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2. 20. 04:11

갑오년 그믐날 밤의 단상: 이완구 총리를 보며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한 게 인생사다.

많은 관계들이 얽혀 여러 의미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 한 두 가지 개념의 공약수로 수렴되는 것이 세상사다욕망과 허무는 내 경험으로 파악한 인간사의 두 공약수다. 위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서지지 않는 성채(城砦)가 어디 있으랴! 잘 되었든 못 되었든 욕망으로부터 기획되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만사이며, 성서의 말씀대로 창대해지지 못한 채그 끝은 허무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 세상사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작품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어머니로부터 앞 산의 '큰 바위 얼굴'과 똑같이 생긴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을 전해 듣고 이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으며 그를 기다려 온 어니스트(Ernest). 부자장군정치가시인 등이 거쳐 갔지만, 그 중에 큰 바위 얼굴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지독히 평범한 촌부 어니스트는 자애와 진실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서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하지만, 어니스트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을 기다린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다.

 

이 늦은 밤, 사람들의 이목을 한껏 끌어올렸다가 바닥에 내팽개친 이완구란 인물을 생각해 본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난국 구제의 해결사쯤으로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누구도 수완을 보여주지 못하는 작금의 문제적 상황을 그만은 어느 정도 해소해 내리라 보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며 흠결이 나타나다 못해 급기야 '조무래기 기자들' 몇을 앉혀놓고 힘자랑하다가 들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구의 표현대로, 인간 최후의 자존심마저 팽개치고 허겁지겁 재상의 자리에 기어오른그였다. 정작 그가 아니면서도 그의 부끄러움을 내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같은 욕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의 참모습을 일찌감치 깨닫게 해준 그가 고마운지도 모른다. 그 점 때문에 그를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헛발질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한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으로 남아 한동안 우리를 더 농락했을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고만고만한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기고만장하던 그의 모습에 잠시 우리는 판단력을 잃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 역시 욕망의 덩어리였고, 그 욕망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스런 일인가. 이렇게 잠시나마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이완구는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다시 허무에 직면하는 것이다.

 

욕망과 허무! 정치인종교인학자사회운동가 등 우리 시대 리더의 직함을 달고 있는 인물들이 바야흐로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욕망의 운명적인 더러움에 빠져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허무를 인식할 리 없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대다수 민초들은 부끄러움과 허무감에 몸부림친다.

 

새해 을미년도 그런 허무와 부끄러움의 연속일 것이다. 욕망과 허무의 삐에로가 되어 무대에 오른 이완구 총리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 23. 12:30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나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論語>> <里仁>]는 공자의 말이 있다. 군자라면 ‘말수가 적고 좀 느려도 행동만큼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재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번지르르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 쏘면서 하나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달변가들을 꾸짖은 말씀이었을 텐데, 공자 시대의 그런 사정이 오히려 심화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박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달변가는 아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늘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 내뱉는 데도 그렇게 힘이 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대통령이 소통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인 참모들과 정치인들, 기자들을 대하는 일이 끔찍하게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석학 할아비'라 한들 말로 해서야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언변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말 실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로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속담에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말이 있다. 대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을 보거나 ‘말과 실천’을 결부시켜 온 동양적 사고를 생각해 보아도 ‘말 잘하는 것’이 늘 장점만은 아니었다. ‘깡촌’의 흙 속에서 꼬물거리던 내 코흘리개 시절, 그 때까지 본 적 없는 ‘말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우리 마을에 내려와  ‘말끔한 달변의 서울말’로 사기 치던 토지 브로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사기꾼에게 넘어가 몇 십 년을 고생하시던 농사꾼 내 부모의 한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부분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내 친구들의 마음속엔 다른 세대가 쉽게 이해 못하는 그런 공감영역이 있다.

