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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3 대통령의 말
  2. 2010.11.08 시간강사와 지식사회의 그늘 1
글 - 칼럼/단상2011. 2. 3. 16:15

대통령의 말

 

최근 대통령이 만찬 회동에서 집권당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한 말은 곱씹을수록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찜찜하고 불쾌하다. 신문의 보도대로라면, 당시 대통령이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니 비아냥대는 말투였을 것이고, 속마음 역시 편치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이순(耳順)을 훨씬 넘겨 곧 고희(古稀)에 이를 분이고, 항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대표는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인사일 뿐 아니라 나이 또한 이순을 넘긴지 오래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이 나라 정계의 거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했다면, 그동안 대통령은 대표를 우습게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얼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감사원장 후보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한 것이 한나라당이고, 그 일의 주동이 안 대표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번 해프닝이 그로부터 연유되었다는 것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집권 여당으로서도 감사원장 후보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대통령의 뜻과 다른 말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당이 겪었을 곤혹스러움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대표 단 둘이 만난 사석에서라면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안가(安家) 회동’이라고는 하지만,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한 자리였던 만큼 공적인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모임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내뱉듯이 던졌다면, 대통령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조가 망한 뒤 식민 상황과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심화된 이념적 갈등은 우리의 집단정서를 험한 방향으로 몰아 왔으며, 그 위에 더해진 산업화와 비인간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표출시켰다. 집단 정서의 조악성(粗惡性)은 개인들의 언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부정적 성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최근 문제되는 ‘악플[악성 댓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활약해 오던 조직폭력배 문화[조폭문화]의 1차적 징표는 거친 언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입에 올렸다던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 식 어법은 얼마 전까지 조폭세계에서나 통용되던 것인데, 이번 일로 그 어법이 이제 이 사회의 하이클래스에도 수용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표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대중사회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한 인간이 속한 이면적인 계층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언어가 교양의 정도나 인격을 나타내는 1차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감정이 없을 수 없겠으나, 시시각각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무거워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하며, 충분히 모범적이어야 한다.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을지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대통령의 리더쉽은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2011. 2. 3.)
 
                                                                                                               조규익(숭실대 교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11. 8. 11:17

시간강사와 지식사회의 그늘


강의·연구로 학문분야 두축 이끌어… 이젠 국가·사회가 처우개선 나서야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신자유주의가 삶의 원리로 자리 잡을수록 사회의 소외지대가 넓어지고 있는 것은 '비인간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이다. 모든 분야에서 '만능의 열쇠'라도 되는 듯 경쟁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경쟁에서 도태되는 다수 구성원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비정함 또한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더구나 경쟁의 필수 전제조건이라 할 '공정함'의 결여에 대하여 애써 눈 감고 있는 의식의 원시성은 언필칭 '선진국 진입'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 건'일 수밖에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최근에야 공론화되기 시작한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소외와 관련된 우리 시대의 약점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기의 뇌관이라 할 수 있다. 매주 정해진 시간만 강의하고 일정액수의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 전임 교수 아닌 지식인들이 바로 시간강사다. 말하자면 그들은 노동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들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이 새벽의 노동시장에서 선택되지 않으면 그날 하루 일당을 벌 수 없듯이, 강사들은 학기 초에 대학 혹은 학과로부터 선택되지 않으면 그 학기의 수입은 없다. 하루와 한 학기의 차이가 있을 뿐 일용직 근로자와 강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의 삶을 국가가 책임질 수 없듯이 학기 단위로 살림을 꾸려나갈 강사들의 삶 또한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형식 논리로 친다면야 그런 말도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상 자체가 정책의 오류로부터 비롯되었거나, 적절한 방안만 강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대학이나 지식사회 혹은 학자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략적인 방향은 국가의 학문정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정부가 그런 학문정책을 세우기 위해 선진국 대학들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왔다면 그런 나라들이 강사들에 대하여 어떤 처우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강사를 포함한 국가의 인재들을 세밀히 관리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학문진작'이란 명분으로 쏟아부은 천문학적 재원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는가, 그런 정책들은 과연 그렇게 다급했으며 합목적적이었는지 등을 돌이켜 본다면, 그런 일들이 '강사들의 현안해결'보다 우선적인 것이었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학문정책의 중요도나 시급성에서 선후관계를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상처가 곪아 터져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제점을 지적하는 지금에서야 겨우 대책을 내놓는 관련부서의 무심함이 답답할 뿐이다. 현실로 닥친 생활고와 암담한 미래 때문에 목숨을 끊는 강사들이 속출하고, 3년이 넘도록 천막 속에서 농성하는 강사를 보고 나서야 이 땅의 교육 당국은 겨우 움직이는 시늉 정도를 보여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대책 또한 '격화소양(隔靴搔양)'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니, 더욱 답답하다.

 

강사는 누구인가. 대학, 대학원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학문을 연마해온 해당 분야의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들이면서, 지금까지 그들은 전문성이나 실력보다는 '시간강사'라는 '품위 없는 용어'로 통칭되기 일쑤였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전임교수들이 강사를 거친 사람들이며, 현재의 강사들은 전임교수로 대학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는 지식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쉽게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그래 왔듯이 조금만 고생하면 전임의 대열에 합류할 것 아닌가'라는 속 편한 계산으로 우리 사회는 그들의 요구를 철저히 뒷전으로 미루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40%에 육박하는 대학 강의를 이들이 맡고 있으며, 모든 학회들에 집행부 혹은 회원으로 참여하여 학회를 굴러가게 하는 엔진 역할을 이들이 맡고 있다. 강의와 연구라는 한국 지식사회의 두 축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기약도 없는 '교수사회에 진입할 날'을 무작정 기다리며 참고 있으라는 말만 건넬 수는 없지 않은가. 모두가 힘을 합쳐 더 늦기 전에 이들부터 구해야 한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국문과 교수)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