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6. 4. 15:16

   대한민국의 재앙

-어떤 국회의원의 말본새를 보며-

 

 

“구설(口舌)은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의 경구(警句)다. 평원의 필부라 할지라도 잘못 뱉은 말 한 마디가 몸을 망치거든, 하물며 책임 있는 야당의 원내대표야 오죽하겠는가. 저 혼자 망하는 거야 제 업보이니 그럴 수 있다 해도, 공당(公黨)의 책임 있는 자가 막말을 해댐으로써 국가의 일을 그르치고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은 간단히 보아 넘기기 어렵다.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가 대통령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고 했다 한다. 사람들이 그 말의 몰상식함을 비난하자, 그게 ‘아름다운 말’이라고 둘러댔다. 오랜 기간 국어 선생으로 살아오고 있지만, ‘호들갑 떨다’는 말이 ‘아름다운 말’이라거나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억지를 난생 처음 접하면서, 참으로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다가 ‘공갈하지 말라’는 투의 ‘막말 아닌 막말’로 징계를 내린 공당에서, 명색이 대표가 그보다 몇 배나 심한 막말을 뱉어냈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있는 그 당 인사들의 수준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하다. 징계를 받은 그 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 경우는 2년 정도 당직을 정지시켜야 할 수준의 막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막말은 이번뿐 아니다. 둔감한 내가 기억하기에도, 이미 그는 대통령을 ‘그년’으로 호칭한 전과가 있다. 그 때도 그는 그 말을 ‘그녀는’의 줄임말이라고 강변한 바 있다. 미련한 것인지, 교활한 것인지, 참으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인사다. 누구든 같은 대상에 대하여 연거푸 막말을 뱉어대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대상에 대한 분노나 반감이 가득 차 있다는 증거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분노조절장애’는 말 그대로 억누르지 못한 마음속의 분노가 반사회적 범죄로 표출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따라서 이 원내대표의 경우는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나 분노가 조절되거나 막말로 표출된, 일종의 ‘분노조절장애’의 결과일 것이다. 그가 막말대신 칼을 들었다면 인명을 살상하는 사고로 드러났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보는 인사들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사례다.

 

나라의 공인으로서 국회의원은 과연 어떤 덕목들을 갖추어야 할까.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것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신중한 언행과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신사도’라 할 수 있다. 국가의 법을 만들고 심의하며 통과시키는 국회의원이라면 행동거지나 언사가 최고로 엄정하고 규범적이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툭하면 칼을 빼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골목깡패’일 수 없기에, 분노가 턱밑까지 치밀어 올라도 그가 내뱉는 말은 절제되고 정제된 모범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국회의원이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년, 놈’으로 호칭하며, ‘호들갑 떨지 말라’는 막말로 비하한단 말인가.

 

훌륭한 조상으로부터 망나니 같은 후손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반대로 별 볼 일 없는 조상들로부터 훌륭한 후손들이 나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잘못된 경우로 인해 훌륭한 쪽이 본의 아닌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가문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행동거지, 말본새 하나라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혹시 내 행동 때문에 훌륭하신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욕을 먹게 되지나 않을지, 훌륭한 내 아들이나 손자가 욕을 먹게 되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원의 필부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훌륭한 할아버지를 둔’ 국회의원이야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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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2. 8. 7. 21:23

이른바 국회의원이란 자의 천박한 입

 

                                                                                                                                                         백규

 

