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9. 19. 21:09

 


행사가 열린 컨벤션 센터

 

 

 


컨벤션 센터 로비

 

세계 한글작가대회에 다녀와서

 

 

해외 한인문학에 대한 작은 발표를 해달라는 이명재 교수의 부탁을 받고, 첨엔 망설였다. 창작문인들의 모임에 애당초 별 흥미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고도(古都)를 제대로 가꾸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경주라는 지역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회식과 환영만찬이 열린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약간 늦게 도착한 개회식엔 사람들이 그득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아 둘러보니, 황우여 부총리나 김관용 지사 등 헤드테이블에 자리 한 몇몇 인사들을 빼곤 모두 문인들이어서 낯설었다. 한글 영상[위대한 한글, 위대한 한국문학]이 상영되었고, 쾌팀의 대북 공연 <직지심경의 노래>가 분위기를 돋우었으며, JL싱어즈의 한글날 노래 <내나라 내겨레, 석굴암>이 우렁차게 대회장을 울렸다. 국제 PEN 한국본부 이상문 이사장의 인사, 황우여 부총리김관용 경북 지사최양식 경주 시장의 축사, 김후란 대회 조직위원장의 환영사, 문정희정현종 시인의 시낭송, 한국문화재 공연 팀의 뮤지컬 <용비어천가 하늘이 열리다’>의 공연이 있었고, 환영만찬이 이어졌다.

 

다음 날인 16일부터 17일까지 숨 막히는 강연들과 주제발표들이 이어졌다. 각 발표의 주제와 발표자 및 토론자는 다음과 같다.

 

특별강연: 모국어와 문학, 한글과 문학

발표1: The Sound of Languages/르 클레지오(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2: 모국어와 문학, 한글과 문학/김주연(숙명여대 석좌교수)

발표3: 훈민정음=한글의 탄생과 발전을 언어의 원리론에서 보다/노마 히데키(메이지가쿠인

대학 객원교수)

 

주제발표1: 한글, 한국문학의 세계화

첫째 마당: 세계 속의 한글문단, 한국문학(해외 한글문단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한국문학

전공자와 현지 활동가들의 논의)

 

좌장: 최동호(고려대 명예교수)

발표1: 고려인의 디아스포라 한글문학/장사선(홍익대 명예교수) 발표, 최석 시인 토론

발표2: 이념과 탈이념, 식민과 탈식민의 단절 혹은 지속/조규익(숭실대 교수) 발표,

홍규 시인 토론

발표3: 재미동포문단의 형성과 특징/장영우(동국대 교수) 발표, 명계웅 문학평론가

허대통 시인 토론

발표4: 남미 한글문학의 현황과 전망-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양왕용(부산대

명예교수) 발표, 최태진 작가정재민(한국외대 교수) 토론

발표5: 호주 한인문학의 현황과 전망/윤정헌(경일대 교수) 발표, 이효정 작가 토론

발표6: 유럽지역의 한글문단/이명재(중앙대 명예교수) 발표, 쾨펠 연숙 시인 토론

발표7: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꿈꾸다!/예은목 시인 발표

둘째 마당: 세계화 시대의 글쓰기(이중언어, 소수언어)(소수 언어가 소멸되는 시대에 한글

처럼 비주류 언어의 문학적 쓰임에 대한 현재와 미래를 진단)

 

좌장: 박양근(부경대 교수)

발표1: 재미교포 문학에 나타난 한국문화와 한국어의 정체성/최정자 시인(미동부지역

위원회) 발표, 한글은 나의 버팀목/박은주 작가 발표, 벽을 허무는 0.7% 문학/

타냐고 시인 발표

발표2: 독일에 있어서의 한국문학/서정희 시인 발표

발표3: 러시아 문화권에서의 한국어 글쓰기의 현재와 미래/니나 끄레스뜨(Nina Krest)

시인시극배우피아니스트

발표4: 일본 내의 한글과 한글문학의 현실과 전망/왕수영 시인

발표5: 이민 1세대 동포작가와 2세들의 한국어에 대한 인식/이정순 시인(국제PEN한국

본부 캐나다지역위원회 회장)

 

셋째 마당: 국내외 한국어와 한글교육 현황(한국어 사용실태와 한글교육현황에 대한 국내

외 학자, 현지 전문가들의 논의)

 

좌장: 이영숙(한양대 교수)

발표1: 국외 한국어 사용실태와 한글교육 현황/강현화(연세대 교수)

발표2: 한국어와 한글 교육 현황-아시아와 남미지역을 중심으로/김선정(계명대 교수)