 

자라면서 ‘말만 말끔하게 잘 하는 인간들’을 자주 만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기꾼들이었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판들을 여러 번 접해오는 중이다. 참, 말 잘하는 사기꾼들이 많았다. 최근 10년 이내 두 번의 선거판을 말로만 본다면 ‘눌변 : 달변’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50대들이 누구인가? 대부분 어려움 속에서 근근이 살아남아 이제 은퇴기에 도달한 연령대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라나 ‘농경사회→산업화사회→정보화사회→지식기반 고도정보화사회’의 고비들을 용케도 탈 없이 거쳐 온 사람들이다. 어쩜 비슷하게 고단한 환경과 의식 속에 성장했다는 ‘연대감’으로 뭉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국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달변가도 보았다. 당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과연 그는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달변이 이른바 ‘종북’이나 ‘극좌’와 합쳐지면 나라로서는 재앙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는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를 위해서 천행이었다.

***

지금 50대의 민심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반(離反)되고 있다고 북악산 언저리에 수심이 가득하다. 50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던 그 50대가 민심이반을 추동(推動)하고 있으니, 당하는 심정으로선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오늘 아침 인적 쇄신책이라고 내 놓았으나, 그 역시 ‘격화소양[隔靴搔癢: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의 미봉책일 뿐이다. 참, 답답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신조나 철학으로 주변의 개인들을 신뢰하거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갖는 신뢰와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신뢰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대통령은 만인을 상대로 하는 공인이지 개인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을 상대로 할 때 작동하는 것이 ‘정치 논리’다. 하물며 5천만의 생령(生靈)들을 상대로 하면서 정치논리를 도외시하고, 어찌 개인의 소신이나 철학을 판단의 잣대로 들이댄단 말인가?

 

인사를 말끔히 쇄신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다면, 그간 쓰고 있던 개인의 안경을 국민의 안경으로 즉각 바꿔 써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개인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그건 공자가 말한 군자의 ‘눌변’ 차원이 아니라 김 모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던 ‘칠푼이’의 수준에 머무는 일이다. 누가 보아도,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은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누가 쫓아내기 전에 스스로 물러서는 게 맞다. 누구 말대로 ‘인간적 신뢰를 지킨답시고’ 그들을 껴안고 간다면,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강호의 현사들을 등용한다 한들 그게 어찌 ‘쇄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특히 50대들은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말이다. 그의 입을 쳐다보기에도 지쳐 있는데, 행동마저 이리 굼뜨다면 참으로 절망이다.

 

지금 대한민국 호는 ‘북핵, 경제, 안전’의 불안이란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판단력이 흐리고 굼뜬 조타수에게 어찌 대한민국 호의 순항을 맡길 수 있겠는가. 즉각 비서실장과 3인방을 내치시라. 팔팔하고 번뜩이는 감각의 30~50대 초반의 명망가들이 강호에는 넘치고 넘친다. ‘삼고초려’라도 해서 그들을 모신 뒤, 만기친람하려 들지 마시고 그들에게 국정을 맡기시라.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지금 그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면 대통령 스스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이 민족에게 재앙을 안겨 주게 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7. 26. 22:05

 


오클라호마주 무어(Moore) 시 초입의 조형물과 자동차들

 

 

 

 

에프 엠(FM)대로 살면, 망할까?

 

 

 

미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차를 구입하여 몰기 시작했다. 오클라호마의 스틸워터는 십 몇 년 전에 지내던 LA보다 도로가 훨씬 한산하고 넓었다. 미국에서는 교차로에 진입하기 직전에 반드시 정지한 다음 어느 방향이든 먼저 와 서 있는 차가 진입하도록 양보해야 한다. 비록 사방에 차 한 대 없어도 반드시 정지하여 두리번거리며 확인한 다음 출발하는 것이 정해진 법규였다. 저 멀리 차도로 사람이 걸어가면 무조건 서서 기다리는 것도 그들의 원칙이었다. 신호등을 지키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 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미국인들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초기에는 가끔 착각하여 한국에서의 운전 습관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런 미국의 운전 관습이 몸에 배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처럼 내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감동을 받았던 건 미국인들의 이른바 리걸리즘(legalism)’이었다. ‘고집스런 법칙 존중주의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간혹 답답하기도 했으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최고의 장점이었다.

