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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3 악마들과의 동거
  2. 2015.01.14 ‘인천 어린이집의 악마’를 보며
글 - 칼럼/단상2016. 1. 3. 07:45

악마들과의 동거

 

 

어린이집 아가 폭행사건을 보며 악마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작은 천사들이 모여 꼬물대는 어린이집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다. 악마의 손에 나가떨어지는 아가를 보며, 지옥의 악마 하나가 운 좋게 사다리를 타고 천국에 올라가 악마 본연의 모습을 과시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얼마 전에 만난 ‘11세 소녀 감금학대 사건은 새삼 우리의 눈을 의심케 했다. 아버지가 방어능력 없는 어린 딸에게 가했다는 폭행과 학대는 엽기적이었다.

 

노인 학대와 살해의 주범은 자식들, 그것도 재산을 받을 만큼 받은 자식들이라는 것은 이미 천하공지의 사실이다. 죽인 애인의 시신을 토막 내어 호수에 버린 악마도, 남편을 플라스틱 통에 집어넣어 집안에 처박아 둔 악마도, 학생의 탈을 쓰고 떼로 몰려나가 교탁의 선생을 폭행하는 악마들도 보게 되었다.

언론의 눈에 잡힌 몇몇 사건들이 세상을 흔들어놓고 있던 와중에도 폭행과 살인을 일삼는 악마들은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악마 바이러스는 이미 세상에 퍼져 쉼 없이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다. 갈수록 수법과 결과가 참혹하고 참담하다. 악마 바이러스들 가운데 돌연변이의 사이클로 들어가 변종 악마들로 재생되는 비중이 상당하다. 준동하는 악마들의 행태들. 그 모습들을 그려내기에 우리는 상상력의 빈곤을 절감한다.

 

세상 법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법을 집행한다는 사람들의 자질 부족 때문일까. 사람을 죽이고도 3~5년 징역형을 받았는데, 언론에선 중형이라 떠든다. ‘5년 동안 공짜로 주는 밥 얻어먹어가며 조용히 살다 나오는 것살인의 죗값으로 충분하다는 걸까.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법조인들의 저울추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상식이 그토록 다를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 값을 이토록 헐하게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

 

기원전 4~3세기에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불인지심(不仁之心)을 말한 맹자(孟子)가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짊의 극치라 했고, ‘차마 끔찍하게 할 수 없는마음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착한 존재라 했다. 그가 살던 시절에도 악마가 들끓었음은 그의 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찌 그 때라고 지금과 달랐으랴. ‘차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인간들도 넘쳐 났으리라. 공자와 맹자가 인류의 도덕선생으로 좌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이미 악마들이 준동하고 있었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과연 맹자는 인간에 대하여 푸진 꿈을 갖고 있던이상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 그 시절 그나마 그런 희망이라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악마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못 견뎌 했을 현실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본래 착한 존재임을 강조하여 천하가 예()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일이야말로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하는 나야말로 극도의 비관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인가.

너도 나도 어느 순간 악마로 돌변할 수 있는 인자(因子)들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잠재적 악마가 바로 인간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경계하도록 하는 게 차라리 현명한 방도가 아니겠는가.

 

 

 

 


<<맹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 1. 14. 16:07

 

 

 

어제 오늘, ‘차마 보지 못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33세의 보육교사가 우악스런 손으로 네 살짜리 여자아기의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는 광경. TV는 나를 고문하듯 그 잔인한 광경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이제 11개월 된 내 손녀, 겨우 엄마 아빠소리를 되 뇌이며 세상을 익혀가는 내 손녀의 얼굴이 그 아이에게 오버랩 되며 마음 속에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TV 화면을 시커멓게 꽉 채운 그 '악녀'의 뒷모습을 향해 무언가 집어던지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하는 수없이 TV를 끄고 말았다. 그 아기가 김치를 남겼다든가? 도대체 김치가 뭐 길래?

 

맹자가 말씀하시길 인간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써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편다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서 다스릴 수 있다. 사람마다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떤 어린아이가 곧 우물로 빠져드는 모습을 갑자기 발견하게 되었다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안으로 그 어린아이 부모와 사귀고자 해서 그런 게 아니오, 마을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해서도 아니며, 구해내지 않았다는 오명(汚名)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요.()

 

<<맹자>>공손추 장구()에 나오는 인성론(人性論)이다. 어린 아이가 아장아장 샘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그냥 구경만 하고 있거나 옳지 잘한다!’고 손뼉 치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날강도라 해도 달려가 아이를 잡아 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측은지심을 갖추지 못했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맹자의 말씀이다.

 

맹자의 말씀에 비춘다면, 그 어린이집의 악녀는 교사는 고사하고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다. 인간의 탈을 썼으되 인간이 아닌 존재. 단맛 나는 먹을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대부분의 네 살 짜리 어린아이라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여 김치를 먹여야겠다면, 우선 김치의 상태와 어린아이의 마음부터 살폈어야 한다. ‘왜 이 아이는 김치를 싫어할까? 혹시 김치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이 아이에게 조금씩이라도 김치를 먹게 하려면 무슨 방법을 써야 할까?’ 등등. 교사라면 그런 것들부터 생각했어야 한다. 천사 같은 네 살 짜리 어린아이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들이야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녀도 그런 것들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찮았겠지. 내 아이도 아닌데. 우선 무엇 때문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생각부터 했을 것이고, 그 순간 불행하게도 그 어린아이가 희생물로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 손찌검은 자식에게, 제자에게, 더더욱 네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달려드는 적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내지르는 최후의 일격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일이 어찌 이 어린이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이 교사만의 일이겠는가. 문밖에만 나서면 강변의 모래알처럼 박혀 있는 어린이집들을 무슨 재주로 다 감시할 수 있단 말인가. 칭얼대는 아이를 간신히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하루 종일 직장에 갇혀 일에 시달리면서도 아이 걱정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을 이 땅의 젊은 부모들. 잠시라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단 말인가. 인구 줄어드는 것만 걱정할 뿐, 최소한의 보육 대책조차 세워주지 않는 이 나라의 원시성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여성 대통령을 뽑아 놓아도 이런 원시적인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아이를 낳고 키워 본 경험이 없어서인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중등 교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악마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 바야흐로 전 국민적인 '퇴마의식(退魔儀式)'이라도 한 판 벌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