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1. 11. 22. 12:03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전국학술발표대회

 

“1990년대 이후 패러다임과 문학 지형의 변화”

 

 

일시 : 2011년 12월 02일 (금), 10시 30분 ~ 18시 00분

장소 : 숭실대학교 정보과학관 102호

주최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모시는 글

 

 

한 해를 보내며

타작마당의

마지막 낟가리를

털어 들일 때가 되었군요.

 

지난 세기 말에 바뀐

의식의 패러다임은

제대로 지속되고 있는 걸까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 문학정신의 현주소를

짚어 보려 하오니

부디 오셔서

함께하여 주소서.

 

 

신묘년 만추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드림

 

 

 

 

 

 

 

순서

 

 

1부 사회: 허명숙(숭실대)

인사: 조규익 한국문예연구소장 10시 30분 ~ 10시 35분

축사: 김대근 숭실대 총장 10시 35분 ~ 10시 40분

 

1. 발표: 극현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환상-임철우 소설을 중심으로

이경재(숭실대) - 토론: 허병식(동국대) 10시 40분 ~ 11시 20분

2. 발표: 1990년대 이후 한국 연극의 변화 및 전개 양상

백로라(숭실대) - 토론: 이승희(고려대) 11시 20분 ~ 12시 00분

 

점심 12시 00분 ~ 13시 30분

 

3. 발표: 90년대 문학과 윤대녕 소설의 미학

백지혜(서울대) - 토론: 정여울(서울대) 13시 30분 ~ 14시 10분

4. 발표: 감각의 재발견

이재복(한양대) - 토론: 엄경희(숭실대) 14시 10분 ~ 14시 50분

 

휴식 14시 50분 ~ 15시 00분(떡 나누기)

 

2부 사회: 김인섭(숭실대)

 

5. 발표: 멜랑콜리 시학

류 신(중앙대) - 토론: 이성희(서울대) 15시 00분 ~ 15시 40분

6. 발표: 그로테스크와 파국의 상상력

이해운(숭실대) - 토론: 이기성(이화여대) 15시 40분 ~ 16시 20분

7. 발표: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편혜영 론

서영인(경북대) - 토론: 김명훈(서울대) 16시 20분 ~ 17시 00분

 

종합토론 - 좌장: 이은봉(광주대) 17시 00분 ~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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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1. 5. 18. 14:40
제1회 인문학 진흥 학술대회

   

     “인문학, 인문학 교육, 행복한 대학”

 

 

일시 : 2011. 6. 2. 13:00~17:00
장소 : 숭실대학교 베어드홀 5층 대회의실 
주최 :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협조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모시는 말씀

험한 말들과
검은 비아냥이
지성의 탈을 쓰고 난무하는
암흑과 위선의 시대

‘인문학이 죽었다!’고 외치던
광야의 선지자들을 조상(弔喪)하며,
‘마농의 샘’!
그 물길을 사랑으로 터놓고
함께 살아갈 지혜를 퍼올리려 합니다.

석학들의 담론으로 차려진
풍성한 잔치, 그 상석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신묘년 5월 20일
인문대 학장 조규익 드림




순서

 

                                                              사회 : 오충연(숭실대 교수)

 

 

개회사 : 사회자  13:00~13:05

인 사 :  조규익 학장  13:05~13:10

축 사 :  김대근 총장 13:10~13:20

 

기조발표

손동현(성균관대 교수) 13:20~13:50 21세기 대학 인문학 교육의 현실과 대안



개별발표 


김선욱(숭실대 교수) 13:50~14:20 : 인문학 교육과 소통

     토론 허명숙(숭실대 교수) 14:20~14:30
 

박경하(중앙대 교수) 14:30~15:00 : 인문학의 현실과 ‘인문학 위기’ 담론

     토론  김회권(숭실대 교수) 15:00~15:10

 

양해림(충남대 교수) 15:10~15:40 : 인문학과 디지털 미디어의 융합, 그 허와 실

     토론  임영환(숭실대 교수) 15:40~15:50


이재홍(서강대 게임교육원 교수) 15:50~16:20 : Game Storytelling과 인문학 교육의 한 방향

     토론  김인섭(숭실대 교수) 16:20~16:30

 

