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4. 7. 8. 11:28

'박근혜는 바보여~!'

 

 

 

맹자가 양혜왕을 뵙자 왕은 못 가에 서서 홍안[鴻鴈: 큰 고니와 기러기]과 미록[麋鹿; 고라니와 사슴]들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어진 자도 역시 이런 것을 즐거워할까요?” 맹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진 자가 된 이후라야 이런 것을 좋아하지요.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런 것이 있다 해도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시에 '처음으로 영유[靈囿: 백성들이 문왕을 위해 지은 영대 밑의 동산]를 지으실 때에 이를 헤아려 경영하시니 서민이 몰려와 이를 꾸미어 하루가 못 되어 완성하였네. 급히 서둘지 말라 일렀건만 서민들은 아들이 달려오듯 찾아 왔다네. 왕이 영유에 나와 있으면 사슴은 번쩍번쩍 빛나고 백조는 하얗게 빛났다네. 왕이 이번엔 영소[靈沼: 백성들이 문왕을 위해 만든 연못]로 구경 나오자 물고기 가득히 뛰어 놀았네'라 하였습니다.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영대와 영소를 지었건만 백성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겁게 여겼던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백성과 함께 즐겼기 때문에 능히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문왕이 백성들의 힘을 빌어 영대영소를 지었건만,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겁게 여긴 것은 문왕이 그것을 백성들과 함께 즐겼기때문이었다. ‘백성들과 함께 즐겼다는 것이 바로 소통의 본질이다. 문왕은 백성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넘겨짚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거나 관념상의 자리바꿈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을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왕은 내가 만약 백성이라면 임금에 대하여 어떤 바람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가상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늘 던졌음에 틀림없다. 거기서 나온 결론이 바로 백성과 함께 즐기자!’는 것이었고, 그게 바로 요즘 말로 소통이란 것이다.

 

 

50대인 나는 이 땅의 우리 세대가 갖는 시대적 징표들을 형틀처럼 짊어지고 사는 존재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로 대표되는 계몽가를 주문처럼 되뇌면서 꿈을 키웠다. ‘농경시대-산업화 시대-정보화 시대를 거쳐 지금 고도 정보화 사회의 말석에까지 이르렀으니, 다른 나라들에서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발전의 과정을 단 몇십년만에 압축적으로 경험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박정희라는 인물은 가난과 무지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선각자였고, ‘북괴는 민족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사탄들의 집단이었다. 그런 의식에 바탕을 둔 박근혜의 등장을 보며 질곡의 땅에서 자라난 50대 이상 세대들이 환호성을 내지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해방 이후 정권을 잡아온 남자들을 생각해 본다. 오고가는 술잔 속에 얼렁뚱땅 이루어지는 끼리끼리의 담합, 얕은 수로 당장의 이익을 챙기려는 밀실의 야합등등, ‘구린 남자들의 카르텔이 국가 권력의 이면구조였다. ‘정치(政治)라는 좋은 말이 이 땅에서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남자들의 야망을 합리화 시키는 미명으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이 땅의 50대가 그런 남성들 사이에서 혜성같이 등장한박근혜에게 호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여성인 박근혜는 적어도 그간 권력을 갖고 얼렁뚱땅 장난질을 쳐온 남성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무엇보다 컸다. ‘아버지 박정희가 갖고 있던 꿈에 '화룡점정'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그 무엇보다 크고 중요했다단순히 50대에 이르러 남성 호르몬이 현격하게 줄었다는 생리적인 이유 때문에 여성인 박근혜에게 공감을 갖게 된 건 아니란 말이다.

 박근혜가 들고 나온 신뢰와 원칙이란 우리 세대의 소망적 사고를 결집시킨 슬로건이었다. 취임 초기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간 지지율도 나를 포함한 50대 이상 세대의 굳건한 믿음을 발판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걸 믿었다. 적어도 박근혜라면, ‘신뢰와 원칙의 정치를 우리 정치에 착근(着根)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지혜였다. 꽉 막힌 고집이 아니라 누구도 승복할만한 방법론을 개발해내는 것이 바로 지혜였다. 내 생각이 비록 100% ‘진리여서 그 실현에 대한 100%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해도, 갈래갈래 흩어진 민심의 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섬세한 방법론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 내 생각의 옳음에 대한 확신보다 그 확신에 대한 설득과 지지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있었어야 했다.

