보>>, 춤 순서 및 노래 가사가 기록되어 있는 <<악학궤범>>을 통해 봉래의를 융합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악에 관련된 여러 전제조건들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봉래의의 종합예술체적 성격을 완벽에 가깝도록 복원한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고, 그것은 세 차례의 공연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공연 팸플릿

 

 


세종실록

 

 


세종대왕

 

 


공연에서 세종으로 분장한 배우 정훈씨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0. 17. 22:01

[서평] 조규익, 조선조 악장 연구(새문사, 2014)

 

 

 

본질 탐구로 길어낸 악장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

 

 

 

 

 

                                                                             박수밀(한양대 국문학과)

 

 

1.

조규익 교수의 조선조 악장 연구(2014)는 저자가 수십 년간 줄기차게 매달려온 악장 연구의 3부작 완결판이다. 악장은 고전시가에서 자립적인 위상을 지닌 양식임에도 불구하고 연구하는 학자는 극히 적다. 연구 초기 장르상의 귀속이 애매했을 뿐더러 특정한 시기에만 나타났다 사라진 장르라는 점, 소수 계층의 욕망을 대변한 승리자의 노래라는 관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저자가 지적해 왔듯이 악장은 아부문학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결과 학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3권의 악장 연구서를 간행해 왔다. 첫 연구서인 선초악장 문학 연구1990년도에 간행되었으니 최소한 족히 삼십년 이상을 악장 연구에 매달려온 셈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삼십 년 이상 지속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보여주는 학자도 드물거니와 소외된 문학에 대해 지속적인 애정을 쏟는 일도 쉽지 않다. 기왕이면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영역에서 주목받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연구자들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고 그다지 건질 것이 없어 보이는 악장 연구에 매달려왔다. 이 집념이 묘한 흥미를 끈다. 저자는 성산학술상, 도남국문학상, 한국시조학술상 등의 이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고전시가에서 탁월한 연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학자가 아니던가. 저자는 이번 저술이 25년 악장 연구사에 대한 마무리라고 고백했다. 과연 오랫동안 악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수십 년간 한 우물을 판 노고는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의 햇수와 연구의 질은 별개의 문제이므로 연구서가 얼마만큼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지, 저자의 문제의식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2.

악장에 대한 본격적인 저자의 첫 연구서라 할 선초악장 문학 연구(1990)은 선초 악장의 형성 및 장르적 성격을 밝히고 악장의 국문학 장르상의 위상에 대해 논한 저술이다. 악장에 대한 학계의 인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악장의 위상을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선초 악장 연구서의 바이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부터 9년 뒤엔 조선조 악장의 문예미학(2005)을 간행하여 악장의 가치와 전개 양상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현상과 미적 본질, 조선조 악장과 왕조의 현실, 개인의식과 집단이념의 조화, 조선조 악장의 흐름 등을 밝혔다. 저자는 종합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악장의 독자적 미학을 치밀하게 탐구, 악장에 대한 편견과 오류를 해소하고 악장을 경세의 문학으로 끌어올렸다.

이번에 펴낸 조선조 악장 연구는 악장 연구사를 마무리 짓는 세 번째 연구서이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기존 연구에 새로운 보완의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그 동안의 악장 연구에 대한 저자의 성과를 종합하고 아악악장과 향당악악장에 해당하는 개별 악장들의 성격과 주제의식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악장의 연구 폭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악장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고전시가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는 연구서의 구성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었다. 5부가 총론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4부로 이루어진 셈이다. 1부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성격을 밝혔는데, 저자는 조선조 악장이 지속과 변이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지속인가? 고려조 악장의 음악적 측면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변이인가? 조선왕조라는 특정 집단의 이념을 강조한 새로운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곧 조선조 악장은 고려조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아악이나 아악악장들과 함께 고려조에서 수용한 삼국 이래 속악의 악장들이 조선조에서 새롭게 제작된 노래들과 합쳐진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악장을 크게 아악악장과 향 당악 악장으로 나눈다. 각종 제향 악장이 전자라면 각종 연향 악장은 후자에 속한다. 2부와 3부는 아악 악장과 향 당악 악장의 성격을 다룬 것이다. 2부의 아악악장에 대해서는 악장의 중세적 문명론의 표준과 보편성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3부의 향, 당악 악장은 조선 왕조의 문화적 독자성과 정체성의 확보라는 관점에서 살폈다. 아악악장은 종묘제례, 문묘제례, 사직제례, 선농제례 등 제례에 쓰인 악장을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조는 문묘제례와 종묘제례를 통해 왕조의 정치적 이념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왕조 존립의 보편적 가치와 당위성을 선양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중국의 <시경>, <주역> 등에서 악장의 주요 문구나 모티프를 직접 차용해 악장으로 쓰거나 혹은 선행 악장들의 구절이나 모티프 등을 차용해 선초 악장에 사용해 왔다. 곧 아악악장을 통해 동아시아적 중세적 문명론의 표준과 보편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선왕 악장>, <사직악장>, <선농악장> <선잠악장>, <풍운뇌우 악장>을 분석하여 이러한 주장에 대한 논거를 확보한다.