 

휴 식 16:30~16:40

 

김문겸(숭실대 교수) 16:40~17:10 : 경영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학문적 패러다임의 수립 방안

     토론  이시준(숭실대 교수) 17:10~17:20

 

전선자(성균관대 강사) 17:20~17:50 : 문화예술교육과 인문학적 바탕

     토론  엄경희(숭실대 교수) 17:50~18:00 

 

 

   종합토론 18:00~18:50

 

저녁식사 및 정담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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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0. 3. 29. 15:55

모시는 말씀

봄볕에 터지는 꽃망울마냥
겨우내 얼어있던 우리의 마음도
세상을 향해 열리고 있네요.

이 봄에 우리는
어두운 시절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던
빼어난 감성과 만나고자 합니다.

황지우 시인을 모시고
인문학과 시혼(詩魂)의 자취를
더듬어 보려 하오니,
부디 오시어 자리를 빛내 주소서.

경인년 새봄

인문대 학장   조규익 드림

     다음

1. 일시 : 2010. 4. 9.(금요일) 오후 3시부터
2. 장소 : 한경직기념관 김덕윤 예배실
3. 연사 : 황지우 시인(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4. 연제 : 인문학은 창의성의 회전축이다!

  프로그램
                                               사회 : 김인섭(문예창작학과 교수)

15:00  개회사
15:05   인사-인문대 학장
15:10   강연-황지우 시인


201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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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8. 10. 10. 21:10
<모시는 말씀>

111년 세월 흘러 내린
시간의 여울에 갈고 닦여
별처럼 빛나는
숭실의 감성을 응시합니다.

이 가을
낙엽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숭실 문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담론하는 자리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2008. 10. 10.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 주제 : 숭실 문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일시 : 2008년 10월 24일(금), 오후 2시~5시
* 장소 : 숭실대학교 벤처관 311호

<순 서>

■ 제1부          사회 : 이금란(한국문예연구소 자료조사팀장)
  2:00~2:20                 
  개회사  조규익(한국문예연구소장)
  축  사  이효계(숭실대학교 총장)

■ 제2부                    사회 : 김인섭(숭실대 문창과 교수)
  2:20~5:00  숭실 문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숭실의 시인들, 시적 특질과 그 의미
<발표1> 2:20~2:50 
    발표: 강경희(숭실대 강사)/ 토론: 이은봉(광주대 문창과 교수)
<발표2> 2:50~3:20 
    발표: 우대식(시인)/  토론: 엄경희(숭실대 국문과 교수)
<휴 식> 3:20~3:30 
□ 숭실의 소설가들, 소설적 특질과 그 의미
<발표3> 3:30~4:00 
  발표: 방민화․허명숙(숭실대 강사)/토론: 조성기(숭실대 문창과 교수)
<발표4> 4:00~4:30 
  발표: 이금란 ․ 차봉준(숭실대 강사)/ 토론: 김미진(소설가)
□ 4:30~5:00         
  숭실문학의 미래(종합토론)    좌장 : 강형철(숭의대 문창과 교수)
  윤지강, 김이정, 양영아, 장혜련, 김태용, 조현, 정우영,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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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소식2008. 10. 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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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예연구소에서는 학술논문집 『한국문학과 예술』2집을 펴냈다.

1년에 두 번(3월말, 9월말) 펴내는 논문집의 이번 호는 ‘조선조 사행록 특집호’로 제작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글들이 실려 있다.

