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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01 「토문추격문(討文酋檄文)」
  2. 2016.07.26 싸드(THAAD)와 중국의 커밍아웃
카테고리 없음2021. 1. 1. 16:14

*며칠 전의 일. 한문학을 전공하는 가까운 친구가 글 한 편을 보내왔다. 열어본즉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패러디한 글이었다. 천재로 꼽히던 해동 3최[최언위최승우최치원]. 그 가운데 일인인 신라[제49대 왕 헌강왕 때]의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벼슬하던 중 황소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토벌총사령관 고변()의 휘하에서 종군하며 황소()를 치기 위해 지은 격문()이 바로 '토황소격문'이다. 내가 '문추(文酋)'가 누구냐고 묻자, 즉시 '그대는 바보인가?'라는 대답이 친구로부터 돌아왔다. 짐작은 가나, '그'가 내가 알고 있는 그인지 아리송했다. 아, 시골 구석에 살다보니 그간 '문추'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시사(時事)에 어두운 나를 자책하며 다시 전문을 읽어보니, 참으로 보기 드문 가편(佳篇)이다. 어리석기 한량없는 '그'야 알아볼 리 없을 것이고, 국가 권력기관 또한 이 글을 탈잡아 무슨 행패를 부릴 일이야 있으랴. 풍자란 그래서 좋은 것인가.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이곳에 그 글을 실어둔다. 다만 요즈음 도처에 출몰한다는 '문추 홍위병'들의 등쌀에 내 친구가 다칠까 염려되어 지은이의 이름은 이곳에 밝히지 않는다.   

 

 

 

경자(庚子)년 섣달 28일, 초의한사(草衣寒士) 아무개는 문추(文酋)에게 고하노라.

무릇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한 것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올바른 방법으로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하느니라.

 

지혜로운 이는 때의 적실함을 따름으로 성공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무도(無道)함으로 패하게 되는 것이 우주의 이치. 비록 우리의 일생이 하늘의 명에 달려 있어 생사를 기약할 수는 없으나, 만사의 성패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므로,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느니라.

 

지금 나는 한미한 일개 백성으로서 경고하러 온 것이지 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요, 백성의 마음은 대도(大道)와 상식(常識)을 앞세울 뿐 무도하게 몰아냄을 능사로 삼지는 않느니, 앞으로 대의를 회복하고 큰 신의를 펴서 조심스런 마음으로 백성의 마음을 살펴 대도를 걷도록 촉구하고자 할 뿐이니라.

 

그대는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지배자가 되면서, 갑작스런 시세(時勢)를 타고 감히 대의를 어지럽히고 있지 아니한가. 결국 무도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에 닥치는 징벌을 피하고자 국정의 상도(常道)를 어지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극에 달하여 반드시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도다.

 

아, 단군왕검 이래 오랑캐와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나라를 훔치고자 대의에 복종치 않은 적이 허다하였으니, 양심 없는 무뢰한 무리와 의롭지 않고 무도한 그대 같은 무리가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

 

먼 옛날 궁예와 견훤이 삼한의 패권을 노렸고, 가까이는 공산도배들이 반도의 평화를 깨부수려 발호하였느니라. 사술(邪術)과 무력으로 세상을 흔들어 암흑으로 만들고, 선량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았는가. 그러나 잠깐 동안 못된 짓을 자행타가 결국 더러운 무리들은 섬멸되었느니라. 하늘에 태양이 활짝 떠오르매 어찌 요망한 기운이 지속되겠으며,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 있으니 무도한 집단이 어찌 길게 갈 수 있었겠는가.

 

하물며 하향(遐鄕)의 한사(寒士)로 태어난 그대는 인권(人權)의 율사(律士)를 자처하며 세상에 나타났고, 어리석은 무리들의 헛된 꿈을 민의(民意)와 대의(大義)로 참칭하는 무도를 자행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그대는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를 지어 온 것이다. 선량한 백성들이 그 죄를 용서해 주려 해도 그 거짓이 너무 끔찍하여 치를 떨기에 이른 것 아닌가. 그래서 천하 백성이 모두 그대를 징치하려 절치부심(切齒腐心)할 뿐 아니라, 땅 속에 있는 귀신까지도 몰래 그대를 몰아내려 의논함을 보지 않는가. 잠깐 동안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벌써 정신은 죽었고, 넋 또한 빠져나간 것 아닌가. 무릇 사람이라면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자신을 알면 사람이고 자신을 모르면 짐승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헛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모름지기 새겨들을지어다. 그간 선량한 백성들은 많은 덕을 베풀어 더러운 것도 받아들이고, 두터운 은혜를 내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모르는 체 하며 지나쳐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그대를 추장으로 임명하고 전권을 몰아 준 것 아닌가. 그런데 그대는 국기(國基)의 붕괴를 요설(妖說)로 분칠하고 합리화하려 했다. 무능과 과욕으로 나라의 근본을 흔들었고, 그 과정에서 죄를 벗어나고자 법률체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려 나라는 형언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버린 것이다.