 문왕도 처음에는 내 궁전에 멋진 정원과 연못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제왕의 궁전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왕국의 체면으로 보아 좋을 것이고, 무엇보다 제왕 자신이 원하는 바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왕은 아주 섬세한 방법을 동원했다. 그 일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즉위 당시부터 백성들과 함께 하는 면모를 보여준 그였다. 그 과정을 통해 백성들은 임금의 표정만 보아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문왕의 정원과 연못을 만들고 기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바로 그게 문왕이 보여 준 치자의 지혜였다.

 

 

소통이 그렇게 힘 드는 일인가. ‘즐거운 마음으로탁자 위에 차 한 잔 마련해놓고 정치의 파트너들을 불러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손가락 몇 번 움직여 여당이나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라도 걸어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이 그렇게 터부로 여길 만한 일일까. 사방에 우글거리는 기자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거나 자신의 시책을 설명하는 일이 그렇게도 번거로우며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일까. 어찌하여 세상의 평판이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아니한 채  하나같이 문제투성이의 인간들만 찾아서 국가 대사를 맡기려 한단 말인가. ‘동네 반장이나 이장을 맡기에도 버거운 인물인지, 한 나라의 정승을 맡을만한 인물인지몇 마디 이야기만 나누어 봐도 알 일인데, 무슨 이유로 한사코 그런 문제적 인간들만 찾아 내 놓아서 정적들의 비웃음을 자초한단 말인가. 

 

 

물론 항간의 소문이나 사람들의 평판이 매번 맞는 것은 아니고, 줏대 없이 그에 따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세평(世評)을 무시함으로써 당하게 되는 어려움은 더 크기 마련이니, 양자를 적절히 배합하는 게 바로 지혜다. 그걸 잘 하면 좋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고, 못 하면 줏대 없는 허수아비대책 없는 독불장군이 되는 것이다. 좋은 정승 감들을 찾아내고도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버리고 마는 지도자를 누가 따를 것이며, 세상에 좋은 정승 감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혹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까봐 발탁조차 하지 못하는 소심함과 속 좁은 욕망의 소유자를 누가 지도자로 섬길 것인가.

 

 

만족의구불안실망절망으로 초심의 급격한 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이 땅의 50대들은 만사 제쳐두고 투표장에 달려가 한 표를 행사한 집단이다. 그래서 이들 마음의 변화는 현실 정치의 잘 되고 못됨을 평가하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기준은 경험이다. 이 땅의 50대들은 공허한 이론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의 투사들이 아니라, 맵짠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판의 건전한 대안을 모색해온 집단이다. 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치며 가까스로 찾아낸 대안이 바로 현 대통령이다. 힘들여 찾아냈다고 자부하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 대안에 대하여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는 판정을 내리는 순간, 그 대안 또한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 박힐 수 있음을 왜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오늘 만난 동향 친구의 박근혜는 바보여~!’라는 평가를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절실하게 공감하고 있는데, 정작 대통령이나 그 주변의 인사들만 모른다면, 이 문제야말로 조만간 민족사의 비극이나 수치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걱정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5. 15. 01:21

, 윤창중!

 

                                                                                                                                                             백규

 

세상의 불의에 불끈거리며 서툰 언설(言說)들이나마 농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언사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로 얼마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특정인을 정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도 뜻하지 않게 누군가가 유탄에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복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 스스로는 그것을 힘들게 얻은 지혜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간 얻은 알량한 지혜를 도로아미타불로 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의 평범한 한국인들, 그 가운데 나를 포함한 50대 후반의 남자들을 대신하여 장작불 위로 던져진 한 마리의 미련하고 가련한 희생양을 조상(弔喪)하지 않는다면,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부끄러움을 어떻게 삭여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불자(佛子)는 아니로되,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에 빠져 허우적대는 저 인간의 표정에 비쳐 보이는 내 어리석음의 진면목을 어찌 남의 일인 듯 뻔뻔하게 구경만 할 수 있단 말인가.

