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1. 14. 16:07

 

 

 

어제 오늘, ‘차마 보지 못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33세의 보육교사가 우악스런 손으로 네 살짜리 여자아기의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는 광경. TV는 나를 고문하듯 그 잔인한 광경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이제 11개월 된 내 손녀, 겨우 엄마 아빠소리를 되 뇌이며 세상을 익혀가는 내 손녀의 얼굴이 그 아이에게 오버랩 되며 마음 속에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TV 화면을 시커멓게 꽉 채운 그 '악녀'의 뒷모습을 향해 무언가 집어던지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하는 수없이 TV를 끄고 말았다. 그 아기가 김치를 남겼다든가? 도대체 김치가 뭐 길래?

 

맹자가 말씀하시길 인간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써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편다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서 다스릴 수 있다. 사람마다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떤 어린아이가 곧 우물로 빠져드는 모습을 갑자기 발견하게 되었다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안으로 그 어린아이 부모와 사귀고자 해서 그런 게 아니오, 마을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해서도 아니며, 구해내지 않았다는 오명(汚名)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요.()

 

<<맹자>>공손추 장구()에 나오는 인성론(人性論)이다. 어린 아이가 아장아장 샘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그냥 구경만 하고 있거나 옳지 잘한다!’고 손뼉 치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날강도라 해도 달려가 아이를 잡아 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측은지심을 갖추지 못했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맹자의 말씀이다.

 

맹자의 말씀에 비춘다면, 그 어린이집의 악녀는 교사는 고사하고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다. 인간의 탈을 썼으되 인간이 아닌 존재. 단맛 나는 먹을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대부분의 네 살 짜리 어린아이라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여 김치를 먹여야겠다면, 우선 김치의 상태와 어린아이의 마음부터 살폈어야 한다. ‘왜 이 아이는 김치를 싫어할까? 혹시 김치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이 아이에게 조금씩이라도 김치를 먹게 하려면 무슨 방법을 써야 할까?’ 등등. 교사라면 그런 것들부터 생각했어야 한다. 천사 같은 네 살 짜리 어린아이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들이야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녀도 그런 것들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찮았겠지. 내 아이도 아닌데. 우선 무엇 때문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생각부터 했을 것이고, 그 순간 불행하게도 그 어린아이가 희생물로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 손찌검은 자식에게, 제자에게, 더더욱 네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달려드는 적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내지르는 최후의 일격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일이 어찌 이 어린이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이 교사만의 일이겠는가. 문밖에만 나서면 강변의 모래알처럼 박혀 있는 어린이집들을 무슨 재주로 다 감시할 수 있단 말인가. 칭얼대는 아이를 간신히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하루 종일 직장에 갇혀 일에 시달리면서도 아이 걱정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을 이 땅의 젊은 부모들. 잠시라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단 말인가. 인구 줄어드는 것만 걱정할 뿐, 최소한의 보육 대책조차 세워주지 않는 이 나라의 원시성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여성 대통령을 뽑아 놓아도 이런 원시적인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아이를 낳고 키워 본 경험이 없어서인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중등 교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악마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 바야흐로 전 국민적인 '퇴마의식(退魔儀式)'이라도 한 판 벌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17. 05:34

 오늘의 점심과 불고기 오아시스

 

 

점심시간 전에 나를 만나러 온 학생 룩(Lucas Mccamon)은 이 대학 최대 행사인 홈커밍의 최고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홈커밍 행사의 하나인 카니발’ 때문에 어제 밤 한잠 못 잤다는 그가 딱해 점심을 사주려 했으나, 강의가 있다면서 그냥 내빼는 바람에 혼자서 연구실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가봐야 별 수 있을까만, 그래도 한 술 떠야지!’ 시큰둥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연구실을 나섰다.

 


OSU Homecoming 준비위원장인 역사학과 3학년 Lucas Mccamon군 

 

교정을 가로질러 가다가 쎄타(Theta) 연못[*나는 이 연못을 에덴(Eden) 연못으로 부르고 있다]가에서 점심 먹으러 나온 기러기들과 오리들, 청설모 부부를 만났다. 그런데 눈에 번쩍 뜨이는 광경은 어미 오리와 새끼[병아리]들이 나란히 혹은 충무공이 왜군들을 무찌를 때 사용했다던 학익진(鶴翼陣) 형태로 대형을 바꾸어 가며 열심히 배들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관찰하니 어미가 저 혼자 먹는 일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가끔씩 이쪽저쪽 참견하며 아이들에게 모이 줍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듯 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우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매일반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그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내가 에덴의 연못[Eden's Pond]으로 고쳐 부르고 있는 'Theta Pond'


대견한 듯 바라보는 어미오리의 표정이 느껴지시나요?


