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5. 29. 12:06


제주박물관에서

 

 

 

 

아, 제주!

 

 

 

모처럼의 제주행이었다. 몇 년 째 중국인들이 제주를 접수한다고 난리를 쳐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인 나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답사에는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끝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현장강의 좀 해달라는 학생회장의 부탁을 거절할 강심장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주는 얼핏 보기에도 포화상태였다. 하늘에는 육지를 오고 가는 양 방향으로 늘 비행기가 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5분 만에 한 대씩 뜨고 내린다니, 혼잡의 극치랄까. 전엔 공항 문을 나서기 무섭게 팜나무와 야자수가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으나, 이젠 그들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암담한 체념의 한숨만 내뿜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말라버린 이파리들을 처리할 의욕마저 상실한 듯 공항청사 주변의 녹색은 많이 낡아 있었다. 형형색색의 자동차들, 육중한 관광버스들이 넘쳐났고, 그들이 방출하는 매연과 분주함의 독기가 제주의 인상을 시들게 했다. , 그동안 많이도 망가졌구나!

 

국립박물관 전시 유물들. 참으로 곱고 아름다워서 가슴이 따스해졌다. 갤러리 1~6, 특별전시실 등, 차분히 느끼기엔 숨이 벅찰 만큼 넓은 공간들이었다. 특별 전시되고 있는 고산리 신석기 유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석기와 토기, 각종 생활사 자료들, 유배 지식인들의 유물 등등 어느 지역의 박물관보다 옹골찬 컬렉션이었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등으로 이어져 나온 삶의 모습이야 여기라고 다를 순 없을 터. 박물관이 내 상상력의 샘터임을 여기서도 재확인한다. 유약 아닌 원시인들이 뿜어낸 입김과 손때가 토기들의 안팎에 칠해져 있지 않은가. CD에 새겨진 것처럼 토기의 물결무늬엔 그들의 노랫소리 또한 새겨져 있었다. 그들의 손때를 보며 그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것보다 더 소중한 체험이 어디에 있을까. 안타깝지만, 쌍쌍이 어울려 재잘거리는 젊음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어찌 수만 년 전 유물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랴.

 

삼성혈의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제주의 키워드를 말해줬다. 신화, 무속, 해녀, 43과 향토문학 등을 제주라는 고운 보자기로 감싸 젊음들의 가슴에 넣어주고 싶었다. 우주창세의 과정을 보여준 설문대할망 신화, 독립된 나라를 세워 영속시키고 싶었던 삼성(三姓)’의 탐라건국신화, 무조(巫祖)의 내력을 읊어나간 무속 본풀이들, 부자간 쟁투의 현실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 김녕괴내깃당본풀이. 육지에서 들어보지 못한 신화들의 성지가 제주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은 늘 현실이었다. 주도권 다툼, 더 많이 갖기 경쟁, 사랑과 미움 등등... 그래서 나는 신화란 상상된 현실이며 현실이란 가시적으로 구현된 신화임을 강조했다. 부모로부터 내쳐졌던 괴내깃또가 군사를 이끌고 아버지를 치러 왔을 때, 그는 어떤 말을 건넸을까. 아들 신검에게 권력을 빼앗긴 견훤, 아들 방원에게 패배한 이성계, 평생 일군 부를 아들에게 빼앗긴 재벌 등등. 현실은 신화의 연속일 뿐이다. ‘허황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오래된 꿈이자 정신의 모습이고 현재 인간의 모습까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언술이 신화라는 캠벨(Joseph Campbell)의 말도 있지 않은가.

 

애월의 밤. 마늘밭 가의 숙소 공터에서 우리의 젊은 풍물패들은 제주의 밤을 마구 두들기고 깨트렸다. 마늘밭 한 평에 250만원이나 한다는, 지상의 현실과는 상관없는 꿈의 난장을 벌인 것이다.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을 애월의 제주인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젊은 무리들의 춤과 소리에 놀라 깨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하늘 끝 바다 끝까지 닿을 진동의 힘은 잠든 세상을 무력하게 했다. 상큼 짭짜름한 갯물 내음은 창틈으로 스며들어와 뒤척이는 잠자리를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었고, 퉁탕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젊음의 열기까지 합세해 대책 없는 불면의 밤은 한없이 길기만 했다.