     ***

천하의 이목이 쏠려 있는 미국의 중심부에서 윤창중이 일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이래, 나라 전체가 벌집 쑤신 형국이다. 멀끔한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은 대중매체들이 깔아놓은 멍석에 둘러 앉아 고담준론으로 성토하고, 인터넷에서는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몰려들어 몽둥이찜을 안기고 있다. 그의 등짝에 모진 매질을 하면서 흡사 우리는 그와 다른 범주의 인간들임을 주문(呪文)처럼 되 뇌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미련하고 눈치 없이 굴다가 천하의 이목에 걸려 버린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요행히 그런 덫에 걸리지 않은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일갈하신 예수의 꾸지람을 새삼 이 자리에서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윤창중이 무슨 달나라에서 온 외계인도 아닐 것이며, DNA나 대뇌에 특이한 돌연변이를 경험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그냥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인총(人叢)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자고나면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이 밥 먹듯 일어나는 이 나라의 허전하고 찌질한 50가 그 본색을 감추지 못한 결과일 따름이다. 지폐 몇 장 든 지갑을 흔들며, 생활비나 벌어보겠다고 나선 젊은 여인들을 희롱하는 우리네 룸살롱의 추태를 세계무대에 유감없이 보여준 이벤트에 불과하며, 나를 포함한 무수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참으로 자제력 없고 유치한 하등 인물하나가 남의 동네에 가서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폭거(暴擧)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샌다는 평범한 이치를 고지식하게 실천한 그의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고, 그런 평범함을 교묘하게 감추고 국가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그의 교활함이 가소로울 뿐이다.

     ***

성범죄의 법리나 그의 행위가 초래한 현실적 문제들은 귀가 아프게 들었으니, 새삼 거기에 부실한 내 말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왔으면서도,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모면해 보려는 궁한 모습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인터넷 속의 무진장한 지식과 혜안으로 무장한 5천만이 밤낮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이거늘,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지언(知言)’ ‘(남의) 말을 알아차리는 것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치우친 말[피사(詖辭)]에 대해서는 그 가려진 바를 알아내고, 방탕한 말[음사(淫辭)]에 대해서는 함정이 되는 바를 알아내며, 사악한 말[사사(邪辭)]에 대해서는 괴리된 바를 알아내며, 숨기는 말[둔사(遁辭)]에 대해서는 그 궁한 바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지언(知言)’이라 했다. 윤창중은 미국에서 도망쳐 온 뒤 전 국민을 상대로 둔사를 농하며 궁지를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런 둔사를 농할수록 자꾸만 궁지로 빠져드는 초라하고 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국민이 지언(知言)의 지혜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필부라 해도 지금이 살기를 도모할 때가 아님을 모를 수는 없다. 자신을 죽여도 모자랄 판에 궁한 둔사를 농하며 살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를 보며, 비단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던 평원의 필부들로부터 기만 당해 온 지난 세월이 억울하게 생각되는 건 과연 나 혼자 뿐일까. 위압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우리들에게 군림하던 그 옛날의 고관대작들은 과연 윤창중보다 나은 존재들이었을까.

    ***

무엇보다 비판되어야 할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무사려(無思慮)함이다.  다시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어찌 그가 재주가 모자란 지를 미리 알아 그런 자를 등용시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진 이를 등용함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해야 합니다. 장차 낮은 이로 하여금 높은 자리를 뛰어넘게 하거나 관계가 먼 자를 가까운 친척보다 앞세워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좌우가 모두 ‘(그가) 어집니다라고 평해도 그대로 해서는 안 되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그가) 어집니다해도 아직 안 됩니다. 나라 사람 모두가 어집니다라고 한 연후에 이를 관찰하여 그 어짊을 드러나 보이게 한 뒤에야 그를 등용하는 것입니다. 또 좌우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 모두가 안 됩니다하고 나서야 이를 살펴 불가함이 드러난 뒤에야 그를 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좌우가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한 다음에야 이를 살펴보고, 가히 죽일만함이 드러난 뒤에야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사람이 죽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다음에라야 가히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대화다. 기원전 4세기의 맹자가 어떻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단 말인가. 윤창중에게 무거운 직을 부여하던 당시 주변의 사람들이나 대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고 했으며, 대부분의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했으나,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데, 그가 죽을죄를 진 지금과연 대통령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치던 당시 국민들의 뜻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2. 24. 11:18

