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3.29 18:40

 


 


흘러가는 물을 보며

 

 


부모님 묘소에서

 

 

많은 죽음들을 기억하며

 

 

                                                                                                                                조규익

 

 

두 해 전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올해 가까운 친구 김성원이 떠났고, 며칠 전엔 대학원 시절 함께 공부하던 정명기도 떠났으며, 최근 들어 이런 저런 이유로 비명(非命)’에 떠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그간 죽음에 대한 고민이나 사색을 통해 나름대로 의미부여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일까. 이젠 어떤 죽음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사(自然死), 병사(病死), 사고사(事故死) 모두 항거할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이다. 또한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인한 최근의 자살들 역시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반듯하게챙겨 갖고 있지 않다면, 견디기 어려운 광경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요즈음이다. 사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자살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고, 그동안 지탱해오던 사회적 자아를 유지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자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절망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키엘케골의 말도 바로 그런 점을 지적했으리라.

 

가차 없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에 인간은 종교에 귀의한다고 한다. 사실 죽음이 매우 두려운 것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예비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지금도 사람들을 교회로, 성당으로, 사찰로 이끄는지 모른다. 돈독한 논리체계로 사후 세계를 치밀하게 설계해 온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세계의 주재자인 신을 받들고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경감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한 종교는 계속 번창할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물로서의 인간의 삶은 참으로 짧고, 그 가운데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덧없다. 하기야 한갓 미물로서 무슨 가치를 창조하겠노라뜻을 세우는 것 자체가 오만하고 가당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저 하나의 던져진 존재라는 점을 깨닫기만 한다면, 겸손한 자세로 생명의 장()’인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살다 사라지련만. 대부분은 주어진 생애 동안 기고만장하여 같은 공간의 동지들과 멱살잡이로 날밤을 지새우기 마련이다. 소수는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지만, 대부분은 삶에 대한 헛된 집착으로 그런 깨달음조차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대는)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경구(警句). 아침저녁 열심히 가꾸어 오던, 꽃 같은 얼굴이 한 줌 재로 바뀌어 풀밭에 뿌려질 때, 풍채 좋던 친구가 주검 옷에 둘둘 말려 석자 깊이의 무덤으로 내려 갈 때, 그들을 바라보며 비로소 내 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을 보며,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법칙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시신으로 바뀐 그들과 나의 자리바꿈을 통해 비로소 삶과 죽음의 우주적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죽음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할까? 하나, 둘 떠나는 이웃들을 보며, 그 순번이 내게 돌아올 때까지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이며 어떻게 그 순간을 맞아야 할지,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메멘토 모리!!!

 

 


등걸에서 새싹이...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3.16 21:14

죽음

 

 

나는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죽음들을 보았다. 어렸을 적 툭하면 생겨나곤 하던 동네 상가(喪家)엔 내 또래 아이들과 달리 나는 가장 먼저 달려갔다. 어른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열린 대문 한켠에 서서 시신이 놓인 안방을 훔쳐보곤 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은 사람의 죽은 모습보다 살아남은 여인들(할머니/어머니/아주머니들)이 흘리는 눈물과 곡성(哭聲), 그리고 그것들이 어울려 만들어지던 슬픔이 내 가슴을 저미기 때문이었다. 왠지 그것들은 한동안 비틀거릴 정도로 내 마음을 적시곤 했다. 초등학교 학동에 불과한 나였지만, 우리나라 여인들이 참으로 잘도 운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은 그런 고향동네의 상가들에서였다. 그런 울음들을 통해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의 비극성을 체득하게 되었다.

 