이에 비해 3장의 향 당악 악장에서는 조선조 악장의 독자성을 살핀다. <문소전 악장>, <석전음복연 악장>, <창수지곡 악장>, <경근지곡 악장>, <오륜가>, <봉래의 악장> 등을 다루었다. 당악 악장에서는 우리의 고유한 노래 장르를 악장으로 수용함으로써 우리만의 독자적이고 특수한 미의식을 담아냈다고 주장했다. 이들 노래에서 발견되는 텍스트의 구성이나 주제의식의 실험성은 아악악장과 구별되는 지점이며 악장이 고전시가사 전개에 큰 기여를 한 점이라고 보았다.

4부는 다른 각도에서 본 조선조 악장의 본질적 속성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정재 악장에 나타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을 밝힌 대목이 흥미롭다. 이 외에도 저자는 악장에 대한 북한문학사의 관점을 살펴본다. 북한의 연구자들은 악장을 아부문학이나 무조건적 송축문학으로 배척해온 남한 학자들과 입장을 같이 해오고 있는데 북한 역시 악장을 백성들의 문화생활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무가치하다고 폄하한다는 것이다. 경직된 이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악장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연구서는 악장의 문학성을 다룬 것이 아니라 악장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탐구이다. 양식의 문학성을 파고든 것이 아니라 양식을 둘러싼 맥락에 주목했기에 문학 연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저술의 가치는 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장 연구를 둘러싼 저자의 궁극적인 문제의식, 주제에 접근하는 남다른 방식, 실사구시에 입각한 꼼꼼하고 치밀한 논증의 결과를 들여다보노라면 이 저술이 갖는 의미와 무게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어쩌면 이 연구서의 진정한 가치는 고전시가를 접근하는 시각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데 있을지도 모른다.

 

 

3.

저자는, 텍스트와 콘텍스트 및 상호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고찰 없이는 고전시가론이나 고전시가사 혹은 국문학사는 완벽을 기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구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텍스트 측면은 관찬문헌인 조선조의 악서들에 지금 고려속요로 불리는 고려의 악장들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고 콘텍스트 측면은 악장은 조선과 고려의 궁중 무대예술이라는 점이다. 상호텍스트 측면은 악장은 당악을 비롯한 외래 음악이나 공연과의 연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악장은 이와 같은 외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그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문학은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정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 발언이라 본다. 지식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지식은 순수하고 객관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 구조와 공동체 구성원에 따라 의미를 형성하고 바꾸어간다. 곧 지식은 맥락과 관계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둘러싼 맥락에 주목하는 저자의 관점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답보 상태에 빠진 고전시가 연구 방법론에 새로운 활로를 뚫어줄 것으로 기대가 된다.

다만, 말했듯이 작품의 문학성 자체에 대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받을 수 있겠는데, 가만히 반추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저자는 악장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하고 악장 문학에 접근하는 가장 올바른 방향을 잡아낸 것이다.

