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3. 11. 11. 12:52

 

66번 도로[Route 66]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Yukon City)

 

 

 

 


66번 도로 가의 Arcadia Round Bahn에 전시 중인 66번 도로 표지판

 

 

우리가 유콘을 찾은 것은 112()이었다. 사실은 66번 루트에서 비교적 유명한 오클라호마시티 남쪽 엘크(Elk) 시의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National Route 66 & Museum)’, ‘옛 마을 박물관 단지(Old Town Museum Complex)’, ‘농업 및 목축업 박물관(Farm and Ranch Museum)’ 등 세 박물관들을 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선 길이었는데, 오클라호마시티에 들어오니 시곗바늘은 이미 11시 반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스틸워터로부터 달려 온 만큼의 시간을 그로부터 더 달려야 하는, 100마일이나 먼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면 오후 2시쯤 될 것이고, 점심을 먹고 나면 3시쯤 될 것 아닌가. 난처했다. 박물관 하나를 겨우 보고나서 다시 되돌아 와야 하고, 되돌아오는 길 또한 300마일쯤이나 될 것이니, 오밤중이나 넘어서야 집에 들어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끔찍하게 드넓은 미국 땅. 그 중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벌판의 왕국 오클라호마를 얕본 우리의 실책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출발했어도 쉽지 않을 거리였는데, 느직이 일어나 아침을 다 챙겨먹고 나선 길이니 여유롭게 돌아보고 오기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하이웨이의 출구를 빠져나와 주유소와 푸드마트, 구멍가게 등을 겸한 휴게소에 들렀는데, 마침 66번 도로가 그 휴게소 옆을 지나고 있었다. ‘작전 상 후퇴아닌 시간 상 노정 변경이었다. 마트에 들른 그 지역 사람들에게 물으니, 하나같이 유콘시티를 추천했다. 그래, 오늘은 유콘을 탐사하기로 하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66번 길가에 묻혀 있던 유콘을 찾아낸 것이다.

 

***

 

시내에 들어서자 저 멀리 도시 입구 쪽의 메인 스트릿 양 옆에 원통형의 거대한 건물들이 서 있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듯 그 건물들의 위압적인 모습이 범상치 않았다. 다가가 보니 두 건물 모두 제분공장이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그 사이를 지나는 철길도 녹이 슬어 있어 이 제분공장에서 밀가루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만한 단서는 아무데도 없었다. 퇴락한 옛날의 영화들이 건물 벽의 각종 글씨들에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제분공장들이라면 아마 이 근동 사람들이나 먹여 살리는 데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차에 실려와 조달된 밀을 가루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그 기차로 다른 지역에 실어다 팔기도 했을 것이다.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리의 1차 관심처인 유콘 역사박물관[Yukon Historical Museum]’을 찾기로 했다.

 


유콘 제분소[Yukon Mill]-"유콘의 최고 밀가루"란 문구가 눈에 띈다


맞은편에 있는 또 하나의 제분소


유콘 역사박물관[Yukon Historical Museum]

 

그러나 작은 도시의 메인 스트릿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박물관을 찾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책자에 소개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규정상 미리 예약을 해야 볼 수 있으나, 오늘은 그냥 보여주겠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니 80대로 보이는 깨끗한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은 캐롤(Carol Knuppel). 이른바 자원봉사 큐레이터였다. 건강은 좀 안 좋아 보였으나 맑고 지성적이며 자신들의 향토 역사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었다.

 


유콘 역사박물관의 큐레이터 캐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캐롤과 백규 

 


생활사 관련 소장품을 설명하고 있는 캐롤


캐롤과 전직 소방관인 남편, 그리고 백규

 

폐교된 초등학교를 1 달라에 주 정부로부터 불하받아 개관한 박물관이었다. 우리가 이미 목격하고 온 밀가루 공장 유콘 밀(Yukon Mill)을 중심 컨셉으로 박물관의 콜렉션은 이루어져 있었다. 캐나디언 카운티(Canadian County)에 속한 유콘은 1891년 스펜서(A. N. Spencer)에 의해 세워졌으며, 오클라호마시 인접 도시로 존속되어 왔다. 캐나다 카운티의 유콘 구역에서 있었던 골드러쉬(gold rush)를 바탕으로 명명된 유콘 시티가 지금은 오클라호마시티 직장인들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이 지역 농업의 중심지로서 대규모 제분작업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그런 역사적 바탕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Yukon Mill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콘의 시민들은 Yukon Mill에 대단한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는 말로 큐레이터 캐롤의 설명은 시작되었다. 보헤미아에서 이민 온 체코인들의 자본으로 세워진 것이 이 제분소들이었다. 1891년 이 도시가 세워지고 철도까지 부설되자 이 도시는 급속히 번성하게 되었다. 1898년에 이르자 이 도시는 체코 이민자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유콘은 '오클라호마의 체코 수도'로 알려질 정도였다.