20년 전의 아버지에 이어 최근 어머니까지 세상을 뜨셨다. 황망 중에 맞은 아버지의 마지막은 참으로 순식간이었다. 아무런 말씀도 표정도 남기지 못하셨고, 나는 두려움에 아버지의 표정을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은 달랐다. 동생의 연락을 받고 전력질주하여 도착해 보니 아직 의식의 끝을 잡고 계셨다. ‘어머니, 제가 왔어요!’ 하고 부르자, 잠시 눈을 뜨시더니 가녀린 미소를 보여주시곤 다시 감으셨다. 그로부터 잠시 후 가슴 위쪽으로 그륵그륵 숨이 차 오르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지셨다. ‘어머닌 이제 가셨어!’라고 의사인 동생이 약간 건조한 목소리로 진단을 내렸다. 이마를 만졌는데, 아직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가 계속 남아 있었으면 했으나, 볼에서 느껴진 냉기가 순식간에 이마로 올라왔다. 몇 년 만에 참으로 편안한 어머니의 표정을 뵐 수 있었다.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란 스티브 잡스의 말이 옳았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떠나시면서 얘야, 죽음을 두려워 마라. 삶의 괴로움을 일순간에 없애주는 죽음이 얼마나 고마우냐!’라는 말씀을 표정으로 보여주셨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처럼, 고단했던 삶과 병고(病苦)의 마지막 구간이 마무리되는 곳에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어머니의 마지막으로부터 깨닫게 되었다. 죽음은 비극적인 게 아니라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자연의 이법에 따라 앓다가 세상을 하직하는 죽음 말고, 요즘은 TV나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죽음들이 너무 많다. 전장이나 테러의 현장에서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살되는 죽음들은 너무 엄청나니 아예 거론을 말기로 하자. 길 가다가 째려본다고 멀쩡한 사람을 패 죽이는 사건, 돈을 빼앗기 위해 모르는 사람을 죽이는 사건, 말을 안 듣는다고 아가들을 패 죽이는 사건, 원치 않는 출산이라고 돌도 안 된 아가를 떨어뜨리거나 입을 막아 죽이는 사건, 의붓자식이 밉다는 이유로 추운 날 발가벗겨 화장실에 가두고 고문하여 죽이는 사건, 친자식을 굶기고 때려 죽여 암매장하는 사건, 잔소리한다고 노부모를 때려죽이는 사건, 작은 일들로 감정이 상해 음료수에 독극물을 넣어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는 사건, 맘에 안 든다고 왕따시켜온 친구를 결국 패 죽이는 사건, 꾼 돈을 갚으라는 성화에 빚쟁이를 유인하여 죽이는 사건, 고분고분하지 않거나 결별을 선언하는 애인을 잔인하게 죽이는 사건. 이런 말도 안되는 죽음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러나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삶을 마치고 맞이하는 죽음은 인간이 거쳐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그 관문을 통과하면서 겪는 실존적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게 할 수 있으며, 그게 불가능하다면 경감이라도 시켜줄 것인가. 그거야말로 실존적 인간의 마지막을 위해 현대과학이 베풀어야 할 최고의 자비일 수 있지 않을까.  

 

새 삶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죽음들이 매일매일 우리네 주변을 배회한다. 우리 모두 지금 살아가지만사실은 죽어갈뿐이다. 먼저 가고 늦게 갈 뿐 종착역은 죽음이다. 가수 이애란은 <백세인생>을 통해 죽기 싫은 인간의 본능을 노래했지만, 누군들 죽음을 피할 수 있으랴. 피할 수 없으면, 삶의 괴로움을 직시하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하리라. 그래서 이제 매일매일 열심히 죽어갈일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3.15 09:40

 


영화의 포스터

 

 


글래스의 아들을 죽이는 피츠제랄드

 

 


글래스를 덮친 갈색곰

 

 

 

죽음을 초극하게 하는 것은 뭘까?

-영화 <레버넌트Revenant>를 보고-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라고! 처음엔 그저 천재적인 괴짜의 무책임한 발언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의 죽음, 사랑하는 제자들의 죽음, 집안 어른들의 죽음, 친구 부모들의 죽음, 직장 선배들의 죽음, 사회 저명인사들의 죽음 등을 거쳐, 최근 저세상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면서 나는 드디어 어렴풋하나마 나름의 사생관(死生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그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죽음의 엄혹한 관문을 통과하신 어머니의 표정이 그토록 평화롭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대답을 듣지 못할 줄 뻔히 아시면서도 어머니는 늘 아프지 않게 죽을 순 없을까?’라고 내게 묻곤 하셨다. 저승의 관문을 통과하신 어머니의 얼굴을 뵈며 스티브 잡스의 말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

 

어머니 소천 며칠 후 영화 <레버넌트>를 보았다. 사실 이 영화는 어머니 소천 훨씬 전부터 우리 사회에 화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상 수상 소식이 매스미디어들을 도배하다시피하고 있는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기 어려웠다. 내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그랬는가. 광고화면의 영화제목엔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단어의 뜻까지 부기되어 있었다. 그래, 주인공 그는 어떤 표정으로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을까. 과연 그는 죽음을 초극했을까.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죽음은 어떤 표정으로 삶과 대치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휴 글래스의 가면을 쓴 디카프리오와 피츠 제랄드의 가면을 쓴 토머스 하디가 죽음을 놓고 벌이는 설원의 결투. 처절하게 아름답고 야만적인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서사시의 처음과 끝을, 인생의 의미를 찾다가 실마리를 잃어버린 이쯤에서 잘근잘근 씹어보고 싶었다.