 

***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일리걸리즘(illegalism)’이 관습화된 나라다. ‘고집스런 범칙주의(犯則主義)’  혹은일상적 범칙주의’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어기는 맛에 법을 만든다는 말이 상식처럼 되어 있고, ‘예외 없는 법 없다는 속담을 진리처럼 숭상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가보라. 아무리 차량 대수에 비해 길이 좁아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틈만 나면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면 전속력으로 가속페달을 밟아 그 앞을 !’하고 가로질러 내빼는 건 일상적인 모습이다. 직진차선에 차가 밀린다 싶으면 그 옆으로 빠져 나가는 우회차선을 쌩 달려 앞쪽으로 간 다음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운전자들을 조롱하듯 끼어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지가 미국처럼 자유로워진다면, 아마도 사망자의 90% 이상은 도로에서 생겨날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내비게이터 덕분이긴 하지만, 감시카메라의 위치를 귀신같이 알아낸 뒤 그 사이사이에선 엄청난 과속도 일삼는다. 당국에서는 구간 단속이라는 지혜까지 내놓았지만, 요즘은 머리 좋은 운전자들 때문에 그것도 무력화 된지 오래다.

이런 일리걸리즘이 교통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많은 돈을 벌면서 세금 한 푼 안 내고, 건장한 체구로 태어났으면서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고, 집 지을 수 없는 땅에 호화주택을 짓고, 선박의 구조를 변경하면서까지 화물을 과적하고...주워섬기자면 끝이 없다.

 

***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뒤 국가 대개조에 나서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날이 갈수록 무뎌지고 있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지하철 사고, 열차 사고, 비행기 사고... 운전자, 정비사 등이 간단하지만 중요한 수칙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대충대충 해!’라거나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겄어?’라는 무심함과 대범함의 천국이 우리나라다. 집을 지을 때도 넣으라는 철근을 다 넣지 않고, 시멘트의 품질규격이나 분량을 지키지도 않는다. 업자들이 찔러주는 돈 봉투에 감독하는 놈들은 슬쩍 눈을 감아주곤 한다. 식당 하면서 식재료의 원산지 표시 원칙을 지키면 멍청이다. 앞 손님이 먹다 남긴 음식을 다른 손님에게 다시 제공하는 것은 애교. 식재료가 쉽게 상한다고 농약을 치는 인간들이 그들먹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남이야 먹고 죽든 말든, 차를 타고 가다가 바퀴가 빠져 죽든 말든, 곤히 잠자다가 집이 무너져 죽든 말든, 북괴군들이 쳐들어 올 때 포탄이 발사되지 않아 귀한 우리 장병들이 죽든 말든, 열차가 부딪쳐 수십 명의 귀한 사람들이 죽든 말든....내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장땡인 나라다.

 

***

 

Field Manual, 에프엠이란 야전 수칙이다. 야전에서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아군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절체절명의 원칙이 바로 에프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에프엠 대로 살면망한다. 미련하고 답답하다고 욕을 먹는다. ‘바쁜 세상 대충 살지. 뭔 일 났다고 원칙 지킨다나? 아니 지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다고 저렇게 규정을 지키며 답답하게 군디야?’ 온갖 욕이 쏟아진다. 그러니 에프엠을 지키려던 사람들도 슬그머니 반칙의 대열로 끼어든다. '망할 놈'의 관습이요, 분위기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욕먹는 사회를 생각해 봤는가툭하면 범칙자들에게 욕을 퍼붓기 좋아하는 우리들. 스스로의 행동들을 한 번 돌아보자. 하루 중 에프엠대로 법규대로 살아가는 순간이 몇 %나 되는지 살펴보자. 사건이 터지면 정부나 대통령만 욕한다. 자신들은 에프엠대로 법규대로 살아 왔는데, 대통령이나 정부 당국자가 무능하고 사악하여 사고가 났다는 투다. 온통 범법자들로 이루어진 이 땅의 야당 인사들은 한 술 더 뜨면서 대중을 선동하려까지 든다. 한심하다 못해 슬프도록 재미있는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미 만들어진 에프엠만 제대로 지켜도 국가 대 개조는 당장 이루어진다!!!