                        *1968년도에 찍은 필자의 방갈국민학교 졸업기념 사진

 

 

장학사 유감


                                                                                                                                                          백규

#60년대 중반.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궁벽한 시골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한 학기에 한 두 번씩 조용한 학교가 뒤집어질 때가 있었다. 바로 장학사가 ‘뜨는’ 때였다. 그 옛날 암행어사는 예고도 없이 뜨는 ‘무서운’ 존재였지만, 당시 장학사는 ‘예고하고 뜨는’ 암행어사였다. 차라리 예고 없이 뜨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미리 예고를 하고 뜨는 바람에 흡사 ‘날짜 받아 놓은 사형수’처럼, ‘뜨거운 여름 날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모두들 불안하고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장학사 왕림 일주일 전부터 우왕좌왕하며 코흘리개 아이들을 닦달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창틀은 닦을수록 칠 부스러기들만 묻어 나왔고, 더덕더덕 때 낀 4면의 벽과 군데군데 못이 빠지고 뒤틀려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교실 바닥의 널빤지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늘 습기와 지독한 냄새에 쩐 재래식 화장실, 그곳을 무시로 드나드는 강아지만한 시궁쥐들은 참으로 처치 곤란이었다. 무심한 시간은 흘러 장학사님이 왕림하시는 날. 늙으신 교장 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버짐 핀 얼굴에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두 줄기 콧물을 훔쳐내는 한편, 덕지덕지 때 낀 손들을 숨기느라 늘 뒷짐을 져야했던 우리들은 길게 도열하여 ‘암행어사보다 무서운 장학사님’을 영접하곤 했다. ‘어사 출도’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장학사가 돌아가고 난 교정은 또 다음번의 ‘어사 출도’가 있기 전까지 고요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70년대 후반의 어느 해 3월. 사범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병아리 교사로 부임했다. 유신 정권이 막바지로 접어 든 시기였다. 부임 후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장학사가 온다고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난 듯 했다. 그 모습이 초등학교 학동시절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청소는 물론이고 각 분장업무 별 공문 정리, 수업지도안 보완 등 어수선한 두어 주를 보낸 뒤 장학사를 맞았다. 그는 젊어 보였다. 꼭 다문 입술이 단정했고, 말도 깍두기처럼 각이 져 있었다. 교감 이하 전 교사가 교무실을 가득 메웠고, 장학사는 맨 앞 반 층 높은 자리에 제왕처럼 앉아 전체 교사들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앉았다. ‘고압적’이라는 말의 뜻을 눈앞에서 깨닫는 순간이었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팽팽해진 교감과 교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 시각쯤 교장은 교장실에 앉아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물 끼얹은 듯 좌중은 고요했다. 장학사 손에는 교사들의 명단이 들려 있었다. 갑자기 장학사가 “○○○선생!”하고 불렀다. “네!”하고 일어나 부동자세로 선 그 교사에게 장학사는 “이 학교의 학교운영방침과 교훈을 말씀하고 설명해 보시오!”라고 물었다. 그 교사는 교훈은 그런대로 말했으나 학교운영방침은 생소했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가슴이 덜컥했다. 교사라면 학교운영방침 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낮고 음침하면서도 깍두기 같은 질타가 장학사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그 교사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장학사는 다른 교사 두 명을 호명하여 ‘수업지도안’을 갖고 나오라 했다. 대충 한 두 페이지를 넘겨보던 그는 장황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영명하신’ 장학사였다. 교사들이 힘들여 작성했을 지도안을 그 짧은 순간에 어찌 그리도 ‘당당하게’ 짚어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히 장학사의 말 가운데 칭찬보다는 질타, 훈계가 압도적이었다. 흡사 그는 학교의 약점을 잡아 교사들을 겁주려고 찾아 온, 일종의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 형성된 장학사의 이미지가 교사가 된 후에도 그대로일 줄은 모르고 있던 나였다. 참으로 무서운 것이 장학사란 직책의 고압적인 분위기였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이유로 교단을 떠났지만, ‘장학사-교장-교감-부장’ 등 교육계의 고압적 관료시스템이 주는 불만과 좌절도 크게 작용했음을 요즘 들어 더 깨닫게 된다.