 

19세기 개척시대 미국의 맥박이 은막 가득 출렁였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대자연은 갈피갈피 시퍼런 산소를 내뿜고, 그 속을 누비며 욕망의 껍질들을 벗겨내는 모피 사냥꾼들은 일렁이는 물풀 속의 송사리들처럼 가냘펐다. 사랑하는 인디언 여인은 글래스에게 혼혈의 아들을 남겨주었고, 그 세 사람을 엮는 접착제는 가슴 저릿한 사랑과 부성애였다. 더운 침을 질질 흘리며 덮어 누르는 갈색곰(grizzly bear)과의 사투에서 살아나오게 한 힘도 바로 그 부성애였을 것이고, 죽음보다 더 깊은 상처에서 벌떡 일어나게 한 복수심도 그 근원은 부성애였을 것이다. 현존하는 사랑을 삭제해버린 불구대천의 피츠 제랄드. 그를 죽여야 아들에 대한 사랑의 부채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운 김을 눈 쌓인 대지에 불어내는 그의 야성(野性), 인디언들의 추적을 피해 칼날처럼 저미는 급류의 한기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초월적 강인함도 아들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으리라.

 

사랑과 복수. 무엇이 되었건 그 끝은 죽음이다. 레마르크 원작의 소설이자 영화인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는 사랑에 대한 대립어로서의 죽음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죽음이 없다면 사랑의 찬란함을 부각시킬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더 극적이고 원시적인 죽음의 근원이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부르고, 그 악순환은 대개 죽음에 의해 마무리된다.

 

눈 쌓인 광야에 선혈을 뿌리며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두 사나이. 두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모습에서 풍겨나는 분위기야 말로 그 갈색곰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등가적인 그 무엇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너는 반드시 내 손에 죽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그는 몸으로 실천했을 뿐이다. 피츠 제랄드가 몇 마디 변명으로 응수해보지만, 이미 대자연의 한 부분으로 동화된 그들에게 무슨 꼼수나 변명이 필요할까. 피츠 제랄드를 죽이고 눈밭에 뻗어버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다 이루었다!’였으리라. 굳이 십자가에 매달려 수난을 받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음을 확인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이다. 악한 원수를 징치하여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이룬 행위와, ‘원수를 사랑하라시며 자신의 몸을 죽임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이룬 행위는 분명 정반대이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늘을 찌르는 침엽수림을 드나들며 복수를 통한 사랑의 구현’,  그 서사를 완성해간 영화 속의 주연과 조연. 그들은 정녕 대자연의 존재원리를 완성시킨 두 마리의 짐승들이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그 순간만큼은 죽음을 초극한 대자연의 소품들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 얼마간 세월이 흐른 뒤 한 번 더 보고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고들 하는 것이리라.

 

 


복수에 나선 글래스

 

 


눈밭에 누워 복수를 꿈꾸는 글래스

 

 


복수의 화신, 글래스

 

 


피츠 제랄드 역의 톰 하디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2.29 18:55

어머니를 가슴에 묻고

 

 

 


 

 

야금야금 육신을 갉아먹는 병마(病魔)

끝내 어머니는 아픔을 호소할 기력마저 상실하셨습니다. 

한동안 의연히 싸워오신 어머니도

언젠가부터 병마의 서슬에 풀이 꺾이신 듯.  

잦아드는 어머니를 뵈며 저는

병마의 무자비함에 대한 한탄이나 내뱉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고 난 뒤에야

편안해지신 어머니의 표정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병마와의 투쟁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육신의 굴레!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의 극적인 종말이 죽음인 것을,

어머니 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계셨음을,

나 혼자만 몰랐던 것일까요.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저는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신 게 아니라

정말로 '뭣 같은 고통'을 뛰어넘고 싶어 하셨을 뿐이라는 사실을.

 

넝마 같은 육신을 벗기 위해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가

바로 고통과의 투쟁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죽음이야말로 최고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아닌가요. 

찌질한 증오들, 숱한 이해타산들, 다양한 꼼수들을

일거에 무력화 시키는 전설의 마검(魔劒)이 바로 죽음 아닌가요.

모든 것들이 걸어가야 할 공도(公道)가 바로 죽음인 것을...