 


박물관에 통째로 기증된 이발소


박물관 행사를 후원한 지역의 기업들


박물관 소장 사무용품


통째로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치과의원


유콘시에 관한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 놓은 자료들


통째로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는 잡화상 콜렉션

  

1893년에는 소규모 제분공장인 유콘 제분 곡물 회사[Yukon Milling and Grain Company]가 사업을 시작하여 급속히 성장했고, 1915년에는 해외로 곡물을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 그 첫 제분소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대형 곡물창고는 지금도 66번 도로와 철로가 만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지금도 건물 북쪽의 외벽에는 유콘 제분소[Ykon Mills]”, “유콘 최고의 밀가루[Yukon’s Best Flour]” 등의 글자들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동쪽에는 유콘 최고의 밀가루[Yukon’s Best Flour]/미국 최고급 근대 제분소[No finer or more modern mills in America]/유콘 제분 곡물 회사-유콘 오케이/유콘은 오클라호마의 체코 수도[Yukon Czech Capital of Oklahoma]” 등의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 정부는 이 회사로부터 많은 밀가루를 사다가 굶주린 동맹국들을 도왔다는데, 그 덕에 이 회사는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콘밀 관련 자료들과 설립자들


유콘밀 관련 자료들

 

유콘 제분소를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 산업과 경제 관련 생활사 콜렉션들을 설명한 다음, 캐롤은 우리를 1층으로 인도하여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들과 교사들의 사진이 가득한 방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물론 각종 교과서, 학용품, 학교 비품, 생활기록부 등 학교와 학생들에 관한 생생한 자료들이 방 안에 그득하였다. 일종의 살아있는 아카이브(archive)였다.

 


학교 졸업생 관련 자료들


학교 졸업생 관련 자료들


1959년 교사들 사진

 

***

 

박물관은 작았지만, 그곳의 콜렉션들은 1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 도시의 삶을 보여주는 스토리의 원천이었다. 설명을 들으며 폐교를 비싼 값에 매각, 처분하는 우리나라가 문득 생각났고, 무사려한 처사가 나를 많이 안타깝게 했다. 이곳에서는 폐교를 단 1달라에 이 지역 사람들에게 넘기고, 그 공간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쓰도록 도와주고 있다 한다. 이미 썩어버렸거나 엿장수들의 손에 엿 값으로 넘어가 지금은 모조리 사라진 우리 고향의 각종 생활사 자료들을 보관, 전시할 지역 박물관을 폐교에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리 비까번쩍한건물로 우리의 외면을 치장한들 무엇 하랴. 역사와 스토리가 빠진 도시는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육체나 마찬가지! 그런데 이들은 폐교를 활용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모은 생활사 자료들을 박물관으로 만들고, 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주민들은 자원봉사 큐레이터 역할을 함으로써 선대로부터 이어온 삶의 모습과 문화를 계승, 보존하며 후대로 이어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철저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66번 도로의 역사성과 유콘 시티에 대한 부러움을 함께 느끼며, 우리는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입구 쪽 코너에 세워놓은 박물관 간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5. 15. 01:21

, 윤창중!

 

                                                                                                                                                             백규

 

세상의 불의에 불끈거리며 서툰 언설(言說)들이나마 농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언사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로 얼마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특정인을 정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도 뜻하지 않게 누군가가 유탄에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복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 스스로는 그것을 힘들게 얻은 지혜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간 얻은 알량한 지혜를 도로아미타불로 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의 평범한 한국인들, 그 가운데 나를 포함한 50대 후반의 남자들을 대신하여 장작불 위로 던져진 한 마리의 미련하고 가련한 희생양을 조상(弔喪)하지 않는다면,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부끄러움을 어떻게 삭여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불자(佛子)는 아니로되,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에 빠져 허우적대는 저 인간의 표정에 비쳐 보이는 내 어리석음의 진면목을 어찌 남의 일인 듯 뻔뻔하게 구경만 할 수 있단 말인가.

     ***

천하의 이목이 쏠려 있는 미국의 중심부에서 윤창중이 일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이래, 나라 전체가 벌집 쑤신 형국이다. 멀끔한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은 대중매체들이 깔아놓은 멍석에 둘러 앉아 고담준론으로 성토하고, 인터넷에서는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몰려들어 몽둥이찜을 안기고 있다. 그의 등짝에 모진 매질을 하면서 흡사 우리는 그와 다른 범주의 인간들임을 주문(呪文)처럼 되 뇌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미련하고 눈치 없이 굴다가 천하의 이목에 걸려 버린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요행히 그런 덫에 걸리지 않은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일갈하신 예수의 꾸지람을 새삼 이 자리에서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윤창중이 무슨 달나라에서 온 외계인도 아닐 것이며, DNA나 대뇌에 특이한 돌연변이를 경험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그냥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인총(人叢)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자고나면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이 밥 먹듯 일어나는 이 나라의 허전하고 찌질한 50가 그 본색을 감추지 못한 결과일 따름이다. 지폐 몇 장 든 지갑을 흔들며, 생활비나 벌어보겠다고 나선 젊은 여인들을 희롱하는 우리네 룸살롱의 추태를 세계무대에 유감없이 보여준 이벤트에 불과하며, 나를 포함한 무수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참으로 자제력 없고 유치한 하등 인물하나가 남의 동네에 가서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폭거(暴擧)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샌다는 평범한 이치를 고지식하게 실천한 그의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고, 그런 평범함을 교묘하게 감추고 국가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그의 교활함이 가소로울 뿐이다.

