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정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5.07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2. 2007.12.24 태안의 절망, 그리고 작은 희망 4
글 - 칼럼/단상2016. 5. 7. 04:53

 

 


황발이

 

 


화난 게

 

 


칠게

 

 


칠게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

 

 

 

충남 서해안의 한 한촌(寒村)이 내 고향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기름진 갯벌이 질펀하게 펼쳐진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작고 큰 게들의 천국이었다. 그럴 듯한 꽃게는 아니지만, ‘사시랭이능정이쇠발이황발이달랑게돌짱이등 작지만 먹음직한 게들이었다. 전라도와 경기도 해안 지역 사람들을 만나면 통하는 게 있다. ‘갯벌에서 나오는 해산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북도 서해안 지역을 특별히 동일한 게 섭식(攝食) 문화권이라고 부른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마파람은 습한 기운을 머금은 남풍이니,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게들은 몸의 염도를 유지해야 살 수 있다. 비에 소금기가 씻겨 내려가면 안 될 일. 그러니 갯벌 표면으로 올라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찾던 게들도 비가 온다는 남풍의 경고에 바짝 긴장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자신들의 집이래야 갯벌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이 고작인데, 그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곧추 세웠던 잠망경을 접어야 하리라. 그래서 마파람이 불면 게들은 치켜세웠던 자신들의 눈을 접고는 냉큼 집으로 몸들을 숨기는 것이다. 흔히 배고픈 사람이 허겁지겁 밥을 퍼먹는 모습이나 관리들이 나랏돈 집어삼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언가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집어삼키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낸 것이니, 우리 옛 어른들의 눈썰미가 이처럼 매서웠다.

 

도시 사람들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을 그럭저럭 들어서 알고는 있다. 그러나 시골 출신이든 도시 사람들이든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다는 말은 대부분 모른다. 속담사전들을 들춰봐도 없다. 그러나 내 고향에서는 흔히 통용되어 왔고, 특히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는 속담 대신 이 말을 자주 쓰셨다. 어머니를 비롯한 고향의 어른들은 게 잡이 선수들이셨다. 그럴 듯한 물고기를 잡을만한 곳도 아니었으니, 그나마 그런 게들을 잡아다 없는 반찬을 보충하셨을 것이다.

 

짜디짠 김치와 엄지손가락만한 게 여라믄 마리가 반찬의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릴 적엔 딱지와 발을 뗄 것도 없이 통째로 으드득씹어 먹으며, 속으로 참 맛도 더럽게 없다는 불평을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그 맛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얼마 전 동네 시장에 나갔다가 억지를 부려옛날의 그 게들과 비스름한 것들을 한 보시기 사온 적이 있다. 간장에 절였다가 끼니 때 식탁에 꺼내놓고 옛날처럼 으드득씹어 먹으니, 아내의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며칠 잘 먹다가 아내의 눈치가 심각하게 바뀌는 걸 보곤 냉큼 게에 대한 추억과 미련을 접고 말았다.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가 게로부터 온 말일까. 우리 고향 어른들은 게를 잡으며 게의 해부학적생리학적 구조를 잘도 파악하신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게를 가만히 관찰해본 적이 있다. 게들은 두 개의 큰 집게를 갖고 있다. 우리가 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싸움할 때 상대방에게 주먹질을 하듯이 그들은 집게로 물건을 잡거나 적을 물기도 한다. 나머지 발들은 이동할 때 사용한다. 잘 아시다시피 게들이 드넓은 갯벌에 올라와 식사를 하거나 해바라기를 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해바라기 할 때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늘 부지런히 꼼지락거린다. 어릴 적에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갯벌에서 무언가를 집게로 집어 올려’ (육안으로는 잘 구분되지 않는작은 입으로 나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들만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갯벌에 살고 있는 플랑크톤이나 물고기의 사체 등으로부터 분리된 유기물들을 집어먹고 있었으리라.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그걸 보면서 나는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저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집게로 잡아 어느 세월에 그 큰 배를 채운단 말인가. 차라리 (게의) 딱지를 까고 갯벌에 널린 먹이를 집어넣으면 순식간에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아닌가. 당시 나는 게들을 보며 늘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 저 굶주린 게들은 현미경으로 보아야 겨우 보일만한 유기물들을 하루 종일, 아니 일생동안 집게로 들어 올려 입으로 운반하며 생명을 유지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바로 내 마음을 미리 알아채신 것처럼 딱지를 까고 잘도 먹는구나!’라는 속담을 만들어 쓰고 계셨던 것이다.  