 

***

 

어머니(文姬)19281217() 충청남도 원북면 방갈리 학암포에서 외조부(문채문)와 외조모(창녕 조씨) 사이의 5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외조모는 역병(疫病)에 신음하던 동네 사람들을 구완하시다가 이른 연세에 돌아가셨고, 그 일로 어머니는 10대 초반 소학교를 중도에 폐하고 가사를 돌보게 되셨습니다. 열여섯 나던 해 10여리 떨어진 이웃 마을의 창녕 조씨 집안으로 출가, 모진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여 적지 않은 전장(田莊)을 마련하고 슬하에 41녀를 두셨습니다. 손끝으로 땅을 파셨고, 흘리는 피땀으로 그 땅을 걸게 하셨습니다. 새벽에 기상하여 다시 새벽 가까운 시각에 몸을 누이시는 고행을 통해 한 뼘 두 뼘 땅을 늘리셨고, 그 사이사이 적지 않은 자식들을 낳아 건사하셨습니다.

 

세상 이치에 밝으시고 지혜로우시어 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약하고 눈물 많은 남편과 어린 자녀들 때문이었을까요? 시종일관 곧은 아내이자 엄한 어머니이셨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확신이 강하셨고, 자식들의 어리석음이나 주변 사람들의 불의를 용납지 않으셨습니다. 자식들로 하여금 일생 화툿장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고, 담배를 입에 대지도 못하게 하시는 등 어머니의 엄한 훈육이 몇 수레의 황금보다 얼마나 더 보배로운 유산이었는지, 지금 비로소 깨닫습니다.

 

명망 있는 의사로 키워 놓으신 막내아들의 보살핌 속에 만년을 보내시고, 그의 따스한 손길 아래 눈을 감으신 어머니먼저 가신 아버지 곁으로 따라가셨으니, 이제부턴 젊은 시절의 추상같으시던원칙과 자기 확신을 내려놓으시고, 두 분이서 오순도순 옛 이야기 나누시며 명계(冥界)의 청복(淸福)을 마음껏 누리소서.

 

 

 

2016. 2. 25. 030.

 

 

불효자 백규 울면서 올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08.05 17:01

 


아, 옛날이여!

 

 


아, 옛날이여!

 

 

 

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삶과 죽음이 한 끗 차이’라고 말들 하지만,
다리를 건너는 입장에서야 어찌 한 끗에 불과했으랴?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이
개운함보다는 찝찝함이
더 많은 세월이었으리라.
지지고 볶으며 짜오던
한 자락 삶을
베틀 째 팽개치고
이리도 홀홀히 떠나는 게
인생인 것을.

 

“90 평생이 한 나절의 꿈같았노라!”고
깨달음의 말씀을 남기시며 돌아가신
어느 어른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 막 떠올려본다.

 

한 발 한 발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야 하리.
모질게 움켜 쥔
영욕의 짐 보따리들
하나하나 떨구며
상쾌한 맘으로 가야 하리.

 

하직인사도 없이
떠난 그 분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니...

 

 

2015. 8. 5.

백규, 한 잔 술로 그 분의 명복을 빌며

Posted by kicho
글 - 학술문2008.09.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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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옹화상 혜근의 가송집 가운데 완주가 부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찰나와 영원의 경계, 그 깨달음의 미학

-나옹화상의 시가와 구원의 메시지-

 

조규익

 

 

Ⅰ.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어찌 할 것인가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로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이데거(M. Heidegger)는 ‘세계에 던져진 현존재’로서 자신을 개인적 주체로 발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했다. 이처럼 남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인간이긴 하나, 남과 구별되는 개별자로서의 ‘나’는 분명 유일한 존재다. 말하자면 ‘본래의 자기’, 즉 실존적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고 보는 관점도 이런 입장에서 나왔을 것이다.

현세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란 무엇인가. 바로 생로병사의 짐이다. 태어나고 죽는 일, 그 가운데 죽음은 인간이 전존재를 투사하여 알아내고자 해도 결코 만만하게 해답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다. 태어나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한 인간의 일생이라 한다면, 죽음은 액면 그대로 종말이다. 존재의 무화(無化)가 죽음이기 때문에, 실존의 범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형벌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 죽음 이후의 단계에 대한 무지 등은 인간을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감으로 몰아넣는다.