     ***

성범죄의 법리나 그의 행위가 초래한 현실적 문제들은 귀가 아프게 들었으니, 새삼 거기에 부실한 내 말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왔으면서도,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모면해 보려는 궁한 모습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인터넷 속의 무진장한 지식과 혜안으로 무장한 5천만이 밤낮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이거늘,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지언(知言)’ ‘(남의) 말을 알아차리는 것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치우친 말[피사(詖辭)]에 대해서는 그 가려진 바를 알아내고, 방탕한 말[음사(淫辭)]에 대해서는 함정이 되는 바를 알아내며, 사악한 말[사사(邪辭)]에 대해서는 괴리된 바를 알아내며, 숨기는 말[둔사(遁辭)]에 대해서는 그 궁한 바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지언(知言)’이라 했다. 윤창중은 미국에서 도망쳐 온 뒤 전 국민을 상대로 둔사를 농하며 궁지를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런 둔사를 농할수록 자꾸만 궁지로 빠져드는 초라하고 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국민이 지언(知言)의 지혜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필부라 해도 지금이 살기를 도모할 때가 아님을 모를 수는 없다. 자신을 죽여도 모자랄 판에 궁한 둔사를 농하며 살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를 보며, 비단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던 평원의 필부들로부터 기만 당해 온 지난 세월이 억울하게 생각되는 건 과연 나 혼자 뿐일까. 위압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우리들에게 군림하던 그 옛날의 고관대작들은 과연 윤창중보다 나은 존재들이었을까.

    ***

무엇보다 비판되어야 할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무사려(無思慮)함이다.  다시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어찌 그가 재주가 모자란 지를 미리 알아 그런 자를 등용시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진 이를 등용함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해야 합니다. 장차 낮은 이로 하여금 높은 자리를 뛰어넘게 하거나 관계가 먼 자를 가까운 친척보다 앞세워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좌우가 모두 ‘(그가) 어집니다라고 평해도 그대로 해서는 안 되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그가) 어집니다해도 아직 안 됩니다. 나라 사람 모두가 어집니다라고 한 연후에 이를 관찰하여 그 어짊을 드러나 보이게 한 뒤에야 그를 등용하는 것입니다. 또 좌우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 모두가 안 됩니다하고 나서야 이를 살펴 불가함이 드러난 뒤에야 그를 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좌우가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한 다음에야 이를 살펴보고, 가히 죽일만함이 드러난 뒤에야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사람이 죽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다음에라야 가히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대화다. 기원전 4세기의 맹자가 어떻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단 말인가. 윤창중에게 무거운 직을 부여하던 당시 주변의 사람들이나 대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고 했으며, 대부분의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했으나,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데, 그가 죽을죄를 진 지금과연 대통령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치던 당시 국민들의 뜻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 2. 14:08

  2013. 1.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 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09년 겨울/백규 촬영(양양 솔비치 해변)

 

 

 

새해인사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동안 저와 인연을 맺어 온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뱀이 무성한 풀밭을 쑥 빠져 나가듯’ 바라시는 모든 일들을 순조롭게 이루시길 빕니다.

 

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난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뭣합니다만, 어렴풋하나마 앞으로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고, 참하고 ‘이쁜’ 며느리를 얻었으니, 나름대로 선전(善戰)한 한 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정적이라 평가 받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점도 국가를 위해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 해 연말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분야의 책을 낼 생각으로 노력해왔습니다만, 막판에 약간 주춤거리면서 금쪽같은 시간들을 허비하다가 그 계획은 무산되었고, 결국 올해로 이월하게 된 점은 무엇보다 후회스럽습니다. 쌓아놓은 벽돌이 빠지면서 담벼락이 무너지듯, 연구 스케줄의 한 부분이 무산되거나 연기될 경우 다른 부분들이 줄줄이 밀리게 되니, 복구에 많은 정력이 소비될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요즈음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어내는 ‘좌절과 자신 없음’이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모인 강의실에서라면 ‘중구난방(衆口難防)’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전공 지식이 모자란다 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모범답안으로부터 좀 어긋난다 해서, 무슨 문제가 되나요? 그런데, 왜 그들은 입을 닫고 있는 걸까요? 흡사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일을 그르칠까봐 전전긍긍하듯이 말입니다. 교수의 눈을 피해 속닥속닥 ‘문자질’은 잘들도 하면서 교수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른 대학의 교수들도 비슷한 말들을 하는 걸 보면, 그게 아마 지금 젊은 세대의 일반적인 모습 같기도 하군요. 젊은이들의 기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새해엔 우리네 삶이 더욱 팍팍해질 거라는 전망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캠퍼스 그득 들어찬 젊은 제자들의 가슴에 더 이상 좌절을 안겨주지 말아야 하는데, 큰 걱정입니다. 세계정세와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외교 등의 분야를 보면, 세계가 편안해져야 우리도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새 대통령이 현 정부나 집권자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똑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보기로 합니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난 지금까지의 경험들은 일단 잊기로 했습니다. 쓴 경험들이 이번에도 반복된다면, ‘역사의 전환’을 개인에게 기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금 확인하고 좌절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단호히 믿어 보겠습니다.

 

세밑에 홀연 우리 곁을 떠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선생의 부음을 접하면서, ‘삶의 덧없음’과 ‘살아 있음의 고마움’을 함께 느낍니다. 아마 그 분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건강의 이상을 겪고 계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평소 건강관리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심을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습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길 빕니다.

 

계사년 정초

 

백규 조규익 드림

 

 

*사진은 숭실대학의 멋진 제자 박형준 군(국문과 06학번)이 새해 첫날 새벽 설악산에 올라 찍어 보내준 ‘새해 첫 선물’입니다. 박형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저 혼자 간직하기 미안하여 이곳에 올립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11. 22. 20:08

 

 

 

 

제자의 시집을 받아들고

 

 

                                                                                                                                                           백규

영국의 정치가 핼리팩스(Halifax) 백작은 “가르치는 일에 따르는 허영심은 가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고 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스스로 묘한 열기에 휩싸일 경우, 나 자신이 ‘매우 모자란 인간’임을 잊을 때가 많다. 강의실로부터 조용한 연구실로 돌아와 열기가 식으면, 그때서야 내 생각과 말을 직시하게 되고, 가끔 등짝에 식은땀이 흐르곤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매우 긴요하고 귀한 일이되 스스로를 자만과 착각에 빠뜨리기도 하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일이다.

