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7. 22. 01:41

불통의 시대를 살며

 

 

 

개인정보 보호의식이 웬만큼 정착되었을 법도 하지만, 가끔 나 스스로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두어 학기 전의 일. 자꾸만 나로부터 탈출하려는 영어를 붙잡아 앉힐 겸 매주 한 번씩 몇몇 교수들과 함께 만나는 외국인 교수가 있었다. 한 교수와 여러 학기를 지속적으로 만날 때도, 한 학기만으로 끝날 때도 있었으나, 매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식사 한 끼 대접해온 것이 내 원칙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건 아니나, 사실은 너무 무미건조한 그들에게 끈끈한 인간관계의 전통을 보여주고픈 욕망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마침 학기 내내 부득이한 일들로 시간을 빼먹곤 하다가 그 교수와의 마지막 시간마저 놓쳐버렸다. 더구나 학기 중 그의 개인 연락처를 알아놓지도 못한 나는 하는 수 없이 외국인 교수들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국문과 조 아무개 교수인데, 아무개 교수와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안 계시는데요.”

당연히 그 분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진 않겠지요?”

.”

그럼 내 전화번호를 남길 테니, 전화 좀 해 달라고 알려드리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용건이 뭐죠?”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 조교가 용건을 묻는 순간 화가 터졌다. 교수가 자신의 신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같은 대학 교수에게 전화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무슨 용건으로 그와 통화하려는지 묻는 그 조교 녀석이 멍청하고 야속해보였기 때문이다.

 

, 학생! 용건은 왜 묻는 거야? 교수가 같은 대학 교수에게 연락처까지 남기고 전화를 부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까지 자네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야? 외국인 교수에게 왜 그리도 저자세인 거야?”

 

그는 깜짝 놀라는 듯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화가 갈아 앉지 않았다. ‘짜식들,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방식을 따라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정보 관리에 철저한 서양 사람들과 그들에게 과공(過恭)하는 듯한 조교를 괜히 비난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

 

학진(한국학술진흥재단의 약칭.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사이트에 교수들의 연락처가 상세히 올라 있던 때가 있었다. 연구소 일, 학회 일, 논문 심사, 강사 섭외, 자료 문의 등등. 일면식도 없는 타 대학 교수들에게 연락할 일들이 수시로 생겼고, 그 때마다 학진 사이트가 내 수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학진 사이트가 있어 참 편리했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학진 사이트에서 개인 연락처가 싸악 사라졌다. 어둔 산길을 가던 중 등불이 꺼진 것처럼 답답했다. 일이 생길 때마다 접촉할 교수의 재직 대학 해당학과 사무실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앳된 목소리의 대학원생 조교는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내 연락처를 남기지만, 원하는 시간 안에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참 답답한 시절이 도래한 것이었다. 은행, 보험사, 통신사, 신문사, 캐피탈, 장애인 협회, 기획부동산 회사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불청객들이 전화를 해대고, 온갖 스팸메일들을 보내오는데, ‘놈들은 과연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아냈단 말인가.

몇 년 전 몇몇 일본의 교수들을 급히 접촉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도통 연락처를 알 도리가 없었다. 대학 홈피의 어느 구석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해당 대학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그 대학 직원 가운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간신히 찾아 내 뜻을 전했으나, ‘그 교수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릴 수 없다/본 대학으로 공문을 보내 이메일 주소 알려주기를 신청하면, 그 교수에게 연락하여 허락을 받은 다음 이메일 주소를 알려줄 수 있다/개인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다는 것이 알아듣기 힘든 그의 영어 가운데 겨우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참 대단한 놈들이다!’라고 혀를 차면서도 끝내 어쩔 수 없었다.

 

***

 

이런 답답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보란 듯이 내 정보를 홈피와 블로그에 대문짝처럼 게시해놓고 있는 중이다. 누구의 연락도 사절해야 할 만큼 바쁜 내가 아니며, 빼앗길 것이 두려울 만큼 돈이 많은 내가 아니며, 남들에게 위해를 당할 만큼 나쁜 짓을 하고 사는 내가 아니며, 그나마 빼꼼히 뚫린 이메일 주소를 막아놓아야 할 만큼 주변에 친구들이 득실대는 나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는 지금도 내게 연락을 주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할 뿐인데, 그나마 막아놓을 경우의 적막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심심치 않게 답지하는 스팸메일들이야 약간의 손가락 운동만으로도 쓰레기통에 던져넣을 수 있으니, 운동량이 모자라는 요즘 세상에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신만 온전히 차리고 산다면, 이메일을 타고 숨어드는 좀도둑들 쯤이야 간단히 제압하고도 남을 터. 그러니 제발 열어놓으라고 만든문들을 꼭꼭 닫아 건 채 소통(疏通)’의 구두선(口頭禪)만 외쳐대는 위선자들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1. 8. 16:33