발표3: 유럽과 미국에서의 한국어 교육/김정숙(고려대 교수)

발표4: 재외 한글학교의 한국어와 한글교육/이미혜(이화여대 교수)

발표5: 세종학당재단 사업 소개/이교택(세종학당재단 사무총장)

발표6: 베트남에서의 한국어 교육현황/도프엉투이(하노이국립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한국

문화학과)

발표7: 중국에서의 한국어 교육현황/김성란(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

과 교수)

발표8: Expectation and Challenge on Using Cia Cia Script Adapted From

Hanguel in Cia Cia Laporo Sorawolio Community Baubau City/아비딘(

우바우 지역 교사)

 

 

주제발표2:

1) 세계 속의 한글문단(재외동포 한글문단)

좌장: 박덕규(단국대 교수)

발표1: 해외 한글문단과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김종회(경희대 교수)

발표2: 해외 한글문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이승하(중앙대 교수)

 

2) 재외동포 한글문단

 

발표1: 러시아의 지역 문단 활동 및 매체/니나 끄레스뜨

발표2: 중국 조선족 문학 현황/우광훈(중국 연변작가협회, 작가)

발표3: 미국 서부지역 동포들의 현지 한글문단에 대한 보고/김영중(국제PEN한국본부

서부지역위원회 회장)

발표4: 미국 동부지역 동포들의 현지 한글문단에 대한 보고/정재옥 작가

발표5: 브라질 한글문단에 대한 보고-브라질 한인 문학의 50년 모습/안경자 작가

 

3) 모국어 문학 활약상

 

좌장: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상무이사)

발표1: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과제/민용태(고려대 명예교수)

발표2: 영어권에서의 한글문학 번역 문제/정정호(중앙대 명예교수)

발표3: (미국서부)이민생활에서의 한글문학/이승희 시인

발표4: 캐나다의 한글문단/이정순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캐나다 지역위원회 회장)

 

 

문학강연

 

1. The Music of Words/르 클레지오

2. 한글의 모습과 한글소설/윤후명(국민대 문창과 겸임교수)

3. Angst, Weltschmerz & Gemütlichkeit: German Krimii. How a booming genre

mirrors German National Identity-or the Lack of it/레굴라 벤스케

4. My Story: The Story of an Egyptian Woman Write/에크발 바라카(국제PEN여성위

원회회장)

한글문학축제: 편지낭송 및 시낭송(김홍신, 김일연, 김종상, 도종환, 문태준, 유안진, 윤제

, 정호승, 최금녀, 최양식, 허영자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참여한, 참으로 성대한 행사였다. ‘세계 한글작가 대회라는 인상적인 타이틀에 걸맞게 한글문학의 존재와 당위가 찬연하게 진면목을 드러낸 자리였다. 지금까지 해외 한인 1세대는 그럭저럭 한글문학을 영위해 올 수 있었으나, 2세부터는 쉽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 자리이기도 했다. 문학창작을 가능케 하는 것은 모어(母語).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빨 듯 어머니의 입놀림을 보며 배우는 게 모어(mother tongue)라면, 해외 한인 2세 이후 세대에게 한글문학 창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중국 조선족을 제외하고 발표에 참여한 대부분의 해외 문인들은 1세들이고,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한글문학을 창작하고 있었으나, 힘에 부친 모습이 역력했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한글문학 창작에 대한 욕구와 현실이 극명하게 교차한 내적 갈등의 현장이기도 했다.

 

***

 

이번 행사의 초점은 몇 명의 외국인들이고, 그 가운데 프랑스의 작가 르 클레지오와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 교수는 그 중심이었다. 이미 지난 세기 말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선정된 르 클레지오 선생의 감동적인 강연은 발표의 서막을 장식했다. 2008년도 노벨상 수상자인 그가 어떤 연유로 서구 지성들 가운데 드물게도 지한파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말과 글자, 문화에 대한 애정은 강연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강연은 엄청난 재능과 체험으로 계발된 인간의 영혼을 시현하는 이벤트였다. 강연의 말미에 그는 작가들은 사회학자, 정치학자, 철학자, 경제학자 등을 뛰어넘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는 요지의 일갈을 던졌는데, 멕시코 고대사 분야의 박사로서 지적 탐구여행을 지속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멘트이기도 했다. 값싼 감성에만 기대려는 일부 한국 작가들을 부끄럽게 만든, 선사(禪師)의 할()과 같은 것이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노마 히데키 교수 또한 우리에게 긴장과 부끄러움을 안겨 준 석학이었다. 일본 최고의 한글 전문가인 그는 시종 여유 있고 담담하게 언어 원리론의 입장에서 한글의 창제와 발전을 설명했다. 우리나라 언어학자나 한글학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껏 들어온 한글 관련 강의 중 으뜸이라는 것이 좌중의 평가였고,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학 이론의 탄탄한 바탕, 성실하고 근면한 학구, 뛰어난 상상력의 소산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말과 글자에 대한 흥미나 사랑이 밑바탕임을 그의 말에서 느껴 알 수 있었다. ‘한글이란 유라시아 동방의 극점에 나타난 에끄리뛰르의 기적이란 말을 일본인 학자로부터 듣는 기분이 묘했지만, 한편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학문적 논리에 근거를 둔 점에서 그 타당성을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적 같은한글의 장점을 잘 모르고 살아온 그간의 내 삶에 부끄러움을 느낀 건 당연한 일 아닌가.