#그 후 장학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 것은 순박하고 성실한 내 친구들이 장학사, 장학관 등으로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였다. “아, 저런 친구들이 장학사의 계급장을 달고 일선학교에 나가 병아리 같은 학동들과 순진한 선생님들 앞에서 목에 힘을 주었던 것이로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장학사에 대한 두려움을 비로소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군사정권 시절부터 장학사나 장학관은 국가 권력의 대행자쯤으로 자처하며 교직사회를 지배해 온 게 아닐까.

#최근 충남 교육청의 ‘장학사 임용시험 비리’가 불거지면서 그간 나를 지배해왔던 장학사들의 정체 상당 부분이 드러나고 말았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런 비리가 충남 교육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교육계도 사람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교사도 월급 받아 가정을 꾸리는 생활인이고, 남들보다 잘 살고 싶고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일 뿐이다. 욕망의 도가니에서 아귀다툼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교사들에게만 욕망을 버릴 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교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반목도 다른 공동체 못지않다는 사실을 교직에 몸담고 있는 친구들에게 듣는다. 물색 모르는 사람들은 ‘교사들 사이에 무슨 갈등과 반목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묻게 된다.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교직사회도 본질적으로 ‘계급’에 의해 지탱되는 질서를 갖고 있다. 지위의 고하에 의해 형성되는 계급은 ‘재화(財貨) 획득의 차등’을 결정한다. 교사 또한 물질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들 동료 교사보다 높아지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는가. 그런 과정에서 타고난 재주와 후천적인 노력보다 쉬운 것이 ‘부정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고, 결국 위아래 할 것 없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아름답던 학창시절의 추억과 미래세대의 꿈이 오롯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교육계의 비리가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불거진 상처는 예리한 칼로 정확하게 도려내야 할 것이다. 고름이나 암종(癌腫)의 한 부분이라도 남는다면, 조만간 그게 커져 또 다시 더 큰 칼을 대야 할 비극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학사 선발 비리’를 보면서 참으로 뒤숭숭해지고 슬퍼지는 요즈음이다. <2013. 2. 23.>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 9. 10. 21:54

곽노현 교육감을 바라보며

 
얼마 전 서울시에서 있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파 간 힘겨루기의 한 판 씨름장이었다. 오세훈 전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은 샅바를 마주 쥔 장사들, 아니 양 진영을 지휘하는 장수들이었다. 오 장군은 제발 투표 좀 해달라고 애걸했고, 곽 장군은 ‘나쁜 투표’이니 투표장에 가지도 말라고 사람들을 막았다. 대명천지 세계 굴지의 도시 서울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투표율 미달로 개함조차 못한 채 오 장군의 패배가 선언되자, 오 장군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전장에서 스스로 물러섰다. 그 며칠 후 곽 장군의 비리가 터져 나왔고, 두 진영의 왁자지껄한 말싸움 끝에 급기야 오늘 새벽 구속⋅수감되었다. 곽 장군의 비리가 터져 나올 즈음 몇몇 식자들 사이에서는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속담들이 회자되었다. 목에 힘을 주고 느긋한 자세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곽 장군이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장 직을 내던진 오 장군이 오히려 승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내일 그들의 입장이 다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희망과 불안을 나누어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작은 승리에 자만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곱씹게 된 요즈음이다.