우리 시대 교수들의 자화상

 

 

 

#아침에 조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교수들에게 지급한 노트북 컴퓨터의 사진을 찍어내라는 학교 본부의 공문이 내려왔단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지급받아 써온 세월이 오래지만, 사용하는 도중에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 어쩌면 학교에서 지급받은 컴퓨터마저 사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교수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해 모처럼 국가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바뀐 규정들 때문일까. 연구비를 집행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졌고, 그에 따라 기분 또한 묘해졌다. 예컨대, 연구과제 관련 도서를 구입하려면 연구비 카드로 결제해야 하고, 영수증과 거래 명세서는 물론 책의 표지까지 일일이 복사하여 제출해야 한다. 사지 않았으면서도 샀다고 돈을 요구하는 교수들이 있는 걸까. 영수증만으로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병아리 교수 시절. 갓 부임했을 때 인상 좋게 나를 환대해주던 이공계의 호남형 시니어 교수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연구비를 수주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난 1년 뒤 검찰에 불려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연구비 횡령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시 병아리 인문학 교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1년쯤 뒤 형사처벌과 교수직 파면의 소식이 들려왔고, 또 그로부터 얼마쯤 뒤 작고 소식이 들려왔다. 교수들이 구름 위의 존재들이 아님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선배 교수들에게서 비로소 갖가지 사람냄새들을 맡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연구비에 관련된 교수들의 추문이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하고 수천만 원을 용돈으로 지급한 일, 연구원의 인건비를 빼돌려 수억 원을 동생의 통장으로 입금해 편취한 일, 학생 십여 명을 허위 연구원으로 등록하고 수억 원을 빼돌린 일, 연구원들에게 입금되는 수당 중 상당액을 자신의 통장으로 돌려받아 생활비로 쓰다가 들통 난 일, 빼돌린 수억 원의 연구비로 주식 투자를 하다가 발각된 일, 연구비로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거나 해외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샀다가 들통 난 일 ...그 수법과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남의 논저를 표절하거나 부정하게 중복 게재하여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려다가 청문회의 그물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매스컴의 매서운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런 비리가 발각되는 경우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남의 책에 이름만 바꾸어 다시 출판하는 이른바 표지갈이에 참여한 파렴치 교수들 수백 명이 최근 법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2015년 굵직한 현안마다 교수들이 안 보였다/부정·비리·불공정평가에도 침묵이대론 안 된다.()내년에도 올해처럼 교수들이 무기력에 빠져 월급봉투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교수신문>(20151228)의 아픈 지적이다. 교수 집단의 나태와 패배의식을 이처럼 매섭게 꼬집은 글을 근래 목격한 적이 없다. 그나마 교수들에 대한 애정이 눈꼽만큼이라도 남아 있기에 <교수신문>은 이런 고언을 실었을 것이다 

 

***

 

사실, 검찰에 소환되거나 매스컴의 추궁에 답해야 하는 교수들 모두 관행을 방패막이로 들고 나선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만으로도 벅찰 텐데, 이른바 물귀신 작전으로 남까지 옭아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물 타기 해보려는 것일까.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선후배, 동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모는, 또 한 번의 파렴치를 자행하는 뻔뻔함을 보라. 물론 교수도 인간, 무엇보다 생활인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는 속계(俗界)의 범부(凡夫)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을 데려다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쓰고자 한 꺼풀 벗겨보곤 진동하는 구린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을 접하면서, ‘내가 참 그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깨달음을 비로소 갖게 된다.

 

대학이 망해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밥벌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그득그득 쌓이면서 국민들이 대학을 불신하게 되었고, 밥벌이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문이나 교수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밥벌이도 못하는 대학이나 학문, 그리고 교수가 과연 필요한가.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제 앞가림이라도 하게 만들려면 대학은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대학을 둘러싼 세상 사람들의 의심과 질타가 이제 정점에 이른 듯하다.