 

돌문화공원에서 만난 설문대할망의 꿈. 그녀는 무슨 배짱으로 5백이나 되는 아들들을 낳아 놓았던 것일까. 어찌하여 무지막지한 돌을 가지고 이 아름다운 섬을 만들려고 했을까. ‘180만 년 전 신생대의 화산활동이 이 섬을 이토록 오묘하게 만들었다는 설명이야말로 너무 단순하여 재미가 없었던 것일까. 태초의 제주에서 설설 뛰던 불꽃들과, 세월이 흐른 뒤 식은 불꽃 사이를 조심조심 뛰어 놀았을 온갖 짐승들과, 불꽃이 만든 흙과 짐승들을 재료로 삶을 이어 나온 인간들의 지혜를 함께 버무려 생각하기로 하자. ‘형이하(形而下)’의 물질에만 정신이 팔린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기 위해 설문대할망은 이 땅에 강림하신 것 아닌가. 세상을 낳은, 위대한 지모신(地母神). 오랜 세월 제주를 감싸온 그녀의 오지랖 안을 뒤지니 텅 빈 동공뿐이었다. 뱀이나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을 보며 무엇을 상상하는가. 빠져나간 몸들의 건강한 환락을 상상하는가. 아니다. 무수한 삶의 재생과 반복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허물이다. 그러니 피가 돌지 않는다 하여, 기름기가 빠져 있다하여 그 허물들을 짓밟는 일은 옳지 못하다. 이 땅에 남겨진 허물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는 법. 신화를 사랑하자. 그 옛날 그 분들의 현실과 꿈을 오롯이 갈무리하여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주고, 우리의 끝없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지 않는가. 삶이 어찌 오늘의 우리만으로끝나는 일이랴. 오로지 지금을 살기 위해, 지금의 나만을 위해세상은 존재한다고 믿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신화는 존재하는 것 아닌가. 언제나 되어야 우리는 아득한 후손들을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현재의 내 아픔을 참아낼 수 있게 될까.

 

‘43 평화기념관은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분노와 부끄러움이 뒤엉겨 분출의 시기만 기다리는 잠재적 활화산 혹은 휴화산의 분화구였다. 몇몇 인간들의 욕망과 착오가 빚어낸 오욕의 역사였다. 처음은 이랬을 것이다. ‘그래, 이 복잡한 시국에 그들 몇을 죽인 것에 대해 사과하는 귀찮음을 감내할 필요가 있는가. 그럴 듯한 이유와 명분을 내걸고 눈을 부릅뜨면 그대로 진정될 것인데. 이 외딴 섬에서 힘없는 사람 몇몇을 죽여 봤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고. 그렇게 끝이 나리라 착각했을 것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늘 그랬다. 하늘같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뻔뻔함과 물리력만으로 모면할 수 있으리라 믿어온, 우리의 어리석음이었다. 그러나 그게 어찌 그렇게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인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며 세계사도 이성적으로 진행되었다'는 헤겔 식 역사의 이성을 우리가 믿는다면, 최소한 잘못된 계산을 그대로 넘길 순 없는 법. 3~4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지금껏 쉬쉬하는 권력의 속성을 민초들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뒤엉긴 시신들의 사진 앞에 몇몇 젊음은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깨달음을 문장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비리와 부조리의 현장이 어찌 이곳뿐이랴.

 

해녀들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물 깊은 바닥에서 건져 올린 소라며 전복이 꿈틀거리는 좌판. 그 좌판 언저리엔 가쁜 숨을 모아 만들어낸 숨비 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값을 깎아보려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건네는 할머니 해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마음은 해녀박물관에 역사로 남아 이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문대할망에서 시작된 제주 여성들의 기운이 해녀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나 아닐까. 호흡이 허락되는 그 짧은 순간에 단단히 뿌리박힌 소라와 전복을 따내야 하는 건 생존경쟁 원리의 극적인 현시아닌가. 그 힘이 지금 남자들을 능가하는 한국 여성들의 힘으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제주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나 많이 망가져 있는 것도 사실인 듯 했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온전치 못한 법. ‘이제 제주를 떠나고 싶다, 한 제주친구의 음울한 말을 공항에서 전화로 듣게 되었다. 물론 제주의, 제주인의 프라이드를 이제 거의 상실한 상태라는 그의 말이 육지인인 내게 아직은 생소했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는 여전히 푸르렀고, 바람결 또한 싱그러웠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물질해온 갯것들도 상큼하고 달았다. 새 공항이 생기고,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만 줄인다면, 아니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의 부피만 줄인다면, 설문대할망과 함께 제주는 영원할 것이다.