 

***

 

오후 잠깐 들른 우편함에 아담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최석균 시인의 <<수담(手談)>>이란 시집. 최석균이라? 순간 학부 4학년의 앳된 얼굴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꿈같이 흘러버린 25년의 세월, 경남대학 시절의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중저음의 그는 차분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성실함이 경상도 억양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하던 친구였다. 그렇던 그가 그 사이에 중견 시인으로 자라나 두 번 째의 멋진 시집을 내고, 내게 ‘감당할 수 없는 헌사(獻辭)’까지 달아 보내 준 것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격(隔)한 지금, 그 시절 그와 만나던 마산시 월영동의 강의실을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나는 과연 그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내가 뱉어낸 말들 가운데 단 한 마디라도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혹시 내가 젊은 시절의 혈기와 격정으로 세상을 저주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 말들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상이나 심어준 것은 아닐까.

 

***

 

사실 나는 지금도 강의실에 들어가면 당황스럽다. 준비해온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학생들의 표정과 내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비로소 말문은 새롭게 열리곤 한다. 그러니 제대로 정돈되지 못한 말들이 튀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가끔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멋진 멘트가 튀어나가기도 하지만, 대개 뱉고 나서 후회되는 말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달으면서도 바보임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이 선생’이라는 것도 그 때문에 나온 경구(警句)인 듯 하다.

 

***

 

20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나를 기억해준 제자가 이 순간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추억은 대부분 치기(稚氣)어린 열정의 소산임을 자인한다. 그런 온축(蘊蓄) 없이 성마르기만 했던 열정으로부터 내 제자들은 과연 무엇들을 배웠을까.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은 말했다. “지금까지 마음은 육신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슬퍼하리오. 지난 일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앞일을 따를 수 있음을 알았다네. 실로 길을 잃어버림이 아직 멀지 않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닫는다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선생으로서의 내 과거는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시간대이나 이제 그 그릇됨을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올바로 살아갈 만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가.

 

***

 

최 시인의 시집 제목은 수담(手談)이다. 그것이 ‘손의 말’이든 ‘손으로 하는 말’이든, 입은 닫은 채 샘솟는 마음을 손끝으로 풀어놓는 반상(盤床)의 서사(敍事)임에 틀림없다. 세상사 복잡함도 가로 세로 각 19줄• 361개 교차점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에 모두 그려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찾아 아등바등하는가. 그는 아마도 바둑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모조리 터득한 듯, 그의 안목이 자못 형형하다. 반상을 통해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들여다보는 최 시인의 혜안을 감상들 하시라고, 독자 제위께 한 작품만 보여드리고자 한다.

 

 

화점(花點)

 

점에서 꽃이 핀다

하얀 꽃 검은 꽃 그 틈새에

여백의 꽃들이 눈을 뜬다

우화羽化한 날갯짓 잉잉거리며

누운 꽃들의 꿈을 퍼 나른다

묵인과 오판 속에서

바꿔치기와 꽃놀이패 속에서

꺾고 꺾이는 꽃의 향기들

생사를 오가는 꽃의 길들이

아찔아찔 뒤엉켜 자란다

딱히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땅에서

깍지 끼듯 얽힌 이율배반의 손과 손이

저승과 이승 경계점을 넘나든다

툭 던져진 손톱만한 꽃눈이

꽃눈 속에 숨은 모래만한 씨앗이

달만큼 자라서 별처럼 사라지는 거기까지

한판, 우주의 생몰이다

재차 새판을 짜기 위해

가지런히 누워 봄을 기다리는

한 점, 한 점 낙화의 잔영이다.

*화점(花點) : 바둑판에 표시된 아홉 군데의 점.

 

  최석균 시집, 황금알 시인선 59/<<수담手談>>, 황금알, 2012.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10. 4. 11:44

‘새 강사법(안)’에 대한 각계의 관심을 촉구하며

 

 

                                                                                                                                                             백규 

 

최근 교육부에 의해 입법 예고된 ‘강사법(안)’을 보면서, 대학 교육 현장의 분위기나 실정에 대한 교육부의 무지와 무사려(無思慮)함이 도에 지나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강사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현실화시켜 줘야겠다는 가상한 뜻은 알겠는데, 그런 제도가 몰고 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은 듯한 모양새다. 최근 강사 수를 줄이고 전임교수들의 책임시수를 늘이는 방법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하는 일부 대학들의 대책이 그 대표적인 방증이다.  

