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1. 18. 02:33

선생을 존경해야 나라가 산다!

 

 

 

그는 멀리 가는 내 차에 처음으로 동승했다.

묵직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저음으로

긴 교단 생활의 아픈 마음을 내게 덜어 건넸다.

무엇보다 교육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정년을 3년 앞둔 그였다.

학생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아

마지막 3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의 학생들, 무서운 게 없다고 했다.

 

 

언젠가 학생의 도가 지나쳐 뺨을 친 교사가 있었다 한다.

그런데, 학생 녀석도 달려들어 교사의 뺨을 쳤고,

결국 난투극이 벌어졌다 한다.

충격을 받은 그 교사, 결국 명퇴로 통한의 교단생활을 마무리하고 말았단다.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러 매 한 대 맞으면,

당연한 일이지!’가 지난 시절 한국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쇼팽이 피아노 치듯 잘도 놀리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눌러

잽싸게 부모에 경찰에 신고하는 게 그들이란다.

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지만,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주신 분은 선생님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부모가 돈을 내서 먹여 살리는 존재가 선생인 세상이다.

내 덕에 살아가는 존재가 선생이라는 것이다.

툭하면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들의 멱살을 잡거나 뺨을 치고

뻔질나게 경찰차가 교문을 드나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돈 없고 빽 없는 놈은 국립사범대학에나 가야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가난에 찌들어 있던 나는 미련 없이 그곳으로 갔다.

들어가서 책으로나마 페스탈로치의 철학도 배웠고,

그의 철학과 삶을 통해 내 선택을 정당화 시키고자 노력도 했다.

 

 

고백하건대, 학교 시절 맘에 드는 선생님들은 거의 없었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여지없이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이니 존경하는 게 맞다고 늘 나 자신을 눌렀다.

그 시대엔 누구나 그랬다.

선생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

그래도 교직이 다른 직종보다는 수시로 잘못을 자책하게 하는 분야라는 것,

그래서 교사는 결정적 흠결이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농후한 존재들이라는 것.

이렇게 나는 나를 포함하여 선생들이 갖고 있는 존재론적 진실을 깨닫기까지

5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정치인들과 정치인들 뺨치게 정치적인 교육감들이 표를 의식해서였을까.

이른바 학생인권조례라는 걸 만들어 학교를 해방구로 전락시켰다고들 한다.

집에서도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지 오래다.

자식이 잘못 했을 때 꾸중하는 부모도 별로 없다.

사회에서 누군가 내 자식을 꾸짖을 때

그 어른을 탓할 뿐 자식을 꾸짖는 부모는 거의 없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625 직후부터 196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사회의 의식을 지금의 그것으로 전환시킨 장본인들,

부모에게 효도하고 선생님을 존경해왔으면서 정작 자식들에게는

그걸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자식들이 자식들을 낳아 학교에 보내게까지 되었으니, 학교의 꼴은 불문가지다.

선생이 특정학생에게 언성만 높여도 부모로부터 득달같이 전화가 걸려오고,

심하면 찾아와 멱살잡이와 폭력이 이어지는 시절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무서운 것도, 존경할 대상도 없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무서움과 존경을 가르치지 않는다.

요즘 부모들은 입만 열면 아이들 기 죽이지 말라!’고 고함을 지른다,

그러나 제멋대로 굴게 만드는 힘는 아니다.

기에는 정기(正氣/精氣)와 사기(邪氣)가 있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기개’, ‘바른 자세로 매진하는 기개가 정기(正氣/精氣),

사람을 속이고 공동체를 교란시키며

제멋대로 구는, 삿된 기운이 사기(邪氣).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의 기를 세우려 한다지만,

그 상당수의 경우는 삿된 기운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아이들은 또래들로부터 왕따 되는 것만 무서울 뿐,

도대체 무서운 게 없다.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가 나서서 감싸주고 경찰이 나서서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군대에 십 수만 명의 관심사병이 상존(常存)하는 것 역시

이런 교육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논리가 그럴 듯한 것도 그 때문이다.

결국 빗나간 자식사랑이 교육을 망치고, 군대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고, 나라까지 망치고 있는 것이다.

 

***

 

아이들에게 존경할만한 대상’, ‘무서운 대상을 만들어줘야 한다.

선생님으로부터 꾸중 받고 전화를 걸어왔을 때 득달같이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님의 멱살을 잡지 말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며 가정교육 부실에 대해 사죄한 다음,

전화 걸어온 자식을 매섭게 꾸짖을 순 없을까.