 

그 불신의 핵심적 대상이 인문학인데, 그러나 인문학만 도려낸다고 대학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공학이나 경영학이 도려낸 인문학의 빈 자리까지 차지한다고 옛 대학의 영화가 회복될까. 사실 국민들이 대학 무용론을 깨달아가면서 등록금의 액수에 대한 저항이 높아져왔고, 설사 등록금이 더 낮아진다 해도 앞으로 대학은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학문 분야의 교수들은 스스로 변하기보다 혹시 지금까지 지탱해 온 밥그릇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정부의 교육당국자나 대학 본부는 이들에게 눈총을 쏘아댄다. 사정이 나은 분야의 교수들은 궁한 분야의 교수들을 우습게 여기고, 코너에 몰린 교수들은 잘 나가는 분야의 교수들을 경계한다. 그래서 지금 대학은 불신과 반목이 만연한 연옥이고, ‘큰 학자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소시민이나 양산하는 공작소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질타하는 것이리라. 제대로 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없도록 세팅된 지금 대학의 시스템과 의식 아래 큰 학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생활인 혹은 소시민! 참 좋은 말이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이 바로 생활인 아닌가. 공적인 돈을 주머니의 용돈처럼 꺼내 쓰려는 교수들, <교수신문>의 질타처럼 할말을 하지 못하고 월급봉투만 바라보는 요즘의 교수들이 존재하는 한, 21세기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착한 생활인들보다 몇 단계 아래쪽에 위치한 못난이들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리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0. 9. 11. 08:43

"대리기사 노릇까지… 온종일 교수님 몸종"
상아탑의 그늘- 연구조교 A씨의 하루
교수 자녀 돌보기 등 잡무·심부름으로 하루
"내 공부할 시간은 없어" 참거나…그만두거나…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몸종''개인비서'라고 자학하는 학생들이 대학 교정을 배회하고 있다. 교수의 연구보조를 이유로 각 대학 교수 연구실에 상주하는 수 만 명의 대학원생 연구조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교수의 자녀 보육부터 세금명세서와 같은 개인서류 챙기기, 대리기사 노릇 등 '상전'의 갖은 일을 챙기느라 녹초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다. 교수 눈밖에 나는 순간, 그들의 미래가 단박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대학조교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8일 오후 늦은 시각. 서울 모 사립대 문과계열 대학원 3학기째인 연구조교 A(29)씨가 교수 연구실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1년 내내 연구실과 도서관을 오가는 반복된 생활이다. 가방에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겨드랑이에까지 두툼한 책을 끼워 든 그는 밤새 공부할 작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학기 내 학위논문을 끝낼 계획을 세워두고 강행군 중이다. 하지만 A씨는 "오늘도 교수님 딸의 과제를 도와주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교수님 뒤치다꺼리에 공부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부하러 대학원에 왔는데 이게 뭔가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는 석사과정을 마치는 내년 하반기에 대학원을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너무 다른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그 중심에는 물론 '부려먹기만 할뿐 공부에 도움을 안 주는 교수에 대한 원망'이 깔려있다. 그는 "교수가 쓸 논문자료를 찾고, 수업보조에다 시험이나 과제물을 확인하다 보면 이렇게 밤 늦게야 내 공부를 할 수 있다"며 "이런 고생도 미래가 보이면 감내하겠지만 지도교수는 논문지도 등에는 무관심하다"고 하소연했다.

A씨의 하루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오전 8시 교수 연구실로 출근, 그날 예정된 교수의 수업자료 챙기기로 일과를 시작한다. 수업에 들어가 출석 체크를 하고, 과제물을 걷거나 교수 전달사항을 전하는 게 그의 일상적인 수업보조 일이다. 간혹 과제물 채점을 직접 할 때도 있다. 그 사이 자신의 대학원 수업도 들어야 한다.

최근에는 지도교수가 학술지 발표 논문을 준비하고 있어 자료수집에 여념이 없다. "논문에 이름 하나 걸어준다"는 '대단한' 조건이 암묵적으로 걸렸지만, 그는 "내가 논문을 쓰는 건지, 교수가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거부할 수 없다. 학술지에 이름 하나 오르는 것이 다음 학기 장학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교를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조교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향토장학금(집)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오후 그는 교수와 함께 인천공항에 갔다 왔다. 친한 외국 교수가 한국에 도착한다며 지도교수가 마중을 같이 나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는 교수 아들이 학교에 놀러 온다고 해서 오후 내내 놀아줬다"고 했다.

이러다 보면 어느 새 퇴근 시간이다. 퇴근은 물론 교수가 집에 가는 시간이 기준이다. 저녁 술자리가 있으면 함께 가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술 취한 교수를 집까지 모시는 '대리운전기사' 역할도 해야 한다. 그는 "한 마디로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하루 근무시간은 평균 12시간. '개인 비서'노릇을 하며 월급은 평균 80만원 가량으로 정확히 등록금만큼이다.

물론 그는 마음에 담아둔 말을 교수에게 한 적이 없다. 그는 "장학금은 물론 논문 심사까지 교수가 전권을 가지고 있는데 힘들다고 어떻게 얘기하겠나. 참거나 학교를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다"라고 말한 뒤 도서관으로 향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