 

 

 


뒤집어진 채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네이버 사진]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1. 20. 14:53

 

 

우린 언제쯤이나 존경할만한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미국에서 알래스카 주 다음으로 크고 캘리포니아 주 다음으로 인구가 많으며, 내 느낌으론 미국 내에서 최고로 부유한 텍사스 주[State of Texas]의 달라스(Dallas)시에 와 있다. 1836년 멕시코로부터 텍사스 공화국으로 독립했다가 18451229, 미국의 28번째 주로 흡수된 텍사스 주. 이른바 '바이블벨트'로 불리는 이곳과 오클라호마 등 중남부의 여러 주는 전통적으로 높은 공화당 지지율을 보여주는 등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미국 입성 이래 서서히 쌓여온 피로에도 불구하고 달라스 행을 무리하게 시도한 것은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오클라호마 주와 인접한 텍사스를 생략하고 떠날 순 없다는, 일종의 의무감이나 초조감 때문이라 할까?

 

16일 오후에 도착하여 하루를 묵고 난 17일 오전. 도착 당일부터 오클라호마와는 현저하게 다른 교통체계와 북적대는 인파에 지친 우리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오클라호마의 스틸워터로 당장 돌아가고픈 마음이 절실했지만, 그 욕망을 잠시 억누른 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다.

 

한 사람은 매사추세츠 주 출신의 35대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529~ 19631122] 대통령, 다른 한 사람은 텍사스 출신의 43대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76~ ] 대통령이다. 케네디는 가톨릭 집안 출신의 민주당적 대통령, 부시는 개신교 집안 출신의 공화당적 대통령이었다.

 


시민이 그려 박물관 계단에 붙여놓은 케네디 대통령의 초상화 

 

하버드대 정치학과 출신인 케네디는 44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46세에 암살되었고, 예일대 역사학과 출신인 부시는 200155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첫 임기를 마치고 2005년에 재선된 뒤 200963세까지 임기를 마친 행복한 인물이다. 정치경력으로는 케네디가 매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을 지냈고,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를 두 번째 역임하고 있었으니, 이만 하면 똑같이 대권을 거머쥔 두 대통령이지만 상당히 다른 인생역정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취임연설을 하는 부시 대통령 

 

두 대통령의 가문이나 경력, 정치적 성향, 정책의 성패, 개인적 성격 등 자세한 사항들은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 글에서 번거롭게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묘하게도 우리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 50주년에 이곳을 찾게 되었다. 그 점을 깨달은 우리는 달라스라는 같은 공간에 자취를 남긴 두 대통령을 찾아보고자 했다. 존경하는 대통령을 한 사람도 갖지 못했다고 자탄하는 우리 입장에서 이 좋은 기회에 대통령을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방문한 곳이 이른바 ‘6층 박물관[The Sixth Floor Museum at Dealey Plaza]’.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가 창틀에 앉아 총을 쐈다는 교과서 보관창고 6층에 마련된 박물관인데, 사실은 일종의 사건 전말 영상 기록관인 셈이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이 이용한 교과서 보관건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음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는 교과서 보관건물[오렌지색 건물] 6층 창문틀에서 오스왈드는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이 사진 속의 아스팔트 위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다. 

 

19631122일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달라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케네디 대통령은 딜리 플라자(Dealey Plaza) 인근의  교과서 보관창고 6층에서 오스왈드가 쏜 3발의 총탄 가운데 두 번째 총탄을 머리에 맞고 숨졌다. 이 사건의 전말이나 상세한 재판 과정, 저격범 오스왈드를 둘러싼 의혹 등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에 크나큰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래서 그런지 사건의 발발에서 종말까지의 전 과정을 40여 장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박물관의 핵심 컨셉이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돌고나자 암살사건의 전모와 함께 왜 미국인들이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를 석연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외견상 허름하지만, 이 박물관은 매우 치밀하고 효율적으로 기획되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 박물관 위치 및 사이트                                                            

                   
                                                              케네디 대통령 박물관 입구
                                                                                     


달라스를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하는 시민들

 
                    어떤 시민이 그린 케네디 대통령

 
어느 초등학생이 표현한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애정

  