 

***

 

이번 행사야말로 앞으로도 쉽게 꾸릴 수 없는 문화적 성사(盛事)이리라.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외국의 한인들을 불러들이고, 국내의 유관인사들을 모으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일까. 이런 행사의 결실을 광범하게 유포하고 알려야 한다고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문화인들을 우물 안 개구리신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막행사장

 

 

 


축사중인 황우여 부총리

 

 


개막 축하 공연 <용비어천가-하늘이 열리다>

 

 


개막 축하 공연 <용비어천가-하늘이 열리다>

 

 


강연하는 르 클레지오 선생

 

 


강연을 하는 노마 히데키 교수

 

 


주제발표회장에서

 

 

 


토론을 맡은 흑룡강성 TV 방송국 부국장 리홍규 시인

 

 

 


토론을 하는 알마티의 최석 시인

 

 


대회장 인근의 풍경

 

 

 


포근함을 안겨주는 경주의 대능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5. 08:22

 

빛나는 한국학생 Hyunjun Brian Choi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창 자식들을 키울 때엔 그 녀석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모자랐는데, 이제 웬만큼 홀로서기들을 했다고 생각되면서 내 눈에 다른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내 시야에 들어온다. 요즘 들어 부쩍 남학생들은 아들로, 여학생들은 딸이나 며느리로 바꾸어 생각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운 좋게도 나는 지금까지 학생들을 만나면서 거의 저런 학생을 아들이나 딸로 둔 부모는 참 좋겠구나!’, ‘저런 아이는 며느리 감으로 딱인데!’, ‘참 잘 키웠구나!’ 등의 생각만을 갖게 되었으니, 참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자랑스럽게도 이처럼 내 주변에는 반듯하면서도 이쁘고 착한학생들뿐이다.

 

잠시라도 해외에 나가 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인 동시에 잘 몰라서 불안한 일일 수도 있다. 미국 내의 연구기관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으로 결정하고 대부분의 중요한 서류작업들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이곳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대학의 학장, 학과장, 외국인 학자 관리처, 주택 관리처, 풀브라이트[미국 본부 및 한미교육위원단], 대사관 등 우리가 접촉한 기관이나 부서들 모두 공적인 업무 상대들일 뿐이었다. 친척이나 친구 등 좀 더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답답한 나머지 사이트를 뒤지다가 이곳 대학의 한인학생회를 발견했고, 궁여지책으로 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어서 부득이 부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득달같이 생동감 넘치는 문체의 영문 답신메일이 날아왔다. 그가 바로 ‘Hyunjun Brian Choi’였다. 어려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한글을 쓰는 것보다 영문을 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하여 영문으로 이메일을 쓰게 되었노라는 해명까지 덧붙여가며 이곳 생활의 이면들을 자세하게 적어 보내온 것이었다. 참으로 예의 바르고 의젓하면서도 주도면밀한 그의 이메일을 받아보곤 호기심이 생겼다. ‘한인 학생회의 부회장이라니, 대학원생 쯤 될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몇 번 오고 간 그와의 메일 연락 덕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올 수 있었다.