 

반드시 쫓겨날 날이 멀지 않았음에도,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느냐? 이런 처지에 어찌 구중궁궐을 그대의 영원한 안식처로 생각하여 무도한 꼼수를 접지 않는 것이냐?

앞으로 그대는 도대체 어떻게 할 작정이냐?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노자가 <<도덕경>>에서  "회오리바람은 하루 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 동안을 내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하늘의 일도 오래 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의 일이겠는가? 또 듣지 못하였는가?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라는 <<춘추>>의 지엄한 훈계를.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온갖 간사한 꾀를 부려 악이 쌓이고 재앙이 가득함에도, 목전에 드러난 거짓과 간사(奸邪)를 스스로 편하게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니, 대체 그대를 어찌 해야 옳단 말이냐.

 

위태롭기가 '제비가 바람에 날리는 장막 위에 둥지를 틀어놓고 마음 놓고 날아드는 것 같고, 물고기가 끓는 솥 속에서 노니는 것 같다'는 옛말도 있느니라. 이제 웅장한 전략을 가지고 군대를 모은 강호의 지사들이 구름같이 날아들고 지혜로운 백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고 있음을 그대는 정녕 모르는가.

 

높고 큰 깃발이 초나라 요새의 바람을 에워싸고, 튼튼한 군함이 오 나라 강의 물결을 막아 끊었듯, 연대(連帶)에 나선 백성들의 힘이 그대의 아성(牙城)을 부수겠노라 이를 가는 소리를 그대만 듣지 못하는 것인가. 그 대열 속에 진나라 도태위 같은 장수가 있어 적을 부수는데 날래고, 수나라 양소 같은 병법가가 있어 법을 엄숙하게 시행하여 신이라 일컬어짐을 듣는가, 못 듣는가.

 

이들은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를 오가는 안목을 지니고 있느니라. 그대 무리들을 무찌르는 것은 맹렬한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고, 태산을 높이 들어 참새알을 눌러 깨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조만간 정의의 바람이 불고 새벽이슬이 내려 바야흐로 말라가는 풀을 살려 내고서야 그 힘을 알겠는가?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통하였으니, 석두성에서 뱃줄을 풀매 손권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에 돛을 내리니 두예가 앞장 선 일을 아지 못하는가. 열흘이나 한달이면 반드시 권부(權府)의 핵심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하늘의 깊으신 인자함이요, 법을 굽혀서라도 은혜를 펴려는 지사들의 선의를 아직도 그대에 대한 복종으로 착각하는가.

 

나라의 도적떼를 토벌하려는 이들은 사사로운 분함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기 위해 진실로 바른 말을 해주는 것이 도리 아니겠나. 이 글 몇 자로 그대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함을 풀어 주고자 하는 것이니, 부디 고집을 버리고 이 나라 백성의 어진 마음과 일의 선후를 잘 판단하여 올바른 계책을 통해 잘못된 일을 그대 스스로 고치는 것이 최상의 방책 아니겠나.

 

법에 따라 그동안 지은 죄업을 씻고 삼척신(三尺身)이나마 보존하려면, 그대의 토벌에 나선 민병(民兵)들에게 백배사죄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게 대장부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아니겠나. 그러니 절대로 이 말을 의심하지 말고 회답할지어다. 나의 명령은 천하 공도(公道)를 바탕으로 발(發)한 것이라,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라. 만일 미쳐 날뛰는 무리들에 이끌려 미몽(迷夢)과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항거하듯 한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정의의 힘으로 한꺼번에 없애 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솔개 같이 덤비던 너의 무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니라.