허무감을 포함한 그 절망감은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더욱더 심화시킨다. 그 지점에서 인간은 종교를 만난다. 그러나 종교에 귀의한다고 하여 인간의 실존적 고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괴로움은 신앙의 강도(强度)에 단순히 반비례할 뿐이고,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어느 정도 실존적 고뇌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종교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한다고 하지만, 그 구원의 정도는 깨달음의 진정성이나 강도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그럴 경우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실존적 공간인 현실로부터 존재의 사라짐이 우주적 차원에서 그다지 엄청난 일은 아니라는 점, 존재의 사라짐이 종말이긴 하지만 어쩌면 액면 그대로의 종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등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종교적 깨달음이다. 물론 그 깨달음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하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인간은 고독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스펜서(Herbert Spencer)의 말처럼 인간이 종교에 상정한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한 투쟁의 대상은 죽음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종교 속에 내재해 있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의 하찮음’을 깨우치는 일 그 자체일 것이다. 말하자면 실존적 고뇌로부터의 초탈만이 깨달음의 대전제일 수 있다. 존재의 육신을 굴러다니는 돌이나 나무 조각 등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그 깨달음은 인간 실존으로 하여금 현실적 얽매임에서 초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부들은 실존적 고뇌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탁월한 근기의 존재들만이 실존적 고뇌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맞서 싸운다고 모두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싸우는 자만이 어떤 형태로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 깨달음이란 실존적 고뇌에 대한 처절한 투쟁과 성찰의 결과다.

『아함경』의 65(『관찰경(觀察經)』)는 ‘관찰’의 중요성을 설한 내용이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아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참답게 관찰할 수 있’는데,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므로 느낌을 즐겨 하고 집착한다고 했다. 집착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앓음, 죽음과 걱정, 슬픔과 번민, 괴로움 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 모두가 실존적 고뇌들이다. 비구가 선정에 들어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서 꾸준히 힘쓰고 방편을 쓰면 참답게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참다운 관찰’이란 깨달음의 전제조건이다. 실존적 고뇌에 대한 참다운 관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깨닫지 못한 무명(無明) 속의 대중을 이끌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을 통해 노래를 통해 대중을 구제하려 애쓴 나옹화상(懶翁和尙)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은 불교계의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Ⅱ. 나옹, 진여자성(眞如自性)을 깨닫다

 

나옹화상의 깨달음 역시 실존적 고뇌로부터 출발했다. 채 피어나지도 않은 21살에 이웃 친구의 죽음을 보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출가를 결행한 그였다. 사고(四苦)의 현장을 목격한 후 출가를 결행한 싯다르타와 같은 행적을 보여준 것이다. 출가하여 묘적암의 요연선사(了然禪師)로부터 게를 받고 여러 사찰을 순력하며 정진하다가 결국 원나라에 들어간 나옹화상은 지공화상(指空和尙)·평산처림(平山處林)·천암원장(千巖元長)·요당화상(了堂和尙)·박암화상(泊菴和尙) 등을 차례로 만나 도의 경지를 높였다. 그러나 그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스승은 지공화상과 평산처림이었는데, 훗날 회암사에 지공의 유골과 사리를 모신 것도 그 인연 때문이었다.

평산으로부터 임제선(臨濟禪)을 심수(心受)한 그가 주력한 것은 간화선(看話禪)이었다. 즉 옛 선사들의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는 참선법이 바로 그것이다. 임제종은 조계(曹溪)의 6조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 등을 거쳐 임제 의현(義玄)에 이르러 확립되었다. 원래 우리나라의 선풍은 임제종풍이었는데, 태고화상 보우(普愚)와 나옹 이후에 그것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다면 과연 나옹은 무엇을 깨달았으며, 대중들에게 무엇을 깨우치고자 했을까. 무엇보다 그가 갖고 있던 의문의 핵심은 ‘나란 무엇인가’에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친구의 죽음을 보며 실존적 고뇌를 느꼈을 것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 대한 탐구의 욕망 또한 갖게 되었을 것이다. 다음 시문은 깨치기 전의 나옹이 지은 게송이다.

 

선불장(選佛場) 안에 앉아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김달진 역>

 

나옹이 스승 요연을 하직하고 여러 절들을 배회하다가 회암사에 와서 대중들에게 내렸다는 게송이 바로 이것이다. 출가한 후 보고 듣고 참구한 그것이 출가하기 이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선방에 앉아 참되게 관찰한 결과 그 모든 것들이 나이며 내가 곧 내 주인이라는 사실 등을 강조한 내용이다. 나옹은 이 게송을 내린 뒤 4년을 부지런히 수도하다가 홀연히 도를 깨쳤고, 그 길로 중국에 가서 여러 스승들을 찾아 더 높은 도를 구했다.

그는 원나라에서 각처를 떠돌다가 스승 지공을 만났으며, 그에게서 임제선을 받았다. 그 스승에게 올린 깨달음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自性)은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가 다 법왕신(法王身)이네

<김달진 역>

 

비로소 그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객관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본래 주관적 의식 즉 자성으로 관조하니 온갖 삼라만상이 청정한 법신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앞의 게송에서 강조되던 ‘나’는 대상을 만나면서 대상에 내재된 본래의 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깨달음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면서 깨닫기 이전과 깨달은 이후의 경지가 비로소 합일을 보게 된다는 내용이 지공에게 올린 다음의 게송에 나타난다.