***

곽 교육감의 비리사실이 터져 나오고 돈을 건넨 사실을 스스로 털어 놓을 때 쾌재를 부른 사람들과 망연자실한 사람들이 반반인 듯 보였다. 쾌재를 부른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은 그와 견해를 함께 하면서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오 시장이 전투에 져서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모든 아이들을 점심 한 끼 공짜로 먹게 하느냐, 어려운 아이들만 공짜로 먹게 하느냐’는 명분은 전쟁터의 이른바 ‘효시(嚆矢)’였다. 모든 학생들을 공짜로 다 먹게 하자는 주장의 이유는 학생들의 형편이 드러날 것이니 그게 차마 못할 짓이라는 것이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공짜로 먹게 하자는 주장의 이유는 이 일이 무분별한 복지의 단초가 되어 궁극적으로 나라를 어렵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두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어떻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자’는 점은 공통되니, 그 얼마나 어질면서도 성스러운 명분의 투표인가. 그런데,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한 채 두 진영은 싸움판을 옮겨가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 모두에게 공짜 밥을 먹일 것인가? 어려운 학생들에게만 공짜 밥을 먹일 것인가?’라는 애당초의 거룩한 명분은 깡그리 잊어버린 채 끝이 보이지 않는 멱살잡이로 날을 지새우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앞에서 ‘효시’란 말을 들었다. <<(莊子)>> <재유(在宥)>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지금 세상은 형을 당해 죽은 자들의 시신이 포개져 있고, 발에 차꼬를 찬 자들이 이곳저곳에 모여 웅성거리며, 치욕스런 낙인이 찍힌 자들이 줄을 서 있는 때이다. 그런데도 유가(儒家)나 묵가(墨家) 따위들이 칼과 수갑을 걸치고 있으면서 잰 체하고 있다. 아아, 너무도 심하여라!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도 없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들의 한심스러움이여! 이러니 나로서는 ‘거룩함과 지식[聖知]’이란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욕되게 하는 형구(刑具)이거나 그에 박아 넣는 쐐기가 아니며, ‘어짐과 의리[仁義]’란 목에 씌우고 손에 채우는 형구이거나 그에 쓰이는 장부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다. 하물며 증삼(曾參)이나 사추(史鰌)와 같이 인의를 귀하게 여긴 자들이 걸왕(桀王) 같은 포학한 임금이나 도척(盜跖) 같은 극악한 인물의 ‘효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래서, ‘성(聖)을 끊고 지(知)를 버리면, 천하는 편안하게 다스려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학생들에게 밥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라는 거룩한 명분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제 그 명분은 사라지고 두 진영은 온갖 감언이설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밥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라는 ‘효시’ 즉 전쟁터에서 쏘아올린 ‘우는 살’은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자기편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내건 명분이었을 뿐. 이젠 총과 미사일, 핵무기까지 동원한 전쟁판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의 허상에 사로잡혀 ‘좌빨[좌익 빨갱이]’입네 ‘보수꼴통’입네 하며 험악하게 서로 편을 갈라 벌이는 전쟁은 조만간 도래할 보궐선거, 총선, 대선에서 클라이막스에 오를 것이다. 두 진영에서 내세운 장수들이 1차 싸움에 상처를 입어 모두 빠졌으니, 머지 않아 두 진영은 새로운 싸움꾼들로 빈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 쌈장 후보들이 어제 오늘 사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칼춤들을 추고 있다. ‘민족, 선의(善意), 교류, 양보’ 등등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얼마나 그럴싸하고 고상하며 거룩하기까지 한가? 현실을 무시한 그런 말들의 향연이 결국 폭군 걸왕이나 악한 도척 등의 출현을 초래하여, 힘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쯤이나 깨달을까.

***

감방에 들어간 곽 교육감과 하야한 오 전 시장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지가 새삼 궁금해진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니 조만간 입장이 바뀔 그날만을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회한과 깨달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것인가.

2011. 9. 10.

Posted by kicho
알림2010. 12. 8. 20:26




'아리랑 연구총서'를 엮으며  
 
정선아리랑 아우라지 강물에
거룻배 하나 떠 있다고
어찌 여기만 이 세상이냐
가는 데마다
가는 데마다
사람들은 세상 하나씩 가지고 살면서
다른 세상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가 버리는구나