 

학기마다 전공⋅교양⋅기타 분야의 개설과목이 결정되면, 먼저 전임교수들에게 배분하고, 그 나머지를 강사들에게 맡겨 온 것이 대부분의 대학들에 공통되는 모습이다. 각 학과들이 전공분야나 능력 등을 감안하여 강사들을 학교 당국에 추천하면 학교 당국에서는 추천된 강사들에게 학기 단위 혹은 학년 단위로 임용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강사를 교원의 범주에 소속시킨 새로운 강사법에 의하면 모든 강사들에게 1년 이상의 채용기간을 보장하고 주당 9시간을 배정해야 하며, 4대 보험료와 퇴직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용과정 또한 기존의 교원들처럼 공개채용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무 역시 대학 측에 부과하고 있다. 내용만으로 보면 참으로 괄목할만한 혁신이어서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들 특히 사립대학들이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정부에서 돈 한 푼 지원해주지 않으면서 대학들에게 엄청난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안겨주는 일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강사들의 숫자를 각 대학의 ‘교원확보율’에 산입(算入)시켜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하긴 했지만, 전체 4년제 대학 기존 교원 확보율에서 10% 남짓 상승되는 효과만 나타나리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이 법안의 시행에 따라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대학들의 추가 행정적⋅재정적 부담을 고려하면, 대학으로서는 이 법안이 절대 매력적일 수 없다. 대학들로서는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쉬운 방법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강사임용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다. 

 

강사의 숫자를 최소로 줄이려면 기존 전임교수들의 책임시수를 늘이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역량강화 혹은 세계적인 대학교육의 흐름에서 당장 두 가지의 퇴보 현상이 돌출하게 된다. 그간 우리나라의 메이저급 대학들을 시발로 교수들의 책임시수를 줄여 온 움직임은 연구역량의 강화를 위한 ‘선진적 조치’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경향이 보편화되려는 시점에 다시 옛날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분명 대학 선진화에 역행하는 현상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교수 및 연구자원의 배출 및 훈련 기능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함께 ‘기존 강사들의 생존권’이 제도의 강압으로 박탈되는 ‘비인간적 상황’이 도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강사제도에 의한다면, 대충 헤아려도 현재 강사들 숫자의 30% 미만만 살아남고 나머지 70%의 강사들은 그나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 사회의 그늘에서 방황하게 된다. 세계 수준의 대학을 만들겠다면서 대학들에게 그럴 여건을 만들어주기는커녕 자발적 지향성 자체를 제도적으로 막아버림으로써, 교육부의 존재의미에 대한 국민적 회의만 극대화시키는 셈이다. 경제적⋅사회적으로 문제는 적지 않지만, 학문 전승의 순기능적 바탕 위에서 유지되어 온 것이 기존의 강사제도다.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은 학자 지망생들이 강단의 경험을 쌓고, 그 가운데 연구력이나 강의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이 교수로 발탁됨으로써 옹색하긴 하지만 교수 인력 양성의 합리적인 기본 틀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예고된 법안대로 개정할 경우, 현 강사들 가운데 3분의 2가 강단에서 퇴출되고, 3분의 1이 채 안 되는 강사들만 전보다 훨씬 나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 대학과 학문, 더 나아가 국가⋅사회적으로 유리한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겠지만, 무엇보다 새 제도를 입안할 때 연착륙을 염두에 두고 신중히 임해야 함은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존 제도의 취지와 정신을 상당 부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강사들에 대한 처우가 매우 불안한 것은 사실이고,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그 부분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을 잘라냄으로써 생겨난 재원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몰아준다는 것은 온당한 방법이 아니다. 국가의 가용 재원을 강사들의 처우개선에 대폭 투자할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개선책이 좀 미흡하다해도 점진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사회적 통합’의 한 방법이다. 이 법안이 입법기관인 국회의 활발한 토론을 거쳐 온당하게 개선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2. 10. 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10. 1. 16:2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백규

나는 평소 안철수 선생에 대하여 호감을 가져 왔고, 그 마음을 작은 글로 이곳에 올린 적도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http://kicho.tistory.com 참조] 따라서 이 글 역시 그런 호감과 걱정의 연장선에서 쓰게 되었을 뿐, 특정 진영이나 인물에 대한 '호(好)/불호(不好)'의 차원에서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

최근 대통령 예비후보 안철수 선생에게 닥친 악재(惡材)는 서너 가지다. 그 가운데 부동산 ‘다운 계약서’는 목하 거론 중이고, 연구업적 문제는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문제들도 곧 입줄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오늘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한겨레신문[http://hani.co.kr]의 1면 톱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연구업적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 강모 교수의 뛰어난 작문실력에 놀랐고, 아무리 뛰어난 작문실력으로도 그의 치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장문의 글을 소상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표절이라니…어이쿠!”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제목은 강 교수의 의도가 너무 빤하게 읽혀져서 오히려 애처로웠다.