 

모르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바로 온몸이네

모름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五更)을 향해 우네

<김달진 역>

 

미(迷)와 오(悟)의 다름과 양자의 통합을 노래함으로써 ‘깨닫지 못함’ 뿐 아니라 ‘깨달음’ 자체도 뛰어넘는 경지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 노래의 내용적 핵심이다. 깨달으면 온 세상만물에 자아의 본래면목 혹은 본지풍광이 그대로 현출(現出)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깨우치지 못함’과 ‘깨우침’은 분리된 채 모순의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자는 ‘쳐부숨’을 통해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이 3행에 나타나 있고, 그러한 통합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이 부분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닭이 아침마다 오경을 향해 우는’ 일이야말로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이며, 피-아의 구분이 허물어진 합일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보여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에 이어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는다’고 대답한 지공의 말은 피-아의 구분을 허문 경지, 아니 오히려 ‘피-아의 구분을 허문’ 일 자체도 뛰어넘는 경지를 노래한 것이나 아닐까.

그 뒤에도 나옹은 각지의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도력을 높이는데 진력함으로써 우리나라 선맥의 큰 봉우리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성도(成道)에만 주력할 수 없었던 것은 주변에 널린 불쌍한 중생들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나옹화상은 두 번의 깨달음을 얻은 셈인데, 진여자성(眞如自性)의 깨달음이 그 첫 번째이고, 자성의 깨달음을 얻지 못해 고뇌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들의 실존에 대한 깨달음이 그 두 번째 것이다.

 

Ⅲ. 고해의 중생들을 노래로 인도하다

 

작자 문제로 학자들 간에 견해의 차이를 보이긴 하나, 나옹은 <서왕가>·<낙도가>·<승원가>·<참선곡> 등 네 편의 가사를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수도자의 신앙고백이자 무명에 갇혀있는 고해 중생들을 권면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선지식(善知識)의 호소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나옹은 방황과 수행, 참선을 통해 진여자성을 깨달았다. 그런데『법화문구4』에서는 ‘보리(菩提)의 도를 유익하게 하는 사람을 선지식’이라 했다. 보리를 추구하는 대중들에게 부처 말씀의 진리를 설하여 올바른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것. 나옹의 뜻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근기가 높은 대상만이 터득할 수 있는 선문답보다 일상적인 말 문학으로서의 가사가 대중의 근기에 맞는다고 판단한 것이 나옹이었다. 그것은 고해 중생들에 대한 사랑의 발로였다.

그가 활약하던 당시의 고려는 내우외환으로 깊이 병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들이 수시로 침입하고, 안으로는 원나라 지배하의 권문세족들이 종교와 결탁하여 국가의 부와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신흥 사대부 계층이 등장하여 불교 이념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현실도 위기의식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교계의 선봉에 선 지도자 나옹은 사면초가에 빠진 불쌍한 백성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예로부터 불교계에는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자족하는 인사들이 많았다. 이기적이고 소승적인 구도행각의 전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대중을 먼저 구제하는 것이 귀하다고 믿고 실천함으로써 깨달음을 완성시킨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나옹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그는 중생들에게 ‘열심히 도를 닦아 서방정토로 가자’고 권면했다. 그 권유의 말이 가사형태로 결구되어 <서왕가>가 된 것이다. 내용 상 이 노래는 여섯 부분으로 나뉜다. ①‘나도 이럴망정~죽은 후에 속절없다’, ②‘저근 덧 생각하야~삼계바다 건네리라’, ③‘염불중생 실어두고~지옥은 갓갑도쇠’, ④‘이 보시소 어로신네~어느 날에 그칠손고’, ⑤‘저근 덧 생각하야~염불소래 요요하외’, ⑥‘어와 슬프다~나무아미타불’ 등이 그것이다.

①은 서사요, ⑥은 결사이며, ②~⑤는 본사다. ①은 죽음에 의해 허무해지는 인간 존재의 유한한 본질을 제시한 부분이다. 그러한 인생무상을 극복하기 위해 감행한 출가수행의 큰 뜻을 밝힌 것이 ②이며, 세속적 욕망과 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밝힌 것이 ③이다. ④에서는 염불공덕의 위대함을, ⑤에서는 염불공덕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극락세계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각각 노래했으며, 염불을 적극 권유한 것이 마지막 부분이다.

사실 <서왕가>는 인생의 허망함을 깨닫고 구도에 나선 나옹 자신의 일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나옹은 어린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보며 인생의 무상을 절감했다. 출가하여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선사를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내용이 바로 서사인 ①이다.