정선아리랑 아리아리랑
네 극빈으로는 세상 하나하나 버릴 것도 없이
초라한 그림자 데리고 서울로 간다
 -고은, <정선아리랑>-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있는 ‘아리랑’을 본다. 이미 시인의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세상 사람들을 관찰하는 렌즈가 된 그것을. 옛날부터 그냥 아리랑에 푹 파묻혀 푸념하듯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달래 온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골골이 흘러내린 그 슬픔과 회한은 어느 새 거대한 집단정서의 호수를 이루었고, 다시 우리는 그 속에서 함께 미역을 감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우린 그 호수를 떠나보지만, 고향을 찾듯 다시 호수로 돌아오고, 그랬다간 다시 그곳을 탈출하곤 한다. 반복되는 떠남과 돌아옴의 출발점, 아니 도착점에 아리랑은 늘 보란 듯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들판을 헤매다가 새삼 아리랑의 호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풍덩 뛰어들어야겠는데, ‘돌아온 탕자’가 제 집 문 앞에서 멈칫거리듯, 새삼 아리랑이 낯설다. 우린 그동안 어디서 헤매다가 다 늦은 지금에서야 돌아온 것일까?       
                                                    ***
외국사람 누군가가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아리랑>을 갖고 있어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그건 분명 맞는 말이다. 700만이 넘는 코리안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요즘 한국말을 구사하는 해외 이민 3세 이하를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아리랑’ 한 소절 부르지 못하는 코리안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아리랑은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우리말의 꽃, 아니 말을 뛰어넘는 정서적 DNA의 극적인 산물이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해외에서도 ‘코리아(Korea)’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다. 지속과 변이의 과정에서 아리랑의 수많은 각 편[version]들이 만들어졌으며, 문학⋅예술⋅공연⋅방송물⋅축제 등 다양한 방면으로 외연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본격 학문적인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그 시작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그간의 업적들을 『아리랑 연구총서』[전 10권 예정]란 그릇에 담아내기로 했다. 이 책은 그 첫 결실이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도 일부 연구자들은 선행연구들의 원문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한 ‘재인용’을 반복하고 있다. 문헌 수탐의 번거로움을 참지 못한다거나 찾기 어려운 초창기 문헌들을 제공하지 못하는 학계의 직무유기는 이쯤 청산되어야 한다.
둘째, 아리랑 연구의 어제와 오늘을 정리해야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다. 그간 학자들의 외면 속에서도 아리랑은 ‘한민족 정서의 핵심’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한 단계 올라서려면 학자들이 나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존 연구의 정리는 필수적이다.
셋째, 미래지향적 ‘아리랑 담론(談論)’을 펼치려면 ‘패러다임의 전환’에 맞먹을 만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그간 학자들이 갖고 있던 생각의 저변을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새 출발의 가장 긴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
한국문예연구소는 아리랑의 기존 연구들에 대한 반성적 모색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지난 학기[2010학년도 1학기/전국학술발표대회 ‘한국 아리랑學의 오늘과 내일’]와 이번 학기[2010학년도 2학기/국제학술대회 ‘한국 아리랑學 확립의 길’]의 학술발표회 및 ‘아리랑 연구총서’의 발간은 이런 소망을 실현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아리랑을 음악⋅문학⋅영상⋅콘텐츠 등 아무리 현란하고 다양한 분야로 응용해낸다 한들, 아리랑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규명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한갓 개인의 상상에 의한 허구(虛構)일 뿐이다. 우리가 아리랑의 본질 규명에 집착하는 것도 민족공동체의 구성원 누구나 공감할만한 진실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학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아리랑 담론’을 펼칠만한 사랑방을 한국문예연구소는 조용한 가운데 내실 있게 마련하려는 것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살피며 소처럼 신중하게, 그러나 당당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2010. 11.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11. 24. 15:36

 *모처럼 가면을 벗고 육두문자 비스름한 푸념 한 마디만 풀어놓아볼까?
                          


‘어려움을 당해봐야 사람의 그릇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필부필부(匹夫匹婦)들 치고 갑작스레 닥친 난관 앞에서 허둥대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家長),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首長),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얼굴들을 갖고 산다. 그 수가 하도 많아 어느 것이 내 얼굴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그 얼굴들은 대부분의 경우(아니 모든 경우) 진면(眞面) 아닌 가면(假面)들이다. 가면 즉 ‘페르소나(persona)'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평범한 말이 되었지만, 원래는 심리학에서 사용되어온 학술적 용어다. 이 말은 에트루리아의 어릿광대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하거나 타인 혹은 주변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칼 융은 말했다.