본인에게는 약간 미안한 말이지만, ‘이종걸’이란 국회의원[통합민주당]이 있었는지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트위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그년’으로 지칭했다 하여 언론매체들이 떠들썩하다. 네티즌 가운데 몇 사람이 표현의 지나침을 지적하자 ‘그년’이 ‘그녀는’의 준말이라고 강변했다니, 더욱 기가 찰 일이다. 30년 가까이 국어선생을 하고 있지만, ‘그년’이 ‘그녀는’의 준말로 일상 언어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서야 알게 되었으니, 나도 문제적 인간인가?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지난 번 김용민이란 사람이 막말파동으로 국회의원 후보 자리에서 쫓겨난 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같은 당에서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런 걸 보면 바야흐로 이제 정치의 계절은 시작된 것 같다. 5년 전 선거철에도  정치인들의 험한 말은 차마 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언어순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조선일보 바로가기] 그러나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지금, 반복되는 ‘역사의 법칙’이나 씁쓸하게 떠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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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렇게 험한 말들이 속사포처럼 튀어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를 요즈음 사람들이 ‘없으면 단 한 시도 못 산다’는 SNS 즉 ‘사회적(사교적) 연결망 서비스’에서 찾게 된다. 긴 문장 대신 짧은 문장으로 수시로 일어나는 상황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그런 서비스이다. 어떤 사실을 목도하거나 말을 들었을 때, 또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잠시잠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돌멩이 던지듯 뱉어내는 것이 바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다.

 

참 가관인 것은 나이가 지긋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서울시장도, 정당의 대표나 국회의원도, 상당수 대학교수들도 여기에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의 진위를 따져 볼 겨를도 없이 그냥 쏘아대고 만다. 그 말은 즉각 팔로워(follower)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은 또 자신들의 팔로워들에게 리트윗(retweet)함으로써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나간다.

 

일단 트윗 혹은 리트윗된 말들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 속삭이듯 건넨 말도 주워 담을 수 없거늘 하물며 수십만 수백만에게 전달된 말을 무슨 수로 주워 담는단 말인가. 그런 말들은 진위에 관계없이 여론이란 허울을 쓰고 나라를 흔들어 놓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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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도, 서울법대 조국 교수도, 소설가 이외수 씨와 공지영 씨도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SNS 애용자들이다. 엄청난 팔로워들을 거느린 그들이 부러워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실 이들의 한 마디 말이 갖는 의미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 자신들의 말 한 마디에 따라 대중들이 쉽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들을 가볍게 SNS로 던져댈 일은 아니다. 그래서 SNS에 의존하는 요즈음의 정치인들이나 사회운동가들, 문화인들이 그렇게 천박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한 마디 말을 꺼내기 위해 수십 번 되 뇌이고 고민하는 과정을 이들은 아예 생략해 버린다. 일단 던져놓고, 나중에 잘못이 드러날 경우 수정하면 된다는 배짱들일 것이다. 그래서 늘 강호에는 무책임한 말들로 인한 혼란 때문에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인사들이 아닌가. SNS를 애용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흡사 ‘고자질하는 애들’ 같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일단 자신이 곰곰 생각하며 해결하거나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큰 소리로 떠들고 본다. ‘그들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심산일까.

 

팔로워들 가운데는 얼마나 단세포적이며 생각 없는 어린애들이 많은가. 이 사회의 어른을 자처하는 인간들이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공공의 일들을 ‘아가들’에게 고자질하여 들고 일어나게 만드는 격이다. 그래서 나는 툭하면 SNS에 의존하는 현대의 정치를 ‘고자질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종걸이란 국회의원도 아마 그 SNS의 마력에 빠져 있는 인물인 듯하다. 박근혜 후보에게 잘못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하든 칼럼을 쓰든, 아니면 만나서 항의를 하든 방법은 많을 것이다. 어쩌자고 ‘그년’이란 상말 호칭을 사용하여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뿌려댄단 말인가. 그러고도 스스로가 국회의원임을 내세울 수 있는가? 국회의원으로서의 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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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자(口舌者)는 화환지문(禍患之門)이요 멸신지부(滅身之斧)라[입과 혀는 화가 들어오는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상인지어(傷人之語)는 환시자상(還是自傷)이니 함혈분인(含血噴人)이면 선오기구(先汚其口)니라[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스스로를 해치니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으려 하면 먼저 자신의 입을 더럽히게 되느니라]” 등의 말들은 모두 옛날에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과서 <<명심보감(明心寶鑑)>>에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몹쓸 시대로 변했다 한들, 환갑 진갑 다 지냈거나 그에 가까운 어른들이 옛날 열 살 남짓되던 아이들만도 못해서야 쓰겠는가? 정치인들이여! 부탁하노니 반성하는 뜻에서라도 당분간 제발 그 입들에 자물쇠 좀 채워주기 바란다.

