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3. 1. 14:25
 

 과달키비르 강 가에 도착한 우리는 화려한 박람회장으로 둘러싸인 스페인 광장에서 세비야 탐색을 시작했다. 아니발 곤살레스가 설계하여 10년에 걸쳐 완공했다는 박람회장은 규모와 아름다움의 면에서 주변을 압도했다. 스페인 전역의 광역 자치주와 문화적․역사적 상징을 형상한 타일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분수가 압권인 스페인 광장에서 나와 산타크루즈거리를 걸었다. 각종 기념물이나 건축, 길가의 나무들이 잘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는 공간이었다. 가끔 기마경찰과 마차가 길을 오고가는데, 융통성 없는 사람을 가리켜 “세비야의 말 같은 놈”이란 말이 속담을 떠올릴만한 거리였다. 콜럼버스 기념탑을 돌아가니 알카사르 왕궁의 담벽을 따라 아름다운 거리가 펼쳐졌다. 세비야 사람들은 현재와 같은 세비야의 번영을 가져다 준 장본인으로 콜럼버스를 꼽는다고 한다. 그만큼 스페인의 어딜 가나 콜럼버스의 동상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원래 이태리 제노아 출신의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추앙받는 현실을 보며, 출신지보다 활동한 곳이나 활약상으로 인물을 평가하는 유럽인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타크루즈 거리를 돌다가 돈 후안의 무대로 알려진 작은 광장을 만났다. 그곳엔 그가 묵고 있었다는 작은 여관과 식당이 있었고, 광장의 오렌지 나무엔 황금색 오렌지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돈 후안은 민간의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스페인의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비극 <세비야의 호색한>(1630)에서 처음으로 문학작품에 등장한 인물일 뿐인데, 후대인들은 그가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여관이나 식당까지 고안하여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니 대단한 호들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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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로부터 황금의 탑, 스페인 광장, 이베로 아메리카 만국박람회장, 스페인 광장 밖 거리, 돈후안의 가상무대1, 돈후안의 가상무대 2, 돈후안의 가상무대와 스페인 남자, 산타크루즈 투어 도중에, 산타크루즈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산타크루즈의 콜럼버스 기념탑>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3. 1. 14:07
 

 1월 27일. 세비야의 하늘은 맑았고, 간밤에 뿌린 비 때문인가 거리는 젖어 있었다.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시기부터 번창했고,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던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 답게 화려했다. 도시의 중심을 뚫고 흐르는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은 수심이 깊고 수량이 풍부한 듯 큰 배들이 드나들었다. 대항해 시대의 무역항이자 아메리카 여행의 출발지로서, 1519년 마젤란이 세계일주의 닻을 올린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모차르트의〈돈 조반니 Don Giovanni〉, 비제의 <카르멘>과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등의 무대였던 세비야. 수르바란, 무리요, 발데스 레알, 벨라스케스, 마르티네스 몬타네스 등의 뛰어난 화가들과 후안 데 메사 등 조각가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긴 예술의 고향 세비야. 스페인의 3대 축제들 가운데 하나인 광란의 페리아(Feria)와, 부활절 직전에 열리는 세마나 산타 축제 등이 유명한 세비야.

 1248년 이곳을 이슬람세력으로부터 탈환함으로써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의 자취가 도처에 남아 있었다. 이슬람시대인 12세기 말에 세워진 히랄다 탑은 세비야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카테드랄, 알카사르, 투우장, 이베로 아메리카 만국 박람회장 등이 넓은 도시에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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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로부터 세비야에서 1박을 한 호텔 CIUDAD, 이베로 아메리카 만국박람회장의 세비야 지도, 히랄다탑에서 바라본 과달키비르강과 다리, 이베로 아메리카 만국박람회장에서 만난 스페인소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2. 5. 15:27
 

스페인 기행 4-1 : 종교 간의 불화가 빚어 만든 메스키타(Mezquita)의 조화와 부조화-꼬르도바(Cordoba)행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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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도바 거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오렌지 나무들>

25일 오후. 알함브라궁의 아름다움을 찬탄해 마지않은 우리는 역사 진행의 우여곡절이 빚어낸 빛과 그림자를 가슴에 담고 그라나다를 떠났다. 대략 두 시간을 이동하여 도착한 곳이 유서 깊은 문화와 역사 도시 꼬르도바. 그라나다는 지중해와 인접한 도시였으나, 꼬르도바는 대서양으로부터도 지중해로부터도 비슷하게 떨어져 있었다. 알트슈타트(Alt Stadt)의 성문 앞에는 네로 황제의 은사이자 스토아 학파에 속한 철학자 세네카(L. A. Seneca)의 동상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이곳 출신이었다. 꼬르도바가 범상치 않은 정신적 도시임을 보여주는 증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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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네카의 동상>

 도시를 관통하여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이 흐르는 이곳은 안달루시아의 관문이었다. 도시 전체가 무어족, 유대족, 기독교파 등 세 문화권으로 나뉘어 공존하거나 각축을 벌이다가 1236년 페르디난드 3세의 기독교군에 의해 정복됨으로써 이슬람 왕조는 붕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회교문화에 기독교 문화가 덧씌워지는 양상으로 이 도시의 문화적 색채는 고정되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