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7.19 빗나간 우리나라 언론 2
  2. 2010.09.13 대학평가의 금도(襟度) 1
글 - 칼럼/단상2014. 7. 19. 20:58

빗나간 우리나라 언론 

 

 


 

 

 

재작년 언제쯤이던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제자 한 녀석이 자못 분개한 듯한 어투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첨부파일을 열어본즉 가관이었다. 국내 모 대학의 어떤 공학 교수가 외국 학자들의 논문 십 수편을 표절하여 국제학술지들에 게재한 사실이 해당 학회 홈페이지의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내용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가 재직하는 대학의 사이트에 가보니, 그는 그 대학의 최우수 연구자로 선정되어 사진과 이름, 공적사항들이 홈페이지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참 놀랍고 한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같은 교수로서 그 사실을 내게 알려 준 그 제자에게 몹시 부끄러웠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그 교수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그런데 그는 해당 분야의 훌륭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미 정부의 해당 부처로부터 큰 상을 받은 바 있었는데, 그 수상논문이 바로 표절논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부처에서는 표절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덜컥 상부터 안긴 것이었다. 정부 부처로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으나, 금시초문이란다. 조사해볼 용의가 있느냐고 물으니 앞으로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시큰둥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지금껏 일언반구 연락이 없다.

 

 나는 즉시 그가 소속되어 있다는 해당 학회에도 문의했다. 회장은 연락이 안 되고, 여러 명의 부회장들 가운데 한 사람과 통화가 되었다. ‘귀 학회 회원 한 분이 표절행위로 해당 전공분야 국제학회의 홈페이지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마찬가지로 금시초문이란다. 나중에 확인하여 알려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당시는 그 교수의 표절행위가 게시된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한국의 해당 전공학회의 임원들이 한 번도 그 학회의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국문학자인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그 국제학회를 어째서 한국의 내로라 하는 해당 분야 학자들이 제대로 접속조차 안 하고 지내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직접 확인해보진 않았으나, 지금껏 그는 그 학교에서 잘리지 않고 '교수노릇'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더 이상 호소할 데가 없던 나는 평소 사회의 목탁으로 자처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유수 언론사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그였다.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자 머뭇거리던 그는 조 교수님, 언론사는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사건을 폭로하는 경우에는 앞, , 옆을 조심스레 살펴야 하는 겁니다.”라고 점잔을 빼는 게 아닌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론사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니? 그 젊은 기자가 틀렸든 내가 틀렸든 무언가 잘못 된 게 틀림없었다.

 

 


                                      <독립신문 창간호>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건은 이미 해당 국제학회 홈페이지의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공개되어 대한민국이 세계만방으로부터 망신을 당하고 있는데, 그걸 보도하는 게 어찌 단순한 폭로란 말이오? 그런 사실을 국내에 널리 알려 다시는 유사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언론의 임무가 아니란 말이오?”라고. 그러자 그는 말씀은 잘 알겠으나, 그런 일일수록 사회적인 맥락을 잘 살펴야 하는 법이지요. 우리가 먼저 나설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고 능청을 떠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꽝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못된 친구였다. 그 젊은 기자는 잘못 배운 처세술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썩은 선배들로부터 그런 처세술을 배웠을 것이다. 그로 미루어, 언론계는 이미 썩어 있었다. 그 뒤 그 사건은 강변의 자갈돌처럼 흔하디흔한 대한민국의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은 채 넘어갔고, 정보를 건넨 어느 기관이나 학회로부터도 조치 결과에 대한 연락을 받지 못했다.

 

***

 

그 때나 지금이나 언론들은 자기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세월만 보내고 있다. 아니 언론 뿐 아니라 대학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사회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썩어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언론이 사법부는 아니니 정의를 규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들을 다룰 때 상식에 비추어 옳고 그름 정도는 분간할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독자들이 옳고 그름을 판별할만한 자료는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의의 잣대보다는 진영(陣營)의 논리에만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별하려 한다면, ‘우익 기관지좌익 기관지일 뿐, 상식적 차원의 언론기관이라 할 수는 없을 터.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정치 지형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강호의 지사들 사이에 망양지탄(亡羊之歎)의 한숨소리 또한 높아가고 있다. 언제쯤이나 언론이 다시 정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언제쯤이나 한국의 지식사회가 최소한의 양식을 갖추게 될 것인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9. 13. 11:35

대학평가의 금도(襟度)

 

대학들 독자적발전 저해요소 많아… 평가주체의 숨은의도도 면밀 검토

 

평가란 '비교나 판단에 의해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비교란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을 견주어 서로간의 같고 다른 점을 밝히는 일'이며, 판단이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리는 일'이다. 따라서 평가 즉 비교나 판단을 위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필요한데, 자료에는 수치상으로 표시된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자료는 합목적적(合目的的)이어서 사회적 공준(公準)에 부합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 대학평가가 이루어져 왔고, 그것들이 대학가에 미치는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기능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미했던 것은 한국 지식사회의 무기력증을 만천하에 드러낸 일이기도 했다. 이제 비로소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교수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일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혐은 있으나, 일이 바로잡힐 단초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특히 평가 결과 비교적 상위에 속하는 대학의 교수들이 비판대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한국 지식사회의 건강도가 아직 비관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합목적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疑懼)에 있다. 대학은 왜 평가받아야 하며 대학평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평가의 척도는 공정하며 평가자들은 어떤 점에 무게를 두고 있는가 등등 이 시점에서 대학평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물음은 매우 시급하면서도 긴요하다. 국가와 사회의 지도적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대학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평가라는 점,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국민들 특히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대학의 실상이나 순위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결과에 대하여 많은 대학들이 승복하지 않는다거나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평가주체의 자격과 능력 혹은 도덕성이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평가결과가 대학의 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제기될 수 있는 문제가 '평가 결과에 따른 대학들의 획일적 줄 세우기'다. '자유와 자율에 근거한 진리탐구'가 대학의 근본이념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척도들은 대학들의 '차이와 독자성'을 사상(捨象)시킴으로써 많은 수의 대학들이 존립할 근거를 상실하게 만든다. 나름대로의 이념과 교육철학에 의해 설립된 대학들은 그에 맞는 개성적인 교육을 수요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부 평가주체가 들이대고 있는 척도들은 대학들의 개성이나 독자성, 혹은 각각의 차이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성을 완벽하게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떡판 위에 썰어놓은 떡들처럼 가지런하고 균일해야 한다면, 대학으로서의 존립가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대학들은 그것들만의 필요와 시대적 요구에 의해, 사립대학들 역시 그런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들이다. 그러나 현행 평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설립목적이나 이념을 뒷전으로 밀어놓아야 한다. 국제화의 지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갖추지 못한 외국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한다거나, 학비 면제의 미끼를 던지면서까지 우리말을 못하는 외국학생들을 무분별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저해하는 일,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통계를 조작하는 일,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고민이나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각종 학사관리 제도의 무사려한 도입 등 대학들의 자율적ㆍ독자적 발전을 저해하는 일들은 적지 않다. 이 뿐 아니라 평가주체의 숨은 의도 역시 면밀히 관찰되어야 한다. 일부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고 지식사회를 통제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전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다. 요즈음 들어 대학만큼 확실하고 고분고분한 광고주들은 없기 때문이다. 근간 대학평가를 통해 일부 언론사들이 대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행세하지만, 정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대학들의 가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의 값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무지하다"는 칼릴 지브란의 금언을 평가라는 칼의 힘에 도취되어 있는 일부 언론사들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