 

몸은 날카로운 도의(道義)의 검(劍)에 산산조각 날 것이요, 뼈는 가루가 되어 백성들의 발밑에 깔리게 될 것이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르면, 그대는 인류사 최대의 웃음꺼리가 됨을 면치 못하리라.

 

그대는 모름지기 나아갈 것인가 물러날 것인가를 잘 헤아리고, 잘된 일인가 못 된 일인가 분별하라. 이 말을 거역하여 멸망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귀순하여 극형을 면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면 최소한 고종명(考終命)은 이룰 것이며, 개과천선한 소시민의 삶도 얼마간 더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니, 부디 어리석은 생각으로 의심하지 말지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7. 26. 17:45

싸드(THAAD)와 중국의 커밍아웃

 

 

 

 

근자 싸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우리 모두 그간 잊고 있던 중국의 정체와 본질을 아프게 깨닫는 중이다. 유사 이래 우리는 단 하루도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논리로 합리화하려해도, 중국과의 관계는 항상 침략과 굴종/지배와 피지배의 식민주의적 패러다임에 갇힌 채 지속되어 왔다. 그들이 자신들의 족속을 우리의 왕으로 세운 적도, 우리 땅을 봉토(封土)로 활용한 적도 없건만, ‘사대(事大)’라는 중세적 외교의 명분 아래 그들은 식민주의자들 이상의 폭압과 전횡을 부려 온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그들로부터 한자와 한문을 들여왔고, 유교불교도교 및 제자백가 등 사상이나 사유체계를 도입했으니, ‘가르침과 배움이란 선한 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크게 보아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굴종의 역사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전혀 바뀌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는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625 때 마오쩌뚱이 김일성을 도와 한반도의 통일을 결정적으로 막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타산적 명분이야말로 지금까지 이 지역의 정치적이념적 지형을 주도해온 굴종적 역사의 또다른 구도라 할 수 있다.  

 

항미란 무엇인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통일 한반도를 재현시킬만한 힘을 지닌 미국에게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원조가 말만으로는 자신들의 괴뢰인 북한을 돕겠다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 말의 이면에는 북한을 살려서 미국에 대항하는 주구(走狗)로 삼겠다는 뜻이 들어 있었고, 그 해석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이미 마오쩌뚱 당시부터 북한의 효용가치는 미국에 대한 견제 카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대규모 원군(援軍)을 출병시켜 망하기 일보직전의 김일성을 구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한반도 전체를 김일성 치하에 놓이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좀 더 확실한 대미 병참기지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625에 참전한 마오쩌뚱의 원대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시종일관 북한의 후원자 혹은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 독점적으로 열매를 따왔다. 그런 그들의 행태는 개혁 개방 이후라고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물건 팔고 돈 벌어오는 새 시장 남한과 거래를 시작했으니, 그들로서는 이제 한반도에 관한한 알 먹고 꿩도 먹는단계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냉전시대대로, 탈냉전시대에는 탈냉전시대대로 한반도는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일 뿐이다.

 

그로부터 몇 발 더 내디딘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이 바로 시진핑의 행보와 2006년부터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대국굴기(大國崛起)’의 결합이다. 최근 중국은 '샤오캉(小康)'에서 '화평(和平)굴기'를 거쳐 비로소 '대국굴기'의 본심을 단계적으로 만방에 드러내 왔다. 그것이 시진핑 체제의 등장과 함께 떠오른 '중국몽(中國夢)'과 직결되는 말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Chinese Dream! 일견 멋진 듯하지만, 주변의 소국들을 아연 긴장시킬 만큼 고약한 것이 바로 그 말이다. 만주벌판도, 한반도도, 일본도, 동남아도 모두 손아귀에 쥐고 호령했던 그 옛날 '천자의 나라' 즉 중화제국을 복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지금 중국의 전권을 거머쥔 채 실질적으로 황제 행세를 하고 있는 시진핑의 꿈이자 중국 지배계층의 꿈이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집권세력도 '한국 따위'는 애당초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 늘 중원의 정치적 향배를 예의주시하며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워온 게 조선이었고 한국 아니던가. 모처럼 실용외교를 추구하던 광해군을 당당하게(?) 제거하고 인조를 옹립한 서인 반정세력이 향한 곳은 망해가는 명나라였다. 서슬 퍼렇게 중원을 먹어가던 누르하치를 애써 외면하며 한사코 망해가던 명나라에 빌붙고자 한 반정세력의 눈에는 오직 작은 한반도 안에서의 보잘 것 없는 권력만이 관심사였을 뿐 민족이나 국가, 백성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백성들이야 그들의 말발굽에 짓밟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의 어이없는 패거리들, 힘을 가진 어느 누가 중원의 지배자가 되어 우리에게 압박을 가해오든 그에게 빌붙어 자신들의 목숨과 권력만 부지하면 그만인 '망종(亡種)'들이었다. 그들과 단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군상이 바로 지금의 이른바 '정치인들'이다. 아무런 식견도 밸도 없으면서 알량한 이데올로기의 허울을 뒤집어 쓴 채 권력과 돈만 탐한다는 점에서 17세기의 그들과 정확히 부합하는 한심한 '불량배'들이다. 국민들을 편 갈라 싸움질시키는 행태를 보면, 오히려 당시의 그들보다 훨씬 더 사악하고 음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중국은 중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를 얕보고 덤비는 것 아닌가.