지금 안철수의 연구업적에 대하여 벌이는 논란의 핵심은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표절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지금 세상에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표절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강 교수는 흡사 세상 사람들이 ‘안철수가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표절했다고 비난한다’라는 엉뚱한 논지의 제목을 붙이고 말았다. 따라서 ‘표절’이란 잣대를 끌어대어 ‘안철수 논문 논란’이 어불성설임을 강변함으로써 그에 대한 도덕성을 따지려는 세상의 비난을 잠재우거나 물타기하려는 강 교수의 논의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논란의 골자는 이렇다. ‘세 사람이 공저로 되어 있는 영문 논문 한 편이 서울대학 발간의 모 학술지에 실렸는데, 안철수도 저자의 한 사람[제2저자]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원래 제1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논문이라는 것. 그런데 안철수가  그 논문에 대하여 기여한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그 논문을 지도했거나, 그 논문의 어느 부분을 작성했거나, 실험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이름을 붙일만한) 기여를 했다면, 그의 이름이 저자의 한 사람으로 끼어 들어간 것이 이공계의 관행으로  미루어 얼마간 양해가 될 수는 있을 텐데, 그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더욱 해괴한 것은 그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안철수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그의 연구업적은 석⋅박사논문 두 편과 세 편의 학술지 논문을 합쳐 총 다섯 편이란다. 그 세 편 가운데 바로 이 논문이 핵심연구업적으로 서울대학 당국에 제시된 모양이다. 자신의 핵심 연구업적으로 제출된 논문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석사논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그에 대하여 무슨 기여를 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누가 그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겠는가. 만에 하나 그 논문의 발행일자가 그야말로 수십 년 전이라면 혹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개 5년 이내의 업적물 만을 임용심사 자료로 요구하고, 그 가운데 임용 신청자가 지적한 핵심 업적에 대해서만 실제 심사에 붙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5년 이내[아니 좀 더 여유를 두어 10년이라 해도 좋다!]의 연구물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면, 우리는 학자로서 안철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의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1년, 2년 혹은 수년의 실험과 검증을 거친다고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논문이 완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애당초 연구자의 자격이 없었거나, 남의 논문에 이름만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약간 과장할 경우 최근 자신이 써낸 논문의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기본 생리이자 의무임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참으로 면구스런 가설이지만, 연구업적이 모자라는 안철수를 동정하여 누군가가[석사논문 작성자 자신 혹은 그의 지도교수?]‘앞으로 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논문의 공동저자로 안철수를 끼어 넣어주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그는 ‘힘 하나 안 들이고’ 흡사 ‘이미 차려진 밥상 위에 수저를 올리듯’ 남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손  쉽게 연구업적을 부풀린 것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안철수 스스로가 부탁하여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이것들이 바로 항간의 식자층에서 갖고 있는 의혹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해당 글의 필자 강 교수는 흡사 세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안철수가 표절을 행했다!’고 공격하는 것처럼 호도하여 세상사람들이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하다는 투로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언설을 농(弄)한 것이다. 이른바 ‘교묘한 물 타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안철수 교수가 스스로 각종 콘서트나 예능프로그램, 저서 등에서 밝힌 바 있듯이, ‘연구진실성’의 문제는 한 인간인 연구자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로 활용될 수 있고, 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과연 그는 이 논문의 한 부분이라도 실제로 쓴 것일까. 원래의 석사논문과 영문번역 후의 학술지 논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대하여 안철수는 몇 %나 기여했는가 등은 시급히 밝혀져야 할 문제다. 사실 '논문 진실성‘의 문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다운 계약서’문제보다 오히려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쪽 캠프 인사들의 인식대로 ‘다운 계약서’는 과거에 흔하게 자행되던 관행의 문제로 칠 수 있다 해도, 활자로 찍혀 후세에 두고두고 학문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논문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양심과 양식의 소산(所産)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궁한 논리로 그를 변호하고자 하는 인사들이 모두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이라는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밥을 먹고 있는 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흡사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 같이 훌륭한 대학의 교수들이 별 일 없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왈가왈부하느냐?’ 라고 질타하는 듯한 논조다. 실제로 강 교수의 논리 가운데는 ‘학문에 무지한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불순하기까지 하다’는 투의 ‘진짜로 무례하고 몰상식한’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제1저자와 제3저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의 연구진실성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교의 대상으로 끌어와 안철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 강 교수가 참으로 가엾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는 자기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엄정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자가당착적 잣대나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현실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강 교수가 결론이랍시고 자못 ‘사자후라도 토하듯’ 자신의 글 말미에 달아놓은 언설을 참고자료1로, 황우석의 연구비리를 밝혀냈고 현재 안철수의 연구진실성 문제에 대하여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트 BRIC(http://bric.postech.ac.kr)
의 토론글 한 편을 참고자료2로 아래에 적어 두노니, 강호의 제현들은 몸소 읽고 판단해 보시라. 존경하는 안철수 선생은 더 이상 함량 미달의 지식인들 을 보호막으로 삼지 말고, 대중 앞에 직접 나서서 자신의 연구진실성, 아니 윤리와 도덕의 바탕인 양심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명하기 바란다. 만약 답변이 궁하다면, ‘미안하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으니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라’는 식으로라도 사과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표를 요구하기 바란다.<2012. 9. 29.>
  

   참고자료 1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발표된 학술지 논문에 누구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석사학위 논문 제출자, 그리고 지도교수로 추정되는 제3 저자 이외에 안철수 후보가 이 논문의 작성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이다. 그랬다면 제2의 공저자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후보가 한 일도 없이 ‘숟가락 하나 얻은 격’으로 학자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제1, 제3 저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논문 분석 결과도 안 후보의 기여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러한 저자권(authorship)의 문제는 제3자가 평가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학자들 사이의 논란 거리지 학자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의 오스틴파워 풍 댄스나 노홍철의 저질 댄스가 싸이의 미국 진출에 기여한 여부를 정치부 기자가 예단해서 말할 능력이 있는가와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문의 저자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행되는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여가 필요하다.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는 단계, 실제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토의하는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단계 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여 중 3가지 이상에 참여하면 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제자의 학위 논문이라도 그 학위 논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위와 같은 기여가 있었다면 지도교수나 관련된 다른 사람이 학술지 논문에 공동으로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관례가 아니라 국제 학계의 윤리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 이로 인해 우리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정쟁적 비난은 정치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또 더 나아가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거나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인사 사고를 낸 운전자와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지나간 운전자 모두를 다 똑같은 놈이라 비난하고 같은 정도로 처벌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제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들은 어줍잖은 술자리 얘기들로 아까운 지면을 소비하지 말고, 대선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판, 실현성 여부 그리고 대안 제시로 내용을 채워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정치인도 바뀌겠다고 난리인데, 이젠 언론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이상의 자료문은 <http://hani.co.kr>에서 퍼옴>

 

 

참고자료 2

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빈쿨룸
(2012-10-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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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팀의 논문 표절에 관한 글을 올린다. 표절 대상으로 의심되는 논문은 1992년, 안철수 팀의 논문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전자는 국문이고 후자는 영문이다. 그러나 학계(인문, 사회, 이공, 의학 모두)에서는 국문 논문이라도 영문이나 기타 외국어 초록(요약문)을 싣게 되어 있다. 필자는 인문계통 전공자인 관계로 두 논문의 본문은 비교 분석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두 논문의 영문 초록을 비교해보았다.