 

<2012. 8. 7.>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4. 4. 15:3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 난장’

                                                                                                                                                               백규


국어선생으로서 낯을 들지 못하는 나날이다. 그간 어린 영혼들에게 교과서만 읽혔을 뿐 ‘정확하게 말하는 법’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이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팔아 밥을 먹고 있지만, ‘지저분하고 천한 말들의 향연장’으로 전락한 우리네 삶터를 목도하면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나날이다.
  최근엔 더욱 기가 질리는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선량(選良)[즉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김모씨. ‘몸집만 어른’인 그로부터 우리 사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들어서도 안 될’ 최악의 언어테러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불혹인 40이 멀지 않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며, 모 대학 교수까지 역임했으니, 그를 보고 ‘철이 없다’는 표현을 갖다 댈 수는 없으리라. 그 뿐인가. 아무나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까지 받은 몸이다. 선량이 되어 민의(民意)를 대변하겠노라고,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이 나라를 바로잡아 보겠노라고 대단한 포부를 밝힌 ‘대단한 인사’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입만 열면 하수구나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보다 더 구역질 나는 욕설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가 속한 그룹을 열렬히 지지하는 어떤 매체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매체와 비슷한 성향이면서도 얼마간 양식이 살아 있는 다른 언론들까지 그의 ‘지저분한 언사’를 대서특필할 정도로 그의 욕설은 우리 사회에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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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 가던 중 초등학생들 곁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대략 90%가 욕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그야말로 숨 쉬듯 내뱉었다. 그 욕설의 대부분은 성(性)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들 대부분은 그런 욕설들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 초딩들’의 욕은 ‘나꼼수’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한 ‘그 어른들’의 욕에 비해 애교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김모씨의 욕설은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들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초등학생들과 김모씨의 언사가 연결되면서 나는 김모씨 같은 어른들의 말,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되는 그 욕설들이 바로 우리 시대 아이들의 ‘언어 교과서’임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이 고지식한 국어 선생들의 입장에선 그들 말대로 우리들과 ‘쨉이 되지 않는’ ‘살아있는 국어선생들’이 바로 ‘김모씨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은 초등학생에서 어른들까지 욕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한다. ‘상아탑에 숨어 살아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험한 욕 한 번 듣지 않고 살아온 그대는 세상물정 모르는 말 하지 말라'는 면박을 친구로부터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즘의 세태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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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모씨는 왜 그런 욕설을 내뱉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나꼼수’는 왜 욕을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아주 잘 못 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오물’을 뱉어냄으로써 후련해지는, 일종의 자기중심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 모두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전제 아래, 그런 ‘오물 치우기’를 그들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소영웅주의’의 발로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길게 따질 필요도 없이 김모씨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가장일 텐데,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아내나 아이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자신이 ‘나꼼수’에서 내뱉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다면[왜? 아빠가 이미 대중을 상대로 내뱉었으니까!], 그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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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특히 ‘말’이 험해진다. 사실 김모씨가 뱉은 욕설은 ‘말’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한다. 적어도 말이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욕설들에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제대로 된 정치의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말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기껏 교과서만 읽었지, ‘제대로 된 화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만 모아 놓으면 육두문자와 폭력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지난 선거에도 나는 정치인들의 ‘담론 수준’을 비판하는 글들을 여러 편 쓴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저급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예의를 갖춘 언사와 멋진 논리만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최종병기’임을 알만한 인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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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즉 말]는 근심의 문이며, 몸을 죽게 하는[망치는] 도끼’라는 것이 <<명심보감>>의 금언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쳐주는 박수에 도취되어, 보기에도 딱한 ‘소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아이들마저 사용하길 꺼려하는 욕설들을 마구 내뱉은 김모씨. 이제 그 말들이 가시가 되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었으니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습기가 솜과 같고, 남을 해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와 같으니 한 마디 말이라도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라도 남을 해치면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는 <<명심보감>>의 경구를 재삼 명심하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가까운 교회당에라도 가서 꽤 긴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2012. 4. 4.>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