 

 

 


고려조의 청자, 조선조의 백자, 분청사기 등


 


근대 제주의 '곰박(석자), 솔박(되), 도고리(함지박), 국자' 등 

 

 


물질의 도구인 태왁망사리

 

 


해녀물질의 도구들

 

 


용담동 무덤 유적에서 출토된 '이음독널'

 

 


각종 청자들


 


원삼국시대의 각종 토기들

 

 


삼성혈

 

 


애월의 멋진 숙소(힐링팰리스)

 

 


차에서 내리는 학생들

 

 


돌문화공원에서 만난 '나무가 빠져나간 화산석'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어서 오세요 많이 반가워요 또 오세요!'랍니다.

 

 


돌문화공원 밖에서 만난 하르방님들

 

 


돌문화공원 밖에서 만난 제주의 옹기 및 기와들

 

 


민속마을에서 만난 제주의 옛집들

 

 


제주 43 평화기념관

 

 


멋진 조화(이경재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하늘과 바다)

 

 


해녀박물관에서 만난 '빛 바랜 기념사진들

 

 


해녀박물관 밖에서 포즈를 취한 아름다운 여학생들

 

 


해녀박물관을 떠나며

 

 


돌문화공원 밖에서, 선남선녀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4. 13. 15:33

 



 




오십의 깨달음

-성선경의 시집을 받고-

 

 

며칠 전, 학과 학술답사여행 중이었다.

학과장 이경재 교수의 생일을 용케도 알아낸 착한 학생들.

그들이 점심 상 앞으로 케익을 안고 왔다. 이 교수에게 나이를 물으니, ‘40’이란다.

그가 나의 40’에 대해 물었다. “세상 무서운 것 없던, 참 좋은 때였소.” 내 대답이었다.

나의 50’을 그가 또 물었다. “참으로 초조해집디다.” 내 대답이었다.

 

오늘 점심 후 찻집에서 독문과 김대권 교수와 나이에 대한 그 문답을 다시 반복했다.

그는 왜 초조했냐고 물었다. “50 되기 전 몸에 돋은 가시 털과 입에 붙은 칼날을 모두 갈아 없애려 했는데, 여전히 형형한 빛을 발하는 것 같아서 초조했었소.” 내 대답이었다.

 

연구실에 들어오니, 함께 늙어가는 제자 성선경 시인의 새 시집이 도착되어 있었다. 책장을 넘기니 <오십>이란 시편이 실려 있었다. 그가 내 마음을 훔쳐보았던 걸까. 다음과 같은 시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것

늙음이 넓음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잘 닦은 숟가락같이 빛나는 정오는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뜻도 되지만

아직 절반이 남았다는 말도 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어제의 꽃은 씨방을 키우는 중이고

어제의 나무는 막 붉게 물드는 중이지

천명(天命)을 안다는 지천명

아주 둥글어진 해

늙는다는 것은 둥글어진다는 뜻

오후가 나의 넉넉함과 이어지지 않아도

온몸을 둥글게 둥글게 만다는 뜻

햇살이 기울어 그림자가 동쪽으로 서는 시간

이제 절반을 지났다는 말도 되지

씨방 속에 또 싹이 나고

단풍 속에 물관이 선명하지

나는 방금 전 오전이었고

나는 지금 금방 오후에 닿았지

<66~67>

 

그렇다. 오십을 십년 가까이 넘기고 나서야 내겐 비로소 오십이 보였다.

그 점을 콕 집어 가르쳐준 시인은 나의 선생님이다.