 

나도 이럴망정 세상에 인자(人子)러니

무상을 생각하니 다 거즛 것이로세

부모의 끼친 얼굴 죽은 후에 속절없다

 

나옹의 속명은 아원혜(牙元惠), 선관서령(善官署令)의 벼슬을 지낸 서구(瑞具)의 아들이었다. 부친의 벼슬이 현직은 아니었으나 세속적인 삶에 그다지 각박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절친하던 친구의 죽음이 그로 하여금 인생의 무상을 절감하게 했다고 보아야 한다. 부모가 남겨 준 자신의 얼굴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살아있는 것들’의 운명적 법칙을 깨달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의 주된 내용이다.

  <회암사.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천보산 소재. 1328년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서 266칸의 대규모 사찰로 창건하여 조선 초기까지는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절. 옛 절터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었음.>

출가 후 나옹은 전국의 유명한 사찰들을 돌아다니며 수도에 전념하다가 1344년 양주의 회암사에서 크게 깨달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원나라에 가서 지공을 만나 4년간 법을 배웠으며, 휴휴암(休休庵)에서 정진했고, 다시 자선사의 처림을 찾아 도를 닦았다. 그 후 육왕사에서 고목영(枯木榮)을 만나 불법을 논한 다음 복룡산의 천암장(千巖長)을 찾았다. 그 즈음 원나라 순제는 그를 연경 광제선사(廣濟禪寺)의 주지로 임명하고 금란가사를 보내주었다.

광제선사의 주지를 내놓은 그는 다시 지공을 찾았다가 1358년(공민왕 7)에 귀국하여, 오대산 상두암에 자리를 잡았다. 그 뒤 공민왕의 종용으로 신광사에 거주했고, 승과의 시관이 된 후 1361년부터 각지를 순력한 뒤 출가 후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은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왕사로 봉해진 뒤 송광사에 거주하다가 다시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고, 절을 중수했으며, 문수회(文殊會)를 통해 법명을 내외에 크게 떨쳤다.

대충 살펴본 그의 구도 행은 아무나 쉽게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종횡무진이었다. 특히 원나라에서 만난 지공과 처림은 그로 하여금 수행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그에게 임제선을 전수함으로써 우리나라 불교계의 선맥을 형성한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수도를 위한 그의 방황이나 순력은 <서왕가>의 둘째 부분에 그대로 나타난다.

 

적은 덧 생각하야 세사를 후리치고

부모께 하직하고 단표자 일납의로

청려장을 빗기 들고 명산을 차자들어

선지식을 친견하야 이 마음을 밝히리라

천경만론을 낫낫치 추심하야 육적을 잡으리라

허공마를 빗기 타고 마야검을 손에 들고

오온산 들어가니 제산은 첩첩하고

사상산이 더욱 높다 육근문두에 자취 없는 도적은

나며 들며 하는 중에 번뇌심을 베쳐놓고

지혜로 배를 무어 삼계바다 건너리라

 

‘선지식을 친견하여 마음을 밝히는 일’, ‘번뇌를 없애고 지혜로 배를 무어 삼계바다 건너는 일’ 등이 이 부분 내용의 골자이자 화자의 핵심적 의도다. 세속적 욕망에 비례하여 인생의 무상감도 늘어나기 때문에, 수도자들은 우선 그 욕망을 단진(斷盡)하고자 했다. 그러나 욕망의 단진이 말처럼 쉽지 않았으므로, 그 지혜를 찾아 많은 시간과 공력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옹이 선지식을 친견하고자 우리나라와 원나라의 많은 사찰들을 순력했고, 법력이 높은 고승들을 찾아다닌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 즉 ‘번뇌를 없애고 지혜로 배를 무어 삼계바다 건너는 일’은 수행자들 모두가 염원하는 바였다.

그렇다면 ‘삼계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무엇인가. 욕심이 극성을 부리는 욕계(欲界)와 욕심이 없어진 색계(色界)를 건너 영적인 정신세계인 무색계(無色界)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나옹이 많은 선지식들을 만나며 경험한 깨달음의 순간들이야말로 ‘삼계바다’를 건너가는 순간들의 현현(顯現)이었던 것이다.