그 다음 방문한 곳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George W. Bush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남부 감리교 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캠퍼스 안의 부시 대통령 센터 안에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 부시와 어머니 바버라 여사 및 부인 로라 여사 등을 비롯한 화목한 가족들,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의 각종 자료, 대통령 시절에 이룩한 대내외 업적들, 백악관 생활자료 등등. 엄청난 규모의 자료들이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기념관을 그득 메우고 있었다. 대충 둘러보아도 대통령 스스로의 자부심이 묻어날 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나아가 세계인을 위해 미국 대통령이 걸어 온 영예의 흔적들이 역력했다. 정말로 이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전말이나 의혹, 기념관에 전시된 업적들의 화려함이 아니었다미국인들은 과연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걱정했던 대로 관람객이 많이 몰려 우리가 케네디 박물관에 입장하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고, 넓게 만들어진 부시대통령 박물관에서도 사람들의 어깨가 걸려 편안한 관람에 지장을 느낄 정도였다. 그 뿐 아니라 대부분 미국인들인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긍지에 찬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이 점들 만으로도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존경의 증거로는 충분했다.

 

케네디 박물관에서 만난 그들은 대부분 슬프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어폰에서 울려나오는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40대의 젊은 대통령이 단 2년 동안 이룩한 업적에 놀랐고, 그가 바로 이곳에서 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물론 숱한 여인들과의 염문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고, 쿠바 미사일 위기나 흑인 민권법 등에 관한 대처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진실이 밝혀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직은 비운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을 크게 손상시키지는 않고 있는 듯 했다. 대통령이 피격된 지점의 길바닥에는 지금도 x 표시가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내 눈에는 그것이 십자가[cross]로 보였는데, 어쩌면 미국은 폭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죄를 용서받고,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케네디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나 아닐까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복잡한 생각 없이 이곳에  x 표시를  해 놓았으리라. 차라리 그어놓지나 말든지 이왕 표시하려거든 말뚝을 박아 새끼줄이라도 쳐놓든지. 공사장 인부들이 아스팔트에 굴착지점 표시하듯이 백묵으로 찍찍 엇갈려 그어놓은 모습이란! 그러나 그것이 미국인들의 장점이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피격당한 지점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키 여사


케네디 대통령 추모비


추모비 안쪽의 상석

 부시 대통령 박물관에서는 역사 진행의 합리성에 맞추어 가고자 한 그의 노력들을 읽어냈고, 대통령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들로부터는 잔잔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부시 대통령 박물관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부분 자긍심과 존경심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흐뭇한 미소들을 띠고 있었고, 나 역시 그랬다. 물론 이라크 전쟁을 두고 부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정책의 실수 혹은 판단착오는 그것대로 계산하면서도 대통령으로서의 전체적인 공적이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는 일은 민주국민의 성숙한 자세일 수 있을 것이다. 

 


1994년 9월 12일 달라스의 Texas State Fair에서 아버지 부시와 함께.
부자 간의 다정한 모습과 미소가 국보급이지요?


세계적인 테러와 투쟁해온 부시 대통령


초등학교 교실에서 1일교사로 참여한 부시 대통령


어린이들의 건강 캠페인에 참여한 로라여사 모녀


2005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로라 여사가 어린이들과 함께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펼치는 부시 대통령


연례 100km 산악자전거 대회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에서 오른쪽 발을 잃은
다니엘[Daniel Gade]소령을 부축하고 있다.


 자궁경부암과 유방암 치료를 위한 부시 연구소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잠비아 Kabwe의 Ngungu Health Center 리노베이션 작업에 나선 부시 전 대통령.
왜 우리 대통령들에겐 이런 모습이 없는 걸까요?


2000년 12월 대통령 당선자 부시의 인사말 "나는 한 당파에 봉사하기 위해 대통령으로
뽑힌 게 아니고, 한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뽑힌 것이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모든 미국인들의, 
모든 인종들의,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대통령이다. 당신이 내게 표를 주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당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며, 당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할 것이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조지 W. 부시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 앞면

 