그래서 지금 그가 고맙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0. 9. 11:32

 


고려극장 창고에 쌓인 연극대본들

 

 


고려극장 창고에 쌓인 연극대본들

 


고려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심청전의 포스터

 

 


고려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상속자들의 포스터

 

 

 

 

치원(致遠)의 성과

-조규익의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태학사, 2013)을 읽고-

 

 

                                                                                                                            이경재(숭실대 국문과 교수)

 

 

 

1. 학문이 다다른 곳

 

조규익 교수의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을 읽으면서, 제갈공명이 쉰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여덟 살이었던 아들에게 남긴 계자서가 생각났다. 계자서의 핵심 내용은 주지하다시피 담박명지(淡泊明志), 영정치원(寧靜致遠)’라는 여덟 글자로 압축된다. 이 중에서도 조규익 교수의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치원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만든다. ‘먼 곳에 도달한다는 뜻의 치원은 남들보다 크고 무겁고 많은 성취를 이룬다는 뜻이다. 평생 한 동네에 살면서 산 너머의 이웃 동네를 둘러보는 일도 어려웠을 옛사람의 관념을 드러내는 이 말은, 자신이 갈 방향을 뚜렷하게 정한 채 그 길을 꾸준하게 가면 마침내 먼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저서야말로 필자가 초인적 노력의 결과 다다른 학문적 먼 곳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규익 교수의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은 꼴호즈나 솝호스 등 CIS 지역 고려인들의 생산 및 생활 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자생적 소인예술단과 고려극장으로 대표되던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을 살펴보았다. 소인예술단은 꼴호즈 등 집단농장에서 운영하던 아마추어 단체이고, 전문예술단은 국가에서 설립 운영하던 예술인 집단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에서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창립되어 중앙아시아로 이주된 고려극장이 유일하다. 구소련 체제의 대중예술은 전문예술과 소인예술의 분담과 협업으로 지탱되어 왔다. 인적 차원에서나 예술적 차원에서 전문예술단의 근원은 소인예술단에 있었으나, 상호 보완의 역할을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자 양자는 구소련의 공연예술을 완성시키는 두 축으로 정립되었다.

 

원래 소인예술단의 경우 연극, 노래, 춤 등이 주된 장르였고, 전문예술단인 고려극장의 경우 연극 전문으로 출발했다가 공연예술로서의 노래와 춤이 추가되었다. 고된 생산의 현장에서 괴로움을 달래준 동시에 민족적 동질감을 확인시켜 준 무명 예술인 집단이 소인예술단이었고, 탁월한 예술적 재능으로 민족의 애환을 대신 표출함으로써 고려인들을 정서적으로 결집시킨 예술인 집단이 전문예술단으로서의 고려극장인 것이다.

 

고려극장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당시 극작가들은 민족정신의 유지와 확인이라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고전작품들을 연극의 소재로 많이 다루었다. 창작극 외에 그들이 집착한 분야는 고전의 각색이었다. 고전의 각색은 민족정신이나 민족어의 보존과 전승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다. 결국 고려극장은 고려인들의 정체성을 함양시켜온, 일종의 민족 정체성 고양의 메카역할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많은 극작가들을 등장시켜 활약하게 한 일은 고려극장의 가장 빛나는 공적이다. 그 가운데 극장의 초석을 놓은 인물은 연성용과 태장춘이었고, 최고의 연극미학을 보여준 인물은 한진이다. 한진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집요한 바가 있어,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이 발간된 거의 동시기에 <<한진의 삶과 문학>>(글누림, 2013)이라는 책을 김병학 선생과 공저로 출판하였다.

 

 

 


<<CIS 지역 고려인 사회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

 

 

 

 

2. 지속과 변이

 

자료는 말한다. 이 명제는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자료는 연구자의 문제의식과 만났을 때, 비로소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이만한 두께의 단일저서가 그에 걸맞은 하나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는 힘들다. 이 작품이 고려인들의 문학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은 지속과 변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인들은 원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타율적 디아스포라들이었다. 현실적으로는 구소련 혹은 중앙아시아 국민의 일원이었고, 정서적으로는 고려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갖고 있던 이중적 존재들이었다. 구소련 시절에는 구소련의 다수민족에 의해, 공화국의 독립 이후에는 공화국의 주도 민족에 의해, 힘들게 찾아온 할아버지의 나라에서는 고국의 사람들에 의해 3중의 타자 체험을 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구소련 혹은 중앙아시아 국민의 일원이었고, 정서적으로는 고려인이라는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두 방향으로부터 상반되는 인력을 느끼는 존재들이었다. 노래나 춤을 통해 표출되는 이념 지향적 의식이나 디아스포라 의식은 상반되는 인력에 상응하는 주제의식이다.