 


Cafe 88에서 


레스토랑 Bad Bread에서 


OSU의 풋볼 경기장 Boone Pickens Stadium에서               
                                                                                                       

와 보니 정착이 쉽지 않았다. 시차 적응이 쉽지 않아 눈꺼풀은 스르르 내려앉는데 시장은 가야하고, 시장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는데, 차를 사는 절차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또 자세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의 이메일을 통해 연결된 분이 바로 기계공학과의 장영배 교수였다. 장 교수의 호의로 우리는 나머지 정착과정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브라이언을 집으로 불렀다. 아직 차를 구입하기 전이었다. 시장을 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고 하자 강의가 끝나는 즉시 친구의 차를 빌려 몰고 부랴부랴 와 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앳된 학부 3학년생이었다. 첫 인상이 착하고 성실했다. 말을 시켜보니 의젓하고 생각 또한 깊었다. LA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대학 기간을 단축하려는 계획을 갖고 이 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였다. 벌써 1년 반이란 기간을 단축했단다.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국제변호사[아마 경제 전문 변호사가 목표인 듯하다.]로 활약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미 한국의 유수한 로펌에서 인턴의 경력도 쌓아놓았다고 했다. 매학기 학점을 초과 이수하면서도 아주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그였다. 예컨대,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National Society of Collegiate Scholars’, ‘Phi Eta Sigma’, ‘Golden Key International Honor Society’ 등의 멤버로 활약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출중한 능력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2012년에는 ‘Baugh, Russell, and Florence’ 장학금을 받았고, 2012년 봄 학기, 2013년 봄여름 학기에는 우등생으로 학장의 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총장으로부터 우등상장을 받기도 했다.


Boone Pickens Stadium 건물 1층에서 

         

브라이언이 속한 College of Honors 건물 

 

나는 해외에서 빛나는 우리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물론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도 중요하고 어렵다. 그러나 낯설고 물 선 해외에서 그들과 경쟁하여 앞서나가는 일은 더욱 어렵다. 어머니의 젖과 함께 물려받은 모어[mother tongue] 사용자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하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아이들과 경쟁하여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인즉, 그 나이 또래에 누구나 맞이하는 질풍과 노도’, 내부의 욕망과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유혹들을 억누르거나 물리치고 시시각각 침투하는 외로움과 맞서가며 자신을 제어한다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브라이언이 풍겨내는 담담한 내면을 통해 나는 범상치 않을 그의 부모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의 빛나는 미래를 점치게 되었다. 브라이트(bright) 브라이언 만세!!!

 


백규 연구실에서 브라이언과 함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7. 15. 10:32

최근 들어 러시아어 권의 국가들을 자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동족들을 수시로 만난다. 미국이나 일본, 혹은 중국에서 만나는 50대 60대 동포들은 대부분 한국어에 능숙하니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구소련 권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에 이주한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구소련의 엄혹했던 ‘동화정책’은 대부분의 동포들을 철저한 러시아인들로 만들고 말았다. 진짜 속이야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타고난 제 말 혹은 조상의 말을 버리고 러시아어를 모어 혹은 모국어로 삼게 함으로써 내면까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이 다르면 생각도 달라진다고, 그들이 2대, 3대를 지나면서 바꾸어 가진 말 때문에 의식구조 역시 완벽하게 달라지고 말았다. 구소련 권의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말과 민족성의 문제를 새삼 다시 인식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 사례를 소재로 두 가지의 말을 하고자 한다. 말에 따르는 소외감, 말과 민족의식 등이 그것들이다.

       

   하나   


이번 여행 중 알마티에서의 어느 점심시간. 70대, 60대, 50대 등 고려인 3명과 함께 하는 자리였다. 모두 고려인 3세들이나, 70대는 우리말과 러시아말에 유창한 이중 언어 구사자, 나머지 둘은 러시아말만 할 줄 아는 지식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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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티의 한국식당들 가운데 하나인 '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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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들과 함께 점심을>

 두 언어에 능통한 70대가 본의 아니게 나와 나머지 두 사람 사이의 통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만 능하다고 통역이 수월한 게 아님을 그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통역이란 언어능력과 순발력을 요하는 업무임을 분명히 깨닫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

 통역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대화 판은 대부분 둘로 나뉘게 된다. 특히 통역해야 할 상대 언어 구사자가 단 한 사람이라면 그는 필경 본의 아닌 ‘왕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에 따라 통역이란 징검다리를 거쳐야 하는 상대는 소외되기 마련이다. 행인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다 하자. 한쪽은 탄탄대로, 또 한 쪽은 차가운 시냇물에 덩어리 덩어리 던져놓은 징검다리라면 그가 어느 쪽으로 길을 잡아들지는 묻지 않아도 분명해진다.