세상 사람들처럼 나도 많은 가면을 갖고 있다. 자상한(혹은 엄하고 곧은) 아버지나 남편의 얼굴로 집에서 쉬다가, 출근을 위해 차에 시동을 걸면 그럴 듯한 가면으로 잽싸게 바꾸어 쓴다. 강의실 문 앞에 서면 자못 근엄한(?) 교수의 가면을 쓰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는 악동의 가면을 쓴다. 그러니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른다.

가면을 진면으로 착각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실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아놓고 후회들을 한다. 그의 가면을 보고 뽑았는데, 나중에 언뜻언뜻 보이는 진면들 때문에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통령이 선택한 각료들만큼은 진면을 보려고 애들을 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가면 뒤에 숨은 진면을 노출시키게 되고, 그 때문에 상당수는 낙마(落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가면만 보고 사람을 뽑아 나라의 살림을 맡겨놓으니, 그 살림은 “잘 되어야 본전”일 따름이다.

***

지금 가면 이야기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가 못하다. 막 가자는 북한의 망나니들이 또 불장난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저들은 불장난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존심과 함께 소중한 생명, 재산을 잃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천안함 사건을 당하고도 대비를 못했는가, 이번에도 우리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사실 ‘천안함 피격’만큼 우리 사회의 바보스러운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도 없다. ‘노루 친 몽둥이 삼 년 우려 먹는다’든가? 입만 열면 ‘대양해군’, 입만 열면 ‘연평해전’을 떠들어대며 폼을 잡던 해군의 ‘똥별들’은 다 어느 쥐구멍에 숨어들었는가. 방위산업을 육성하여 선진국들과 경쟁을 하는 수준에 올랐다고 거들먹거리던 위정자들은 다 어디로 숨었는가. 비까번쩍하는 이지스함을 띄우면 뭘 하는가?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고철 덩어리 비스름한 잠수정 하나에 맥을 못 춘다면 천문학적 돈을 퍼부어 그런 함선을 만들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실사구시’를 하지 못하고 폼이나 잡고 있다면, 동네 건달패나 다를 바가 무엇일까. 그나마 그 정도로 창피를 당했으면 즉시 깨닫고 정신을 차려야 옳았을 텐데, 똑 같은 깡패들한테 또 당하고 말았다.

TV에 비치는 이른바 이 나라의 지도자란 자들의 낯짝을 보셨는지? 자못 근심스럽고 근엄한 가면을 쓰고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표정을. 천암함 처리과정을 보면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우리의 꼬락서니를 그 깡패들은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 놓고 한 대 더 때려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 놓고 스트레이트 펀치를 우리의 턱에 명중시킨 것이다. 백주대낮에 내 땅에 대포를 쏘아대는 모습을 두 눈 멀뚱 멀뚱 뜨고 바라보면서 ‘확전시키지 말라!’는 명령이나 내리는 비겁한 필부의 가면을 드디어 보고야 말았다. 그 깡패들은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깡패들은 모든 국민들이 ‘하늘같이 믿고 따르는’ 대통령의 얼굴에 ‘겁장이의 가면’을 덮어씌우고 싶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조준되는 미사일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리? 반격할 용기가 없는데. ‘다음번에 또 때리면 가만 안 둬?’라고 중얼거리며 ‘밤탱이가 된 눈’이나 껌벅거리는 겁한(怯漢)에게 어느 깡패가 겁을 먹으리?

***

모조리 갈아 치워야 한다. 군대 근처에도 못 가본 필부들이 나라를 운영한답시고 자못 근엄한 가면을 쓴 채 거들먹거리는 꼴은 더 이상 보아줄 수 없다. 깡패들과 한 통속이 되어 사사건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애태우는 이 땅의 이른바 좌파들도 더 이상 보아줄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자존심도 실리도 모두 챙기지 못하는 필부의 궁량으로 육천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공염불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차라리 대통령의, 국회의원의, 장관의, 장군의 가면들을 벗어라. 차라리 ‘나도 여러분처럼 한 개 필부요!’라고 커밍아웃이라도 시원하게 해보아라.

 

이제 게도 구럭도 다 잃어버린 채, 밀물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내 나라를 어찌 할 것인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