조선조 악장은 국가의 공식 행사에서 사용되던 악사(창사)이다. 저자는 말하길, 악장은 정재라는 틀 안에서 음악과 춤이 결부될 때 비로소 그 생명성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 ‘고려조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아악이나 아악악장들과 함께 고려조에서 수용한 삼국 이래 속악의 악장들이 조선조에서 새롭게 제작된 노래들고 합쳐진 것이 조선조의 음악이고 악장’(45)이라는 것이다. 악장이 가(), (), ()의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무대예술인 정재에서 가창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악장은 춤까지 관여되어 복잡한 내포를 지닌 언어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악장을 문학적으로만 재단해온 지금까지 연구는 악장의 본질을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악장이 상대적으로 문학성이 쳐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면 이는 악장을 악장답게 다루지 않은 데서 초래된 결과였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악장에 대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악장이란 장르를 문학성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저자에게는 오히려 왜곡의 위험성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악장의 본질은 텍스트를 둘러싼 외부 맥락과의 관련 아래 탐구해야 한다. 악장의 본질, 그것은 가무악이 어우러진 궁중의 정재이다. 노래로서의 악장이 실현되는 사회 문화적 맥락을 따져보아야만 악장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접근 방식이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관점이 정채를 발하는 장면은 정재 악장에서 확인되는 송도 모티프와 선계 이미지의 연원과 지속 양상을 밝힌 곳에 있다. 조선조 악장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왕에 대한 송축이나 송도를 통한 왕조 영속의 당위성 선양이다. 당악정재를 살펴보면 왕을 송축하기 위해서 신선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다. 당시 당악정재들에 등장하는 중심 배역은 선모나 신신들이었고 그들의 창사나 담화에는 송도 모티프가 담겨 있다. 신선으로 분장하여 왕에게 드리는 송도의 말이 바로 송도시자이자 선어였다는 것이다.

이 점을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동동정재를 살핀다. 고려사악지에는 동동에 대해 동동 놀이는 송도지사가 많은데 대개 선어(仙語)를 본떠 마든 것이다[動動之戱 多有頌禱之詞 盖效仙語而爲之]”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송도와 선어(仙語)는 동동의 성격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는 까닭에 많은 학자들이 이 뜻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주장을 펼쳐 왔다. 중국 전래의 도교 사상과 관련시키거나, 화랑, 풍류 등에 연원을 둔 무속과 같은 연장에서 이해하거나 팔관회 때 상연되는 백희가무에서 불린 노래로 보기도 했다. 신선 기녀와 연관 짓거나 무격(巫覡), 우인(優人)의 말로 보기도 했다. 그야말로 각자 입론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왔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선학들이 동동을 둘러싸고 있는 콘텍스트로서의 속악정재나 속악정재의 표본으로 기능했을 당악 정재에 시선을 주지 못한 까닭에 송도지사와 선어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364) 노래의 주제적 측면을 지칭한 송도지사와 표현적 측면을 지칭한 선어 모두 동 시대의 당악정재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그런 표현법이나 주제의식은 당대 궁중에서 성대하게 공연되던 당악 정재의 창사를 본뜬 것들이다. 선어는 바로 이들 정재에서 서왕모 등 신선으로 분장하여 송도의 노래를 가창하던 여기(女妓)들의 창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곧 헌선도(獻仙桃), 수연장(壽延長), 오양선(五羊仙) 등 당시에 성행하던 당악정재들 속의 선모(仙母)를 비롯한 신선(神仙)들이 잔치 자리의 좌상객인 임금에게 바치던 '송도(頌禱)의 말'이 바로 선어’, 즉 신선의 말이라는 것이다.

악장의 본질을 간파하고 상호 텍스트적 상황에 의거하여 송도지사와 선어의 의미를 밝힌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선어에 대한 제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저자의 글을 읽었음에도 이 주장을 비판하지 못한 채, 각자의 입론을 만들어 제각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려가요를 악장의 한 형태로 보려는 저자의 생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저자의 주장을 극복할 수 있는 논거를 대거나 저자의 주장을 수용하거나 하는 엄정한 학문 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4.

본 저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악장의 본질과 성격을 탐구함으로써 별 문학성이 없어 보였던 양식을 의미 있는 양식으로 끌어올린데 머물지 않는다. 저자의 궁극적 시선은 고전시가사와 고전문학사를 재편하는 데로 향한다. 저자는 조선조 악장의 존재나 본질을 도외시할 경우 아무리 현란한 고전시가 장르론을 펴더라도 공허할 뿐이며, 국문학사 기술의 합리성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고려의 노래들은 대중가요로서의 속요이기 이전에 궁중악으로서의 속악가사이다. 곧 고려 노래의 1차적 분류 범주는 악장이 된다. 그러므로 고려가요는 1차적으로는 악장론을 거쳐야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조선조 악장의 콘텍스트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고려가요의 텍스트를 고려의 시대적 속성에 맞추어 놓고 고려시대의 속요라는 이름으로 재단해본들 결과가 신통할 리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려가요가 악장으로 수렴된다면 의당 고려가요는 악장이라는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고려가요의 성격과 위치에 대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조선조의 시조와 악장을 다룬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계장을 읽노라면 악장과 시조 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도 필요해 보인다.