1. 제목

1992년 논문 - 토끼 단일 심실근 세포에서 Cyclic GMP의 Ca2+ 전류 조절기전에 관한 연구/ Modulation of Calcium Current by Cyclic GMP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Effect of Cyclic GMP on the Calcium Current in th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안철수팀의 영문 논문을 국역하자면 <토끼 심실근 세포에서 Ca2+ 전류에 대한 Cyclic GMP의 영향(효과)> 정도가 되겠다. 논문 제목만으로도 두 논문의 주제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에서 드러나지만 안철수팀의 논문에서도 “단일” 심실근 세포를 분석한다. 두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Cyclic GMP에 의한 변화과정이다. 1992년 논문은 그 변화과정을 “조절기전”(Modulation)으로 표현하고 1993년 논문은 “영향/효과”(effect)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논문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993년의 논문이 동일한 분석대상을 통해 1992년 논문과 다른 분석결과를 제시한다면, 안철수팀의 논문은 독창적인 연구가 될 것이고 표절에 관한 모든 논란은 무지한 자들의 헛짓거리가 된다. 이 부분은 의학계 전문가들이 밝혀낼 필요성이 있다.

2. 첫 문장

1992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the calcium channel, whole 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calcium current, the whole-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싱크로율 98% 이상의 동일한 문장이다. 정확히 3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on the calcium channel - on calcium current

안철수팀의 초록에서는 the를 빼고 channel 대신에 current를 넣었다. 두 단어는 다른 뜻인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사실 두 논문이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가 어떤 “관”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channel도 current도 모두 “경로”, “전류”, “통로”, “관” 등으로 유사어라 할 수 있다. 혹시 표절을 피하기 위해 the를 의도적으로 뺐다면 꽤 꼼꼼한 처사라 하겠다.

2) whole cell - the whole-cell

이 부분은 별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역시 the와 - 으로 차이를 둔 것뿐이다.

3)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외국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부분은 참으로 간교한 작업으로 보인다. isolated는 무슨 뜻인가? 격리되거나 분리된 것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따로 떼어놓고 그것 하나만 본다는, 즉 “single”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the를 뺌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1992년 논문의 영문 제목 끝부분이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이었음을 상기하자.

3. 두 번째 문장

1992년 논문 -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ese of 10mV in amplitude for 2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원본)

1993년 논문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se of 10mV in amplitude for 3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역시 98% 싱크로율인데, 좀더 교활해보인다. 또 세 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1992년 논문은 더 추상적인 동시에 더 구체적인 주체를 제시한다. 더 추상적이라 함은 “cGMP analogues”, 즉 “cGMP과 유사한 것들” 혹은 “cGMP 류의 것들”로 표현하기 때문이면, 더 구체적이라 함은 “isopernaline and forskolin”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팀에서는 1993년의 추상적 표현 대신에,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8-bromo-cyclic GMP”를 덧붙였다. 그리고 1992년 논문의 “cAMP”는 “cyclic AMP”로 풀어서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표현들이 조금씩 다를 뿐 분석 내용은 같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pulese - pulse

1992년 논문의 철자 오류 pulese를 안철수팀이 pulse로 바로잡았다.

3) 200msec - 300msec

실험 수치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수치는 동일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부디 실험 결과가 온전하게 나왔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이 해결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cf. 중간에 두 논문 모두 수치를 통한 분석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이 두 논문 초록에서 차이가 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나 "In the presence of..." 문장이 두 초록 모두에서 발견되는데, 꽤 다른 듯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마지막 문장

1992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cGMP increases the calcium current not through cAMP dependent protein kinase nor cAMP dependent phosphodiesterase pathway, but through independent phosphorylation pathway, possibly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

1993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increases the basal calcium current via a mechanism involving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

언뜻 보면 두 문장이 꽤 달라 보이지만, 사실 거의 흡사하다. 역시 3부분으로 나눠서 고찰해보자.

1) cGMP -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1993년 논문은 cGMP를 cyclic GMP로 표현하고 “intracellular perfusion”를 첨가함으로써 주어가 바뀐 듯한 문장을 만들었으나, 사실 연구 내용상 “intracellular perfusion”은 덧붙여도 삭제해도 마찬가지 의미의 문장이 될 것이다.

2) the calcium current - the basal calcium current

1993년 논문은 “basal”(기본적인)을 첨가했는데, 당연히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이다.

3) not through .... but through - via a mechanism

이런 부분을 보면 필자 또한 학자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외국어에 다소 무지한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1992년 논문에서는 친절하게 “... 이러한 점을 통해서 ..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점을 통해서 증가한다”라고 설명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1993년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아닌 부분은 필요 없어 보였는지, “via a mechanism”, 즉 “~ 저러한 과정(기제)을 통해”서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론 두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동일하다고 결론 내린다. 단지 1992년 논문이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라고 표현한 것을 1993년 논문은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섬세하게 a를 첨가했고, 역시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기했으며,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pathway”(통로)는 단호하게 삭제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했다.