제대로 된 교육은 그 지점부터 시작될 것이고,

이 사회와 국가는 그 지점부터 바로 잡힐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이제 베이비부머들과 그 자식들은 한참 빗나간 자식들을 밥상머리로 끌어들여

무서운 대상존경할 대상을 알게 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페스탈로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3. 17. 10:17

‘죽은 어른의 사회’

 

조규익(국문과 교수)

 

얼마 전 한 노인을 만났다. 사회적 지위도 누릴 만큼 누렸고 돈도 많은 분이었다. 그런데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불평이 많았다. 후배들이 자신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노여워했다. 본인은 나이도 학식도 지위도 누구 못지않은데, 주변의 젊은이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을 ‘어른’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노인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 판단의 정당성까지 담보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분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대체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자격 없는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점은 학부 신입생부터 정년을 앞 둔 교수까지 10대에서 60대까지 모여 있는 대학이나 세대 구성이 더 다양한 사회 모두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노인이라 여기는 노인은 없다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에누리 없는 노인들’만 주변에 그득하다. 그 중에는 간혹 공동체 운영의 헤게모니를 한사코 놓지 않으려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도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눈엔 ‘제대로 된 어른’보다 ‘탐욕과 편견에 찌든 노인들’만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사회가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것은 그런 노인들이 공동체의 선도역을 자임하기 때문이다. 말하기보다 들어주기, 현실적인 일에 초연하기, 후배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지갑 열기 등등 자신을 덜거나 버리는 일에 나서야 비로소 노인 아닌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후배들을 원망하며 그들과 엉겨서 이해다툼이나 벌인다면, 언제까지나 ‘어른’ 아닌 ‘노인’으로 남을 뿐이다.

최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신앙인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 분이 진정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아온 ‘어른’이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노인들은 이 땅에 명예와 부의 지저분한 껍질만 남기고 떠난다. 아니, 명예와 부의 근처에도 못 가본 채 그것들에 집착한 욕망의 검불들만 날리고 떠나버린다. 소년, 청년, 장년으로 살다가 ‘어른’이 되어보지 못한 채 ‘노인’으로 씁쓸히 세상을 하직하는 게 필부필부들의 삶이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른으로 죽을지 노인으로 죽을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는 ‘죽은 어른의 사회’에 살고 있다.(2009. 3. 16.)

*이 글은 <숭대시보> No. 990, 2009년 3월 16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
연행록 - 일반2008. 3. 2. 14:17
 

열정으로 빚어온 아름다운 삶

-아헌(雅軒) 정화자 교수님의 정년에 드림-



마음에 맞는 전공을 만나 학문으로 입신(立身)하고, 그 학문을 업으로 삼아 세상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만큼 멋지고 영예로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요. 지식사회의 일원인 대학교수로서 세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만큼 힘들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삶의 한 부분을 멋지게 마치고 ‘정년’이라는 새로운 삶의 스타트 라인에 서는 것만큼 후련하면서도 기대되는 일이 진정 어디에 있을까요.

    ***

 아헌 교수님께서 이달 말일부로 삶의 한 획을 그으신다 합니다. 언제 보아도 후덕하신 인품에 똑 떨어지는 말씀으로 후학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아헌 교수님께서 정년을 맞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언뜻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년’이라하면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새로운 삶의 장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란 사실을 생각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90, 100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수명을 생각할 때, 답답하게도 어찌 한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분명 아헌 교수님은 우리 후학들이 모르는 ‘원대한 계획’을 짜놓고 계실 것입니다. 몹시 궁금하지만, 잠시 기다림의 미덕을 발휘하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아헌 교수님은 일찍이 남다른 혜안을 갖고 인생을 출발하신 듯합니다. 암울하던 60년대에 이미 음악에의 뜻을 갖고 서울대에서 공부를 시작하셨으며, 그곳을 졸업한 다음 한양대 등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시는 동안 우리 음악에 대한 관심과 조예를 키우신 점만 보아도 앞서 가는 통찰과 안목을 지니고 계셨음이 분명합니다. 젊은 시절 한 때 수원 매향여고, 서울 한성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으셨고, 한성대·청주대·강남대 등에서 강의를 하셨으며, 청주대학의 전임교수로 지금까지 일관해 오시는 동안 기라성 같은 문하생들을 길러내셨습니다.

 음악학의 연구에도 매진하시어 “진양(陳暘) ‘악서(樂書)’의 악론(樂論) 연구”, “악기 제작에 내재된 음악사상-아악기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악인(樂人)의 사회적 지위-궁중 악인을 중심으로-”, “판소리 장단과 사설과의 관계”, “타령(打令)에 관한 연구”, “가곡(歌曲)의 원형(原形)과 변형(變形)에 관한 연구” 등 아악·속악에 두루 걸치는 내용의 박학한 논문들과, 『소리의 천재 영감의 마술사들』, 『무용미학』등 좋은 책들을 펴내심으로써 연구의 내공을 약여(躍如)히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연구업적들은 날이 갈수록 후학들의 귀감으로 빛을 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뿐인가요. 서울과 청주를 오가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명동의 서당에 나와 후학들과 글을 읽으시는 일은 무엇보다 교수님을 돋보이게 하는 점입니다. 더욱이 대학이 위치한 청주에서 ‘청주농악보존회’ 이사와 ‘한국국악교육학회’ 충북 지부장 등을 맡아 헌신하고 계시며, 사단법인 온지학회의 부회장으로서 학계에 기여하신 점은 후학들이 두고두고 기억하고 본받아야 하리라 봅니다. 

    ***

 이제 아헌 교수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학의 문을 나서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살아오시는 동안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한 삶에는 후회가 있을 수 없지요. 교수님께서는 그런 전반생을 바탕으로 힘차게 후반생을 시작하실 수 있으리라 저희들은 믿습니다. 달콤하게 펼쳐질 후반생에 멋진 일들만 계속될 것으로 확신하오며, 교수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빌어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2. 28.


          사단법인 온지학회

          회장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