 우리의 모임이 그랬다. 4명이 합석한 자리였는데, 3명이 같은 러시아어, 1명인 나는 한국어 구사자였다. 더구나 3명 중 2명은 러시아어 외에 영어 등 구사할 수 있는 다른 언어가 전혀 없었다. 반면 나는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영어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3명 중 1명은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구사했지만, 수시로 통역의 임무를 망각했다. 말하자면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들과의 대화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연로한 때문인지 전혀 순발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힘겹게 대화에 끼어든 내가 “이 말 좀 통역해 주시오!”라고 소리쳐야 겨우 통역을 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러시아 말이란 얼마나 소란스럽고 수다스러우며 안하무인적(眼下無人的) 언어인가. 그들이 자신들의 일에 관해 요란한 러시아어로 떠들어댈 때 나는 우두커니 앉아 음식만 씹어댈 수밖에 없었다. 대화 판에서 사람이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일상생활에서 소외를 당하는 일이 사실은 다른 게 아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자기들 끼리 만 소통함으로써 남을 문 밖에 세워두는 일’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비참한 소외현상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같은 언어’를 쓰느냐의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끼리도 서로 간에 얼마나 비참하게 소외시키는지를 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자기들만의 언어’를 쓰는 것이 소외의 가장 큰 조건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계유지의 어려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떠난 초기 이민들이나, 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남아의 새댁들을 생각해 보라. 언어 때문에 그들이 겪어야 했던 소외감이 어떠했을까를. 그럼에도 심지어 우리 중의 몰지각한 어떤 인사들은 우리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는 지레짐작으로 그들을 같은 자리에서 돌려세워놓고 험담을 하기도 한다. 차별의식으로부터 나온 우리 민족의 못된 습성이다. 같은 동족끼리도 말을 통해 소외시키기를 밥 먹듯이 하는 민족인데, 하물며 우리와 피부색과 사고가 다른 외국인들에 대해서야 오죽할까.


  

그 식사 자리에서 ‘고려 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은 60대나 된 사람들이 우리말을 한 마디도 모르는 게 눈에 거슬리던 차였다. ‘고려인들은 고려 말을 좀 배워야 하고, 젊은 세대는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였다. 그러자 대뜸 ‘우리는 러시아 말을 하고 있고, 외국어를 배우려면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실로 따진다면야 옳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늘 애틋하게만 생각해오던 동포들의 입에서 망설임도 없이 이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나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한국말을 배워서 어디에 써 먹느냐?’는 대답이었다. 한국말 배울 시간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는 것이었다.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고려인의 후예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고려 말 배우기에 열성적’이라는 말을 덧붙인 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한국말을 배워야 한국의 정신을 배울 수 있고, 한국의 정신을 익혀야 뿌리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설득의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미 구소련 혹은 카자흐스탄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한국은 독일이나 중국과 같은 먼 외국일 따름이었다. ‘비록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의 피붙이들에게 잘 해 준 건 없어도 늘 애틋하게 생각해왔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한탄은 이미 그들에게 통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동안 혼자서 이들을 짝사랑해왔음을 그 순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생김새는 분명 나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뚜르르~’ 굴러가는 러시아어를 술술 구사하는 그들, 한국에 가서 며칠간 한국음식을 먹느라고 죽을 뻔 했다는 그들을 보며,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앤더슨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옮겨 심은 나무처럼 그저 그 땅에 적응하면 그 땅의 나무가 되는 것 아닌가. 누구의 말대로 ‘줄기와 뿌리는 이파리를 잡고 있으려 하나, 이파리들은 한사코 나무를 떠나려’ 하는 이치가 바로 이것 아닌가. 모체를 떠난 이파리인 그들은 결코 모체를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본향 회귀를 염원하는 1세대의 정신적 자장(磁場)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그들이었다. 그들에겐 돌아갈 본향도, 그리워할 음식도, 붙들고 울어야 할 피붙이도 없었다. 그저 기름 줄줄 흐르는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음식들을 먹으며, ‘뚜르르~’ 굴러가는 러시아어로 수다를 떨며, ‘바로 지금 이곳’을 사는 이곳 사람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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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란 무엇인가. 아니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는 그간 ‘피붙이’라면 끔찍이 생각해왔다. 준 것도, 줄 것도 없지만, 정 하나만큼은 나누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온 것이 해외의 우리 동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분명히 깨닫자. 그들에게 자신들의 나라는 카자흐스탄이요, 러시아일 뿐 대한민국이 아니다. 잘 나가는 대한민국을 특별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의무도 그들에게 없고, 고국을 잊지 말하고 강요할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너와 나는 그저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해야 할 생활인들일 뿐임을 잊지 말자. 이런 바탕 위에서 해외 교민들에 대한 정책도 재조정되어야 한다. 민족의 실체 또한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