그렇다면 그들을 보며 나는 왜 슬픔을 느껴야 했는가. 같은 자신들의 대통령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간 두 사람에게 똑같은 존경을 보내는 미국인들을 보며 나는 왜 슬픔을 느껴야 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내겐 그들처럼 존경할만한 우리 대통령이 없기 때문이다. 일국의 대통령직을 맡아 수천만 생령(生靈)들의 기대와 소망(素望)을 한 몸에 받은 입장이라면, 더구나 자연수명으로도 이제 살만큼 산 입장이라면, 무슨 세속적 욕망을 다시 추구하고 싶단 말인가. 아주 낮은 자세로 봉사활동에라도 나서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받은 벅찬 사랑을 아주 겸허한 자세로 한 톨 한 톨 갚아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었으련만, 하나같이 가당찮은 물욕과 권력욕에 찌들어 재직 중엔 신성한 대통령직을 더럽히고 물러나서도 오욕(汚辱)의 구렁텅이에서 지금껏 헤매고 있단 말인가. 국민들에겐 실망을 안겨주고 역사에는 더러운 자취를 남기는 그들을 어떻게 존경스런 대통령으로 대접할 수 있단 말인가.

 

케네디 박물관의 매점에서 나는 한 권의 책을 샀다. 앤 보섬(Ann Bausum)<<Our Country’s Presidents>>란 책이었고, 이 책에는 조지 워싱턴부터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자랑스러운 얼굴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이나 되어야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이란 자긍심 넘치는 책을 쓸 수 있게 될 것인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5. 15. 01:21

, 윤창중!

 

                                                                                                                                                             백규

 

세상의 불의에 불끈거리며 서툰 언설(言說)들이나마 농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언사들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 이후로 얼마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특정인을 정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도 뜻하지 않게 누군가가 유탄에 희생되는 모습을 보면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행복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 스스로는 그것을 힘들게 얻은 지혜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간 얻은 알량한 지혜를 도로아미타불로 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이 땅의 평범한 한국인들, 그 가운데 나를 포함한 50대 후반의 남자들을 대신하여 장작불 위로 던져진 한 마리의 미련하고 가련한 희생양을 조상(弔喪)하지 않는다면,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부끄러움을 어떻게 삭여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불자(佛子)는 아니로되,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에 빠져 허우적대는 저 인간의 표정에 비쳐 보이는 내 어리석음의 진면목을 어찌 남의 일인 듯 뻔뻔하게 구경만 할 수 있단 말인가.

     ***

천하의 이목이 쏠려 있는 미국의 중심부에서 윤창중이 일을 저지르고 도망쳐 온 이래, 나라 전체가 벌집 쑤신 형국이다. 멀끔한 제제다사(濟濟多士)들은 대중매체들이 깔아놓은 멍석에 둘러 앉아 고담준론으로 성토하고, 인터넷에서는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몰려들어 몽둥이찜을 안기고 있다. 그의 등짝에 모진 매질을 하면서 흡사 우리는 그와 다른 범주의 인간들임을 주문(呪文)처럼 되 뇌이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미련하고 눈치 없이 굴다가 천하의 이목에 걸려 버린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요행히 그런 덫에 걸리지 않은 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일갈하신 예수의 꾸지람을 새삼 이 자리에서 들먹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윤창중이 무슨 달나라에서 온 외계인도 아닐 것이며, DNA나 대뇌에 특이한 돌연변이를 경험한 존재도 아닐 것이다. 그냥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인총(人叢)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자고나면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이 밥 먹듯 일어나는 이 나라의 허전하고 찌질한 50가 그 본색을 감추지 못한 결과일 따름이다. 지폐 몇 장 든 지갑을 흔들며, 생활비나 벌어보겠다고 나선 젊은 여인들을 희롱하는 우리네 룸살롱의 추태를 세계무대에 유감없이 보여준 이벤트에 불과하며, 나를 포함한 무수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참으로 자제력 없고 유치한 하등 인물하나가 남의 동네에 가서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폭거(暴擧)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샌다는 평범한 이치를 고지식하게 실천한 그의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고, 그런 평범함을 교묘하게 감추고 국가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그의 교활함이 가소로울 뿐이다.