또 악장의 본질이 문학이 아닌 정재로서의 성격에 있다면 악장과 관련되는 중세 고전시가 연구의 패러다임이 문화론이나 예술론 차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전시가를 문학과의 연관 아래서만 기술하려는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음악 무용 등의 예술 및 당대 사회 문화와의 관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고전시가의 문학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시가 연구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장르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문학을 고립적으로 가두지 않고 여타 분야와 폭넓게 소통하면서 통섭하려는 오늘날의 시대적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악장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성과가 기성과 관행을 타파하고 새로운 변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이 본 연구서의 진정한 미덕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과연 저자의 바람대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새롭게 추동될 수 있을 것인가? 본 연구서의 성과와 제안을 비판하든 극복하든 간에, 애써 외면하기보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고 활발한 토론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술에서 보여주는 꼼꼼한 논증과 묵직한 문제의식은 저자가 학계에서 보여준 성실함과 무게에 값한다고 본다. 삼십 여년에 걸쳐 남들이 관심두지 않은 길을 뚝심 있게 밀고나간 저자의 학식과 공력이 조선조 악장 연구에 오롯하게 담겨 있다.

 

  *이 글은 <<한국문학과 예술>> 14집(한국문예연구소, 2014)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
알림2013. 5. 15. 16:49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한국 춤의 전개양상>> 출간!

 

 

전통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 혹은 과도기에 한국 춤이 어떤 전개 양상을 보였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대체로 순조대왕이 즉위한 이후 19세기 말을 거쳐 근대까지 한국 춤에 나타난 변화의 양상은 그 이전의 시기들에 비해 현격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실려 있다.

 

조규익, 악장과 정재의 미학적 상관성

조규익, 익종(翼宗) 악장 연구

송지원, 조선후기 음악의 문화담론 탐색

이의강, 19세기 초 궁중무용의 미학적 전환

송방송, 조선후기 선상기(選上妓)의 사회제도사적 접근

김은자, 조선후기 평양교방의 규모와 공연활동

조경아, 순조대 정재 창작양상

성기숙, 조선후기 정재의 극장공간성과 공연미학

손태도, 조선후기 탈춤의 주체

김예호, 전환기 한국 공연예술의 흐름과 근대화 지향성

송방송, 대한제국 시절 진연과 교방사의 공연활동

이병옥, 재인 한성준의 삶과 무용사적 의의

이 송, 신무용의 기점과 문화사적 의의

유민영, 한국근대공연예술사에서 조택원의 위치

성기숙, 근대 신여성의 표상, 최승희

 

보고사, 2013. 정가 30,000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8. 2. 16. 18:48
춤추는 무희여, 그대 새의 모습을 한 신선이여!
           -춘앵전을 보고-



                                                                                     조규익

당나라 고종때의 일이다. 무슨 근심이 있었던지 새벽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던 황제. 밖으로부터 꾀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슬며시 창을 열고 내다본즉 노란 색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갑작스레 흥이 일어, 즉시 악공 백명달을 불렀다. ‘저 꾀꼬리의 자태를 춤과 노래로 만들어보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며칠을 고심했다. 마침내 ‘춘앵전(春鶯囀)’을 완성한 그는 아리따운 무희를 선정, 무복(舞服)으로 분장시킨 뒤 또 며칠을 연습시켰다. 자신이 붙은 악공은 드디어 황제 앞에 그 춤과 노래를 올렸다. 황제는 크게 만족했고, 그로부터 이 춤곡은 궁중에서 공연되었으며, 우리나라에까지 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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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숭실대학교 한국전통문예연구소의 학술발표회에서는 조선조 후기 정재에 관한 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춘앵전 공연도 있었다. 발표된 논문들도 쉽게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춘앵전 공연은 그날 행사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격이었다.
황금색 옷으로 갈아입은 무원 최서윤씨는 흡사 신선이라도 된 듯, 일렁이며 춤을 추었다. 객석에 앉은 학인(學人)들은 넋을 잃고 아름다운 춤사위에 취했다. 춤이 진행되는 10분 가까이 객석으로부턴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가끔씩 탄성만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었다. ‘감동적인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아지경에 몰입한 춤꾼 최서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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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앵전에는 두 가지 이미지, 즉 아름다운 꾀꼬리의 그것과 가볍고 자유로운 신선의 그것이 겹쳐 있었다. 옛날부터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으면 신선이 된다고 믿었는데, 그 상태로 날아오르는 것을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 했다. 하느님의 사자로 선향(仙鄕)인 곤륜산을 오르내리던 신조(神鳥)가 봉황이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신선이 봉황이나 학을 타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덕흥리 고분과 무용총에도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승천(昇天)하는 존재, 혹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점에서 신선과 새는 유사한 것일까. 새의 동작을 모방하여 춤사위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것도 새가 날개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개는 ‘날아다니는 신선’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날개가 있어야 복잡한 인간세상을 초탈하는 신선이 되어 신적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천사와 비슷한 존재일까.
꾀꼬리의 아름다움을 본떠 만든 춘앵전은 새의 이미지와 인간 및 선계를 성공적으로 연결시켰으니, 이 정재 30박 째의 동작인 ‘과교선(過橋仙)’은 그 핵심이다. 이것은 춘앵전 동작 가운데 압권인 이 용어를 번역하면 ‘다리를 건너는 신선’ 더 구체적으론 ‘신선이 다리를 건너듯 추는 춤사위’가 될 텐데, 무원이 좌와 우로 돌 때 마치 신선이 다리를 건너가듯 사뿐사뿐 춤을 추는 모양에서 유추된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춤꾼 최서윤씨의 환상적인 춤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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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다음의 동작들은 내 눈을 어지럽게 했다.