<논문>

조선조 사행록 텍스트의 본질---조규익(숭실대 교수)

조선조 전반기 대명 사대정책의 사상내인(內因)의 분석---이암(북경 중앙민족대 교

수)

조선조 후기 북학파 문인들의 연행과 한중문인들의 정신적 교유---김병민(연변대

총장)

열린 텍스트로서의 연행록 읽기---김문식(단국대 교수)

외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조선 통신사, 그 기록의 허와 실---손승철(강원대 교수)

기록문학으로서의 조선통신사 사행록의 동아시아적 보편성---나카오 히로시(교토

조형예술대학 명예교수)

18세기 말 동서 지성의 해외체험, 성찰의 방향과 그 의미---이혜순(이화여대 명예

교수)

 

<자료소개>

『조천록일운항해일기(朝天錄一云航海日記』

해제--조규익

자료영인

 

<서평>

시조문학, 이념과 풍류의 연관성-전재강의 『시조문학의 이념과 풍류』: 류해춘(성

결대 교수)

재미있고 쉽게 풀어쓴 이야기 한국음악사-송혜진의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

: 문숙희(한국문예연구소 연구교수)

허위적 세계를 전복시키는 비범한 정신-류종영의 『웃음의 미학』: 엄경희(숭실대

교수)

은밀한 꿈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의 시학-엄경희의 『숨은 꿈』: 김인섭(숭실대 교

수)

문학 모티프와 테마를 찾아서-이재선의 『현대소설의 서사주제학』: 김은정(성신여

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일제말 문인들의 만주인식에 대한 사적 고증의 한 걸음-민족문학연구소의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체험』: 차봉준(숭실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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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학술문2007. 4. 29. 17:55
 

 
시집 『디지털 사계』를 받아 들고


김인섭 교수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오늘 저는 정년은퇴를 기념하여 시집을 간행하시는 이재관교수님의 퇴임예배에 귀중한 순서를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까마득한 사람이 이 엄숙하고 뜻 깊은 자리에 서기까지 망설임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정갈한 언어로 담아 시집으로 발간하시는 교수님을 뵈면서 축하드리는 일에 사양만 하는 것은 시 전공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집이 발간되자마자 건네주신 시집을 받아 읽고 저는 기존 시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을 받았고, 교수님의 시적 경지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런 감동과 경탄의 마음을 여러분 앞에서 말씀 드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남다르게 얻게 되어 오히려 감사드리고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 뒤에 수록되어 있는 교수님의 경력과 논저목록만으로도 학자로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가히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죄송스럽게도 이 분야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시집 속의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한 시인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온 마음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의 치열한 시가 도달하고자 했던 정신의 세계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시집을 내는 일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특히 한 평생 학문에 매진한 분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문학입니다. 문학에는 시 외에도 소설과 희곡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장르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할 때 흔히 희곡은 ‘놀이’, 소설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시는 ‘노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 일과를 도식적으로 나누어 보면, 낮에는 세상 속에서 실제의 삶을 살아갑니다. 무대 위에서 놀이를 하는 희곡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낮 동안의 행동으로는 다하지 못했던 삶들을 찻집이나 술집에서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이야기로도 못다 푼 마음 속 깊은 감정은 나중에 노래방에 가서라도 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시는 이야기 끝에 풀어내는 노래와도 같은 것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이고 쌓였던,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내비치지 않는 깊은 생각, 그윽한 감정을 은밀하게 표현하는 문학입니다.