     ***

성범죄의 법리나 그의 행위가 초래한 현실적 문제들은 귀가 아프게 들었으니, 새삼 거기에 부실한 내 말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죄를 저지르고 도망쳐 왔으면서도, 변명과 자기합리화로 모면해 보려는 궁한 모습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인터넷 속의 무진장한 지식과 혜안으로 무장한 5천만이 밤낮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이거늘,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공손추(公孫丑)가 맹자에게 지언(知言)’ ‘(남의) 말을 알아차리는 것의 뜻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치우친 말[피사(詖辭)]에 대해서는 그 가려진 바를 알아내고, 방탕한 말[음사(淫辭)]에 대해서는 함정이 되는 바를 알아내며, 사악한 말[사사(邪辭)]에 대해서는 괴리된 바를 알아내며, 숨기는 말[둔사(遁辭)]에 대해서는 그 궁한 바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지언(知言)’이라 했다. 윤창중은 미국에서 도망쳐 온 뒤 전 국민을 상대로 둔사를 농하며 궁지를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런 둔사를 농할수록 자꾸만 궁지로 빠져드는 초라하고 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국민이 지언(知言)의 지혜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을 그는 정말로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필부라 해도 지금이 살기를 도모할 때가 아님을 모를 수는 없다. 자신을 죽여도 모자랄 판에 궁한 둔사를 농하며 살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이 가증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를 보며, 비단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던 평원의 필부들로부터 기만 당해 온 지난 세월이 억울하게 생각되는 건 과연 나 혼자 뿐일까. 위압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우리들에게 군림하던 그 옛날의 고관대작들은 과연 윤창중보다 나은 존재들이었을까.

    ***

무엇보다 비판되어야 할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무사려(無思慮)함이다.  다시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내가 어찌 그가 재주가 모자란 지를 미리 알아 그런 자를 등용시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진 이를 등용함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해야 합니다. 장차 낮은 이로 하여금 높은 자리를 뛰어넘게 하거나 관계가 먼 자를 가까운 친척보다 앞세워야 할 경우가 있을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좌우가 모두 ‘(그가) 어집니다라고 평해도 그대로 해서는 안 되며, 여러 대부들이 모두 ‘(그가) 어집니다해도 아직 안 됩니다. 나라 사람 모두가 어집니다라고 한 연후에 이를 관찰하여 그 어짊을 드러나 보이게 한 뒤에야 그를 등용하는 것입니다. 또 좌우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가 모두 안 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 모두가 안 됩니다하고 나서야 이를 살펴 불가함이 드러난 뒤에야 그를 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좌우가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고, 여러 대부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해도 듣지 말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일만합니다라고 한 다음에야 이를 살펴보고, 가히 죽일만함이 드러난 뒤에야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 사람이 죽인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다음에라야 가히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대화다. 기원전 4세기의 맹자가 어떻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단 말인가. 윤창중에게 무거운 직을 부여하던 당시 주변의 사람들이나 대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안 된다고 했으며, 대부분의 국민들도 납득하지 못했으나,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런데, 그가 죽을죄를 진 지금과연 대통령은 아니 되옵니다라고 외치던 당시 국민들의 뜻을 얼마나 깨닫고 있을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7. 28. 15:00

 

                      

<민스크의 벨라루스 오페라 극장>

 

‘저녁이 있는 삶’

                                                                                                                                                          백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각다귀 떼 날아다니듯’ 지금 수많은 말들이 난무하는 것도 그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영혼이 지워진, 공허한 말들이 귓전을 때리고 사라지는 가운데, 얼마 전부터 우연히 내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한 마디가 있다.

   ‘저녁이 있는 삶’!