 *새가 날개를 펴고 날듯이 빙글빙글 도는 ‘회란(廻鸞)’(8박)
 *날아오르듯 발을 가볍게 디디며 추는 ‘비리(飛履)’(11박)
 *한 층 한 층 탑에 올라가듯 세 걸음 나아가며 차츰 두 팔을 올려 드는 ‘탑탑고(塔塔高)’(15박)
 *원앙을 쳐서 날갯짓을 하도록 소매를 뿌려 내리는 ‘타원앙장(打鴛鴦場)’(16박)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 하늘하늘 걷는 듯 악절에 맞추어 추는 ‘사사보여의풍(傞傞步如意風)’(24박)
 *금모래가 날리는 것처럼 황금색 꾀꼬리가 나뭇가지를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듯 앞뒤로 나왔다 물러
   갔다 하는 ‘비금사(飛金沙)’(27박)
 *제비가 둥지로 돌아가듯 춤추며 물러가는 ‘연귀소(燕歸巢)’(32박)
 *새가 아름다운 꽃 앞에서 요염한 자태를 짓듯 교태를 부리는 ‘화전태(花前態)’(18박)
 *꾀꼬리가 날갯짓을 하듯 소매를 들어 휘두르는 ‘요수(搖袖)’(17박)
 *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을 물려다 그만 두듯 물러서는 ‘당퇴립(當退立)’(20박)
 *새가 날개를 펼치려다 내리는 것처럼 소매를 살짝 나부끼는 ‘소섬수(小閃袖)’(21박)
 *새가 번갈아 좌우로 몸을 기울여 걷듯 하는 ‘사예거(斜曳裾)’(7박)
 *새가 몸을 높였다 낮추는 동작을 이어 하듯 소매를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저앙수(低昻袖)’(9박)  
 *꾀꼬리가 날개를 펴고 뛰어 올라 흔들리는 꽃잎을 잡듯이 세 번 몸을 돌리는 ‘전화지(轉花持)’(19
   박)
 *꾀꼬리가 머리를 낮추었다가 들듯 허리를 꺾었다가 다시 펴는 ‘절요이요(折腰理腰)’(10박)
 *꾀꼬리가 두 날개를 한일자로 폈다가 반쯤 내리고 다시 올려 뿌리듯 하는 ‘수수쌍불(垂手雙拂)’(3
   박)
 *꾀꼬리가 살래살래 몸을 돌리듯 물결이 맴돌 듯 몸을 돌리며 춤을 추는 ‘회파신(廻波身)’(29박)

  등등.  거의 모든 춤동작이 새의 움직임이었고, 그 바탕엔 신선이 있었다.  

***

무대 위의 돗자리가 치워지고 무희가 사라진 다음에야 우리는 현실계로 돌아왔고,
그 시점으로부터 나는 황금색 꾀꼬리와 신선이 만들어낸 선계(仙界)의 환상공간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 우리를 잡답(雜沓)의 일상으로 되돌려 보낸 무희여!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춘앵전’의 무희여!

                                  2008. 2. 13.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