어미오리의 걱정스런 눈빛이 보이시나요?


마누라가 어디 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뭔가를 주워먹고 있는 청설모 

 

누가 뭐라 해도 에덴 연못에 둥지를 틀고 사는 이 친구들이야말로 천적 걱정 없이 풀밭에 널린 게 먹이일 것이니 행복한 존재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양이 넉넉지 않은지 늘 풀 속에 부리를 박고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모습들이 약간 안쓰러운 건 사실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연못에서 살고 있는 기러기와 오리들은 기가 막히게 나와 생체리듬이 일치하는 녀석들이라는 점이다. 내가 시장기를 느껴 창밖을 내다보면 으레 이들은 물 밖으로 몰려나와 오찬을 즐기고, 한참 있다가 다시 배가 고파 집에 가려고 연구실 문을 나서면 이들 역시 다시 내 눈길 안으로 들어와 만찬을 즐기곤 한다. 그 나머지 시간들은 물 위에서 몰려다니며 저희들끼리 장난질을 치거나 사색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식사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오리들


식사를 끝내고 깨끗한 물을 마시러 모여든 기러기들 

 

이 친구들로부터 간신히 벗어나 식당의 한 코너로 들어가니 코에 익은 육향(肉香)이 풍겨 나온다. 좀 더 다가가니 벽에 선명한 태극기와 함께 이 주일의 특선 음식: 한국이란 팻말이 걸려 있고, 곁에 만두와 쇠고기 불고기[Beef Bulgogi] 사진이 붙어 있는 것 아닌가. 사라졌던 식욕이 서서히 살아났고, 망설임 없이 배식대로 가서 스팀드 라이스김치소불고기를 얹도록 했다. 대부분 인도계 미국인들인 쿡들에게 한국음식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으니 바로 옆의 미국인을 가리켰다. 옆에서 이 한국음식을 누가 만들었냐?’는 내 말을 들었는지 그가 갑자기 주눅 든 표정을 짓는다. 짐작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내가 혹시 추궁하려고 자기를 찾는 줄 알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음식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우물쭈물 얼버무리고 만다. 내가 다시 한국음식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하니 그제야 표정이 환해지면서 자기도 고맙다면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준다. 먹어보니 간도 맞고 달콤하며 은근한 것이 제법 흉내를 잘 낸 불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마른 나그네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모처럼 밥알 하나 안 남긴 채 점심을 먹었다.


 


식당의 한 코너


이 식당 벽에 내 걸린 전광판 광고

 
한국요리를 만들었다는 요리사 브라이언(Brian Kreigh)씨


간단하지만 맛있었던 불고기와 김치, 그리고 밥 

 

돌아오는 길에 일부는 망울지고 일부는 피어나기 시작한 국화꽃들을 만났다. 국화꽃들의 자태를 한 눈 가득 머금고 문득 고개를 드니 화단 사이로 건물들 사이로 가을이 일렁일렁 차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만 욕하며 쫓기듯 오고 가는 사이에 시간들은 이렇게 흘러가 버린 것이었다. 꽃밭을 지나 에덴 연못으로 오니 그 사이에 벌써 기러기들과 오리들은 점심 식사를 끝냈는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사색에 잠긴 모습들이다. 내가 그들을 따라 하는지, 그들이 나를 따라 하는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호접몽(胡蝶夢)을 꾸던 장자(莊子)마냥 내가 오리인지, 오리가 나인지구분할 수 없는 경지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식당가가 들어 있는 Student Union 건물


Student Union 앞에서 만난 국화꽃들 

 

큰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투덜거리다가 우연히 보니, 내 곁엔 사막 같은 정체불명의 음식들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불고기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정확하고 사색적인 기러기와 오리들도 있었으며, 시간의 덧없음을 깨쳐 주는 국화꽃도 있었다.

 

개 같은 날의 오후가 아니라 무언가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싱싱한 오후.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