선지식들로부터 법을 배워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진여자성을 회복해야겠다는 결단을 중생들에게 말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나옹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오욕칠정이나 세속적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가에 대하여 다시 역설할 필요가 있었다. 그 내용이 바로 <서왕가>의 세 번 째 부분에 나온다. 염불도 하지 않은 채 애욕에 잠겨 세월을 허송하고 사람마다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을 생각지도 못한 채 항하사같이 무수한 공덕을 내어 쓰지 못하는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나옹은 ‘서왕’ 즉 극락세계가 멀어지고 지옥이 가깝다고 일갈한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중생들을 꾸짖은 다음 염불공덕이 얼마나 크며, 그로 인해 도달하게 될 극락세계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에 대하여 설명했다. <서왕가>의 네 번 째와 다섯 번째 부분에 나오는 것이 곧 그 내용이다.

 

백년 탐물은 하루아침 티끌이오

삼일 하온 염불은 백천만겁에 다함없는 보배로세

어와 이 보배 역천겁이불고하고

긍만세이 장금이리라

건곤이 넓다한들 이 마음에 미칠손가

일월이 밝다한들 이 마음에 미칠손가

삼세제불은 이 마음을 아르시고

육도중생은 이 마음을 저버릴새

삼계윤회를 어느 날에 그칠손가

화장바다 건네저어 극락세계 들어가니

칠보금지에 칠보망을 둘렀으니

구경하기 더욱 조해

구품연대에 염불소리 자자 있고

청학백학과 앵무공작과

금봉청봉은 하나니 염불일세

청풍이 건듯부니 염불소리 요요하외

 

‘하루살이 같은’ 인생 백년에 재물을 탐해 보아야 하루아침의 티끌만도 못하지만, 염불은 사흘 동안만 해도 백천만겁의 세월에 없어지지 않는 보배라고 했다. 또한 그 보배는 천겁을 지나도 낡지 않고 만세를 지나도 언제나 지금과 같다는 것이 화자의 확신이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열심히 염불을 하면 극락에 들어갈 수 있는데, 삼세의 모든 부처들은 이 진리를 알고 있으나 육도의 중생들은 이 진리를 저버리니 안타깝다는 것이다.

중생들이 찾아가야 할 극락이란 어떤 곳인가. 칠보금지에 칠보망을 두른 곳, 아홉 종의 연꽃 대좌에 염불소리가 자자히 들리는 곳, 푸른 학·흰 학·앵무·공작새·금빛 봉황새·푸른 빛 봉황새가 염불 하는 곳이다. 불어오는 맑은 바람 속에 염불소리 아련하게 들려오는 곳이 극락이니, 세속의 욕망에 잠긴 중생들이 부지런히 염불하여 극락왕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종결 부분에서 화자는 중생들에게 열심히 염불할 것을 강하게 권유하면서 노래의 끝을 맺는다. 따라서 이 노래는 나옹 스스로 경험한 구도와 깨달음의 과정을 바탕으로 들어놓은 신앙고백이자 대중 교화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Ⅳ. 욕망의 짐을 벗고 가볍게 떠나라 하다

 

청산은 나더러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더러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의 시문집인『나옹집』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시의 작자를 사람들은 나옹화상이라 한다. 누구는 당나라 시인 한산(寒山)의 작품이라 하기도 하고, 아예 작자 미상의 작품이라 하기도 한다. <청산송>이라 명명하고 싶은 이 시를 관통하는 주제나 정서는 ‘무욕의 가벼움’이다. 그런 점에서 작자를 나옹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나옹만이 가식에서 떠나 이런 노래를 지을 수 있으리라 보았을 것이다. 아니, 나옹이라면 종당엔 이런 노래를 지었어야 한다고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 가수들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패러프레이즈하여 대중가요로 부른 것이나 아닐까.

 

사랑도 부질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버려 성냄도 벗어버려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훨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훨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하덕규가 짓고 가수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도 나옹의 <청산송>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양희은의 맑고 구성진 음색과 한계령의 초초함이 어울려 탈속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 노래가 현대판 <청산송>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한계령 넘는 길>

 

저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어깨를 떠미네

 

물론 양자 모두 나옹의 시에 비해 부질없이 길어진 느낌의 노래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애욕과 물욕에 찌든 현대인들의 고뇌를 훨훨 날려줄 것 같은 힘이 느껴지는 점도 사실이다. 애당초 간결·담백했던 나옹의 서정이 700여년 세월의 강을 건너며 매우 복잡해진 사람들의 내면을 담아내느라 이토록 장황해졌으리라.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벗어나기 위해 출가했고, 많은 선지식들을 찾아 문제해결에 몰두한 나옹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이 바로 ‘무욕의 가벼움’이었다. 그는 그것을 당대의 중생들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사자후(獅子吼) 아닌 감미로운 발라드풍의 노래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도 미움도 모두 벗어버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는 것.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야 극락세계가 어찌 멀리 있을 수 있겠는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