또한, 시는 언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예술입니다. 언어를 가장 정교하게 갈고 다듬는 과정이 요구되는 예술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정신적 삶에서 공기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의 언어는 이미 탁해질 대로 탁해졌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언어를 다듬는 일은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우리의 타고난 좋은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번잡한 세계에서 조용히 물러나 이 세계를 고독하게 깊이 음미하는 자들의 과업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시집을 받아 든다는 것은 이같은 고귀한 작업이 빚어낸 작품들을 접하는 그야말로 정밀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입니다. 시집을 받아든 우리는 교수님을 직장의 동료나 선배, 일상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시인의 영혼과 교감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다가 이 분이 한 평생 시를 쓰셨더라면 우리 문단에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금방 하게 되었습니다. 시 세계가 남다르고, 시적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에 들어 있는 시 몇 편을 잠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시집 50쪽에 실려 있는 <새>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이 시는 전체 다섯 연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마지막 연은 놀라운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새’는 그 자유로운 비상 때문에 시인들이 즐겨 표현하는 시적 소재입니다. 그래서 예사 표현으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위험한 시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새’를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집(詩集)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고독을 표상하는 이미지로써 ‘까마귀’라는 새를 즐겨 상징화한 적이 있습니다. 김현승 시인도 이 까마귀를 두고서 ‘영혼의 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시의 새는 영혼의 날개로 우주와 입 맞춘다고 하여 김현승시의 비유보다 매우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시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시적인 관습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작고하신 오규원 시인이 <한 잎의 여자>라는 시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서 ‘시집같은 여자’라고 비유한 적이 있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시집’이라는 말을 시의 비유로 표현했던 유일한 경우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유의 구체성이나 파격성에서 기성 시인에게서도 흔히 느낄 수 없는 참신한 표현을 보여주었고, 그 때문에 시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함축적이고도 탁월한 표현에서 교수님의 시인으로서의 태도와, 시에서 추구하고 있는 시정신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현승의 경우처럼 이 시인에게 있어서도 ‘새’는 영혼으로 표상되면서 시인에게 있어서는 시적인 분신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은 지상의 온갖 굴레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의 신적인 세계와 교감하고자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혼입니다. 그런데, 더욱 아름다운 대목은, 이러한 새는 다름 아닌 ‘시집’ 자체라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교수님께서 쓰신 모든 시들은 영혼의 새가 비상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상의 척박한 삶을 벗어나 신성한 우주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고뇌와 희열이 담긴 언어의 파노라마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는 동안 찬송가 394장 <주를 앙모하는 자>라는 찬송의 리듬을 마음 속으로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 주 앙모 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라는 노래 말입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영혼이 강건한 인간의 힘찬 상상력을 접하였고 속된 세계를 일거에 승화시키는 신성한 전율에 휩싸이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만약 김현승 시인의 시표현처럼, 하나님께서 더욱 값진 것으로 바치라 하실 때, 이 시인이 신에게 드릴, 가장 나중까지 지니고 있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을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아름다운 시집이 아니겠습니까?


조규익 교수님께서 시집 말미에 교수님의 시세계에 대해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해설을 덧붙여주셨습니다. 적절한 안내를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교수님의 시정신의 근저에는 언제나 절대자에 대한 구도자적인 겸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시집 84쪽에 있는 <엄동설한>이라는 시를 그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첫 연만 읽어보면


       닫힌 그대의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위엄 있게 빛나,

       다가서는 내 모습만

       말없이 반사하는 거울입니다.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겸허한 자들입니다. 이 시에서도 그러한 시인의 본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기서 ‘그대’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창’은 빙벽처럼 날마다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인에게 단절감을 주는 부정적인 게 아니라, 위엄 있게 빛나는 존재입니다. 나아가 그 존재는 시인을 되비추어 스스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시의 3연에서 보는 것처럼 스스로 잠재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그대의 세계로 성급하게 나아가고자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는 그분 앞에서 눈도 뜨지 못하는 미미한 존재라는 겸허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부분의 두 연에서는 “낮엔 반사되는 햇빛에 / 눈을 뜨지 못하고 / 밤이면 / 가랑잎 구르는 소리조차 / 과분한 낭만”이라거나,  “거울마다 갉아 지워지는 / 내 반쪽 모습이 / 엄동의 고요를 / 초침처럼 구릅니다.”라는 표현을 접하게 됩니다. 위엄 있게 빛나는 절대자와 지상의 어둠 속에 쇠락해 가며 뒹구는 인간존재 사이의 뛰어넘을 수 없는 엄정한 질서를 시인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깊은 신앙은 이같은 겸허한 자세에 굳은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예로 든 이 작품 외에도 이 시집에는 신앙적인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실려 있습니다. 신앙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상력의 근저에 신앙심이 작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집의 미덕은, 종교적인 신앙과 문학 예술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팽팽한 긴장을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이 신성성과 심미성이 잘 어우어진 품격 높은 정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시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님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연어의 회귀>를 들고 싶습니다. 시집 46쪽에 실려 있는 작품 전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담수에 비해 바다는                      그러나 떠남이 운명이었다면

 짜고 험하고 거칠었지만                 회귀(回歸)는 더 끈질긴 본능.