 

스탈린은 러시아 중심의 언어 예술 정책을 폄으로써 고려인을 포함한 비 러시아인들은 예술의 창작과 향유에서 큰 난관에 봉착하였다. “스탈린의 폭압적인 동화정책에 어쩔 수 없이 그 무거운 민족의 표지를 내려놓”(5)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려인들은 자민족 중심의 전통 형식 고수라는 구심력과 소련의 사회주의 추구라는 원심력을 적절히 조정한 미학을 고안했다. 그로부터 나온 것들이 민요를 비롯한 우리 전통노래들의 음곡에 사회주의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노랫말을 올려 부른,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이다. 이를 통해 집단주의라는 사회주의 통치이념의 폭력적 군림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민족 정서의 실낱같은 생명만큼은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언어와 문화의 동화정책을 밀어붙인 스탈린 체제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고려인들이 우리 전통예술의 한 부분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정 덕분이다.

 

고려인들의 노래는 우리나라 전통 민요의 운율과 사설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경우도 있고, 노랫말을 러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맞게 새로 만든 것들도 있다. 전자를 지속의 측면에서 후자를 변이의 측면에서 각각 설명할 수 있다. 지속의 측면은 고려인 혹은 한인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이 유지되는 한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정서적 형태적 전승소이며, 변이의 측면은 적응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조정될 수밖에 없는 가변적 요소다. 이처럼 고려인들이 갖고 있던 전통 노래의 관습적 레퍼터리는 새로운 정착지의 생경한 분위기와 충돌을 일으키며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바로 고려인들의 노래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문화 접변 현상이다. 고려인들이 접변을 통해 새로운 공연예술을 창출할 수 있었다면, ‘디아스포라의 현실과 새로운 이념에의 적응이라는 복잡한 원리가 그 근저에서 작동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3. 학문적 가치와 필자의 노력

 

이상으로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작품이 던져주고 있는 중요한 논점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제목에도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는 한글문학이라는 개념이다. 보통 국문학자는 국문학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으며, 이때의 국문학이 한국인이, 한국어로, 한국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문학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한글 창제 이전의 문학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것은 아니지만,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국문학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해외동포들의 작품을 과연 국문학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실정이다. 조선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의 일본어 작품이나,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작가가 쓴 영어 작품이나,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교포의 한국어 작품 등을 과연 국문학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판별하는 것은 뜨거운 난제일 수밖에 없다.

 

사실 언어, 국적, 사상과 감정이란 세 가지 요소는 일종의 형식논리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공동운명체로서 느끼는 실감일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오래 전에 한반도를 떠나 고려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창작한 문학을 과연 국문학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을 수밖에 없다. 연구자는 이러한 난관을 나름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들의 문학을 한글문학으로 칭하는 것이다. 조규익 교수는 이 저서에서 각지의 소인예술단들과 고려극장으로 대표되는 전문예술단이 지난 시절 만든 한국어 노랫말과 극본들을 중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백여 년 전에 한반도를 떠나 멀고 먼 중앙아시아에서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산 사람들의 문학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첫 번째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 고려인들을 우리와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오만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고려인들을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섣부른 편견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 시절 고려인들의 문학을 우리 것이자 동시에 우리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는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섬세한 관점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능한 입장을 저자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 이 저서의 서론격인 1부의 마지막은 조속히 청산해야 할 중심부의 시각으로 우리 정서의 맥을 힘겹게 이어 온 변방의 정서적 산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려는 것이다.”(36)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문장은 고려인 문학을 접하는 한국인 연구자의 솔직하고도 곤혹스러운 관점을 잘 드러낸 고백으로 읽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무래도 고려인 문학은 우리 것이라는 입장에 한층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들의 전통노래를 발전적으로 지속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해외에 우리의 문화영토 혹은 정신적 영역을 화복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108)는 문장에서 고려인=대한민국인이라는 관점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저서의 마지막 문장인 “‘갈 짓 자행보 속에 마구 변해버린 또 다른 중심부 한반도. 그 중심부와의 행복한 합일을 꿈꾸는 주변부의 오늘과 내일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 성찰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그들을 위해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356)라는 격정적인 문장에서도 중심부와의 행복한 합일을 꿈꾸는 주변부로서의 고려인들을 사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저서에 담겨 있는 학문적 가치와 필자의 노력에 대해서이다. 이 저서에서 조규익 교수는 소인예술단 공연 때 불리던 국문노래의 존재양상과 이념, 고려인 민요의 전통노래 수용 양상, 고려인 한글노래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의 양상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소인예술단의 한글문학이 지닌 본질을 찾아보았고, 1932년 고려극장 창립 이래 최근까지 공연된 연극들(200여 편)을 개관한 다음 고려인 사회 연극의 초석을 놓은 연성용, 태장춘의 연극세계와 함께 구소련 고려인 문단에서 최고의 미학을 성취한 한진의 연극을 분석하였으며, 연극무대 혹은 그 바깥에서 가창된 노래들까지 살펴봄으로써 고려극장의 한글문학이 지닌 본질을 밝히고자 했다.