 

2005년 탈북자들에 대한 부당한 횡포를 항의하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김문수 전 의원이 무도한 중국 공안들에 의해 폭행을 당한 사건을 기억들 하시는지? 나는 1624년 혹독한 겨울 명나라의 관원들에게 수모를 당하던 주청사행의 정사(正使) 죽천 이덕형(李德泂)의 사건을 김문수 의원의 사건과 비교하며 민족의 자존심이란 제목의 글을 조선일보(2005. 1. 17.)에 기고한 바 있고, 중국 당국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김영환 씨의 사건을 통해 김문수 의원 사건이후 전혀 바뀌지 않은 중국의 태도를 간파하고 중국은 무도(無道)'깡패국가', 세계 평화의 최대 걸림돌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이 블로그(2012. 8. 1.)에 올린 바 있다. 통탄스럽게도, '1624년2005년2012년'을 거쳐 드디어 2016년의 싸드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한국이 제 나라 제 국민을 지키겠다고 싸드를 배치하려는데, 못하도록 위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중국이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자기네 나라의 한 성()에 불과할 뿐, '독립된 국가'가 아닌 것일까. 그간 핵을 개발하겠다고 광분하는 북한을 제재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은 그야말로 제스처였고, 어떻게든 북한을 살려서 미국에게 달려드는 사냥개로 만들겠다는 것이 진정한 속내였던 것이다. 뼈다귀 몇 개 던져 놓으면 저희들끼리 물고 뜯는 싸움질로 날들을 지새울 게 뻔한 남한 쯤 굴복시키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판단도 저들 내부적으로는 이미 서 있으리라.

 

***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미국이 일본, 한국과 손을 잡으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시진핑의 이른바 '중국몽'이다. 바야흐로 자신들의 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는 한국. 이미 품에 안겨있는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집어 삼키면, 일본쯤이야 큰 문제 아니라는 계산이 서 있었으리라. 이처럼 중국몽의 실현을 통해 세계의 중심 즉 '중화대국(中華大國)'으로 굴기해야겠는데, 일이 하나로 뭉치면 그 꿈은 자칫 '백일몽(白日夢)'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어려운 현실과 마주친 것이다. 제재를 이행하는 척 적당히 세계의 눈을 속이며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개발하여 미국에 맞서게 하려는 중국으로서는 그런 꼼수까지 간파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당황함과 분노를 누구에게 옮길까.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불천노(不遷怒: 이쪽에게 성낼 것을 저쪽에게 옮기지 말라)'는 남한을 향해 수백기의 미사일을 배치해 놓았다는 산동성 노나라 출신의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땅덩어리만 크다고 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주먹만 세다고 리더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교의 핵심은 도()와 덕()이다. 무도(無道)하고 부덕(不)한 개인은 깡패나 강도일 수밖에 없고, 그런 나라는 깡패국가나 강도국가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중국몽을 실현하려면 우선 깡패국가의 굴레를 벗고 주변 국가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존경 받을 만한 도와 덕도 없으면서 아무리 미사일을 많이 만들고 항공모함이나 전투기를 많이 만든들, 종당에는 고철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 지금 당장 시진핑 주석과 중국의 지도층은 그 간단한 진리를 역사로부터 배우기 바란다.

Posted by kicho