 내게 광활한 자유와 풍요와

 환상을 주었다.                            잉태와 부활을 위한

                                                변치 않는 DNA 안테나가

 어려서 떠날 때에는                       내게도 있었다.

 스틸헤드 치어처럼

 머뭇거렸으나                              돌아갈 고향은

 금방 대양에 익숙해지고                 좁고 가파르고 위험한 시내

                                                아무 교통표지판도 없는 계곡.

 생의 희로애락을

 바닷물에 듬뿍 적셔                       그래도 회귀는

 돌아올 날이 있는 줄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까맣게 몰랐다.                            더 크게 거칠게 다가오는

                                                전율의 은총이었다.


저는 이 작품을 이 시집 전체의 에필로그로 읽고 싶습니다. 에필로그의 시라면, 시집 전체는 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좋아 오랫동안 감상해보고 싶습니다만,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정말 좋은 시는 설명 필요 없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입니다. 이 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읽은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3연과 5연, 그리고 7연에서 시 속으로 한 동안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3연에서 ‘까맣게 몰랐다.’는 이 평범한 말 한 마디가 저에게는 깊이 울려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혹은 인간 사이에서 정말 ‘까맣게’ 모를 일은 흔치 않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는’ 경우는 빈번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까맣게 몰랐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제야 어떤 근본적인 각성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성을 얻게 된 계기는 누가 마련해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은총’을 베푸시는 분의 지극한 사랑의 섭리 아니겠는가 합니다.


5연에서 말하는 “변치 않는 DNA 안테나”는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테나는 누군가와 수신하고 송신하는 장치입니다. 그렇다면 DNA 안테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입김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맺은 신과 인간의 생명적인 관계를 계속 교신해가는 안테나이며, 그것은 영적인 안테나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지상으로 잉태해 내려와 부활 승천한 예수의 위대한 삶을 이끌었던, 그의 아버지와 연결된 안테나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 안테나가 나에게도 있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고 감사하며 은총을 예감합니다.


마지막 연에서 회귀는 안테나의 저쪽에 계신 분에게서 비롯된 은총이며, 그 은총은 바다보다 더 자유롭고 더 크게 거칠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초월적인 전율에 휩싸입니다. 이와 비슷한 경지를 박목월 시인은 그의 말년의 신앙시 <크고 부드러운 손>이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크고 부드러운 손이 / 내게로 뻗쳐 온다. / 다섯 손가락을 / 활짝 펴고 / 그득한 바다가 / 내게로 밀려온다. / 인간의 종말이 /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 나는 미처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돌아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그 벅찬 은총을 실감하는 두 시인의 상상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보편적인 감동과 고백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저는 이 시를 앞으로 저의 ‘기독교문학’ 수업시간에 좋은 작품의 사례로써 학생들에게 소개할 생각입니다. 시심과 신앙심이 어우러져 이처럼 성스럽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시집 <디지털 사계>을 읽고, 엄정한 신앙인이자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탁월한 시인 한 분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렇게 귀한 시인이 같은 교정에 계신 줄은 저야말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년 퇴임을 맞이하여서야 비로소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 시인의 시적인 전율을 느낍니다. 일생을 몸 바친 학교를 떠나시면서 예술의 향기와 빛깔로 옷 입힌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남아 있는 저희 식구들의 마음마다에 아로 새겨주셨습니다. 소중하게 남겨주신 선물 감사드리며 받겠습니다.


학자로서 듬뿍 적신 노고는 이제 풀어놓으시고, 시의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자유로운 노래를 맘껏 부르셨으면 합니다. 육신의 몸은 시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럴수록 시를 쓰시는 신성한 창조적 에너지는 더욱 새롭게 솟아날 것입니다. 우주와 입 맞추는 아름다운 시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수님의 앞날과 또 그와 함께 잉태될 시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3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