 

이상의 내용 중에서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으며, 어느 것 하나 책상머리에서 자판 몇 번 두드려 얻을 수 있는 자료에 바탕한 것이 없다. 거의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직접 발로 뛰며 얻은 자료를, 별다른 선행 연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며 이룩한 업적인 것이다. 후학으로서는 감히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또한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공력은 후학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발로 뛰며 쓴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사진으로 책의 여러 부분이 채워진 것이 그러하고, 전 세계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뒤에 15페이지에 이르는 영문 초록을 붙인 것이 또한 그러하다. 조규익의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은 앞으로 고려인 문학을 연구하는 모든 연구자들이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명저이다.

 

“<<한국문학과 예술>> 12,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2013. 9. 30.”에서 퍼옴

 

 

 

Posted by kicho
알림2013. 6. 4. 21:27

 

 

2013년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에서 학술발표대회를 아래와 같이 갖습니다. 많이들 오셔서 좋은 의견들 나누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13. 6. 7. (금) 10:00~18:30

*장소 :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 311호

 

*발표내용

 

 제1부

 

  일제말 협력문학의 네 형식  :   김재용(원광대)

  경성제대 일본인 작가의 문학  :  발표 윤대석(명지대) /토론 이경재(숭실대)

 

 

  제2부

 

  일제말 시의 민족과 제국 : 발표 박수연(충남대) / 토론 박소영(숭실대)

  임화와 오장환  :  발표 장문석(서울대) / 토론 강동호(연세대)

  월북시인들의 행방-카프 시인들을 중심으로  :  발표 우대식(숭실대) / 토론 엄경희(숭실대)

 

 

  제3부

  종합토론  :  좌장  이명원(경희대)

 

 

Posted by kicho
알림2013. 2. 3. 11:59

한국문예연구소, 새로운 학술총서 세 권 발간!!!

 

 

 

한국문예연구소에서는 최근 <<궁중정재의 복원과 재현-이론과 실제>>(손선숙/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6)⋅<<한국프로문학 연구>>(이경재/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37)⋅<<카자흐스탄 고려시인 강태수의 삶과 문학>>(조규익⋅장준희/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촐서 38) 등 세 권의 의미 있는 학술서들을 발간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궁중정재의 복원과 재현-이론과 실제>> : 이 책은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 등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궁중 정재들을 충실하게 복원⋅재현하기 위한 이론과 실제를 꼼꼼하게 살핀 역저다. 그간 <<궁중정재 용어사전>>, <<궁중정재 교육방법론>>, <<궁중정재 용어연구>>, <<궁중홀기 속의 우리 춤과 음악 찾기>> 등 주목할 만한 저작들과 다수의 논문들을 통해 궁중정재의 본질 모색과 재현에 주력해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야심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제1부 ‘궁중정재의 복원 및 재현을 위한 이론’[궁중정재 무원 구성의 변화양상/조선 후기 정재 춤 동작의 분포현황/정재 춤 동작의 변화와 계승/<<악학궤범>>에 수록된 정재무도의 기록양상/<처용무> 춤 동작의 문헌 기록 양상, 제2부 ‘궁중정재의 복원 및 재현을 위한 실제’[정재 무보체계의 보완과 방안 연구/정재 사(詞) 동작의 이론적 토대 마련과 실기 방안/<<악학궤범>>을 토대로 한 <처용무> 재창작] 등 궁중 정재 전 분야에 대한 논의가 이 첵에 담겨 있다. 연구자나 실연자(實演者)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중구난방으로 펼치고 있음은 물론 심지어 국가기관인 국립국악원마저 정립된 이론체계를 갖지 못한 현실에서 손 박사의 이 책은 궁중정재의 연구나 실연에 최선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리라 본다.