4. 결론

두 논문의 영문 초록만을 보았을 때 1993년 논문이 1992년 논문을 표절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혹시나 1993년 논문이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기 위해 동일한 분석 대상을 연구했다면 모르겠으나, 초록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없다. 본문의 표절 여부는 의학계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 BRIC(http://bric.postech.ac.kr)>

참고자료 3

표절과 무임승차, 그리고 학자로서의 양식의 문제.
[일반인] 금빛노을
(2012-10-0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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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후보의 박사학위논문의 표절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 사안이 MBC에서 보도된 뒤, 서울대의 조국교수는 “(학계 규칙을) 모르고 안철수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악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안철수후보 역시 2008년 8월 한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관대한 문화 역시 걸림돌이다. 학생들조차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식 산업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안철수후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조국교수처럼 표절시비에 대해 ‘무식’하고 ‘악의적’이라는 식으로 세치혀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는 냉정하게 표절논란의 옳고그름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총선을 전후해서 문대성의원의 논문표절이 문제되었을 때, 조국교수는 <'참고문헌 빼고 72쪽 논문 중 9쪽(전체의 12%)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은 ‘오타’까지 베꼈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MBC에서 지적한 것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고’ ‘오타’까지 베꼈다>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문대성의원을 대상으로 지적하면 정의롭고 안철수후보를 대상으로 지적하면 무식하고 악의적이 되는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잣대를 들이대거나 들이댄 잣대를 빼앗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석사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분명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관행도 관행나름이다.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대개 연구쪽으로 진로를 정한 사람이 박사과정 진학을 전후해서 하는 것이지, 문제가 된 논문의 제1저자인 김규현처럼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지 5년이 지나서 영역한 것 외에는 거의 수정없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규현과 안철수후보는 1988년에 서울의대 생리학교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안철수후보는 석사를 받은 직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단국대 의대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 당연히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조국교수가 말한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싣지 않아도 무방했을 김규현은 석사학위 취득 후 5년이 지난 1993년에 학술지에 학위논문을 재수록하였고, 서울의대에서 조교도 지내고 단국대 의대 교수로서 학과장까지 했으니 마땅히 ‘학계의 규칙’을 따랐어야 할 안철수후보는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대신 석사동기의 재수록논문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안철수후보가 석사동기의 논문에 제2저자로 슬쩍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된 지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그것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실었는가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공채할 때에는 응당 제출된 논문의 전공일치 여부를 심사한다. 그리고 연구업적은 대개의 경우, 석박사학위와 최근 5년간의 논문실적을 서류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철수후보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5편의 주요연구업적을 기재했는데, 석박사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3편이 모두 1993년에 작성된 논문이었고 문제가 된 김규현의 논문은 이 3편의 논문 가운데 한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안철수후보가 제3저자로 된 논문인데, 이 논문은 부산의 모 의대교수가 자신이 1993년 2월에 쓴 석사학위논문을 가필하고 안철수후보를 포함한 총 7명을 공저자로 하여 대한생리학회에 실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편이 역시 1993년에 대한의학협회지에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제목으로 쓴 안철수 자신의 논문이다. 이들 논문은 모두 안철수후보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임용되기 위해 제출한 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되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임용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들 논문에 대한 검증은 대한민국 대통령후보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후보검증 이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학교의 교수공채시스템에 대한 공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가리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안철수후보는 2011년에 서울대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왜 하필이면 1993년에 작성된 논문들을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했던 것일까? 그리고 안철수후보는 왜 1993년에 동기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일까? 1993년 이후에 전문학술지에 실은 논문이 없어서라면 ‘석좌교수’나 ‘대학원장’으로 불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1993년에 작성된 3편의 논문이 해당 학과나 해당 대학원과 무관한 논문이라면 굳이 이를 서류에 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서류에 이를 올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논문에 대한 논란은 안철수후보 자신이 자초한 것이므로, 이들 논문에 대해 논란을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고 비난하는 조국교수의 발언이 오히려 무식하고 악의적인 것이다.

안철수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끼워넣은 1993년 당시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의 표현에 따르면 ‘커다란 공백기’였고 ‘의학연구를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문’같은 시절인 군의관 복무시절이었다. 안철수후보는 39개월의 군복무기간을 ‘공백기’라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993년부터 2년동안은 서울의 연구소에 배치되어 집에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과 달리, 어느 정도는 공부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안철수후보는 의학공부 대신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그 연구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했던 그가 그래도 제2저자, 제3저자로 의학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생리학관련 연구소에 근무했었을 듯하다. 그래서 팀원의 일원으로 이름이 올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역 이후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실적이 필요해서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슬쩍 이름을 끼워넣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들 논문에 대한 심사를 거쳐 바로 1년전인 2011년에 안철수후보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되었고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란 직함이 그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5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이든 무임승차든 논란이 생긴 부분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동안 교수출신의 유명인들이 장관등의 고위직 후보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자기표절’이니 ‘이중게재’니 하고 온갖 독설을 퍼붓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 해서 안철수후보의 석박사 학위논문과 여타 학술논문에 대한 표절시비와 무임승차논란이 확산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의도’라는 말로 차단막을 치고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는 막말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모든 칭찬과 비판은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논란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로 이곳 브릭에서 할 일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