 알고 보니 통합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손학규 선생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가 드물게도 정치인들 가운데 내가 호감을 갖고 있던 인사라서 그랬을까. 그 말을 듣는 처음부터 무턱대고 콧방귀를 뀌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친 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정치권’. 바닥이 바닥인지라 처음엔 그저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갈수록 그 말이 내 마음에 일으킨 파문은 파도로 커져갔다. 그러다가 결국 가수 이태원이 세상 사람들에게 넌지시 타이르듯 불러주던 <솔개>의 삶을 동경해온 내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이 말은 참선 수행장(修行場)에서 고승이 질러대던 일종의 ‘할(喝)’*로 바뀌고 만 것이다.
최근 그의 말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을 사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현학적 허세가 만들어내는 ‘언어의 감옥’에 갇힐 것 아닌가. KS로 호칭되는 국내 최고의 중⋅고⋅대학을 거쳐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가끔 대중 스피치에서 그 점을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는 듯한 그의 모습에서 그가 책에 풀어 놓았을 현학의 덫을 예상할 수 있었다. 아수라장 대선 판에서 모처럼 쓸모 있는 말 한 마디를 건졌는데, ‘현학의 수사(修辭)’로 망칠 일이 있겠는가.  
   ***
 몇 년 전 러시아 생뜨 뻬쩨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입장료가 비싼 극장이었는데,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반반이었다. 저녁 무렵 정장차림으로 좌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인상적이었고, 장면 장면 ‘브라바!’를 외치는 그들이 신기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잘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으리라.  
 얼마 전 다녀 온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저녁시간에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컴컴한 시 외곽지역에 환하게 불을 밝힌 원통형의 그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더 놀란 것은 혹시 빈자리가 날까 기대하며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의 모습이었다. 무대 위의 공연에 몰두하던 어떤 할머니는 뒷좌석에서 소곤대던 여학생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입에 대며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참으로 품위 있어 부러운 그들의 ‘저녁 시간’이었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도시들은 ‘알 수 없는’ 저녁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았다. 6시쯤 되자 도시들의 다운타운은 약속이나 한 듯 텅 비어 버리는 것이었다. 텁텁한 고요와 노숙자들의 활보만이 그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저녁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지금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
 몇 번 늦은 밤에서 새벽까지 종로와 명동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다. 그곳에 생생한 ‘한국의 저녁’이 있었다. 불야성을 이룬 술집들, 해장국집들, 음침한 간판의 룸살롱들, 모텔들... 비틀거리는 취객들,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 한 복판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사람들, 빵빵거리는 승용차와 택시들이 뒤엉긴 채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낮 시간을 보냈을 그들이 무슨 힘으로 이렇게 ‘찬란한 저녁[혹은 밤] 시간’을 보내는지 같은 한국인인 나도 알 수 없는 광경이었다.
   ***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최근에서야 저녁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비뚤어진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결같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다정한 저녁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언론매체들의 보도를 접하고 나서였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연구실에서 불을 밝혀야 하는 것’이 교수직이라고 생각해오던 내게 일종의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아, 나는 출처불명의 그런 말 한 마디에 매여 지금까지 내 가족으로부터 ‘저녁시간’을 빼앗았구나! 나는 ‘나 혼자만의 저녁’을 위해 ‘우리 모두의 저녁’을 희생시켰구나!
 때늦은 후회였다. 아이들은 이미 다 커서 나름대로의 세계를 가꾸고 있고, 아내는 그런 나를 체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닭장을 벗어난 병아리들을 모이로 유인하여 불러들이듯, 새삼 그들을 우리 안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 올 수도 없는 현실. 미물로서 어찌 해볼 수 없는 게 위대한 시간의 작위(作爲)인데, 나는 지금 시간의 준엄한 일갈(一喝) 앞에 무슨 같잖은 저항이라도 해볼 심산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을지 모른다는 깨달음이 후회와 함께 밀려들었다. 그 구멍을 지금 와서 어떻게 메운단 말인가. 내 알량한 저서와 논문 한두 편이 역사와 사회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민족의 장래를 비춰주는 것도 아닌데, 좁좁한 연구실에 갇혀 젊은 날의 찬란한 저녁시간들을 불태우고 말았으니, 이 미련한 처사를 어떻게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
 손학규 선생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든 그렇지 않든, 아니 대통령으로 선출되든 그렇지 않든 ‘저녁이 있는 삶’은 지금껏 대한민국 국민들이 잊고 있던 소중한 삶의 지표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 표어를 국민들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정치를 펴야 할 것이다. 이 표어를 대선의 국면에서 벗어났다고 쓰레기통에 쳐 박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 후보들은 이 표어를 소중히 갖고 있다가 당선되는 순간 새 정부의 국정지표 맨 위쪽에 놓아야 할 것이다. <2012. 7. 28.>  


*불교 선종(禪宗)에서 고승이 참선하는 학승들이나 사람들을 지도하면서 질타하는 일종의 고함소리.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이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발하는 것. 즉 말⋅글⋅행동 대신 드러내는, 깨달은 자의 소리를 말함.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