 

<<한국 프로문학 연구>> : 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 초창기의 이념적 산물로서 문학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논할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되는 ‘프로문학’, 그 중에서도 ‘생산력 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연구물이다. 그간 <<단독성의 박물관>>, <<한설야와 이데올로기의 서사학>>, <<한국현대소설의 환상과 욕망>>, <<끝에서 바라본 문학의 미래>> 등 주목할 만한 평론집과 학술서들을 통해 문학 혹은 한국현대소설의 바탕을 살펴 온 저자는 이번의 저서를 통해서는 이념과 문학의 현실적 거리를 치밀하게 천착한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한설야 소설에 나타난 생산력 주의」, 「한국 전쟁의 기억과 사회주의적 개발의 서사」, 「일제 말기 이기영 소설에 나타난 생산력 주의」, 「이기영의 ‘처녀지’ 연구」, 「이기영 소설에 나타난 만주 로컬리티」, 「일제 말기 생산소설의 정치적 성격 연구」, 「김영석 소설 연구-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등 싱싱한 문제들과 해명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카자흐스탄 고려시인 강태수의 삶과 문학>> : 이 책은 젊은 시절인 일제시대에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다가 구소련 스탈린 체제의 폭력에 의해 ‘강제이주-유형-타국 정착’의 복잡다단한 디아스포라를 겪은 고려인 강태수 시인의 삶과 문학, 사진 및 작품자료 등을 함께 묶어 공개한 학계 최초의 저작이다. 단순히 운명이나 역사의 장난으로 돌려 외면하고 말기에는 그의 삶이 지나치게 비참하고 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그의 삶이 문학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한 그의 문학을 단순한 상상력의 소산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 개인이 당한 역사의 모순이나 부조리는 민족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이므로 충실히 되살려 미래에 대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 등에 대한 인식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음을 조규익 교수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고려인들이 고난 속에서 꾸려온 삶과 상상력의 진정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Posted by kicho
알림2012. 11. 11. 16:22

 

 

---------내  용--------- 

1. 행사명 : 2012년 한국문예연구소 국제학술발표대회

 2. 주   제 : 영웅, 그 문학 속의 모습들

 3. 일   시 : 2012. 11. 23. (금)  10:00~18:00

 4. 장   소 :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 311호

 5. 주   최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6. 연락처 : 02)820-0326, 0846

 7. 발표내용

 

        *제1부               사회  허명숙(숭실대)

         1)  기조강연 : 영웅의 형상과 영웅대망의 사회--발표 소재영(숭실대)

         2)  한국 여신들의 영웅적 특성--발표 김나영(성신여대)/토론 양훈식(숭실대)

         3) 고전문학에 투영된 한국 여성영웅의 담론적 특성--발표 강명혜(강원대)/토론 윤세형(숭실대)

        4) 개화기문학에 나타난 영웅들--발표 홍순애(동덕여대)/토론 정영문(숭실대)

 

      *제2부                사회  허명숙(숭실대)

       1)  김훈 소설에 나타난 영웅 형상--발표 이경재(숭실대)/토론 이재홍(서강대)

       2)  論路翎小說中的英雄--발표 翟業軍(中國 南京大)/토론 김종성(숭실대)

       3)  일본문학에 나타난 영웅들--발표 니시오카 겐지(일본 후쿠오카 현립대)/토론 이시준(숭실대)

   

      *제3부   종합토론                    좌장  엄경희(숭실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