 

***

 

매스미디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의 부정과 부패 소식을 토해낸다. 눈 먼 돈이 널려 있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겠는가. 나랏돈이 내 돈이요, 회사 금고 안의 돈도 내 것인데, 안 먹으면 멍청이란 말일까. 갯벌에 널린 눈 먼 유기물들은 온통 게들의 먹이다. 그러나 게들은 욕심 내지 않고 그 둔탁한 집게로 한 알 한 알 조심스레 들어 올려 먹을 뿐이다. ‘딱지를 까고먹으면 순식간에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들은 딱지를 까고먹지는 않는다. ‘딱지를 까고 먹는 행위가 죽음임을 알기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으레 눈 먼 돈을 보면 딱지를 까고덤벼든다. 그러다가 걸려서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은 게만도 못한존재임이 분명하다. 다함없는 헛된 욕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제 공직자들이나 기업가들은 (딱지 깐) 게 사진을 집무실에 걸어놓고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아침저녁으로 경배(敬拜)할 일이다.

 

저는 오늘도 딱지를 까고 먹지 않겠습니다!”(출근 시의 구호)

저는 오늘도 (다행히) 딱지를 까고 먹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게님!”(퇴근 시의 구호)

 

 


꽃게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게들의 천국(신안군 증도)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 12. 24. 09:02
무지갯빛 기름띠 두른 바닷물이 바락바락 밀려드는 신두리 갯벌.
오늘도 그곳엔 검게 착색된 돌들을 닦고 훔쳐내는 손길들이 분주합니다. 이마에 솟는 땀방울마냥 표면에 기름방울 송글송글 달고 있는 돌들이 안타깝습니다. 흡사 식은땀 흘리며 병상에 누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라 할까요? 지금껏 고향 바닷가의 돌들을 이렇게 조심조심 어루만지며 그들의 몸을 소중하게 닦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지금껏 바닷물은, 바닷가 모래사장과 돌들은, 드넓은 갯벌은, 그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소품으로만 여겨왔습니다. 몹쓸 것들을 함부로 버려도 금세 정화시켜 우리에게 뛰어난 아름다움과 맛으로 되돌려 주는 ‘무한 희생의 어머니’로만 여겨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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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태안의 바다(최경자 촬영)


함부로 집어 던지고, 깨고, 침 뱉고, 툭하면 찾아와 욕설을 퍼부어도 그 바닷가의 돌들은 말 없는 고요함으로 우리를 맞아준 ‘묵언(黙言)의 성자’였음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식놈들 얼굴 닦아주는 일도 귀찮아하던 제가 바닷가의 돌들을 정성스레 닦아 주면서 터져 오르는 회한의 오열을 삼키고 또 삼킨 것도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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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에 절은, 자원봉사자의 고무장갑


울컥 치밀어 오르게 하는 기름 냄새와 끊임없이 들려오는 물소리. 그것들을 빼면 그곳엔 살아있는 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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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면 늘 그곳엔 새까맣게 몰려나와 해바라기를 즐기던 능정이, 쇠발이, 황발이, 송장망둥이 등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저 멀리서 다가서는 시늉만 해도 그들은 잽싸게 저들의 구멍으로 몸을 숨기곤 했지요. 그러나 기름 벼락을 맞은 이후 그곳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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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업보(최경자 촬영)

 아마 모두들 제 집 속에서 죽어있을 겁니다. 제 어린 시절의 삶터이자 놀이터였던 그 바닷가는 그렇게 숨을 놓아버리는 중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 바닷가 모랫벌에서 달랑게와 경주를 하며 몸과 마음을 키워왔습니다. 그런데 그들 역시 깡그리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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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아시는 분은 ‘저 촌놈이 또 고향타령을 시작했구나!’ 하시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오일펜스를 쳐도, 아무리 흡착포를 갖다 붙여도 물길이 이어져 있는 한, 네 바다와 내 바다의 경계는 없습니다. 기름 덩어리는 거침없는 해류를 타고 남으로 북으로 동으로 서로 마구 번져가, 결국은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 황폐화 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터에 ‘독약’을 쏟아 붓고도, 달랑 흡착포 한 장 들고 걸레질이나 하라고 하는 우리의 ‘대책 없는 원시성’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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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인간(최경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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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절은 자갈밭을 걸레질하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자연은 선택이 아닌 삶의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너무나도 자명한 진리를, 아니 상식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저만의 깨달음은 아닐 겁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기에 이미 다녀간 자원 봉사자들이 또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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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힘이다(최경자 촬영)


물론 한 뼘씩 걸레질을 해본들 우리가 바다에 가한 폭력의 상흔을 다 씻어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기름이 절어있는 바다엔 절망만 그득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소중한 자식들의 낯을 닦아주듯 바다와 자연을 소중히 다루는 마음만 갖게 된다면, 머지않아 바다는 다시 숨을 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자연과 환경이 우선이라는 인식만 갖게 된다면, 앞으론 많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오늘 걸레질을 하던 중 바위틈에서 살곰살곰 움직이는 아가 능정이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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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능정이

분명 그건 희망이었습니다. 비록 그의 체구는 몹시 연약했지만, 조만간 그는 숨 쉴 만한 갯벌의 공간을 찾아낼 것입니다. 저는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믿기로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죽어가는 태안의 바다가 여러분의 아낌없는 응원과 기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07. 12. 23.

백규 드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